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분노하기 전에 이것부터 생각하자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내 삶의 좌표를 점검하자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易耳順, 七十易從心所欲, 不踰矩.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우뚝 섰으며, 마흔 살에는 미혹됨이 없었고, 쉰 살에는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에는 귀가 순해졌고, 일흔 살에는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논어 한글역주>(김용옥 지음, 통나무 펴냄)

많은 사람이 자신의 나이와 견주어 이야기할 때 인용하는 <논어> 위정편의 구절입니다. 나이를 표현하는 단어의 해석에 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습니다. 위 구절은 지극히 공자 자신의 삶에 관한 표현이지만, 큰 의미에서 많은 사람이 공감하지요.

가끔 상담할 때 이 구절을 말합니다. 그럼 환자는 '그래, 나도 아는 말이야. 그런데 그게 지금 내 병과 무슨 상관이 있어?'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병 중에는 겉으로 드러난 증세만 치료하면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드시 모든 병을 치료할 때마다 과거를 반성할 필요는 없지요. 하지만 치료가 잘 되질 않거나, 두더지 게임처럼 한 가지를 고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병의 뿌리가 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시간을 두고 치료와 상담을 병행해 가다보면 서서히 그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 뿌리는 과거에 받았던 몸과 마음의 큰 상처이기도 하고, 지치고 불안한 삶이기도 합니다. 내가 내 의지로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결여되어서 병의 뿌리가 되는 경우도 꽤 됩니다. "인생 뭐 있나? 아침에 눈 뜨면 그냥 사는 거지"라는 말처럼, 시간과 환경의 흐름에 떠밀려 살고 있을 뿐, 인생이란 바다에서 자신의 항로를 갖지 못한 채 표류하는 셈이지요.

이러한 환자의 말투나 몸의 신호에서는 다른 이와 다른, 미묘한 위화감이 엿보이곤 합니다. 비록 명확하게 자신의 문제를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하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생기는 불만과 부조화가 일상과 마찰을 일으켜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이 스트레스는 병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병의 내력이 이러하다면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공자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저는 위 구절에서 단어가 가진 본래 의미 외에 두 가지를 더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입니다. 공자는 그 나이가 되어서 특정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석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이를 목표로 하고 나아갔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삶이 과거의 특정 시간대에 멈춘 환자를 볼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인해 세상을 인식하는 틀이 고정되어 그 틀에 맞는 것만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생각은 점점 굳어갈 뿐, 사고의 확장이나 유연함을 잃게 되지요. 내가 굳건히 옳다고 믿는 것이 있는데, 사회나 다른 사람이 그렇지 않다고 하면 화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분노가 힘이 될 수는 있지만, 잘못된 분노는 마음과 몸을 상하게 할 뿐입니다. 계속 새로운 목표를 향해 매진한 공자와는 다른 삶이 될 것입니다.

위 구절을 통해 공자는 궁극적 목표를 가지고 인생을 완주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앞서 인용한 책에서 김용옥은 공자가 나이 일흔에 이른 경지를 두고 "내 마음이 원하는 바를 마음껏 따라 가도 조금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 경지! 이것이 진정한 자유가 아니고 무엇이랴!"라고 평합니다. 평생을 살아서 증명하고자 하는 나의 존재 이유, 내가 왜 사는가? 라는 질문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지요.

우리가 흔히 성인이라고 하는 나이가 되면, 치열함의 정도와 방향의 차이는 있어도 내 삶에 관한 위 두 가지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면 삶에 충실함이 커지고, 어쩔 수 없는 스트레스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세상이 날 배신했다는 분노도 덜 느끼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내적으로 충실한 삶은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의 건강으로 이어질 것이고요.

오랜만에 다시 공자의 글귀를 대하니, 한 사회에 나이가 있다면 지금 우리 사회는 몇 살 정도가 되었을까 궁금해 집니다. 이번 광장의 촛불로 '立'의 경지에 들어섰다 할 수 있을까? 좀 더 생각해 보면, 아직 그러지 못한 것도 같습니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사회가 '不惑'의 경지에 이른 모습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우선 저부터 그 경지에 이르러야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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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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