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심으러 갈 거야"

[귀농통문] 삶과 사업 사이에서 조화를 찾다

내 나이 40대 초반, 남편은 40대 후반, 우리는 그때 귀농의 꿈이 자라났다. 단초는 남편에게서 비롯되었다. 그 무렵 "시골 가서 콩 심으며 살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하지만 난 결코 현실이 되리라 믿지 않았기에 절대로 시골 가서 살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경남생태귀농학교를 알게 되었다. 남편의 강요(?)로 귀농학교 5기에 등록했다. 첫 강의 때 당시 전국귀농운동본부 이병철 본부장님이 "또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 보라"고 하신 말씀이 유독 가슴에 와 닿았다. 그 말을 남편에게 꺼냈더니, 조금도 망설임 없이 바로 귀농하자고 재촉했다. 당장 그날 저녁에 가족회의를 열어 대학생 아들과 딸에게 "아빠 엄마는 귀농하기로 했다. 너희 대학 졸업까지만 뒷바라지를 해 줄 테니 그 뒤로는 자기 삶을 스스로 챙겨라!"하니, 애들이 "시골 가서 빚만 지지 마세요!"하면서 순순히 따라주었다. 의외로 손쉽게 결단이 났다.

막상 귀농이 현실로 다가오니 한편으로는 꿈을 이룬다는 생각에 가슴 부풀었다가 이내 두려움에 마음 졸이기를 반복했다. 주변 지인들도 기대 반 걱정 반인 눈치였으나, 일단 저지르고 나서 수습해나가자는 생각으로 실행에 옮겼다. 그때가 2004년 5월이었다. 남편이 쉰, 내가 마흔다섯이었다.

ⓒ김향숙

생체 주파수를 농사와 마을에 맞추다

다음날부터 귀농지를 찾아 나섰다. 경남 일원의 후보지 중에 남편은 합천 황매산 자락의 가회면, 나는 고성군 개천면이 눈에 들어왔다. 남편은 내가 함께해 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이니, 귀농지는 내 맘에 드는 곳으로 정해야 한다며 고성군으로 방향을 정했다.

후보지를 정하자, 당시 경남생태귀농학교 서정홍 교장선생님과 강사님들이 와서 땅의 가격과 농사 조건 등을 점검해주셨다. 하루에 두어 차례 다니기도 하며 수십 번을 오가며 거듭 돌아보았다. 아침에는 상쾌한 공기가 황홀했고, 점심때면 마을 주민들이 정자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는 평화로운 모습에 홀딱 반했다. 마을 어르신들도 농사를 도와줄 터이니, 어서 오라고 반겨서 큰 고민 없이 마음을 정했다. 농지와 대지 합해서 2200평을 구입하여 정착했다. 2004년 10월, 귀농지를 찾아나선지 석 달만이었으니, 초고속으로 인생을 전환한 셈이다.

우리 마을은 30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다 쓰러져가는 140년 된 10평짜리 흙집을 거의 맨손으로 묵은 때를 벗기고 황토와 돌로 보수하기 시작했다. 이를 본 앞집 어르신이 안쓰럽게 여겼는지, 2000만 원을 빌려줄 테니 고생 그만하고 현대식으로 개조해서 살아보라 하셨다. 얼마나 집이 험했는지 손보지 말고 차라리 <전설의 고향> 드라마 세트장으로 빌려주라고 진지한 농담(?)을 하실 정도였다.

도시에서 내리 자라고 살아왔기에 호미질 한 번 해본 적이 없고 시골 살림살이에 대해 깜깜한 상태였다. 그저 마을 어르신들 하는 대로 나락농사와 밀농사, 밭농사를 눈치껏 따라지었다. 동네 어른들과는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이 많이 달랐지만 삶의 주파수를 온전히 시골 환경에 맞추어 살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새마을지도자, 나는 부녀회장을 맡으면서 시골생활에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처음엔 농약을 안 친다고 답답해하던 어르신들이 요즘은 농약을 안 치거나 적게 쳤다고 자랑을 하곤 한다. 마을의 정서와 생활에 크게 어긋나지 않았고, 신뢰도 쌓아 지금은 남편이 4년째 이장을 맡고 있다.

▲ 무 수확하는 날. ⓒ김향숙

시련이 반전의 기회가 되다

처음 3년 정도는 꿈같은 시간이었다. 흙집을 손보고 나니 12월이었는데 산에서 땔감을 구해다 아궁이에 군불 때고 등을 방구들에 지지며 자노라니, 세상에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이듬해 봄부터는 산과 들로 다니며 산야초를 뜯어서 효소를 담갔는데, 그 당시엔 효소 담기가 귀농인에게는 일종의 적금과 같았다. 비록 보잘것없어도 이래저래 요긴하게 쓰였다. 여름에 우물가에 지붕 없는 간이천막을 쳐놓고 밤하늘의 총총 별을 보면서 목욕을 할 때면 귀농하길 백번 잘했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역시 이 맛에 시골 사는 거야!"

하지만 삶이 낭만으로만 꽉 채워질 수는 없는 법. 이상만 가지고 귀농했지, 실질적인 생활 계획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 쓰디쓴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다. 어느 날 단꿈에 푹 빠져 있다가 문득 깨어 일어나보니 차디찬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3년 동안 거의 소득 없이 생활하고 애들 뒷바라지를 하다 보니, 곶감 빼 먹듯이 돈을 써버렸다. 마침내 잔고가 떨어지고 빚을 얻어 쓰기 시작했다. 점차 남편과 다투는 일도 잦아졌다. 경제적으로도 문제였지만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더욱 두려웠다. 앞길이 막막하고 힘이 빠져 망연자실했다.

귀농해서도 한참을 어머니께서 담가주시는 된장과 김치를 갖다 먹었는데, 하루는 어머니가 "이제 너희도 시골에 사니 직접 담가봐라"하셨다. 그 바람에 어머니가 하는 식대로 된장을 담가 지인들과 나누어 먹었다. 이 된장이 방향 전환의 도화선이 되었다. 농사만을 절대적으로 고집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자는 결론을 얻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귀농 전에 남편이 무심코 입버릇처럼 "콩 심으러 갈 거야!"했던 말이 무슨 주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말이 씨가 되어 콩으로 된장을 만드는 현실로 변했으니 말이다.

▲ 멸치액젓 뜨기. ⓒ김향숙
무쇠 가마솥을 걸고 메주 건조용 비 가림 비닐하우스 한 동을 지어서 전통 장류를 만들기 위한 기초 시설을 했다. 초기에 알음알음으로 팔려나가는 된장이 한 달에 30만 원어치 정도 되었다. 많은 실험과 우여곡절 끝에 2008년 1월에 사업자등록을 하고 정식으로 '개천 된장'을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

전통장을 만드는 데 사람의 역할이 3할이요, 나머지 7할은 자연이 하는 일이라고 한다. 제대로 된 장맛은 자연과 세월이 빚어내는 것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깊이 알면 알수록, 오묘하고 만들어지는 과정이 신비롭다.

전통장 만들기에 열중하는 사이에 여러 언론 매체에서 취재를 하고, 텔레비전에 방영도 되면서 우리 '개천 된장'이 많이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직접 서울, 부산, 창원 등 대도시로 홍보와 판매 행사라면 가리지 않고 찾아 나서면서 자리를 잡아갔다.

서울에 첫 판매 행사를 나갔을 때 입이 얼어붙어서 고생한 것이 엊그제만 같다. 지금은 항아리가 200여 개, 5년 전에 신축한 60평의 작업장과 교육장을 갖추고 장을 만든다. 농촌진흥청 지정 '전통 식생활 문화 체험농장'을 운영하며 장류와 장아찌 만들기, 요리 체험교실을 열어서 도시민들과 소통하고 전통장을 이용한 각종 소스와 먹을거리 개발도 한다. 특허를 받은 '참다래 고추장'에 들어가는 쌀엿도 직접 고아서 깊은 맛을 내려고 한다.

어떤 사업이든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투자해서 발전해 나가려는 속성이 있다. 그러다 보면 돈의 논리, 시장의 논리에 휘둘리기 쉽다. 간단치 않은 문제이지만, 내 나름 생태적 삶을 지향하는 귀농인으로서의 삶과 사업의 속성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귀농의 성공 여부를 물질적으로 계량화하고 매출을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딱히 중뿔나게 성공한 귀농인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삶의 질을 척도로 삼는다면 당당하게 귀농에 성공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귀농하여 된장을 만들면서 '누구 엄마', '누구 아내'가 아닌, 내면의 진정한 나를 찾았다. 어려운 순간을 이겨내고 농업인으로서 인정을 받으며 영광스런 시간을 누리기에 한없이 감사한다.

▲ ⓒ김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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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7년 10월 현재 83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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