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힘'은 거짓말을 안 한다

[박홍서의 중미관계 돋보기] 박근혜의 실각, 한국 외교는 어디로?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

한미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에서 던진 미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의 일성이다. 그는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도 비난했다. 한국 내 주류 언론은 틸러슨의 발언에 환호했다. 한국 편에서 중국을 비난했고 또 북한에 대해서 군사적 조치까지도 고려한다는 보도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의 자기희망이었음이 드러나는데 채 이틀도 걸리지 않았다. 틸러슨은 다음날 베이징에서 북한문제에 있어 미중 공조를 강조했다. 중국이 늘상 외치던 '상호존중', '공동번영'이란 말까지 했다. 북핵문제는 시급성이 있을 뿐 미중관계의 핵심이 아니라고도 했다.

회담 직후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이전부터 주장해온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동시에 추진하자는 주장을 반복했다. 이전보다 자신감이 묻어났다. 북한의 '혈맹국' 중국의 저 득의양양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협상으로 북핵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미중 양국의 공감대일 수밖에 없다.

사실 트럼프 정권에 대한 중국의 호감은 미 대선기간부터 있었다. 언론 보도에 달린 네티즌들의 댓글부터 심상치 않았다. 힐러리를 제국주의적 개입주의자로 묘사한 댓글들이 '베플'이 되기 일쑤였다. 김정은과 햄버거 대화를 하고 동맹국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트럼프의 발언에도 환호했다. 오바마 정권의 대중 견제 전략인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포기한다는 뉘앙스였으니 오죽했겠는가.

어쨌든 트럼프가 미 대통령이 되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양국은 안정적인 미중관계를 외치고 있다. 또한, 트럼프 정권은 전임 정권의 '전략적 인내' 정책을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향후 미중관계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전략적 인내의 포기? 남은 것은 협상뿐

전략적 인내 정책이 북핵의 '방치 전략'이었다는 점에서 그것의 종결로 남은 선택지는 결국 군사적 조치와 외교적 협상으로 좁혀진다. 군사적 조치는 다시 전략자산을 동원한 대규모 한미 군사훈련,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 및 독자 핵무장, 그리고 대북 공격으로 나뉜다. 한미 군사훈련이 여태 북한을 압박하는데 별다른 효용이 없었다는 점에서 결국 한국 핵무장과 대북 공격이 남는다.

트럼프는 대선 시기에는 한국 핵무장을 용인하겠다고 발언하기도 했으나, 그것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나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은 북한의 핵개발을 더욱 정당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은 동아시아의 핵확산을 초래해 미국의 이익을 심각히 훼손할 수밖에 없다. 핵무장을 한 한국이나 일본이 미국의 품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이 '집토끼'의 탈출을 용인할 리 없다.

중국 역시 동북아 핵확산을 수용할 수 없다. 한국의 핵무장이야 그렇다하더라도 지역 내 전통적 경쟁국인 일본의 핵무장은 결코 수용될 수 없다. 그 장단에 타이완까지 핵무장으로 나아가는 상황은 최악이다. 타이완 핵무장 시 '비평화적' 방식을 동원해서라도 문제를 해결하겠노라고 국내법까지 만들어 놓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군사조치 중 남는 것은 북한 공격밖에 없다. 핵시설에 대한 외과수술식 공습이나 김정은 참수 작전이 그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현실성이 있는가? 역시 관건은 중국의 태도이다. 중국이 동의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대북공격은 곧 미중 군사충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여전히 북한이 제 3국으로 공격받을 때 '지체 없이' 개입해 도와줘야 할 동맹국이다.

"중미관계 분위기가 좋다고 중국이 미국의 대북공격까지 용인할 수는 없지요."

필자와 친분이 있는 중국 내 관변 연구자의 말이다. 미중 양국간 '상호신뢰(互信)'가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얘기다. 사실, 어느 정도의 상호신뢰가 있어야 미국과 중국의 대북 '공동통치(condominium)'가 가능한지도 불확실하다. 막상 북한 정권 붕괴 후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강대국간 관계는 늘상 그래왔다. 해방정국 한반도 신탁통치가 실패한 바로 그 이유다.

중국이 김정은 정권을 '비호'하는 것은 그가 좋아 그런 것이 결코 아니다. 극단적으로 북한 정권이 누가 되든 상관없다. 핵심은 한반도 북부지역의 지정학적 가치다. 바로 이 가치 때문에 1592년, 1894년, 1950년 중국 군대는 압록강을 건넜다. 내부적으로 국력이 쇠퇴하거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군사개입을 했는데, G2로 부상했다는 지금은 오죽하겠는가?

대북 방치전략이 실패했고 또 대북 군사조치도 현실성이 없다면, 남는 건 결국 협상밖에 없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논의를 동시에 진행하자는 중국의 주장은 바로 이러한 상황판단에 기인한 것이다.

미국 역시 외교적 해결밖에 다른 수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내심 이러한 제의를 받고 싶어 한다. 방치하면 할수록 북한의 핵능력이 위협적으로 변하고, 중국 때문에 대북 군사적 조치도 현실성이 없다면 유일하게 남는건 협상밖에 없다. 2016년 5월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장이 비밀리에 방한해 박근혜 정권에게 평화협정 논의에 관한 의사 타진을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미국으로서는 박근혜 정권의 실각이 꼭 싫지만은 않을 것이다. 한미 동맹이 중요하다긴 하나 그것이 강대국간 관계인 미중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목표보다 우선하는 것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은 무엇을 맞바꿀 것인가?


트럼프 정권의 목표는 애초부터 '경제'였다. 특히 미국 내 산업자본을 다시 부흥시키겠다는 목표에 모든 초점을 맞추었다. 이전까지 미국은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대규모 무역적자를 감내하는 조건으로 그들에게 대량의 미 국채를 팔아 경제를 부양해왔다. 트럼프 정권은 이러한 금융기반 '신브레튼우즈 체제'를 끝내고 미국의 제조업을 다시 키워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했다. 트럼프의 인종차별 행태와 갖은 막말에도 불구하고 저소득층 노동자들이 그에게 표를 던진 이유였다.

따라서 트럼프 정권은 중국에게 무역역조와 환율문제 등에서 양보를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그 대신 동아시아 군사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에 양보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핵심이익이라고 늘상 주장하는 남중국해나 지역 안보 문제에 있어서 중국을 구태여 자극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사드 문제도 그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어차피 경제다.

중국으로서도 미국에 대한 경제적 양보는 충분히 고려해 볼만하다. 중국의 경제적 성장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미국 주도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편승’한 결과라 한다면 중국으로서도 당연히 그 부채를 갚아야 한다. 또 이미 '한몸'으로 엮여 있는 미국 경제의 쇠퇴는 중국에게 손해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경제 영역은 군사안보 영역과는 달리 기본적으로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제로섬 게임도 아니다. 따라서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안보이익을 보장해 준다면 중국은 '기꺼이' 경제적 양보를 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에게는 미중관계의 밀월에 대해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을 것이다. 북한은 미중관계가 자신을 소외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된다면, 이전과 같이 벼랑끝 전술로 미중 양국을 갈라치기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협상에 대한 미중 양국의 '진정성'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보다 유화적인 행태를 보일 것이다. 물론, 협상의 판돈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벼랑끝 전술을 구사할 수도 있다. 4월 미중 정상회담과 5월 한국의 신정부 수립 전 6차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도발을 감행할 수도 있다.

사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ICBM 시험 발사를 한다고 해도 미중 양국이 이전과 근본적으로 다른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런 행위는 미중 양국이 설정한 레드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으로서는 북한이 전면적 전쟁 도발 징후라는 레드라인만 넘지 않는다면 북한의 행태를 용인할 것이다. 김정은 정권에 대한 피로감과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는 역시 전혀 별개의 문제다.

▲ 3월 18일, 틸러슨 미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베이징의 조어대 국빈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을 마치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한국, 무엇을 할 것인가?


박근혜 정권의 외교는 처절히 실패했다.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승절 행사에 참가해 한중 우호를 '과시'하더니, 불과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중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를 결정하였다.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는 '널뛰기' 외교였다. 비선 세력의 농단이 외교안보 사안에서도 자행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관련 외교안보 관련자들은 정말로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도대체 그 내내 무엇을 했단 말인가?

곧 시작될 한국의 신정권은 미중관계의 구조를 정확히 독해해야한다. 한반도 분쟁을 절대로 바라지 않는 그들의 담합관계를 간파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외쳐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한반도 안정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적극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해 도발적인 북한을 변화시키겠다. 도와 달라. 그것이 너희들 이익에 부합하니까.'

인간사와 마찬가지로 국제정치도 결국 행위자간 권력관계로 환원된다. 권력자는 거짓말을 해도 권력은 거짓말을 안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이 온갖 거짓말을 해대도 그들의 힘은 거짓말을 안 한다. 그들의 거짓말을 간파해야 하고 동시에 그들 사이의 세력관계를 냉철히 분석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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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서

한국외국어대에서 중국의 대한반도 군사개입에 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 연구교수 및 상하이 사회과학원 방문학자를 역임하고, 현재 강원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관계 이론, 중국의 대외관계 및 한반도 문제이다. 연구 논문으로 <푸코가 중국적 세계를 바라볼 때: 중국적 세계질서의 통치성>, <북핵 위기시 중국의 대북 동맹 딜레마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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