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죽을 수 없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격에 의해 사망했을 때, 나는 감옥에 있었다. 건너편 건물 일반 수감자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더니 곧 아래로 내리는 것이었다. 순간 깨달았다. 아! 박정희가 죽었구나. 그때까지 18년 동안 대통령이란 고유명사인 줄로만 알았었다. “박정희 대통령”, 오직 한 사람만 존재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런 독재자가 이렇게 사라질 수 있다니.
2012년 12월 19일, 박근혜가 당선된 날, 나는 한 달 일정으로 외국에 있었다. 국가적 재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과연 이 사람의 끝은 어떻게 결말이 지어질까 정말 궁금했다. 물론 나는 박근혜가 반드시 아버지의 시대로 회귀하여 장기독재를 꾀할 것으로 예측했다. 아버지의 ‘전통’이 필연적으로 계승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2016년 국회에서 「테러방지법」을 필사적으로 통과시킬 때, 나는 장기집권 기도의 징후를 직감하였다. 그리고 최순실 사태가 폭발하기 직전 프레시안에 “최순실 정국, 투사형 지도자가 필요하다”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실었다. 박근혜 정권에 모든 힘을 다해 투쟁하자는 나름의 ‘선언문’이었다. 이글은 다행히도 적지 않은 반향이 있었다. 민주주의는 결코 죽을 수 없다는 시대정신이었다.
무능한 황제, 국정농단, 부패, 비선실세의 명나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대표되는 오늘의 사태는 중국의 명나라를 생각하게 만든다.
명나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무능한 왕조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의심이 많고 성질이 급해 승상(丞相: 재상)을 모반 사건으로 몰아 참수형에 처했으며, 그의 가족을 비롯하여 연루된 관료 등 모두 3만 명이 처형하는 등 총 10만 명을 도륙하였다. 그리고 재상이라는 직위는 영원히 없애도록 하였다. 재상 제도가 폐지된 뒤에 단지 황제들의 비서들로 간주되었던 관료들은 그저 글이나 읽을 줄 알면 그것으로 족하였다. 고작해야 문서를 관리하거나 옮겨 쓰는 직책에 그쳤을 뿐이었다. 사실상 모두 아전들이었다.
이렇게 하여 명나라는 가히 황제 독재의 시대라 칭할 만 했다. 황제는 정보사찰기구인 특무(特務)기구를 설치해 밀정과 체포 등 특무를 담당토록 했으며, 자신이 가장 총애하는 신하를 책임자로 임명하였다. ‘검교(檢校)’라는 또 다른 특무 조직은 관리들과 백성들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옭아맸다.
그러나 명나라의 황제들은 전반적으로 용렬하였다. 조선 임진왜란 때 황제였던 만력제(萬曆帝)는 집권 48년 중 후반기 30여 년간 몸이 아프다며 틀어박혀 조정에 나가지 않았고, 신하들과 만나 국사를 논하지도 않았다. 정사 처리는 주로 유지(諭旨)라는 형식으로 전달되었는데 그나마 황제는 거의 결정하지 않았다. 젊고 잘 생긴 남성 태감을 선발해 시중을 들게 하기도 했다. 또 문맹이었던 천계제(天啓帝)는 정사를 처리할 능력이 아예 없었고 재위기간 내내 대패와 톱 그리고 끌을 항상 품에 지니고서 오로지 목공과 칠 작업에만 열중하여 침대를 만들고 궁궐을 보수한 ‘목수 황제’였다. 어리석은 그가 죽은 뒤 10여년 뒤에 명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가장 무능한, 그러나 조선이 가장 숭배했던 명나라
이렇듯 황제가 정무를 게을리 하면서 수많은 당파가 우후죽순 발흥하고 당쟁이 이어졌는데, 이들 당쟁의 핵심은 오직 어느 당파의 누구를 어디에 앉힐 것인가에만 있었다. 그러면서 부정부패와 뇌물이 일상화되었고, 이 무능하고 엉망이던 왕조에서 필연적으로 ‘비선 실세’인 환관들이 발호하였다. 천계제 때 환관이었던 유근은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국정을 모조리 장악한 유근을 ‘서 있는 황제(立皇帝)’라고 불렀고, 허울뿐인 황제는 ‘앉아있는 황제(坐皇帝)’라고 불렀다. 각지 관리들이 서울로 올라오게 되면 모두 비선 실세, 유근에게 뇌물을 바쳐야 했다. 이름 하여 ‘접견의 예(禮)’였다. 유근은 이렇게 국가재산을 사유화하면서 나라에서 가장 큰 부호가 되었다.
그토록 무능하고 부패했던 명 왕조를 조선 시대 5백 년 내내 숭명 사상이라 하여 금지옥엽 떠받들고 모셨으니, 그 영향은 당연히 오늘날까지 여전히 뿌리 깊을 터이다. 무능한 황제는 아전과 함께 통치했고, 비선 실세가 국정을 농단하였으며, 정보사찰기구 특무는 백성의 삶을 유린하였다. 오늘의 모습도 이와 그리 멀지 않다. 헌재를 사찰하면서 그것이 정상적인 근무라고 주장하는 국정원의 모습은 “비정상(非正常)의 일상화”이다.
청렴했다는 박정희의 ‘거짓 이미지’ 청산, 차기 정부의 중요한 과제
합리적 보수 세력은 마땅히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부패하고 천민적인 극우 세력은 반드시 청산되어야 한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의 현대사는 크게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박정희 숭배자들은 그가 청렴했다고 소리 높여 주장하고 있다. 박정희는 극우파의 숙주이기 때문에 박정희 신화는 반드시 청산해야 하고, 청산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청렴하다는 그 거짓된 이미지를 깨끗이 지워내는 것이다. 스위스에 박정희의 수 조원 대 비밀계좌가 있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차기 정부에서 이를 추적하여 끝까지 환수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박정희-박근혜-최순실로 대표되는 천민적 극우 세력의 심리적 토대를 철저히 청산해내야 한다. 차기 정부의 중요한 과제다.
사회 구성 원칙의 전환: 패권적 권력독점의 해체와 시민주권의 민주주의
오늘 이 사달의 직접적 원인은 바로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농단’이라는 용어는 약간 잘못 사용되고 있다. ‘농단(壟斷)’이란 본래 ‘독점(monopoly)’이라는 의미로서, 사실 ‘국정농단’이라는 말은 정확하게 사용되는 용례는 아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하면 독점 현상으로 인하여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르고 법을 왜곡하게 되는 것이니 지금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농단’의 뜻도 그리 크게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겠다.
독점은 권력을 자의적으로 남용하게 만들고 동시에 정경유착과 탐욕 그리고 갖가지 위법과 불법, 편법이 자행될 수 있는 음습한 자양분으로 기능한다. 바야흐로 각 분야에서 일상화된 패권적 독점 권력의 해체는 시대적 과제다.
봄은 왔지만, 우리는 아직 봄을 맞이하지 못했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은 널리 보편화되었지만, 입법부와 사법부 역시 모두 제왕적 국회와 제왕적 대법원장으로 군림하면서 독점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생각해보면, 5.16 쿠데타 이후 DJ만을 제외하곤 모두 영남 출신이 권력을 잡았다. 가히 ‘영남민국’이라 할 만큼 영남이 국가권력을 독점해왔다. 정치권 역시 기득권 정당과 기득권 패권세력의 철저한 독점물로서 줄곧 “그들만의 리그”였을 뿐이다. 단 한 번도 시민의 소유인 적이 없었다. 기소권 독점의 검찰을 비롯하여 국방부, 외교부, 교육부 등 관료집단들은 그 이름과 직분에 부합하는 역할은 저버린 채 철두철미 자신들의 독점적 이익만을 추구하였다. 재벌은 우리 사회에서 극단적 독점의 대표적 사례이며, 학계와 언론계도 마찬가지다. 지자체에 대한 중앙정부의 권력 독점 역시 동일한 맥락이다.
봄은 왔지만, 우리는 아직 봄을 맞이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기득권자들은 자신들만의 패권적인 성채를 구축하고서 자신들의 지역과 정파, 기수(期數)끼리 결탁한 채 타인들의 출입은 철저히 통제, 금지하였으며, 이렇듯 견제와 감시 그리고 비판이 부재한 시스템 속에서 무소불위 자의적으로 권력을 남용해왔다. 불행하게도 이 압도적인 독점 구조 속에서 이제까지 우리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은 대항하여 개혁할 생각보다는 대부분 그에 추종하고 그에 편입되려고 사력을 다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출세지상주의이며 “1등만 기억하는 사회”였고, 복원될 수 없는 양극화의 심화를 비롯하여 부와 학력의 세습화 그리고 비정규직 양산이 그 구체적인 산물이었다.
이제 진정한 봄을 맞이하기 위하여 우리 사회는 구성원의 권리 실현을 위한 건강한 구성 원칙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바로 모든 영역에 철옹성처럼 군림하고 있는 패권적 독점 권력을 해체하여 권력이 구성원인 시민에게 균형 있고 공정하게 배분되도록 법률과 제도로써 정밀하게 보장하는 것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시민주권의 민주주의로 나 있는 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용기 있게 다 함께 걸어 나가자. 우리의 진정한 봄을 맞이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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