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정상이라는데 피로가 가시지 않아요"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에너지 소진 사회, 대기 전력 줄여야

"특별히 하는 일도 없는데 피로가 가시질 않아요. 검진을 받아도 다 정상이라고 하고, 며칠 전에는 주변 사람들이 좋다고 해서 영양제 주사를 맞았는데도 별반 나아진 게 없네요."

시간을 두고 찾아가면 원인은 조금씩 다르지만 위와 같이 말하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공통점은 병원 진단에서 뚜렷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고, 본인 스스로도 자각할 만한 요인이 없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인과의 법칙은 분명해서, 치료와 진단을 반복하다 보면 그 이유가 드러납니다. 그런데 한의학적 진단으로도 딱 부러지게 "이것 때문이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그 불균형의 정도가 미묘한 수준이거나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어 몸과 마음이 그 상태에 적응해 버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물동이에 채운 물이 새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어느 한 곳이 심하게 깨져서 콸콸 새고 있으면 발견하기가 쉬운데, 살짝 금이 가거나 작은 틈이 여기저기 생겨서 아주 조금씩 새고 있으면 단번에 찾아내기가 쉽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게다가 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부분은 채워지고 있으니 환자도 의사도 인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 때문이다", "신경성이다"라는 말을 많이 하지요.

물론 이 말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몸과 마음에 가해지는 스트레스와 이로 인한 신경계의 불균형이 많은 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조금 더 환자의 생활을 찬찬히 살펴보면 가장 기본이 되는 영양의 섭취, 소화흡수, 대소변, 신체활동 그리고 수면 등에서 딱히 문제 될 것은 없는데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씩 떼어 놓고 보면 별 게 아닌데, 이게 합쳐지니 몸과 마음에 가해지는 부하가 무시 못 할 양이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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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런 환자 중에는 생활 리듬이 불규칙한 경우가 많습니다. 식사와 수면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일정한 시간에 음식이 들어와서 이것을 소화 흡수하고 배출해야 하는데,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 늘 대기상태에 있게 됩니다. 또한 일정한 시간이 되면 긴장을 풀고 이완 상태에 들어가 잠을 자야 하는데, 언제 자야 할지를 모르니 이 리듬 또한 엉키게 되지요.

마치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것처럼 위장과 신경계는 늘 시차 적응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를 위해 늘 준비 상태로 있어야 하니, 마치 전기제품을 켜지 않아도 플러그가 꽂혀 있으면 전력이 소모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기운 소모가 많아지게 됩니다. 또한 이렇게 되면 음식물의 소화와 흡수 그리고 수면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시간을 자도 그 효율이 떨어집니다. 여기에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피로가 더해지면 '남들 하는 만큼 일하고 이 정도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도 있나?' 싶은데, '왜 나만 이렇게 피곤하지?' 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에는 한 방에 해결되지도 않지만 해서도 안 됩니다. 쉽게 풀어지면 생활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그러면 나중에는 중한 병이 올 수도 있으니까요. 그간의 생활을 통해 금이 가고 틈이 생긴 몸과 마음의 상태를 메워 가면서 별것 아닌 것 같은 생활의 묵은 습관을 조금씩 조정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왜 피곤한지도 모르고 지쳐 있던 몸과 마음이 어느새 조금씩 힘이 붙고 활력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런 환자들을 보다 보면, '개인의 삶을 조정한다고 되는 일일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삶의 에너지를 필요 이상으로 소진시키며 버텨야 하는 지금의 사회가 변했으면 좋겠습니다.

일상의 무게에 지친 환자들을 보면서, 관심과 표를 위해 많은 약속을 내놓고 있는 분들이 그 결과와 관계없이 우리 삶의 대기 전력을 낮춰 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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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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