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적응하지 못하면 생기는 일들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봄은 바람입니다

이번 주말은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입니다. 우수(雨水)가 지나면서 겨우 내 잠든 생명을 깨우는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벚꽃 개화시기를 전망하는 뉴스가 나올 정도로 한결 날씨가 포근해졌습니다.

이 시기는 자연이 철이 덜 든 성급한 생명을 걸러내기 위한 시기라고도 하지요. 바람이 불고 볕이 따뜻해지니 '봄이구나!'하고 활동을 시작한 속이 덜 찬 녀석들을 꽃샘추위로 한번 솎아내는 때입니다. 모름지기 꽃샘추위를 견뎌낼 정도는 되어야 남은 계절 동안 충분히 살아남는다는 자연의 가르침 아니겠느냐는 생각도 듭니다.

이즈음이 되면 우리 몸과 마음도 계절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괜히 싱숭생숭해지고, 몸은 찌뿌듯해 괜히 주먹이라도 한번 질러보고 싶지요. 낮은 기온과 적은 일조량으로 인해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는 징후입니다.

그런데 이 변화의 바람을 잘 타지 못하면 이상 징후가 발생합니다. 기운을 충전해야 할 겨울에 에너지를 많이 소비해 버렸다면, 춘곤증이나 감기, 알레르기 비염과 같은 증상으로 고생하게 됩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란 시구처럼 찬란히 피어나는 생명에 비해 초라한 자신을 바라보며 우울함에 빠지기도 합니다. 계절의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서 우리 몸과 마음이 몸살을 겪는 것이지요.

한의학에서는 같은 증상이라도 계절적 증상에 맞춰 약재를 달리하는데, 봄에는 방풍, 형개, 천궁, 소엽과 같이 기운의 흐름을 촉진하는, 즉 이기(利氣)하는 약재를 즐겨 씁니다. 이런 약물의 힘을 빌려 몸과 마음에 봄바람을 일으키려는 조치입니다. 우리가 봄에 새로 나는 나물이나 새순을 즐겨 먹는 것도 같은 이치이지요.

약과 먹을거리에만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에 바람을 일으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 때 즈음이면 새해 세운 결심이 잊히거나 느슨해지기 시작합니다. 때론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 싶은 조바심과 허무함이 찾아오기도 하지요. 연초의 마음가짐을 점점하고 마음의 불씨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때가 된 것이지요.

개인적으로 '바람'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습니다. 개봉한지 20년도 지난 <쉘 위 댄스>란 영화입니다. 너무나 모범적으로 살지만 반복되는 일상에 권태를 느끼던 경리계장 쇼헤이. 어느 날 퇴근길 지하철에서 댄스학원 창문 너머를 내다보는 마이를 발견한 그의 마음에 바람이(처음에는 약간 불순했지요) 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쇼헤이는 춤바람에 빠집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 마이는 쇼헤이에게 "쉘 위 댄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때 쇼헤이의 삶은 비록 겉보기에는 과거와 다를 바 없지만, 이미 과거의 권태와 이별한 상태입니다. 쇼헤이에게 춤은 이전 삶에서 부족했던, 아니 잃어버렸던 열정을 다시 되찾게 해준 바람이었던 것이지요.

봄은 바람의 계절입니다. 이 바람을 잘 타면 올 한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뭔가 답답하지만 이유를 찾기 어려운 <쉘 위 댄스> 초반 쇼헤이와 같은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타인을 통해 풀고자 하는 이들이 바람을 피우기도 하지만, 그래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변화의 바람을 타고 자신의 내면에 바람을 일으켜야 몸도 마음도 새로워지고 건강할 수 있습니다.

올 봄 이 글을 읽는 분들의 내면에, 그리고 우리 사회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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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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