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검찰 수사를 받으러 갈 때도, 국회 청문회 증인으로 나와서도 그는 고개를 굽힐 줄 몰랐다. '레이저 눈빛'은 덤이었다.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5차 청문회에 우 전 수석이 출석했다. 국정 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이지만, 행방이 묘연해 현상금까지 걸렸을 정도로 어렵게 '모신' 증인이었다.
국조특위는 우 전 수석을 청문회 자리에 앉히는 것은 어렵사리 성공했지만, 유의미한 답변을 끌어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런 일 없다", "인정하지 않는다"며 고개를 빳빳이 세운 그 앞에서 특조위원들의 질문들은 튕겨 나갔다.
"최순실 모른다. 지금도 모른다"
우 전 수석은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우선, 그는 "최순실을 전혀 모른다"고 했다. "(최순실을) 현재도 모른다. 언론에서 봤다"며 "정윤회 문건 사건 때 정윤회와 부부 사이이라는 얘기만 알았다"고 했다. 차은택 씨가 검찰 조사에서 "우병우의 장모 김장자와 최순실이 '골프 회동'을 한 이후 우병우가 민정비서관이 됐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부인했다. "장모로부터 차은택 관련 이야기를 들은 적 있냐"는 질문에도 그는 "없다"고 간결하게 답했다.
지난 2014년 6월 해경 본청을 압수수색하던 광주지검 세월호 수사팀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압수수색하지 말라고 전화한 적 없다", "그런 적 없다"고 완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면서 "저는 그 당시에 세월호 사건이 중요한 수사라 법과 원칙 따라 엄정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며 "중요한 판단을 신중하게 하라고 한 건 잘못된 게 아니"라고 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우 전 수석이 민정수석실 차원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관한 청와대 대응 문건을 만들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박 의원이 제시한 문건에는 미르재단의 이성한 전 사무총장 및 임직원 선발 문제에 대한 검찰 수사 상황, 향후 대응 방안 등 이른바 '모범 답안'이 적혀있었다. 박 의원은 "(K스포츠재단이 받은) 롯데 75억을 검찰 압수수색 바로 전날에 돌려줬는데, 이 문건에 '당시 사업 목적이 맞지 않아 되돌려 준 것으로 답변하라'는 가이드가 있다"고 추궁했다. 이에 우 전 수석은 "이 문건은 저는 모른다"며 "70억인지 75억인지를 받은 것도 몰랐다"고 했다.
"답변 태도 불량" 지적에 "있는 그대로 말할 뿐"
"몰랐다", "그런 적 없다"는 우 전 수석의 일관된 답변에 특조위원들은 질책을 쏟아냈다. 박 의원은 "법률 미꾸라지 대부라는 김기춘 대부 밑에서 배운 대로 답변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기춘이 '대통령께서 지명해서 대면한 일이 있다'고 한 사람의 특징은 최순실이 부탁한 사람인데, 김기춘이 우병우 민정비서관도 그렇게 답했다. 결과적으로 우병우도 최순실 부탁으로 들어갔다는 걸 입증하는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이혜훈 새누리당 의원은 "측근 비리를 파악하고 대처하는 게 민정수석의 업무다. 모를 수가 없다. 그런데 증인은 최순실을 조사한 적도 보고한 적도 없다고 했다"며 "그렇다면 증인은 명백히 범죄를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성태 특조위원장은 "우병우 증인이 답변 태도가 불량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우 전 수석은 "그렇다면 송구하다"면서도 "진실을 말하는 자리고 저는 있는 그대로를 말씀드리는 것 뿐"이라고 일축했다.
'고압적인 태도'에 대한 지적은 앞서에도 여러 번 나왔다. 새누리당 정유섭 의원은 검찰 수사를 앞두고 우 전 수석이 질문하는 기자를 쏘아본 데 대해 "검찰 수사를 받으러 가는 사람이 기자를 그렇게 노려보는 경우는 없었다. '레이저'를 쏜 건데, 대통령도, 심지어 최순실도 그런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러자 우 전 수석은 "여기자가 제 가슴 쪽으로 갑자기 다가와서 굉장히 크게 질문을 해서 놀라서 내려다본 것"이라고 했다.
'팔짱 수사'에 대한 질문에 대해선 "잠시 수사 검사가 자리를 비운 쉬는 시간이었다"며 "제가 15시간 이상 앉아서 조사를 받았는데 그날 몸이 안 좋아서 오한도 있어서 추우니까 일어나서 파카를 입고 팔짱을 끼고 있던 것"이라고 했다.
특조위원들은 우 전 수석이 국회 청문회 출석 요구에 불응하며 종적을 감췄던 이유도 추궁했다. "왜 도망 다녔느냐"는 거듭된 질문에 우 전 수석은 "도망을 다닌 적이 없다"고 답하며, "저희 집 앞에 기자들 앞에 오고 카메라 들이대서 집에 있을 수 없었다. 언론 취재를 피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또 "민정수석은 (청문회에) 안 나오는 게 관행"이라며 "제가 민정수석으로서 재임 중 한 일은 말을 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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