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 죽 쒀서 개 주지 않으려면…"

[진보논평] 촛불혁명의 과제는 구체제의 청산이다

진보논평은 진보 진영의 대표적 계간지 <진보평론>의 편집위원들이 박근혜 게이트로 인한 국정 농단의 국면에서 우리 사회에 대한 심층 분석과 미래를 순차적으로 전망하는 자리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궤변, 후안무치, 안하무인, 몰염치. 예상했던 대로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 일당'들의 반격은 단순하면서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막가파식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생존을 해야 한다는 절박함도 있지만, 판단력과 변별력이 없는 이들이 취할 수 있는 방식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의 노동자 민중에 대한 인식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이들에게 노동자 민중은 처음부터 투명인간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은 존재감도 없고 존재감이 없는 것은 내면이 없다는 것이며, 결국 소통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마 12월 9일 탄핵 이후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숫자가 감소하는 것을 보고 끝까지 버티면 노동자 민중이 피로증후군으로 인해 제풀에 지쳐 꺾일 것이기 때문에 승산이 있다고 단순 착각한 것 같다. 그러니 이들이 '촛불민심'을 제대로 알 리가 없다.


숫자 판독기 역할을 하는 보수언론들의 '시민의식 성숙과 평화집회'라는 프레임은 청와대와 정치권의 안일한 사고를 만드는 데 결정적이었던 것이다. 지난 5차 범국민대회까지 현실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고 박근혜 '즉각' 퇴진이라는 민심의 요구를 애써 외면한 것이다.


정치권의 외면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12월 3일 6차 범국민대회에서 대중들은 응답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박근혜 즉각 퇴진"이라고.

결국 비박도 무릎을 꿇었다. 232만 명이라는 6차 범국민대회의 규모에 놀란 듯 비박계가 박근혜의 4월 퇴진 약속과 상관없이 탄핵에 동참하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켜서 탄핵안은 가결되었다. 일단 이들은 목숨을 당분간 부지하게 됐다.

촛불의 진화와 조건

촛불은 회를 거듭할수록 진화하고 있다. 박근혜의 말 한마디가 그 원동력이 되었지만 지금은 스스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 12월 10일 7차 범국민대회에서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간만에 감동이었다. 그것은 1980년 서울의 봄, 1987년 6월 항쟁 그리고 2008년 촛불투쟁의 시행착오를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비장감과 엄숙함 때문이었다. 경험과 기억은 의식 형성의 첫 단계이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경험과 기억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금의 20대 청년 누군가가 30년 전의 나였듯이 현재의 나는 30년 후 20대 누군가의 모습일 것이다. '헬조선'을 만든 기성세대의 일원으로서 30년 전의 실수를 만회하여 청년 세대에게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전 6번의 촛불집회와 10일의 촛불집회는 그 성격이 다르다. 이전 6번의 촛불집회는 이른바 촛불로 호명되는 시민들에 의해서 주도되고 노동조합을 비롯한 운동 진영은 뒤에서 쫒아가거나 등에 업혀가는 형국이었다면, 9일부터의 촛불집회부터는 운동 진영이 선도에서 진보적 의제를 확장하고 주도하는 집회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또한 제도권 정당의 일부 지지들이 빠지면서 사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진성촛불'이 주체가 된 집회였다. 따라서 17일의 주최측 추산 65만 명에 이르는 참가자 숫자는 대단한 것이다.


그 동안 촛불집회에 대해 많은 걱정과 기우가 있었다. 매번 신기록을 경신하는 참여 인원, 자기검열에 빠진 평화시위, 보수야당의 무능함, 대중가수들의 콘서트장, 협소한 의제, 과도한 시민의식, 탄핵에 대한 압박 등으로 인해 죽 쒀서 개줄까 봐 걱정이란다. 모두 일리가 있는 걱정이다.

그래서 평화시위의 프레임을 넘어서는 직접 행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계급투쟁으로의 의제를 확장하고, 대중가수 뿐만 아니라 민중가요를 통해서 대중들을 선동하는 방식이 필요하단다. 이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고,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해방 이후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 70여 년 동안 구조화된 보수권력의 체제에서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엘리트들은 대중들을 정치적 동원의 대상으로만 인식해 왔고, 자본은 이윤 축적으로 도구로 착취해 왔으며, 학교는 이데올로기적으로 통제하는 핵심 기관이 되었으며, 보수언론은 권력 재창출을 위해 헌정질서 유지와 준법정신을 투철하게 강제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구조적 조건 속에서 대중들의 선택은 제한적이었다. 대중이 보수지배세력의 폭력적이고 유치한 종북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스스로 평화집회를 연출하면서 자기검열이 일상이 되었던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오히려 이러한 대중들의 일상을 방치한 야당이야말로 안이한 상황 인식의 공범인 것이다.

구체제의 청산은 이제 시작이다

야당 역시 예상했던 대로 박근혜 탄핵이 자신들의 전리품이나 되는 것처럼 황교안 총리를 인정한다거나 대통령 자리를 놓고 설전을 벌이는 등 꼴 사나운 행태를 연출하고 있다. 이제는 야당이 '촛불혁명'의 성과를 사유화하려고 한다. 이번 촛불혁명의 목표는 구체제의 청산이다. 야당들도 구체제임은 물론이다. 일신하지 않으면 촛불에 쓸려 내려간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국정 공백 없이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그것은 박근혜가 군림만 하고 통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박근혜와 무관한 것이다. 이 시간에도 수많은 비정규 노동자와 민중은 고통을 당하거나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소심하고 겁 막고 기회주의적이고 무능한 야당은 지금 당장 박근혜 정부의 모든 정책을 폐기하거나 일시 중단시키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우리가 걱정하는 '죽 쒀서 개 주는 것'은 단지 정권을 다시 여당이나 그 친위부대들에게 넘기는 것이 아니다. 야당이 정권을 획득하더라도 민중적 의제를 하나도 만들어 내지 못하면 그것이야말로 '죽 쒀서 개 주는 꼴'이다.


촛불은 이제 헌재 재판관들의 판결, 특검의 수사과정과 결과 등으로 제한되고 축소되려고 한다. 지금 광장의 촛불 에너지는 너무 넘쳐서 그 누구도 담을 수가 없다. 그 에너지가 기존의 권력시스템을 광장으로 끌어내렸다. 그런데 정치세력들은 광장으로 내려온 권력 시스템을 다시 제도정치 속으로 가두려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박근혜 즉각 퇴진과 구체제의 적폐를 완전히 청산함으로써 새로운 국가시스템 창출의 초석을 다지는 일이다. 사법권력이나 관료권력 그리고 자본권력 역시 광장으로 끌어내려야 한다.

광장에서의 대안 구성은 무궁무진하다. 따라서 지금은 효과적인 방법을 고민하는 게 더 필요한 거 같다. 투쟁의 형식, 조직화, 질김 모두가 중요하다. 지금 시점의 정치적 전선은 바로 이 지점이다. 구체제와의 투쟁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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