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빠진 대선, '문재인 대세'로 가나?

[분석] 예견된 중도 하차 …대선 구도 요동칠 듯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귀국 후 20일 만에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반 전 총장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뒤를 이어 지지율 2위를 달린 범보수 후보라는 점에서 대선 구도가 크게 출렁일 것으로 예상된다.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에는 무엇보다 하락세를 면치 못한 지지율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의 정치 데뷔 1라운드를 총결산하는 설 명절이 지났음에도 10% 초반대로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며 문 전 대표와의 격차가 두 배 이상으로 벌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박 대통령 탄핵으로 시작된 조기 대선 국면에서 그가 제기한 '정치교체' 슬로건은 '정권교체'로 쏠린 대중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보수와 진보를 포괄하겠다던 구상도 양쪽 모두로부터 모호한 정체성 논란을 유발했다.

지지율 반전을 모색할 시간과 동력이 부족하다는 판단이 불가피한 상황. 불출마 선언 전날인 31일, 승부수로 던진 '개헌 추진 협의체' 제안조차 거의 모든 정치세력으로부터 외면 받는 수모를 겪었다.

가족 비리 의혹도 걸림돌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동생 반기상 씨와 조카 반주현씨가 미국에서 뇌물죄로 기소돼 반 전 총장이 "국민들 볼 면목이 없다"고 고개를 숙이는 등 친인척 관리에도 철저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 귀국 후 그가 보여준 정치력에 의문부호가 붙었다. '진보적 보수주의자'라는 모순된 자기규정은 물론이고, "돈과 관련된 문제가 매우 힘들다"며 대선후보답지 않은 태도로 빈축을 샀다. 결국 그는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양쪽으로부터 "셔터가 닫히는" 외면을 받았다.

이 밖에도 귀국 직후 공항 철도 개찰구에 만 원 권 두 장을 집어넣으려 한 모습이 포착되는가 하면 위안부 합의 문제에 대한 입장을 묻는 언론을 "나쁜놈들"이라고 표현하는 등 취약한 공감 능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불출마 선언 전날에도 "촛불 민심이 변질됐다"는 민심과 동떨어진 발언으로 논란을 자초했다.

반 전 총장 불출마 회견에서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에 불만을 터뜨린 대목도 그의 정치적 미성숙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캠프 내부에선 독자 신당 창당, 바른정당 입당 등 향후 시나리오가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반 전 총장은 1일 오전 출마 포기로 결심을 굳혔다는 후문이다. 결국 부족한 권력의지, 정치 신인다운 참신함과 돌파력 부족, 민심을 읽지 못한 메시지 등이 지지율 추락으로 이어져 중도하차한 것으로 분석된다.

수혜자는 황교안‧안철수?

반 전 총장의 대선 포기는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바이지만 파장은 다방면으로 퍼질 것으로 전망된다. 크게는 반기문 변수가 사라짐으로써 정계개편 가능성이 줄어들어 현재의 4당 구도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지역적으로는 반 전 총장에 대한 지지율이 높았던 충청권과 대구경북 민심이 가장 크게 술렁일 것으로 보인다.

대선주자들의 득실도 엇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문재인 전 대표를 견제할 유력한 대항마가 사라짐으로써 '문재인 대세론'은 한층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의 중도 사퇴가 보수층의 위기의식과 '반(反)문재인' 정서를 자극해 오히려 반대의 효과를 낼 수도 있다. 문 전 대표는 "좋은 경쟁을 기대했는데 안타깝다"는 반응만 보였다.

이에 따라 보수층에서 반기문 대체재로 떠오르고 있는 황교안 국무총리 권한대행의 향후 지지율 추이가 주목된다. 박근혜 대통령과 더불어 정부 붕괴의 공동책임론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도 황 권한대행은 10%에 근접한 지지율을 보이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의 '황교안 모시기'도 더욱 적극적으로 변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반 전 총장을 영입하고 유승민 의원,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경선을 통해 흥행 몰이를 꾀했던 바른정당은 향후 계획이 난망해졌다.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이 유 의원과 남 지사 쪽으로 일부 이동할 수도 있지만, 비약적인 지지율 반등이 일어나거나 황교안 권한대행이 대선에 출마하지 않는다는 전제 없이는 바른정당이 당장 보수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반 전 총장에게 밀려 지지율이 3위로 내려앉았던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에게는 위기보다 기회 요인이 많아 보인다. "이번 대선은 문재인과 안철수의 대결"이라고 주장해 온 그의 발언이 현실화 될 가능성이 많아졌다. 문 전 대표에 비해 보수와 중도층으로부터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덜한 안 전 대표가 반기문 지지층을 흡수해 최대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반 전 총장의 충청권의 지지도를 안희정 충남지사가 얻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보수층에서 강한 반문재인 정서와 달리 최근 '안정감'으로 지지율 상승을 보이고 있는 안 전 지사의 향후 행보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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