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청산과 국민 통합이 모순일수 없는 이유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文정부, 참여정부 딛고 '멀리 보기' 필요하다

최순실 게이트 과정에서 나타난 사건과 주요한 인물들의 삶은, 그동안 각종 수치로 나타나고 자신들의 삶에서만 확인되었던 '헬조선'에서 소위 금수저들과 상층 기득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렇게 보면 촛불은 단순히 최순실 게이트나 보수정권의 실정에 따른 사건사적 결과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87년 체제, 경제적으로 97년 체제에 기반을 두고 나타난 2007년 체제의 구조적 산물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촛불과 대선을 평가한다면, 새정부가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헬조선' 현상이라는 구조적 불평등의 완화에 있다.

이 과제는 대통령의 통치력이 발휘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해결 불가능하며, 통합정치에 의해 구현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문재인 (캠프의) 정부'가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정부'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야당들과 당대당 차원, 정부와 국회차원에서 주요한 국정 아젠다를 제시하고, 이를 중심으로 사실상의 공동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제안해야 한다. 야당들이 참여하는 넓은 차원의 '당정협의(합의)기구', '국정과제협의회' 같은 기구를 만들어서 논의(또는 합의)를 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

박근혜는 왜 탄핵되었나?

2017년 대선은 직접적으로는 최순실 게이트와 그 결과인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발생한 정치적 사건이다. 그러나 탄핵을 가능하게 했던 실질적인 배경인 촛불시위의 원인은 이보다 더 구조적인 데 있다. 지난해 11월 최순실 게이트가 언론이 보도를 통해서 알려지기 시작하고 촛불시위가 열리던 초기에 새누리당 의원들의 발언이나,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의 발언을 통해서 이것이 잘 드러난다.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은 최순실 게이트를 정권말기에 발생하는 레임덕의 전형적 현상으로 보았다. 즉, 정권 말기에 선거에서 패배하고 - 이번의 경우 2016년 4월 총선 - 정부와 여당의 힘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측근 비리가 검찰의 수사나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는 정권의 힘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그 동안 묻혀있던 다양한 채널의 제보가 활발해지는 요인이 작동한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최순실 게이트를 이러한 일반적 상황으로 인식하고,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내각 총사퇴, 대통령의 탈당, 親청와대 당 지도부의 퇴진, 당정 분리 등을 통해 다음해 12월에 새로운 대선을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대응하려고 했다.

이들에게 대통령 탄핵의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이들은 '그런 논리라면, 아들이나 형 등 친인척들의 권력 남용과 비리 의혹이 일었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도 모두 검찰 수사를 받기 전에 탄핵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이제까지 그런 일이 매번 반복되었어도 대통령이 탄핵된 적은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만 갑자기 탄핵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정치논리이며,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당시 새누리당의 주장은 정치공학적 논리로 본다면 크게 잘못된 판단이 아니며, 오히려 탄핵이 일어난 것이 비정상적인 일이라는 현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시각에 전혀 근거가 없지 않다. 그런데 왜 탄핵이 가능했던 것일까?

그 실마리는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이 정유라 입시부정 사건으로 구속되는 과정에서 한 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최총장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체육계 입시부정 사건이 수백 건도 더 될 텐데, 그것 때문에 총장이 구속되는 일은 없었다"며 억울함을 하소연했던 것이다. 최경희 총장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말을 타고' 대학에 들어 간 정·재계 유명 인사들의 자제들은 지금껏 수없이 많았고, 체육 특기자들에 대한 학사관리가 늘 원칙대로 철저했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에서 최경희 총장은 구속을 면하지 못했다. 무엇이 달랐는가?

많은 사람들이 이번 탄핵을 놓고 정운호 원정도박 수사과정에서 터져 나온 진경준 게이트와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사건이 빚어낸 나비효과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비효과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나비의 날개짓이 태풍으로 이어질 수 있는 조건이 존재해야 한다. 정운호, 최유정, 홍만표, 진경준으로 이어지는 총체적 사법 비리의 핵심에는 우병우 민정수석으로 대표되는 부패한 검찰조직이 있었다. 이 검찰 조직은 정권의 호위를 위해서 정윤회 문건을 덮었고, 세월호 사건 수사를 방해할 정도로 파렴치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은 흙수저 우병우가 어떻게 재산을 형성하고 민정수석에 올랐는지에 모아졌다.

그리고 그 뒤에는 부패한 경찰 출신 자산가인 처가의 힘(장모 김장자와 최순실의 관계)이 존재한다는 의혹이 일었다. 흙수저가 개인적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최고치에서 한 발 더 나가기 위해서는 금수저들에게 포획되어 그 주구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영화보다 극적인 장면이 여기에서 펼쳐졌다. 이것은 단순히 몇몇 개인들의 권력 농단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기득권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봉건적 계층관계가 그 안에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화여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최경희 총장의 말대로 이화여대에서 입시부정과 성적 조작이 처음 일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 대한민국'이 아니라 '헬조선'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아! 대한민국'에서 그러한 일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때는 그것이 용납되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사회 전체의 정의감이 높아져서가 아니라, 장기간의 저성장과 극단적인 사회양극화의 심화, 그리고 계층 이동성의 극적인 하락이라는 구조적 측면이 빚어낸 결과다. 87년 체제의 수립을 가능하게 한 사회경제적 배경은 정치적 변화를 지탱할 수 있었던 대외적 경제여건의 호황이라는 조건이었다. 대학 내내 수업을 내팽개치고 데모를 하다가도 마음만 먹으면 취직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던 시기에는, 입시 부정이나 성적 조작에 대해 혀를 끌끌 차고 잠시 분개하면 그 뿐이었다. 그러한 부정의(不正義)가 각 개인들이 성취할 수 있는 삶이나 지위와 크게 영향을 미치거나, 상대적 박탈감을 크게 주지 않았기 때문에 용납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부터 엄청난 입시경쟁을 통해 ‘인서울 대학’에 목을 메고, 입학 후에는 아무리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도 등록금은 커녕 생활비조차 감당할 수 없는 지금의 대학생들에게는 그러한 부정의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1학년 때부터 취업을 위해 학점과 스펙을 쌓기에 여념이 없고 그렇게 해도 취업 자체가 불투명한 세대들에게, 학위를 쉽게 받도록 한다는 '평생교육원'은 그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하물며, 부정으로 입학해 성적조작으로 학점을 취득하고, '부모 잘만나는 것도 스펙'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정유라는 용서될 수 없었다.

요컨대, 박근혜의 탄핵과 최경희의 구속은 '아! 대한민국'에서는 면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헬조선'에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최순실 게이트 과정에서 나타난 사건과 주요한 인물들의 삶은, 그동안 각종 수치로 나타나고 자신들의 삶에서만 확인되었던 ‘헬조선’에서 소위 금수저들과 상층 기득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바로 이 점에서 최순실 게이트는 사건 자체의 성격은 새누리당 의원들과 최경희 총장이 본 대로 이전의 여러 사건들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것이 발생한 시점의 사회구조적 조건은 판이했다고 할 수 있다.

정유라 사건은 대학생과, 대학생이 될 초·중·고등학생, 그들의 학부모들 - 사실상 10대에서 50대, 이번 대선에서 야당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한 세대 전체에 해당한다 - 에게 거대한 공분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검찰과 청와대, 그리고 그들과 유착된 재계의 부패한 내부자 고리는 경제적으로 한계 상황에 다다른 경제상황에 다다른 50% 하위 국민들에게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모든 정치혁명의 원인에는 경제적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말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촛불은 단순히 최순실 게이트나 보수정권의 실정에 따른 사건사적 결과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87년 체제, 경제적으로 97년 체제에 기반을 두고 나타난 2007년 체제의 구조적 산물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최순실 게이트는 87년 이후 민주화(자유화)의 산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민주화의 왜곡이나 부작용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국가적 비전의 결실이다. 87년 체제는 대통령 간선제에 반대하는 대통령 직선제, 그리고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정치적 자유주의라는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했다. 대기업 남성 노동자들은 정치적 자유주의의 대가인 합법적인 노동조합을 쟁취했고, 그 결과 오랫동안 지체되었던 분배적 정의의 결과를 일부 얻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직시하듯이, 노동 분야에서 한국 사회의 민주화는 정확히 거기서 멈췄고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97년 체제에서 한국사회는 세계적인 경제 환경의 변화에 기인한 신자유주의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연대를 포기한 노동운동은 헬조선으로 불리는 불평등 사회의 충실한 협력자가 되었다.

2007년 체제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신자유주의라는 토대 위에 사익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보수정권이 수립되었을 경우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잘 보여준다. 권력을 이용한 지대추구가 가져온 최악의 결과는 부패 그 자체가 아니라, 집요하게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동안 완전히 방기된 국정, 곧 대내적으로 세월호 참사와 대외적으로 외교적 고립으로 나타난 국가부재의 상태였다.

87년 민주화는 독재로부터의 '자유'에 핵심이 있었고, 97년 경제위기는 신'자유'주의를 강화했으며, 2007년 보수정권의 수립은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자유'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다. 87년 이후 한국사회는 겉으로는 민주화를 지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비판적인 '자유화'의 길을 일관되게 걸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순실 게이트는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추진해온 자유화의 최종적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촛불과 대선을 평가한다면, 새로운 정부의 국정과제는 단순히 이전 보수 정부의 적폐 청산, 세월호 사건, 백남기씨 사망사건, 가습기 살균체 피해에 대한 재조사와 진상규명, 나아가 검찰개혁이나 사회정의의 재구축에 그치지 않는다. 새정부가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헬조선' 현상이라는 구조적 불평등의 완화에 있다.

새 정부의 정치적 조건

문재인 대통령은 소통방식과 인사에서 우선 이전의 두 정부와 차별화되는 측면이 많다는 점에서,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추세는 적어도 장관 인사청문회 이전까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통령 임면권과 시행령 한도 내에서 풀어나갈 수 있는 국무총리 및 보훈처장 사표 수리, 국정교과서 폐지, 세월호 및 정윤회 사건 등에 대한 재수사 역시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수준에서의 적절한 정치적 행보다.

대외적으로 보면 가장 까다로운 과제인 '사드' 문제 역시 생각보다 쉽게 풀릴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중이 강대강 대결보다는 상호 적극적인 견제 속에서도 적절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트럼프는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회귀 정책(Pivot to Asia)'을 대일무역 적자 문제를 이유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사드 역시 이러한 거대한 정책 속에 포함된 일부분이며, 트럼트가 직접 언급한 사드 비용분담 문제는 오히려 사드 배치에 대한 유연성을 제고하는데 이용될 수도 있다. 미중관계에는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며, 오히려 두 나라의 관계보다는 북한이 중요한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새 정부의 가장 큰 과제는 헬조선 현상의 완화와 그 방향성을 전복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이 과제는 대통령의 통치력이 발휘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해결 불가능하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실질적 고비는 허니문이 끝나는 정기국회에서 닥칠 것이다. 새 정부의 주요한 사회·경제 분야 정책 대부분이 입법 절차를 거쳐야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조국 민정수석을 통해 천명한 검찰 개혁의 핵심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과 같은 입법과제에서 현재의 여당이 자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리고 헬조선 현상의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가야 할 경제와 노동, 복지 정책에서는 더욱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 온 것이 자유한국당의 계보 상에 있던 정당들이 보여준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가 주장하듯이 김영삼 정부 시절처럼 비밀리에 진행하는 정권 초기 ‘개혁’은 현재는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한국정치의 제도적 수준과 언론 등 정치적 환경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107석의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민주당(120), 국민의당(40), 바른정당(20), 정의당(6)을 모두 더해야 선진화법의 한계를 넘어서는 180석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이들 정당 전체의 동의를 일일이 얻어 법안을 통과시키기란 거의 불가능 할 것으로 보인다. 개별 입법마다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이 의견을 달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경제정책에서는 바른정당과 정의당의 입장을 조율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며, 안보정책에서는 바른정당이 다른 당들과 입장을 달리 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정기국회를 거치는 동안 정부의 개혁이 주춤하게 될 경우, 보수진영(정치권+언론+종교·시민사회)의 공세가 강화되면서 정부와 여당의 지지도가 하락하게 되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여당을 중심으로 한 구심력이 약화되고 자유한국당을 위시한 보수세력의 원심력이 강화된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포지션 변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적폐청산을 위한 통합정치

이러한 상황에서는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사실상의 연정이 요구된다. 우선 현재 우리 국회법이 사실상 과반이 아닌 3/5의 super majority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설사 여당이 과반을 차지한 상황이라고 해도 국회 내에서 안정적인 연정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이번 대선의 결과에서도 현 대통령이 과반득표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적 지지를 얻기 위해서 연정이 필요하다. 여당이 단독으로 입법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요한 정책과제의 실행 여부는 대통령의 국정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에 달려있다. 대선에서 현 대통령은 홍준표 후보의 24%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76%)에게 투표한 유권자의 80%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겨우 60% 정도의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다. 셋째, 의석수나 지지율의 차원이 아니라, 개혁을 위한 정치적 연대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적폐정산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들에 대처하는 가운데 - 예를 들어 검찰개혁 등 - 다수파 전략을 활용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렇다면 통합의 정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연정을 선언하고 국정을 함께 이끌어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특히 앞서 언급한 바 있는 극단적인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자생적 경제발전의 동력이 상실되어가는 비상한 국가적 상황임을 국민들에게 드러내고, 그것을 타개해 나가기 위해 다수파 연합이 공동으로 국정을 책임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국민과 정치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대통령은 이미 선거 개표 당일 '문재인 (캠프의) 정부'가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정부'가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민주당 정부만으로 새 정부의 공약실천이나 정치개혁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러한 상황에서 유승민, 심상정 등 야권의 개별 정치인들에게 입각을 타진하는 모양새는, 오히려 국민의당이 바른정당과 통합을 모색하는 등의 제스처를 취하는 반작용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특히 혹시나 모를 일부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 의원들의 민주당 행은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당대당 차원, 정부와 국회차원에서 주요한 국정 아젠다를 제시하고 이를 중심으로 사실상의 공동정부(연정)를 구성하는 것을 제안하고, 협상을 통해 구체화시켜 나가는 것이 최선이다. 장관 임명 등의 행정부 구성에서 이러한 절차가 곧바로 가동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대통령제 하에서의 연정이 반드시 내각제에서처럼 장관직의 개방이 전제조건이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보다 넓은 상상력을 발휘해서, 각각의 아젠다에서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야당들이 참여하는 넓은 차원의 '당정협의(또는 합의)기구', 혹은 정부와 국회의 정당들이 모두 참여하는 '국정과제협의회' 같은 기구를 만들어서 논의(또는 합의)를 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가 정기국회 이전에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정치적 기반이다.

새로운 정부는 적폐의 청산과 국민 통합이라는 모순적 목표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두 목표는 모순적이지 않다. 오히려 전자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후자는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다. 문재인과 민주당만으로는 40% 이상의 득표나 지지를 획득할 수 없으며, 이들이 고립될 경우 전국단위 선거가 아닌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오히려 고전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과 민주당이 현재의 다당제 하에서 소수파 승리 전략에 안주하게 되면, 이 같은 예측은 사실이 될 것이다.

참여정부를 딛고, 멀리 보기

새 정부가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참여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새 정부의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비서실장이었고,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청와대나 여당의 주요 인사들 대부분도 참여정부의 공과를 모두 안고 있는 인물들이다. 대통령 이하 이들 모두는 참여정부의 과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역시 공을 더 크게 느끼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정치적으로 실패한 정부였다. 임기 동안 탄핵 도중에 치러한 총선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의 선거에서도 이기지 못했고, 임기가 끝나는 대통령 선거에서도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개혁세력이 청와대와 국회를 모두 장악했다는 총선의 결과에 대한 환상은 기실 거대한 정치적 재앙이 되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달리, 결과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들은 정부와 여당이 오만하다고 평가했고, 선거에서 연전연패하는 정부와 여당이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은 거의 없었다. 당시 한나라당의 발목잡기는 말할 수 없이 저열한 것이었지만, 국민들은 정치적 갈등의 원인을 집권세력에게 제공하고 있다고 보았다. 노 대통령은 마침내 대연정을 제안했지만, 박근혜 당시 대표는 이를 거부했다.

노무현 정부의 한계를 가장 잘 보여준 것은 사학법이다. 사학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던 2005년 겨울 박근혜 대표는 57일간 국회를 보이콧 하고 장외투쟁을 이끌었고, 이를 계기로 '보수정당-보수언론-보수종교계-보수학계'가 똘똘 뭉쳤다. 엄청난 정치적 갈등을 딛고 겨우 통과된 사학법이 허무하게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7년 재개정). 아무리 좋은 정책을 아무리 어렵게 시행하더라도, 선거의 결과로 그 모든 것을 바꾸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비단 사학법 뿐 아니라 참여정부에서 기초를 닦은 대부분의 정책들은 이명박 정부, 그리고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국회에서 휴지조각처럼 사라졌다.

가장 성공한 정부는 가장 많은 정책을 성공시킨 정부가 아니라, 적은 정책을 통해서라도 국민의 지지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서, 그 정책이 차기 정부에서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정부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정부가 정책적 성공의 범위를 정권 이내로 제한하지 않고, 장기적인 정치적 비전 속에서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가장 필요한 것은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기본적 속성을 따르는 것이다.

적지 않은 진보 지식인이나 언론이 '선거에서는 득표를 위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했지만, 당선된 후에는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고 대통령을 응원하고 있다. 말 그대로 '사이다 정치'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선에서 대통령의 득표율과 현재 국회의 의석 분포에 따르면 그러한 정치는 불가능하다. 그러한 정치를 시도할 수도 있으며, 당장 일부 성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 정책의 지속 가능성, 곧 정권 재창출의 가능성은 낮아질 것이다.

보수를 적으로 치부하고, 대화와 타협을 지양하고 대결해서 승리하고자 하는 일부 민주화 세대의 정치에 대한 몰이해가 실은 민주화 이후 정치적 지체를 가져 온 중요한 요소였다. 보수는 '궤멸시키겠다는 의지'에 의해 궤멸되지 않는다. 그것이 오히려 보수를 더욱 결집시키고 강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정치문화 수준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견해의 수정이 필요하다. 현대의 대표제 정치는 선거경쟁을 통해서 승리를 쟁취하고 집권하는 것이 목적이지 상대 세력을 궤멸시키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새로운 정부에게 필요한 것은 참여정부를 딛고, 멀리 보는 것이다. 산업화/민주화, 민주/반민주의 구도를 벗어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책을 '정치적 수단'을 통해 최대한 가능하게 만드는 '기예'를 발휘해야 한다. 그것이 새 정부에게도 좋고, 국민에게도 좋으며, 그 다음 정부에게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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