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탕한 웃음을 짓는 백승일, 이혜영 부부의 첫 인사말이다. 중고자재를 재활용해서 지은 집은 소박했고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에 여유가 묻어났다. 이른 아침부터 서울에서 달려가느라 쌓인 피로감과 긴장감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유자차와 봉화 꿀사과를 먹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부부는 자연농으로 '까망돼지'를 키우는 것 외에도 곰취, 어수리, 명이, 곤드레 같은 산나물을 친환경으로 가꾼다. 표고와 생강을 키워 직접 판매하기도 하고, 가족들이 먹을 식재료는 텃밭에서는 자급을 이루었다. 친환경 농사를 위해 주변 땅을 임대하여 현재는 5000평 농사를 짓고 있다.
남편의 진정성에 반한 아내
백승일 씨는 여의도에 있는 금융회사에서 근무했다. 생활은 안정적이었지만, 직업에서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자신만의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상에 재미가 없었다. 천성이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몰입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체질인지라, 회사생활이 힘들었다. 업무에 대한 긴장감이 삶을 잠식했고 일과가 끝나면 몰려드는 피곤에 지쳐 쓰러지는 쳇바퀴 도는 하루하루다.
그래서 '나이 들면 시골에 가서 살아야지'하고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막연한 꿈을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일찍 가자!'하고 행동에 옮기게 되었다. 업무가 끝나면 혼자 사무실에 남아 귀농 관련 자료를 찾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귀농인의 마음가짐, 생태적 가치, 대체의학, 자연농법 등 그때 정리해서 프린트한 자료는 지금까지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귀농본부'의 생태귀농학교를 알게 되었고 바로 신청을 하다.
2004년 생태귀농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그해 6월에는 삼척에서 한옥 짓기 교육을 받았다. 실업 급여를 받는 동안 1년 안에 귀농을 마무리 짓고 싶은 생각에 귀농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꿈꿨던 백승일 씨는 연애할 때부터 아내에 대한 사전 조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내가 자연을 좋아하는지, 시골에 대한 현실적 인식이 있는지를 계속 떠보았다고 한다. 귀농 준비를 하는 동안 아내 이혜영 씨는 시골에 내려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단다.
거제도에 사셨던 장인 장모도 "곱게 키운 딸이 힘든 농사를 짓게 할 수는 없다"며 완강히 반했다. 장인어른께서는 고생하는 딸이 눈에 밟혀 몇 년 동안 발길을 끊기도 했다.
"진짜 귀농할 줄을 몰랐어요. 일종의 속은 결혼이죠, 하하."
남편에게 귀농은 원하는 꿈을 향한 선택이었지만, 이혜영 씨 입장에서는 삶의 터전을 바꾸고 삶의 방식을 변화시켜야 하는 무모한 모험이었다. 하지만 혼신을 다해 귀농을 준비하는 남편을 곁에서 지켜보며, 남편의 꿈을 지지해주기로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자비의 마음으로, 인간 하나 살리는 셈 쳤어요."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은 "사실 저는 시골생활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한다.
사실과 다르다며 완강히 부인하는 눈치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용의주도하게 상황을 이끌어온 사람이었으니, 아내 말에 다소 억울할 법도 하겠다.
너무 애쓰지 않고, 마음이 끌리는 대로 살기
답답해서 늘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도시 생활에 한 염증이 사라지자, 비로소 삶의 즐거움과 여유라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나란 존재가 도시에서는 흔하디흔한 대체 가능 인력이지만, 시골에 오면 귀하게 쓰임 받아서인지 나를 소중히 생각하게 된단다.
눈 오는 밤 풍경과 봄철 지천에 핀 꽃들, 그리고 형용하기 힘든 빛깔의 단풍잎, 그리고 주변을 감싸는 햇살 등은 돈 주고 살 수 없을 만큼 값지더라. 그래서 최소한의 생계가 유지되면 시골 살이에서 얻는 만족도는 도시와 비교하기 어렵다. 도시 사람들이 힘들게 돈을 모으고 눈치 보며 휴가를 내서 여행을 간다면, 귀농인들은 돈과 시간의 여유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로 히말라야, 산티아고 등을 여행한다고 한다. '돈 주고 사는 여유'와 '즐기는 여유'의 차이라 할까. 주변 귀농인 중에도 '지금의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마음의 여유를 누리며 지금의 삶을 즐기는 부부의 귀농 초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귀농학교를 수료하던 2004년에 승일 씨가 먼저 봉화의 빈집을 구해 마을 일손을 돕고 목수일을 하며 지냈다. 주에서 나고 자라서 학창시절에 봉화에서 주로 유학 온 친구들이 많았다. 가끔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면 산 깊고 물 맑은 봉화가 좋았다고 한다. 뭔가 모르게 신선계의 분위기가 풍기는 곳이라 마음이 끌렸다. 이곳이라면 진정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또한 땅값도 저렴해서 귀농 전부터 봉화를 점찍어 둔 것이다.
임시 거처에서 머물며 동네 일거리도 돕고 주변 땅을 물색하던 중 현재 살고있는 집과 땅을 만났다. 늦은 5월, 쓸 만한 땅이 나왔다고 해서 보러 갔는데, 망초가 흐드러지게 핀 들판을 본 순간 한눈에 반해 버렸단다. 지금 보면 경사가 있는 땅이었는데, 그때는 너른 평지에 핀 망초가 메밀밭의 메밀꽃처럼 너무 멋있었다. 인연이 되는 땅이라 여겨 기존에 있던 집과 함께 토지를 매입하게 되었다.
귀농지를 고민하는 귀농 후배들에게 조언을 들려주었다.
"평생 내가 그 땅에서 어떤 것을 만들어 갈지를 상상하고 계획하는 것이 중요해요. 땅에 맞추어서 농장 계획을 세우면 되거든요."
선택한 땅이 맘에 드는지 아닌지, 직관적인 느낌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한다. 뭔가 맘이 끌리는 데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귀농교육을 받을 때 농장을 계획하고 상상하며 배치해 보기도 하는데, 땅을 정하면 그다음은 순리에 맡기면 된다고 한다. 어디에 정착하느냐에 따라 재배 종목도 달라지므로, 마음이 끌리는 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귀농할 때 도시에서와 비슷한 연봉을 꿈꾸는 귀농 초보자도 있는데, 농사로 돈을 예전처럼 벌려고 생각하면 그것은 도박심리와 다름없다고 한다. 물론 아이들을 키우는 가장이라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수익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처음부터 무리하게 애쓰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자활기업 '땅파는 까망돼지'를 세우다
처음 돼지를 키우게 된 것은 건강한 고기가 먹고 싶어서다. 인터뷰 내내 부부는 "내가 키우는 것이 가장 맛있다"고 했다. GMO 사료를 먹이고 항생제로 키우는 고기가 아닌, 건강한 고기가 먹고 싶어서 2013년에 자연농을 하는 지인에게 새끼돼지를 분양받았다. 그 돼지가 새끼를 낳은 3년 후부터 돼지고기 판매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후 봉화 인근으로 귀농한 사람들이 인연이 되어 자연농법으로 돼지를 키우는 농가도 늘어났다. 봉화군 지정 자활기업으로 선정되었고, '땅파는 까망돼지'로 브랜드 작업까지 마쳤다. '까망돼지'를 키우는 소규모 농장 4곳과 유통을 담당하는 정육점으로 구성하여 생산과 유통시스템을 구축했다.
현재는 자연양돈으로 50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더디게 가는 길이지만 내가 먹고 싶었던 건강한 고기를 공급하려는 첫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 때로는 먹고사는 게 쉽지 않아 타협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생태적 가치의 본질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소비자들이 있기에 초심을 지켜낼 수 있어서, 그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축사는 생각보다 냄새가 나지 않고 깨끗했다. 다큐멘터리 <잡식가족의 딜레마>(황윤 감독, 2014)에서 봤던 축사와는 전혀 달랐다. 갇힌 돼지가 부풀어 오르듯 살이 쪄서 꼼짝달싹 못 한 상태로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영화의 한 장면과는 너무 다른 현실이 펼쳐졌다. 까만 빛깔의 흑돼지들이 '꿀꿀'거리며 연신 코를 킁킁거린다. 눈빛에 장난기가 가득하고 털이 아주 곱고 반질반질했다. 건강하게 뛰어다니고 땅을 파며 노는 돼지들이 무척 예쁘고 귀여워서 일행들은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흑돼지는 톳 밥과 흙이 깔린 공간에서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돼지끼리 어울려 자란다. 돼지는 땅을 헤집으며 본성을 자각한다고 하는데, 땅굴을 파려는 의지를 보이는 돼지들 때문에 축사의 일부는 깊이 파여 있었다. 먹이는 옥수수 사료를 거부하고 지역의 정미소에서 공급받는 쌀겨와 깻묵, 풀, 사과와 브로콜리, 잘게 부순 굴 껍데기 등을 발효시켜 먹인다고 한다. 천연의 미생물이 살아 있는 건강한 사료를 먹인 자연농 돼지는 건강하게 뛰놀다가 12개월이 지나서 출하가 된다(항생제로 키운 돼지는 6개월 만에 출하).
'오메가3'가 많아서인지 고기 기름이 굳지 않고, 고기를 구웠을 때 누린내가 나지 않고 고소한 냄새가 났다. 옛날 어릴 적에 먹었던 고기 맛을 기억하는 소비자는 "이게 진짜 고기 맛이다"라며 단골이 된다고 한다.
대량 생산을 하게 되면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한 문제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부부는 100마리 이하만 키우기로 약속했다. 숫자가 적으니 키울 때 정성 들일 수 있고, 그러니 자식처럼 예쁘다. 또한 이렇게 키운 돼지의 배설물은 좋은 비료가 되어 밭에 뿌려지고 순환되는 것이다.
저절로 찾아오는 삶의 방향성
귀농할 때 6살이었던 아들 진우는 올해 고3이 되었다. 면 소재지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현동고등학교'는 진우의 졸업과 함께 폐교될 예정이다. 학급 유지를 위해서는 14명의 학생이 있어야 하는데 올해 입학생이 모자랐다. 앞으로 초등학교 5학년 딸 진이는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해야 한다. 봉화에서 태어난 아이는 주변에 친구가 없어서인지 동생을 살뜰하게 챙겨주는 오빠와 친구처럼 지낸다. 부모 입장에서는 친구가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려 몇 번이나 또래가 있는 도시학교 이야기를 꺼냈지만, 본인 스스로가 시골에서 살기를 원한다고 한다.
누구든 자립할 수 있을 만큼의 수익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삶을 즐기면서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한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아도 "지금의 삶을 즐기니 행복하다". 일상적인 삶이 유지될 정도로, 현재의 삶에 장애만 없다면 지금 주어지는 대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나물 철이 끝나면 몸살을 앓고, 판로가 없던 귀농 초기에는 몹시 힘들기도 했지만, 주어지는 대로 편안하게 살다 보니 삶의 방향성이 저절로 찾아졌다. 도시에서처럼 억지로 애쓰며 살지 않아도 '스스로 그러한 자연'처럼 생명력을 키워온 백승일, 이혜영 부부. 그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금강소나무 사이로 빛나는 햇살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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