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간첩이 하는 짓" 태극기 들고 난입해 그림 짓밟아

보수 단체 난입과 별개로, '여성 비하' 논란은 거세져

국회에 전시된 박근혜 대통령 그림을 두고 '여성 비하' 논란이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주최한 박근혜 대통령 풍자 전시전의 한 작품이 박근혜 대통령을 나체로 표현한 탓이다. 보수 단체 회원들로 추정되는 시민들은 해당 작품을 훼손했고, 더불어민주당은 표창원 의원을 당 윤리심판원에 회부하기로 했다.

'곧, BYE!전(展)'이라는 제목으로 국회 의원회관에 전시돼 논란이 된 그림 <더러운 잠>은 프랑스 화가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했다. 침몰하는 세월호 앞에 박근혜 대통령이 나체로 누운 채 잠들어 있다. 박근혜 대통령 배 위에는 진돗개 두 마리와 박정희 대통령 사진, 사드 미사일이 있고, 그 뒤에는 최순실 씨가 주삿바늘을 들고 있다.

이 그림은 '여성 비하' 논란을 불러왔다. 신혜정 민우회 활동가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하고 많은 방식 중에 왜 나체가 소환됐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여성이고 여성을 가장 모욕 주기 쉬운 방식이 나체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신 활동가는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잘못한 권력 부패나 기득권 문제가 드러나는 대신, '나체' 논란으로 확산한다는 측면에서 여성들을 불쾌하게 만드 데 그친다"고 지적했다.


보수 단체 회원, 작품 훼손…작가 "적절한 패러디"

'여성 비하' 논란과는 별개로 24일 이 그림이 전시된 국회 의원회관에는 보수 단체 회원들로 추정되는 태극기를 든 시민 수십 명이 들이닥쳤다. 몇몇 시민들은 해당 그림을 내동댕이치고, 발로 밟아 그림을 훼손했다. 국회 관계자가 이들의 동영상을 찍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주최 측의 신고로 해당 그림을 훼손한 두 명은 경찰서에 갔다.

▲ 보수단체 회원들이 표창원 의원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곧, BYE!전'에서 24일 <더러운 잠>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훼손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이들은 "아직 이 사람이 대통령이잖아. 탄핵 안 됐잖아. 어떻게 저렇게 망신 주기 할 수 있나. 저건 간첩들이 하는 짓이다", "여성 대통령 나체 사진을 찍어 놓고, 여자들은 분개해야 할 거 아니야. 태극기 집회에 나오십시오", "어찌 일국의 대통령을 저렇게 하나. 대한민국을 이렇게 한 것"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이에 해당 작품을 전시한 예술가들은 의원회관에서 성명을 내고 "전시장에 난입해 작품을 훼손하고 밟고 찢어버리는 행위는 나치 시대 히틀러 친위대들의 행동과 다를 바 없다"며 "이 전시의 본질은 표현의 자유와 풍자다.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은 여성 비하 운운하며 박근혜-최순실 정권을 비호하지 말라"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민의당 권은희, 김삼화, 김수민, 박주현, 신용현, 장정숙, 조배숙, 최도자 등 여성 의원 일동은 이날 성명을 내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여성 대통령, 여성 정치인에 대한 혐오와 성적 대상화 방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지 여성 대통령이 아니다"라며 "여성 정치인 혐오가 담긴 작품 전시를 철회하고 즉각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이 그림을 그린 이구영 작가는 '여성 비하, 여성 정치인 비하' 논란에 대해 "그런 의도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누드 작품이라는 것을 대통령 얼굴로 표현한 것에 (비판이) 집중되는 것 같다. 여성들의 커리어라든가"라며 적절한 패러디였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이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보수 단체 회원들은 "미친 XX들이지. 작가는 무슨 작가야. 자기 마누라 사진을 갖다가 벗겨놔서 갖다놔 봐라"라고 소리 치기도 했다.

▲ '곧, BYE!전' 참여 작가들이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누리당, 보수 단체를 빙자한 폭력 단체는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민주당, 표창원 윤리심판원 회부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대응은 2차 논란을 불러왔다. 당 최고위원회의가 해당 작품 전시를 주관한 표창원 의원을 당 윤리심판원에 회부하기로 하면서다.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예술 작품의 표현의 자유는 존중해야 하지만, 인권의 보편성이 갖는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같은 작품이라도 대중에게 전달되는 공간 등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며 "당 최고위는 국회라는 공간에서 해당 작품을 전시한 행위는 적절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는 이유를 댔다.

이 조치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누드 그림이 국회에 전시된 것은 대단히 민망하고 유감스런 일"이라고 적은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내려졌다. 문재인 전 대표는 "작품은 예술가 자유이고 존중돼야 하지만 그 작품이 국회에서 정치인 주최로 전시된 것은 적절치 않다. 예술에서는 비판과 풍자가 중요하지만 정치에서는 품격과 절제가 중요하다고 본다"고 적었다.

'국회에서 전시하면 안 된다'는 문재인 전 대표의 견해와 똑같은 이유로, 당 지도부가 표창원 의원을 윤리심판원에 회부한 것이다.

표창원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전시회의 모든 준비와 기획, 진행은 작가회의에서 주관했고, 전시회가 개막하고 현장을 둘러보다가 <더러운 잠>을 봤다. 제 취향은 아니지만 예술의 자유 영역에 포함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라고 생각한다"는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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