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6대 적폐', 황교안이 살리고 있다

[손호철 칼럼]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를 끝내려면

"헤겔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나 사건은 두 번 반복된다고 쓴 바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것을 덧붙이는 것을 잊어버렸다.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반복된다". 마르크스의 글 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유명한 구절이다. 민주공화국이라는 프랑스혁명의 정신을 짓밟고 황제에 오른 나폴레옹이 비극이라면, 이후 혁명과 반혁명의 혼란 속에서 삼촌의 명성 덕으로 권력을 차지한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보나파르트는 코미디라고 풍자한 것이다. 그렇다. 근대화라는 이름아래 민주주의를 짓밟고 영구집권을 노렸던 박정희가 비극이라면 루이 보나파르트처럼 혈육의 명성을 팔아 대통령에 오른 박근혜는 희극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인물'만이 아니라 '사건'도 반복되고 있다. 박정희는 79년 10월 YH여자노동자항쟁과 부마항쟁에 의해 퇴출됐다. 물론 직접적인 계기는 최측근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저격이었지만, 그 같은 저격을 촉발시킨 것은 이들 항쟁들이었다. 박근혜도 헌재 결정이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현재도 진행 중인 위대한 '광화문 항쟁'에 의해 이미 퇴진당한 것에 다름 아니다."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촛불혁명 초기 이 지면의 '광화문 항쟁,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칼럼 보기)라는 글 도입부에서 썼던 이야기이다. 그 글을 쓴 뒤 촛불은 더욱 활활 타올라 참여자 수가 경이로운 1천 만 명이 넘어섰고 그 힘으로 국회를 움직여 박근혜를 탄핵시켰다. 나아가 촛불은 단순히 박근혜 퇴진을 넘어서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항쟁을 넘어 촛불혁명, 시민혁명으로 발전했다(나아가 이번 항쟁이 전국적인 항쟁이라는 점에서 '11월 시민혁명'이라는 것이 더 적합한 표현인 것 같다).

그러나 박근혜 이후 나타난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를 바라보면서 박정희와 박근혜 사이에 비슷한 점이 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10월 26일 박정희 사망 이후와 12월 9일 박근혜 탄핵 이후의 상황이다. 1979년 김재규의 영웅적인 거사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이 김재규를 체포하고 12.12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우리 사회는 김재규가 꿈꾸었던 것과는 달리 최소한의 자유도 억압되는 '박정희 없는 박정희 체제', '박정희 없는 유신체제'를 계속 경험해야 했다. 전두환은 이 '박정희 없는 박정희 체제'를 끝장내려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저항을 5.18 학살을 통해 무참하게 짓밟고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국회가 압도적인 표차로 박근혜의 탄핵을 가결했고, 국민의 70%이상이 헌재 결정 이전의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의 수족들이 권력의 핵심 자리에 그대로 앉아 박근혜표 정책(최순실 정책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을 계속 국민들에게 강제하는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그 핵심에는 탄핵을 받은 박근혜에 의해 간택되어(최순실에 의해 간택되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은), 수많은 결격사유에도 불구하고 임명된 황교안 권한대행이 자리 잡고 있다. 뉴라이트 전국연합상임대표였고 이명박 정부에서 법제처장을 지낸 보수 성향의 헌법전문가인 이석연 전 법제처장이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잘 정리해 주었듯이, 황 대행의 권한은 국가의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고 긴급한 현안은 국회와 협의해 추진해야 한다. 다시 말해, 박근혜 정부의 정책기조는 탄핵에 의해 무너졌음으로 이를 계속 유지하고 추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와 관련, 1500개 단체들의 대표체로 이번 투쟁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최근 오랜 논쟁 끝에 적폐청산 6대 긴급과제를 선정했는데 그것은 세월호, 백남기 특검, 국정교과서, 언론장악, 성과퇴출제,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이다. 이중 국정교과서, 성과퇴출제, 사드 배치는 당장 중단해야 하는 긴급 현안들이라고 퇴진행동은 밝혔다.

그러나 황교안은 과잉 의전과 인사권 행사 등으로 '대통령 코스프레' 비판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사드 한반도 배치와 한일 위안부 합의, 국정교과서 등 야당과 시민사회가 반대해온 박근혜 정책들을 계속 추진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이는 최소한의 관리 기능만을 추진하며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의 고건 전 총리의 권한대행으로서의 행보와 대조적인 것이다. 황교안은 "상대방이 있는 외교사안에 대해 하루아침에 바꾸라고 말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정책불변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국정교과서 문제의 경우 1년 시행을 유보하기로 했지만 불씨는 살아있다. 국정교과서는 압도적인 여론의 반대 속에 최순실 사건이 터지면서 철회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황교안이 권한대행에 오른 뒤 그 같은 기조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그는 권한대행이 된 뒤에도 국회에서 현행 "역사 교과서가 많이 왜곡돼 있고 편파성이 있기 때문"에 국정교과서가 필요하다는 박근혜 식의 주장을 반복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나타난 정책은 철회가 아니라 1년 유보였다. 게다가 올해 일부 학교를 연구학교로 지정해 실험실시를 한다며 이 같은 실험실시 교수에 대해 엄청난 평점과 재정적 지원특혜를 주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다수 교육청들이 이에 반대하고 나서는 등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등 교수, 연구자 단체들로 구성된 교수연구자비상시국회의는 일찍이 황교안이 "박근혜, 최순실 알파가 국정을 마음껏 농락하던 시기에 법무부방관과 국무총리라는 막중한 지위에 있으면서 헌정파괴를 방조하고 국정농단을 옹호해온 공범"이기 때문에 즉각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2일에도 박근혜 퇴진 5대 종단 운동본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황교안은 삼성 X파일 수사에서의 재벌 봐주기, 희귀병을 악용한 병역면제, 법무부장관시절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와 세월호 수사 방해, 변호사 시절 전관예우 등 적폐의 생산자이자 수혜자였다"며 "야3당은 새로운 총리를 국회에 추천해 황교안에 제시하고 최순실 국정농단의 수혜자이자 비호자인 황교안은 야3당 추천총리를 받아들여 퇴진할 것"을 요구했다.

사실 탄핵 이후 황교안이 대통령 권한대행에 오르고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가 자리 잡게 된 데에는 야당의 책임이 크다. 야권은 탄핵이 가결될 경우 황교안 대행 체제가 등장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면서도 전혀 이에 대한 대안을 준비하지 않는 역사적 죄를 저질렀다. 이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정국 주도권 싸움 때문에 상대방 당이 추천하는 총리가 실권을 행사하느니, 아예 황교안 체제가 낫다는 정파적 판단에 기초해 대안적 총리 제시를 방기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야권이 시민사회단체들과 광장의 요구를 받아들여 황교안의 퇴진을 추진하는 것은 국정공백 등을 고려 할 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국회, 특히 야당은 황교안에 대해 필수적인 국가기능 유지 이외에는 사드 배치, 국정교과서, 성과퇴출제 같은 박근혜 정책들을 즉각 중단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황교안이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박근혜 정책을 계속 고집할 경우 그도 직권남용으로 탄핵해야 한다.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는 끝내야 한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단순히 박근혜 개인의 퇴진이 아니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탄핵당한 박근혜에 의해 임명된 박근혜의 수족인 황교안에 의해 박근혜 정책이 지속되는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가 아니다. 10.26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같은 정치 군인들에 의해 강제된 '박정희 없는 박정희 체제'라는 비극에 이어서 반복되고 있는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라는 희극은 이제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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