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의 블랙리스트는 지금 어떻게 됐나?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악의 평범성'과 김기춘·조윤선

블랙리스트 작성을 사주한 김기춘이 영장 실질심사에서 담당부장 판사에게 그것이 범죄인 줄 몰랐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실소를 금할 수 없는 발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김기춘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아마도 김기춘의 명을 받아 공모한 조윤선이나 이하 문체부 공무원 가운데 상당수도 같은 생각을 가졌을지 모른다. 인터넷에서도 그게 왜 문제냐며 기이한 논리를 펴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이들의 신념이 얼마나 투철한지 검찰도 법원도 모두 좌익에게 휘둘려 나라를 망하게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데에 조금의 망설임이 없다. 공안 검사 출신으로 동국대에서 법을 가르친다는 어떤 이의 글을 보니 나름 정치철학의 역사까지 더듬어 가며 국가의 안위를 수호하기 위해 불온한 자들을 관리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는 해괴한 논리를 확신에 차서 전개하고 있다. 이 말이 맞다고 손뼉을 치며 퍼다 나르는 사람들, ‘좋아요’를 누르며 맞장구치는 사람들 등등이 김기춘의 분신술을 증명하는 판국이다.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왜, 무엇이 이런 생각을 내면화 시키는 것일까? 헌법적 가치 위에 공안의 가치를 수립하는 이들의 사고에는 안전에 대한 그릇된 공포가 바닥에 깔려 있다. 전도된 가치가 내면화 되었을 때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은 더욱 자연스럽게 발현된다. 악의 평범성은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1963년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나오는 구절이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역사 속 악행은, 광신자나 반사회성 인격장애자들이 아니라, 국가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보통이라고 여기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고 아렌트는 주장했다.

박근혜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건과 관련하여 죄의식 없이 죄인이 된 정치인들 및 고위 공직자가 매일 뉴스를 도배하고 있다. 대통령과 최순실이 위법을 명하고 저지르는데도 제지하거나 저항한 사람이 극소수다. 트럼프가 이슬람국가 시민들에게 비자 발급을 금지한다고 하자마자 공직자들이 즉각 직위를 걸고 저항하는 미국의 사례와 매우 다른 풍경이다. 범법을 하는 대통령과 그것을 묵인 방조하는 공무원들. 이들은 모두 아이히만의 덫에 걸려든 것일까.

이 글에서는 블랙리스트를 둘러싼 문제를 짚어 본다. 블랙리스트는 사실상 이명박 정부 시작과 함께 강압된 언론 통제 및 표현의 자유 침해의 연장선상에 있는 사건이다. 언론 탄압이 버젓이 이루어지는 동안 우리 사회는 강 건너 불 보듯 보고만 있었다. 신공안정국에서 행여 사적 이익을 놓칠세라 오불관언의 자세를 취했던 것이다. 언론을 지키고자 했던 기자들이 잘려 나가고 공영방송이 정권의 나팔수가 되는 수년 동안 '악의 평범성'이 자행되어도 애써 눈을 감았다. 그 결과가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이고 블랙리스트다. (필자)

악의 평범성과 블랙리스트

문화연구자 이동연은 작금의 블랙리스트 사건이 역사적 유산이라고 말한다. 유신의 망령이 다시 소환된 것이며 히스테리에 갇힌 불안한 권력의 과잉방어이다. 그의 분석을 인용한다.

블랙리스트는 역사적 히스테리의 문화적 산물이다. 문화는 역사적 히스테리의 증상이 가장 강한 곳이다. 블랙리스트는 문화의 히스테리 증상을 역사적으로 계승한 증거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히스테리의 심리를 역사화 한다. 예컨대 유신시대에 자행된 수많은 문화예술의 검열과 예술인들에 대한 탄압은 유신의 가장 극렬했던 히스테리의 순간이다.

"인혁당 사람들을 사형시킨 1975년에 박정희 정권은 무려 225곡의 가요를 금지곡으로 묶었고, 대마초 단속을 통해 이장희, 윤형주, 신중현, 김추자 등 인기 가수들을 포함해 27명을 구속했다."

긴급조치 9호가 발효된 1975년 6월에 정부는 '공연활동의 정화대책'을 발표하는데, 요지는 가요계를 정화하는 일이었다. 이 대책으로 인해 1차에 130곡, 2차에 44곡, 3차에 48곡이 금지되었다. 1976년에는 레코드 제작 시에는 의무적으로 건전 가요를 1곡씩 포함하는 '건전가요의무삽입제'가 실시되었다. 영화산업 분야에도 마찬가지로 대대적인 통제와 검열, 정신의 백화 통치가 이루어졌다. 1973년 영화법 제4차 개정안은 영화진흥공사 신설과 검열강화가 주 골자였다. 1975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영화 시나리오 사전 심의가 강화되어, 시나리오 반려 비율이 1970년 3.7%였던 것이 1975년에는 무려 80%까지 급증했다.

역사적 유산으로서 유신의 검열은 문화의 히스테리라고 할 수 있는데, 블랙리스트는 그러한 히스테리가 역사적으로 전이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략) 근대화의 아버지인 박정희가 다시 소환되어 박근혜로 현시되고, 유신 체제의 문화와 예술의 검열은 지금 블랙리스트라는 역사적 히스테리로 부활했다. (이동연, 페이스북 포스팅. 2017. 2.)

유신시절 자행되었던 이런 백주의 공갈을 당연시하고 살았던 박근혜와 김기춘으로서 이번 블랙리스트는 범죄가 될 수도 없는 당연한 일이었을 법도 하다. 청문회에 선 김기춘의 언어는 아렌트가 지적한 아이히만의 언어와 다르지 않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범죄를 언어의 제한성에서 포착하고 있다.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강요하게 될 가공의 폭력에 대해 상상하지 못하는 것을 이 범죄의 핵심으로 지목한다. 다시 말해 아이히만이 저지른 참혹한 살인행위들은 그가 괴수이거나 특별한 악인이어서가 아니라 규정과 명령을 수행하는 범위 이상으로는 도덕적 판단을 하지 못하는 정신적 불구 상태에서 기인한다는 분석인 것이다. 그래서 아이히만은 끝까지 결코 자신의 범죄를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한다. 탄핵이 기각되면 복수하겠다는 박근혜나 모르쇠로 일관하는 김기춘, 우병우는 이 시대에 부활한 아이히만이다. 박정희며 유신이다.

그런데 문제는 간단하지가 않다. 블랙리스트 작성에 실제 동원된 문체부 공무원들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그들 및 한국의 모든 공무원들, 나아가 조직의 성원들이 처한 상황은 어떠한가? 부정과 불법을 명령 받았을 때 아이히만이 되지 않고 저항 할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장관이, 국장이, 과장이 지시하는 것이 불법이고 부도덕한 것임을 알아도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환경이 이루어져 있는가? 답은 부정적이다. 일반기업이나 대개의 조직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사회에 합리적 도덕적 기준이 개인의 양심을 보호하는 조직은 없다. 이것은 결국 한국이 아직 근대적인 사회로 이행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근대성의 핵심은 합리성이다. 혹은 합리적 이성이다. 인간은 합리적 이성의 주체이며 그 행위는 도덕적 판단에 뿌리를 박고 있다. 도덕적 판단의 중지, 그리고 지시와 명령, 관습에 복종해야 하는 환경은 근대성을 체현하는 조건이 아니며 그 안에 놓인 인간 주체들은 근대적 인간으로 행동하고 사고할 수 없다. 한국인들이 처한 사회적 조건이 이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한국인들은 우리가 근대적인 사회, 즉 합리적 이성이 관철되는 제도적 공간에 살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근대의 껍질, 즉 물질적 성장의 외피를 근대로 이해하고 그 물질성 속에 살고 있는 자신을 근대인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 한국의 정신과 제도는 전근대적 사슬에 묶여 있다. 정경유착, 연고주의, '우리가 남이가' 등은 전근대적 정신성의 실현태이다. 수년에 걸쳐 블랙리스트의 작성과 적용이 일상 업무로 갈등 없이 수행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악의 평범성은 근대적 합리성이 결여된 제도적 공간에서 일상의 업무로 실행된다.

언론 및 표현의 자유 침탈

블랙리스트의 작성은 김기춘과 조윤선에 의해서만 된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권이 서둘러 자행한 '악의 평범성'은 공영방송 문화방송(MBC)에 낙하산으로 떨어트린 김재철 사장 임명, 연합뉴스 사장의 낙하산 임명, 대통령 최측근 최시중 방통위원장을 통한 언론 통제 등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한 저항은 MBC 구성원에 의한 170일 장기 파업으로 극렬하게 나타났다. 수많은 언론인이 삶의 터전에서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렸다.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자시고 할 위선도 없이 자행된 언론 압살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 중인환시리에 장기간 지속했다. 그런데도 결국 일차적 피해는 내몰린 언론인들에게만 강요되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심대하고 치명적인 사회적 해악은 공정한 언론기관의 사멸과 정권을 대변하는 나팔수의 오염된 방송을 감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국민들은 차차 이를 외면하였고 그 결과는 MBC 뉴스에 대한 시청률 하락과 공정성 평가지수에서의 추락으로 나타났다.

2012년 MBC 파업의 장기전은 결국 MBC와 한국 언론에 지우기 힘든 비극으로 남게 되었다. 비극은 보도국 대체인력 투입으로 막을 올린다. 사장 김재철은 30여명의 시용기자를 계약직으로 채용했고, 이듬해 퇴사 직전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뒤 MBC를 떠났다.

ⓒ프레시안(최형락)

당시 파업에 참여했던 임명현 MBC 기자는 '2012년 파업 이후 공영방송 기자들의 주체성 재구성에 관한 연구-MBC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석사논문을 통해 MBC 기자들의 '자기소외'를 분석했다. 그는 논문에서 "공영방송의 정권종속화 강화와 그에 따른 경영진의 비인격적 인사관리 기조 속에서 기자 주체는 잉여로 호명돼 뉴스의 외부로 격리되거나 도구로 호명돼 경영진이 주문하는 저널리즘 실천을 수행했다. 기자들은 기존의 저항적 실천 대신 자신의 저널리즘 실천을 유예했다. 이 같은 배경에는 모멸감과 공포, 수치심과 무력감 같은 집합심리가 자리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조직전체가 배제의 공포 속에 저널리즘을 유예하는 상황 속에서 모든 아이템 판단은 보도국 간부들에 의해 수직적으로 결정됐고, 결국 최순실게이트 국면에서의 '보도참사'로 이어졌다.

MBC의 경영진은 사법부의 부당징계 판결을 무시하고 부당전보→경력채용 방식을 반복하며 공포를 형성했다. MBC노조에 따르면 MBC에서 파업 이후 징계, 대기발령, 교육발령, 무관 부서 전보 등 인사관리를 경험한 조합원은 165명이며, 이 중 91명은 여전히 본업에서 제외되어 있다. 직종별로는 기자 50여명, PD 30여명, 아나운서 10여명이다. 2016년 초 폭로된 백종문 녹취록에 따르면 녹음 당시 백종문 MBC편성제작본부장은 "회사를 망가뜨린 사람들이 50~80명"이라고 말했다.

▲ 파업 참가자들에 대한 강제 직종 전환 현황. ⓒMBC노조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독재적 권력의 붕괴와 권력 공백 상태에서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기의 언론 압살을 고발하는 선언과 영화가 나왔고 이러한 고발과 지난 시가의 문제에 대한 분석은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기자들은 지난 12월 21일 성명을 내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기사를 데스크가 난도질해도, 국정교과서를 '단일교과서'라고 쓰라는 지시가 내려와도, 대다수 시민단체와 한 줌도 안 될 관변단체를 1대 1로 다루는 기사가 나가도 우리는 항의하되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다"고 자성했다". (미디어 오늘, 2016. 12. 21)

해직언론인의 투쟁과 연대와 삶을 다룬 <7년-그들이 없는 언론>도 블랙리스트에 의한 언론인 핍박, 공정언론 실종을 잘 보여준다.
알맹이 근대화를 향한 과제

블랙리스트는 김기춘과 조윤선이 만든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십 년 가까이 한국 사회는 전체적으로 블랙리스트에 의한 공포 정치에 흔들렸고 언론인을 탄압하고 언론을 길들이는 만행에 항거하지 못한 대가를 결국 박근혜 국정 농단을 통해 엄청난 비용으로 치르고 있다. 블랙리스트 관련 책임자의 처벌은 물론이고 이미 훼손될 대로 훼손된 MBC를 어떻게 정상화할 것인지도 큰 과제로 남아있다.

2월에 국회를 통과하여야 할 방송법 등 개정안이 당장 시급한 과제이다. 여소야대의 흔치 않은 기회를 잘 살릴 것인가, 아니면 무위로 돌려버릴 것인가가 국회에 넘겨져 있다. 통과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공정 언론 회복의 첫 걸음일 뿐이다. 수많은 난제가 놓여 있다. 결국은 껍데기 근대화를 극복하고 근대성의 알맹이를 채워나가야 하는 일이다. 근대적 합리성을 일상의 업무 공간에 제도로서, 관습으로서, 행위의 기본 준칙으로서 정착시켜 나가지 못한다면, '악의 평범성'은 언제든 고개를 들고 재앙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정권이 바뀐다 해도 마찬가지다. 언론뿐만이 아니라 전체 한국 사회의 앞에 놓인 커다란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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