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페미니스트 대통령' 선언…오바마는 달랐다

문재인 '성 평등' 정책 발표, 정작 차별 금지법은 반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16일 "저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라며 '성 평등 정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문재인 전 대표는 정작 지난 14일 보수 기독교 단체를 만나서는 페미니스트들의 숙원 법안인 '차별 금지법' 제정에 사실상 반대한 바 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이날 국민성장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포럼 '여성 정책 토론회'에서 "저는 여성이나 남성이나 성별 차이로 인해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여성의 지위가 최소한 OECD 평균은 되도록 매년 성평등 지수들을 점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먼저 "제 딸도 경력 단절 여성"이라며 "엄마와 아빠, 국가가 아이를 함께 키우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주 52시간 노동제 정착, '아빠 휴직 보너스제' 실시, 배우자 출산 휴가 유급 휴일 연장, 국공립 어린이집 이용 아동 40%로 늘리기 등을 약속했다.

문 전 대표는 20~30대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입 확대를 위해서는 블라인드 채용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또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 법제화, 최저임금 1만 원으로 인상, 기간제 여성 노동자의 출산 휴가를 계약 기간에서 제외하는 방안 등을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문 전 대표는 강남역 살인사건, 문화 예술계 성폭력 사건 등을 언급하며 "젠더 폭력 가해자에 대한 단호한 처벌로 사회적 약자를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아동·청소년 성 보호법을 개정해 친족, 장애인 성폭력을 가중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문 전 대표는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는 말에 공감한다. 우리 어머니는 온갖 고생을 다하시며 우리 남매를 교육시켰지만, 나는 어머니가 한 사람의 인간이고 여성이라는 사실을 오랫동안 깨닫지 못했다"면서 "사람이 먼저인 세상은 성 평등한 세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재인 전 대표의 이날 '페미니스트 대통령 선언'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페미니스트는 이래야 한다'는 제목으로 쓴 기고문을 벤치마킹한 것처럼 보인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6년 8월 이 기고문을 통해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며 "남성들도 페미니스트로서 성 차별에 맞서 싸울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 소수자 인권 문제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표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문재인 전 대표는 이날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기 이틀 전인 지난 14일 보수 기독교단체를 만나 성 소수자 차별 시정을 명문화한 '차별 금지법' 제정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냈다. (☞관련 기사 : 문재인 '차별 금지법 반대'…보수 기독교계 눈치)

반면 오바마 전 대통령은 보수 기독교계의 집요한 반대를 무릅쓰고 2014년 '동성애 차별 금지 행정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을 통해 정부나 정부와 계약한 민간 기업이 취업 등에서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5년에는 성 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며 동성애 잡지에 표지 모델로 나서기도 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이후 질의 응답 시간에 차별 금지법에 대한 질문을 받고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차별 금지 조항이 있는데 실효성이 제대로 돼 있지 않다면, 법 강화나 사회 인식, 문화를 바꿔나가도록 노력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답해 제정에 부정적인 뜻을 거듭 확인했다.

동성 결혼 합법화에 대해서는 "미국에서는 작년에 연방 대법원에서 동성혼 금지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왔는데, (대법원 판결도 없는) 우리가 미국처럼 당장 동성혼을 합법화할 수 있겠느냐. 아직 사회적 합의가 돼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선을 그었다. 그는 "다음 정부에서 인권 의식을 높여간다면 언젠가는 동성혼 합법화 문제도 좀 더 깊이 있게 논의하고 사회적 공론을 모아갈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낙태 여성을 처벌하지 말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낙태법을 폐지하자는 부분은 솔직히 지금 답을 잘 못 드리겠다"면서 "(여성에게) 자기 결정권을 주자는 말씀도 일리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낙태가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어서 (낙태죄가) 거의 사문화된 조항이다. 사회적 논란을 무릅쓰고 낙태죄 폐지로 갈지 여부는 좀더 봐야할 듯 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성 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는 일부 시민들이 기조 연설을 하는 문재인 전 대표에게 기습적으로 항의하기도 했다. 한 참석자는 "저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제 인권과 평등권을 반으로 자를 수 있느냐"고 반문하며 페미니즘에서 동성애자 인권 문제를 분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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