"김정숙님, 이 연극을 꼭 봐주세요!"

[전홍기혜 기자의 '세 가지'] 군 사망사고 다룬 연극 <이등병의 엄마>

"같은 어머니의 심정에서 이 연극을 보고 유가족들의 손을 잡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영부인인 김정숙 님께서 꼭 보셨으면 합니다."

인권 운동가 고상만 씨는 절실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한 해 평균 27만여 명의 청년들이 군에 입대한다. 그리고 그중 평균 100여 명은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군에서 사망하며, 이들 중 3분의 2는 자살로 처리된다. 그나마 1998년에는 1년에 380여 명이었는데, 많이 줄었다고 한다. 1948년 창군 이래 약 3만9000명이 군에서 이유도 모르고 죽어갔다.

징병제 국가에서 국민의 의무를 다하려다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과 가족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반복되고 있는 이 비극적이며 비상식적인 문제에 대한민국은 철저히 침묵해왔다.

새 정부가 출범했고, 많은 이들이 비정상의 정상화를 피부로 느끼는 일이 연일 있었다. 군 사망사고도 문재인 정부가 '지금' 관심을 가져야 할 일 중 하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은 수많은 청년들을 군인으로 차출하기 때문이다. 2017년에도 4.5일에 1명꼴로 군 사망사고 유가족이 늘어나고 있다.

▲ 연극의 한 장면. ⓒ프레시안(전홍기혜)


<이등병의 엄마>(고상만 작, 박장렬 연출)는 군 사망사고를 다룬 연극이다. 유가족 9명이 직접 무대에 올랐다. 이 연극은 5월 19일부터 28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술공연 '오르다'에서 공연된다. 이 연극은 미디어다음 스토리펀딩을 통한 2500여 명의 후원으로 마련됐다.


검은 상복을 입고, 아들들의 영정 사진을 든 엄마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눈물을 쏟아내게 한다. 군대 내 폭력, 사고 후 은폐, 무조건 자살로 몰아가며 책임을 피해장병과 가족들에게 돌리는 모습 등 전형적인 군 사망사고 처리 과정을 잘 보여주는 스토리 역시 가슴을 치게 만든다. 18일 있었던 '프리뷰&프레스콜'에서 관객석 여기저기 훌쩍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 연극의 제작자이자 작가인 고상만 씨는 공연 후 가진 인터뷰에서 "이 연극을 두 사람이 꼭 봤으면 좋겠고, 한 사람에게 바치고 싶다"면서 김정숙 영부인을 공개 초청했다.

"두 번째로 국회 국방위원들이 꼭 봤으면 한다. 군대 내 사망사고의 3분의 2가 자살로 처리되는 이유가 그렇게 해야만 상관 등이 책임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확한 조사나 제대로 된 현장 검증도 없이 자살로 몰아간다.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한 군인들이 누군가의 아들임을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 더 바라는 것도 없고 서울구치소의 사형수만큼만 대해줬으면 한다. 감옥의 수형자들도 죽으면 교정인력들이 책임을 진다. 그런데 군인이 죽으면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죽은 군인과 유가족들만 죄인이 된다. 이런 어머니들의 사연에 대해 국방위원들이 알아줬으면 한다. 다행히 정의당 김종대 의원, 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19일 공연을 보러 오기로 했다. 김광진 전 의원, 백군기 전 의원 등도 올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이 연극은 1948년 창군 이래 이름 없이 죽어간 모든 아들들에게 바치고 싶다. 내가 19대 국회에서 김광진 의원 보좌관을 하면서 군에 '1948년 창군 이래 얼마나 많은 군인들이 순직 처리도 안 되고 죽었는지 알고 싶다'고 자료를 요청한 적이 있다. 보통 자료를 요청하면 1주일 넘게 걸리는데 바로 다음 날 답변이 왔다. 답변 내용은 관련 자료가 없기 때문에 자료를 보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추산해보면 약 3만9000명의 군인이 죽었다."


▲ 연극의 한 장면. ⓒ프레시안(전홍기혜)

무대에 직접 오른 고 이가람 씨 어머니 박현애 씨는 "두 가지만 말하고 싶다"며 군 사망사고 후 순직 처리 등을 다룬 군 인사법 개정과 국방부 장관의 사과를 요구했다. "국방부 장관이 그게 뭐가 어렵다고 사과 하나 못 해주는지 너무 억울하다"는 게 가족들의 가슴에 맺힌 한 중 하나다. 작년 9월 국정감사장에서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한민구 국방장관에게 이 문제를 거론하며 사과를 요구했으나 거부했다.


고 김정운 씨 어머니 박영순 씨는 "아들이 군대 간 후 좋아하는 된장찌개 한번을 못 끓어주고 그렇게 보냈다"며 "죽고 나니 부모로 못 해준 것만 생각난다"고 눈물을 훔쳤다.

고 윤영준 씨 어머니 박윤지 씨는 "연극 공연 첫날인 19일이 아들 7주년 기일"이라며 "광주에 살아 연극을 연습하려면 하루를 꼬박 투자해야 했는데, 하나도 힘이 안 들었다"고 공연에 참여한 소회를 밝혔다. 극 중에서 박 씨는 "아들이 셋이라 장남을 군에 보내 잃고도 남은 자식 둘을 또 군대에 보내야 한다"는 사연을 밝히기도 했다.

이정호 '의무복무중 사망군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전국유가족협의회' 회장은 "아들이 죽은 지 16년 6개월이 지났는데, 여전히 매일매일이 아들 생각으로 힘들다"며 "솔직히 나는 아들이 죽은 51살에 죽었다. 우리의 행복은 끝났다. 하지만 이 일이 아들이 내게 내준 숙제라고 생각해 이렇게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 바라는 바를 묻자 고상만 씨가 덧붙였다.

"1998년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로 일하면서 김훈 중위 사건을 통해 군 사망사고 유가족들을 처음 만나고 그 이후 500여 명의 유가족들을 만났다. 그때부터 이 일을 연극이나 영화를 통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군 사망사고의 피해자들이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내 아들, 내 가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징병제 국가에서 군인으로 데려갈 때만 국가가 존재하고 군대 내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나 몰라라' 한다는 게 말이 되냐. 징병에 따른 포괄적인 책임을 국가가 인정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세 가지'를 원한다. 명예회복, 정확한 사인규명, 국방부 장관의 책임 있는 사과. 우리도 기다리면 기회가 오기를, 우리가 제일 꼴찌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마침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5.18 유가족의 편지 낭독을 듣고 눈물을 흘리고, 그를 포옹하는 장면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이를 보고 많은 국민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같은 날 연극을 보고 나니, 십수 년이 지나도 가슴에 묻은 아들 생각에 눈물 흘리는 이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문재인 정부에서 듣고 손잡아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됐다. (공연 문의 : 02-3676-3676)

▲ 연극의 한 장면. ⓒ프레시안(전홍기혜)

▲ 언론 인터뷰가 끝난 뒤 포즈를 취한 유가족들과 연극 참여자들. ⓒ프레시안(전홍기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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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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