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박근혜-삼성 체제가 우리의 DNA인가?

[서리풀 논평] 이재용 구속, '박정희-박근혜 체제' 막바지 신호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을 굳이 구분하는 것은 궁색하다. 삼성은 괜찮은데 이재용이 부족한 것인가, 아니면 이재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삼성 시스템의 한계인가? 부질없는 이분법에 지나지 않으니,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이재용이 곧 삼성이고 또한 이건희다.

예상했던 일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삼성의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들. 걱정은 삼성에 그치지 않고 늘 한국 경제를 핑계 삼는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가 어렵고 수출도 잘 안 되는데, 삼성이 흔들리면 한국 사회가 전체가 무너진다는 협박. 뻔뻔하게도 레퍼토리는 몇십 년째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사실을 왜곡하고 국민을 오도하는 이상한 논리를 자세하게 따질 여유는 없다. 딱 한 가지, 전문 경영인도 아니고 몇 퍼센트 지분도 없는 이재용 한 사람이 경영에 관여하지 않아 위기를 맞는다? 아무리 살펴봐도 위기론의 실체를 잘 알 수 없지만 그렇다 치자. 깨 놓고 말해 시스템과 실력이 그 정도면 어차피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별로 뛰어나지도 않은 한 개인의 결단에 의존하는 조직이란 뜻 아닌가.

일부 언론과 경제단체, 보수단체의 주장은 앵무새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위기론은 개인의 위기를 벗어나려는 자본의 전략에다 재벌이 뒤를 돌보는 선동일 뿐이다. 진정 위기는 그들의 위기, 한국 사회로서는 절호의 기회를 맞을 수도 있다.

기회라고 하는 것은 이 사건이 갖는 시대성 때문이다. 박근혜-삼성 게이트는 50년 이상 유지되어 온 박정희-박근혜 체제가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상징한다(여기서 '삼성'은 중의적인 것으로 상징과 은유를 포함한다). 보통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배제한 국가와 탐욕스럽고 비윤리적인 자본이 결탁하여 지탱해 온 국가-자본 연합. 진작부터 내리막길에 있었지만, 이제 그 끝이 보이는 곳에 도달했다.

바야흐로 시대는 새로운 때로 바뀔 준비를 마친 듯 보인다. 문제는 비틀거리는 이 연합이 우리 사회 곳곳을, 그리하여 우리 자신을 포로로 잡고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박근혜 체제가 '체제'인 한, 누구의 시시콜콜한 삶조차 이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경제로부터 개인의 내면에 이르기까지 그 체제는 타자이자 조건이면서 또한 우리의 것이 되었다.

첫째, 2017년의 한국 경제는 박정희-박근혜 체제로부터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의 체제 그 자체다. 왜 그런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재벌과 대기업을 앞세운 개방형 통상국가라는 국가·전략, 나아가 경제성장과 발전이라는 가치는 한 번도 도전받지 않았다.


시대착오적인 그 정신은 박근혜 정권 이후를 준비하는 지금도 변함없이 튼튼하다. 대선 후보라는 사람 그 누구도 삼성의 대안, 그 이후를 말하지 못하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이명박, 박근혜의 경제체제를 바꿀 필요가 없다는 야당 후보가 있을 정도다.

시간이 없어서 그렇다고 할지 모르지만, 남은 기간도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새로운 사회경제체제가 좀 더 합리적이고 덜 타락한 박정희-박근혜-삼성 체제일 뿐이라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체제의 신민 노릇을 해야 한다.

둘째, 사회경제체제만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회·경제 활동이 박근혜-삼성 게이트를 욕망하고 흉내 내며 실천한다. 그래야 살아남고 성장하며 욕심을 채울 수 있어서다. 영역에 상관없이, 규모가 크고 작은 것과도 무관하게, 제조업인지 4차 산업혁명인지도 넘어, 한국의 경제와 사회는 유착이 곧 생존이고 승리이며 실현된 권력이다.

삼성 게이트를 넘어 유착은 그만큼 보편적이니, 의료 게이트는 재수 없이 노출된 사소한(?) 전형에 지나지 않는다. 개업한 의사와 그가 만든 작은 회사는 돈을 벌기 위해 최고 권력자 또는 그 하수인과 상부상조했다. 이 일을 위해 재벌, 중소기업, 국가기관, 공무원, 국립대 병원이 똘똘 뭉쳤다지만, 이뿐일까?

곳곳에서 썩어 문드러진 구조적 유착도 한둘이 아니다. 의료 게이트의 한 축이었던 차병원 그룹이 대표적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진작부터 보건당국의 여러 고위 관료를 영입하여 활용했다고 한다(☞관련 기사 : 차병원 뒤엔 박근혜·관피아?). 이들 전직 관료들은 무슨 일을 하면서 밥값을 했을까?


현재 진행형도 많다. 예를 들어, 전직 질병관리본부장(메르스 때문에 처벌을 받았던 바로 그 사람이다)은 최근 한 제약회사의 대표이사로 취업했다(☞관련 기사 : 퇴직 넉달만에 제약사 취업한 양병국 전 질병관리본부장…"공직자윤리법 무색"). 의약에 대한 전문성이나 조직관리 경험을 이유로 이 사람을 뽑았다고 차마 말하지 못할 것이다.


병원이나 제약회사 정도는 억울할지 모른다. 하다못해, 제약사들의 회원단체인 대한제약협회도 전직 복지부 고위관료나 전직 국회의원을 대표로 뽑는 판이다. 모두가 그렇게 한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 기업이 어떻게 하는지, 이들의 대표 격인 전경련은 어떤지, 김앤장을 모르냐고 항변할 것이다.

유착과 연합, 결합은 온갖 종류의 시장과 경제 활동을 지배한다. 삶의 지혜이자 상식이기는 할망정 윤리와 정의의 문제를 벗어난 지 오래다. 거리 간판 하나를 설치하는 데에도 집 하나를 고치는 데에도 박정희-박근혜 체제의 손길이 미친다면, 이를 끊고 극복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셋째, 박정희-박근혜 체제는 급기야 개인의 정신이고 내면이다. 그 체제가 몇십 년 이상 제2의 DNA가 되다시피 우리의 삶을 규정해온 이상, 직장과 돈벌이, 가정 경제, 그리하여 우리의 물질은 그 체제에서 분리될 수 없다. 가장 내밀한 보람과 가치, 영혼조차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재용을 말하면서, 삼성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여전히 그 많은 것이 불가피하다고 변호할 준비가 되어 있다. 기여한 바를 긍정해야 한다고 자신을 설득하면서, 한국 상황에서 부정과 유착을 완전히 없애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다만 너무 심했을 뿐이다!

이른바 정경유착을 없앨 절호의 기회라고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유착이든 연합이든 상관없이, 그것은 단지 뉴스거리가 아니고 우리 생활에 그리고 우리 내면에 들어와 버티고 앉아 있다. 그 속에서 살고 생각해야 한다면, 체제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일부 또한 거부해야 한다.

체제로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 국가와 자본의 결합은 강고하다. 사회적 법칙으로 내재화하고 개인적 가치로 내면화하면, 해체와 재구성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점진적 개혁 수준으로 후퇴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칫 무력감과 패배주의로 귀결되기 쉽다.

하지만 박근혜-삼성 게이트는 다시 기회다. 바스카의 '변형적 사회활동 모델'에 따르면, 사회는 현존하는 조건이면서 동시에 계속 재생산되는 인간 행위의 결과다. 또한, 개인은 사회를 포함한 생산조건의 무의식적인 재생산을 수행하지만 동시에 의식적으로 생산, 변형한다. 이재용의 구속 또는 이로 상징되는 국가와 자본의 균열은 변형을 위한 반전의 기회다.

언제부턴가 체제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제 삼성과 이재용의 일탈은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박근혜-삼성 게이트가 조건으로 주어졌지만, 의식적 활동으로 긴 경로(박정희-박근혜 체제)와 분리되는 새로운 경로를 시작할 수도 있다. 다시 주체와 주체성으로 돌아왔다.

바로 그 분리(출발)점, 지금이 중요하다. 국가와 자본의 유착을 해체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권력을 개편하는 것에 유례없이 좋은 기회를 맞았다. 이번 대선이 둘도 없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도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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