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의 '소녀상 발언'이 완벽히 '무가치'한 이유

[기자의 눈] 반기문은 '소녀상 철거 불가'나 '철거 찬성'을 말했어야 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소녀상 발언'을 두고 해석이 엇갈린다. 주로 '야권의 주장'에 동조하며 보수와 거리를 뒀다는 해석으로 수렴되는 모양이다. 보수주의자인 그가 '진보적' 면모를 보였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진보적'이라는 말에 대한 논란은 일단 접어두자. 반 전 총장의 '소녀상 발언'의 소비 방식은, '진보적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그를 중도적 이미지로 채색해 주려는 방송과 보수 언론의 작품이라는 게 맞는 것 같다.

반 전 총장의 소녀상 발언을 뜯어보면 한마디로 무의미, 무가치하다고 볼 수 있다. 논리를 교묘하게 꼬아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셈인데, 이는 그가 소녀상 철거에 반대하는 국민 다수의 민심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소녀상 발언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기름 바른 논리'라는 것은 조금만 따져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반 전 총장은 귀국 비행기에서 보수 언론들과 기내 인터뷰를 한다. 다음은 <중앙일보> 13일 자 인터뷰 중 반 전 총장의 발언이다.

"최근 부산에 소녀상 세운 거 가지고 일본이 이러저러하다 하지 않나. 만약 10억 엔이 소녀상 철거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건 잘못된 거다. 그렇다면 차라리 돈을 돌려주고 해야지, 그건 말이 안 되는 거다. 내가 아베 총리와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통화할 때 '위안부 문제 등 역사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가운데 미래지향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분명히 얘기했다."

외교관 출신 다운 교묘한 말장난이다. "만약 10억엔이 소녀상 철거와 관련된 것이라면"이라는 전제를 깔고 "차라리 돈을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파격적인 발언처럼 보인다.

그러나 애초에 10억 엔과 소녀상 철거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지난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문 전문을 보자.

1. 일본 측 표명사항

일한 간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양국 국장급 협의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협의해왔음. 그 결과에 기초하여 일본 정부로서 이하를 표명함.

1)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함.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함.

2)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도 본 문제에 진지하게 임해 왔으며, 그러한 경험에 기초하여 이번에 일본 정부의 예산에 의해 모든 전(前) 위안부분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를 강구함. 구체적으로는, 한국 정부가 전(前) 위안부분들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이에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하고, 일한 양국 정부가 협력하여 모든 전(前) 위안부 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행하기로 함.

3) 일본 정부는 상기를 표명함과 함께, 상기 2)의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동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함. 또한,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와 함께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동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하는 것을 자제함.

2. 한국 측 표명사항

한일 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양국 국장급협의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협의를 해왔음. 그 결과에 기초하여 한국정부로서 이하를 표명함.

1)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표명과 이번 발표에 이르기까지의 조치를 평가하고, 일본 정부가 상기 1.2)에서 표명한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 정부와 함께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함.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실시하는 조치에 협력함.

2)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함.

3) 한국 정부는 이번에 일본 정부가 표명한 조치가 착실히 실시된다는 것을 전제로 일본 정부와 함께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동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함.

문제의 10억 엔은 일본 정부가 '거출'한다고 돼 있지만 어디에도 '물리적 행동'을 제약하거나 수반해야 하는 전제조건은 없다. 추상적인 사죄의 의미에 따른 10억 엔이다.

한국 측 표명 사항을 보자. 논란이 거셌던 부분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함"이라고 돼 있는 부분을 뜯어본다 한들, 10엔이 소녀상 철거의 조건이라는 이야기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가 없다.

반 전 총장 화법의 비밀이 드러난다. 결과적으로 반 전 총장은 없는 '전제'를 끌어와 '허세'를 부린 꼴이 됐다. 10억 엔과 소녀상 철거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는 것은 '국어' 해석의 문제일 뿐이다.

물론 반 전 총장의 이같은 '허세'가 가능했던 이유는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발언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일본 방송에 나와서 부산 영사관 앞 소녀상 철거를 요구했고, 관련해 10억 엔을 한국에 제공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아베 총리에게 10억 엔은 소녀상 철거의 전제가 된다.

그런데 합의문에 없는 이야기를 아베 총리는 왜 방송에 나와 공개적으로 주장했을까? 이때문에 '이면 합의가 있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다. 10억 엔과 소녀상이 연관된 모종의 합의가 있기 때문에 아베 총리가 저렇게 주장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반 전 총장은 '밥 먹으면 배부르다'와 같은 당연한 얘기를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하지 말고, 차라리 박근혜 정부에 '혹시 이면 합의가 있는 것이냐'고 물었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합의문을 봐도 10억 엔과 소녀상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며 일본 측에 소녀상 철거 불가를 천명했어야 맞다. 혹은 정부가 내놓은 입장문 2항에 따른다며 "정부가 (철거가)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라고 하나 마나 한 얘기를 해도 좋았을 거였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기름 바른' 화법으로 두루뭉술 넘어가 버렸다.

결론은? 반 전 총장은 아직 소녀상 철거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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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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