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안보의 화두 '포스트 서구'…한국은 어디로?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불확실'의 시대, 새 지도자의 역할

지난 2월 17일~19일(현지 시각) 독일 뮌헨에서는 제53회 뮌헨안보회의(MSC, Munich Security Conference)가 개최됐다. 이 회의는 세계 안보 문제와 향후 관련 도전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하는 자리로, 흔히 안보 영역의 '다보스 포럼'이라 불린다. 1962년 가을 창설되어 50여 차례 회의를 거치면서 현재는 450명이 넘는 정부와 국제기구 및 비정부기구 지도자 그리고 재계, 언론, 학계,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고위급 인사들이 참여하는 국제 안보 회의로 성장했다.

뮌헨안보회의 주최 측은 매년 2월 개최하는 대규모 정기회의 외에도 대중의 높은 관심을 받는 특정 주제나 지역에 관한 소규모 회의를 소집하기도 한다. 또한 매년 정기 회의에 앞서서 국제전략연구소(The 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 핵위협방지구상(the Nuclear Threat Initiative), 채텀하우스(Chatham House) 등의 저명한 기관이나 연구소와 협력하여 당해 회의 참가자와 관심 있는 일반인을 위한 '뮌헨안보보고서(Munich Security Report)'를 발간하고 있다.

2월 13일 발행된 '2017 뮌헨안보보고서(Munich Security Report 2017)'는 '포스트 진실, 포스트 서구, 포스트 질서(Post-Truth, Post-West, Post-Order)'라는 제목 하에 작금의 세계 질서가 직면한 각종 도전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 공영 언론인 도이체 벨레(Deutsche Welle)는 이 보고서를 인용, "세계는 포스트 서구(Post-West)의 시대를 향하여 나가고 있으며, 서방 사회가 주도하던 세계 질서는 현재 종말을 향하고 있다"고 예측했다.

한편 이번 회의 의장인 볼프강 이싱어(Wolfgang Ischinger)는 "서방사회 사람들이 자유주의 사회와 관련한 기본 가치관에 대해 점차 믿음을 잃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래로 국제 안보환경이 이처럼 취약했던 적은 없으며, 서방사회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위 보고에 따르면 실제 미국, 독일 등의 다수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문제 해결에 보다 효과적이라 답한 사람이 15년 전에 비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이 보는 포스트 서구 질서는?

최근 중국 언론에는 서구식 민주주의 혹은 자본주의 제도의 근본적인 오류를 지적하고, 그에 대해 맹목적 신뢰를 보냈던 과거를 자성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미국의 트럼프나 프랑스의 르펜 돌풍은 서구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 서구의 실제 권력은 재벌‧언론‧정권이며, 재벌과 언론의 영향으로 보통선거 및 임기제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정권은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지난 수백 년간 서구 세력은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자랑했다. 그리고 이 두 가지의 물리적 조건이 서구사회 민주주의 체제가 순조롭게 자리 잡는 전제가 되었다. 민주제는 강자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품'인데, 그동안 인과관계가 도치되면서 민주 체제가 서구 사회에 강력한 권력과 번영을 가져온 것이란 잘못된 인식이 자리 잡았다는 것이 최근 중국 언론에 나타난 경향이다. 이들은 강성한 국가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제를 시행할 수 있지만, 그 결과가 쇠락하는 서구사회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고 주장한다.

'2017 뮌헨안보보고서'에는 국제질서와 현 상황을 바라보는 중국의 시각과 유사한 부분이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근래 중국 언론에 2017 뮌헨안보회의와 보고서의 키워드인 '포스트 진실, 포스트 서구, 포스트 질서', 그 중에도 특히 포스트 서구 질서에 관한 조명과 분석이 줄을 잇는다.

그들은 분명하게 서구의 민주주의와 선거제도는 현재의 위기와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갈수록 많은 이들이 중국으로 눈을 돌리면서 중국이 더 많은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덧붙인다. 중국이 원하는 바이다.

사실 중국은 지난 몇 년간 글로벌 국가로서 거듭나며 '중국의 가치'나 '중국의 방안(方案)'을 국제 사회에 널리 전하고, 이를 국제 사회에 보편 가치로 확립시키려 노력해왔다. 중국 <인민일보> 해외판은 2월 10일 '인류운명공동체구축' 문구가 포함된 결의가 유엔 사회개발위원회를 통과한 것을 그 성공 사례로 제시한다. 2014년 이래로 꾸준히 추진한 '일대일로' 구상은 구체적 실천의 사례라 설명한다. 그리고 이는 서구의 약탈적, 불평등 체제와 다르게 국제 사회에 호혜의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포스트 시대에 한국에 필요한 자세는?

중국은 자국의 제안과 행동은 기존의 서구와 다른, 보다 나은 국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호혜적 성격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중국의 가치와 방안이 결국은 국제 사회가 공유하는 보편 가치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강대국들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지역에서 역사의 대부분을 중국과 이웃하여 살아왔던 한국은 중국의 정치 언어를 글자 그대로 순진하게 믿기는 어렵기도 하고, 또 믿어서도 안되는 측면이 있다. 중국은 힘이 있고, 원하는 바를 위해 이를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대외 환경과 국력 그리고 국익 측면을 보면 한국이 국제 사회에 보편 가치나 공공 자원을 제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반면 민주주의든 권위주의든 혹은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강대국은 자신에게 유리한 가치와 체제를 수립하고 확산시킬 것이다.

하지만 한국 역시 지난 수십 년의 노력을 통해서 양적‧질적으로 성장했고, 더 이상 강대국 판단에 따라 의지 없이 휘둘릴 국가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가치와 체제를 수용할 것인지 선택할 권리와 그에 따른 책임도 온전히 한국의 몫이라 할 수 있다.

근래에 한국은 보기 드문 체제적 위기를 겪고 있다. 심지어 일부 중국 학자는 서구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병폐나 그 비효율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한국을 그 사례로 들기도 한다. 물론 그러한 지적은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가진 것이고, 서술의 과정에 다소간의 논리적 오류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를 핑계로 한국의 가치나 체제 자체에 혹은 그 구현 과정에 다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귀에 쓴 소리가 삶에는 달다는 말이 있다. 그 숨은 의도가 무엇이든 좋게 쓴다면 되는 것이다.

지금은 전환의 시기로 포스트 시대의 방향이 확실치 않기에 아직은 그 누구도 정답을 찾지 못한 '불확실한' 시기다. 한국은 지난 60여 년 경제적 발전을 목표로 달려왔다. 그러나 일정 수준 그 목표를 달성한 시점에 급속한 발전의 '부작용' 내지는 '나아갈 방향의 부재'라는 곤경에 빠지게 됐다. 대내외 혼란이 극심한 상황에 새로운 목표와 비전의 제시가 절실한 상황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한국에 적합한 그리고 이로운 답안을 선택하고 제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지도자의 임무가 막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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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중국문제특성화' 대학을 지향하면서 2013년 3월 설립된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국내외 정세 변화에 대처하고, 바람직한 한중관계와 양국의 공동발전을 위한 실질적 방안의 연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산하에 한중법률, 한중역사문화, 한중정치외교, 한중통상산업 분야의 전문연구소를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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