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은 한국 복지국가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 보였다. 동시에, 한국 사회 건강불평등의 현주소를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다. 한 가정이 빈곤과 질병, 부상, 그리고 자살로 이어지는 이 사건을 통해서, 빈곤이 개인의 건강할 수 있는 권리를 어떻게 박탈하는지, 또 개인의 질병이 그의 자유와 가능성을 어떻게 제한하는지를 슬프게 확인할 수 있었다. 실증적인 연구들을 통해서 우리는 건강이 개인의 교육 수준, 임금 수준, 노동 여건 등 사회적 여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건강불평등은 그 자체로 여러 가지 불평등 지표 가운데 하나이면서, 동시에 다른 여러 불평등 지표가 사회 성원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 건강불평등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건강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건강불평등의 원인이 되는 복잡다단한, 다차원적인 사회적인 불평등을 해소해야 하는 거대한 도전을 마주해야 한다. 국가와 지방 정부 수준에서는 건강을 중심에 두는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도 필요하다. 오로지 성장과 발전에만 쏠린 정책적인 편향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이와 같은 방향 전환은 필요하다. 응급조치 수준의 정책 개입이 필요한 현장도 있다. 응급의료 시스템의 미비로 해마다 9000여 명의 인명이 초과로 사망하는 한국 중증외상시스템, 그리고 해마다 1800여 명의 노동자들이 떨어지고, 끼어서 세상을 등지는 산업재해의 문제는 한국의 건강불평등의 적나라한 현주소를 보여준다. 이와 같이 명백한 재난상황에 대한 시급한, 제대로 된 정책 개입도 필요하다. (필자)
(원문 바로가기 ☞ : 지금도 침몰하는 세월호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서울 석촌동의 2층짜리 단독주택에 딸린 반지하집에서 박 아무개(61)씨와 큰 딸 김 아무개(36), 작은 딸(33)이 숨진 채 발견됐다. 세 모녀는 바깥으로 통하는 창문을 청테이프로 막고, 방문은 침대로 막아 놓았다. 간이 침대 밑에서 발견된 냄비 속에서는 타고 난 번개탄이 남아있었다. 가재도구는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서랍장 위에는 이들이 남긴 몇 마디 메모와 함께 70만원의 현금이 들어간 하얀 봉투도 놓여 있었다. 집주인에게 줄 공과금이었다. 박 씨의 남편은 12년 전 방광암으로 숨졌다.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이들은 2005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8만 원이었다. 큰 딸은 고혈압과 당뇨에 시달렸다. 그의 수첩에는 1년 전부터 당뇨 수치가 기록돼 있었다. 경찰은 "돈이 없어 병원도 못 가고 약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둘째 딸은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 불안한 일자리를 떠돌았다. 두 딸 모두 신용불량자여서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딸들은 만화가를 꿈꾸었던 것으로 보였다. 이들의 방에서는 90년대 인기를 끌었던 만화책과 습작노트로 가득 찬 박스가 발견됐다. 한 노트에서는 '카메라가 가까우면 감성적 구도, 멀면 이성적 구도'라고 적혀 있었다. 세 모녀의 비극은 박 씨가 1월 말께 넘어져 오른팔을 다치면서 비롯됐다. 주인이 떠나버린 방 벽엔 박 씨가 썼던 석고 붕대 팔걸이가 걸려 있었다. 팔에 깁스를 하고 식당일을 나갈 수는 없었다. 큰 방과 맞붙은 좁은 주방에는 먹다 남은 밥이 놓여 있었다. (<한겨레>, <경향> 기사에서 발췌)
지난 2014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송파 세 모녀' 사건 이야기다. 이미 많은 이들이 가슴 아프게 기억하고 있는 이 뉴스를 굳이 되새김질 하는 이유가 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우리사회의 건강불평등의 현주소를 새삼스럽게 아프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을 되새김질 하는 이유
여기서 주의할 대목은, 이들이 생물학적으로 필연적이고,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쳐 사망에 이르렀다거나, 이들 스스로의 책임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이들의 빈곤과 질병이 서로 뒤엉키면서 결국 사망에 이르는 과정에서 우리 공동체가 한 일은 없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가슴 아파했을 듯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건강불평등 개념을 상기할 수 있는데, 세계건강기구(WHO)는 건강불평등을 일컬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서 나타나는 건강의 차이 가운데서 불필요하고, 피할 수 있으며, 부당하고, 불공정한 부분이라고 지목했다.
이를테면, 노인과 젊은 세대 사이에 나타나는 건강의 차이를 두고 불공정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부자들이 빈자들보다 수명이 길거나, 건강한 삶을 누린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사회 정의의 차원에서 논의의 여지가 있다. 다시 말해, 세모녀의 남편이자 아버지인 김 씨가 왜 유독 먼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는 팔이 다치고, 젊은 첫 딸은 당뇨와 고혈압에 시달리는지, 그것이 단순히 드센 팔자 탓으로 돌릴지, 그 배경에 자리잡은 사회경제적인 원인이 있는지 따져 묻자는 얘기다. 세계건강기구의 조금은 딱딱한 설명을 빌리자면, "개인의 일상 속에 자리잡은 구조적인 요인과 조건들이 사람의 건강 수준을 결정하고, 이는 다시 나라와 나라 사이의, 혹은 한 나라의 국민들 사이의 건강 수준 차이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기 때문에 이 대목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실 사람들 사이에 건강 수준 차이가 있다는 점은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왜 그것이 중요한가, 왜 그것이 주목할 가치가 있냐는 점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인 아르마티아 센은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건강을 두 가지 측면에서 조망했는데, 건강은 그 자체로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조건이면서, 동시에 개인의 능력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설명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먼저 첫 번째 측면에 대해서는 센은 한 개인의 질병이 빈곤 등의 사회적인 원인 때문에 사전에 예방이 되지 않았거나 치료를 받지 못했다면, 그가 건강에 이르는 기회가 박탈됐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정의에 부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건강 그 자체에 가치를 두는 관점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건강은 개인의 능력에 핵심적인 요소이고, 그 능력으로 인해서 개인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된다. 다소 거칠게 말하자면, 건강은 그 자체로 삶의 목적이면서, 동시에 삶의 다른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도구도 된다. 따라서, 건강불평등으로 인해 공평한 건강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인구는 인생의 목적으로서의 건강을 누리지 못할 뿐더러, 앞으로 삶의 기회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마저도 박탈당하게 된다. 송파 세 모녀의 사례로 돌아오면, 이들은 빈곤 때문에 건강한 삶을 누릴 기회를 빼앗겼고, 빼앗긴 건강 때문에 만화가로서의 꿈도 접어버렸다. 건강이 가지는 이중성 때문에, 세 모녀는 빈곤과 건강의 악순환의 굴레에 빠져버린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 건강불평등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건강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건강불평등의 원인이 되는 복잡다단한, 다차원적인 사회적인 불평등을 해소해야 하는 거대한 도전을 마주해야 한다. 국가와 지방 정부 수준에서는 건강을 중심에 두는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도 필요하다. 오로지 성장과 발전에만 쏠린 정책적인 편향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이와 같은 방향 전환은 필요하다. 응급조치 수준의 정책 개입이 필요한 현장도 있다. 응급의료 시스템의 미비로 해마다 9000여 명의 인명이 초과로 사망하는 한국 중증외상시스템, 그리고 해마다 1800여 명의 노동자들이 떨어지고, 끼어서 세상을 등지는 산업재해의 문제는 한국의 건강불평등의 적나라한 현주소를 보여준다. 이와 같이 명백한 재난상황에 대한 시급한, 제대로 된 정책 개입도 필요하다. (필자)
(원문 바로가기 ☞ : 지금도 침몰하는 세월호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서울 석촌동의 2층짜리 단독주택에 딸린 반지하집에서 박 아무개(61)씨와 큰 딸 김 아무개(36), 작은 딸(33)이 숨진 채 발견됐다. 세 모녀는 바깥으로 통하는 창문을 청테이프로 막고, 방문은 침대로 막아 놓았다. 간이 침대 밑에서 발견된 냄비 속에서는 타고 난 번개탄이 남아있었다. 가재도구는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서랍장 위에는 이들이 남긴 몇 마디 메모와 함께 70만원의 현금이 들어간 하얀 봉투도 놓여 있었다. 집주인에게 줄 공과금이었다. 박 씨의 남편은 12년 전 방광암으로 숨졌다.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이들은 2005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8만 원이었다. 큰 딸은 고혈압과 당뇨에 시달렸다. 그의 수첩에는 1년 전부터 당뇨 수치가 기록돼 있었다. 경찰은 "돈이 없어 병원도 못 가고 약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둘째 딸은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 불안한 일자리를 떠돌았다. 두 딸 모두 신용불량자여서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딸들은 만화가를 꿈꾸었던 것으로 보였다. 이들의 방에서는 90년대 인기를 끌었던 만화책과 습작노트로 가득 찬 박스가 발견됐다. 한 노트에서는 '카메라가 가까우면 감성적 구도, 멀면 이성적 구도'라고 적혀 있었다. 세 모녀의 비극은 박 씨가 1월 말께 넘어져 오른팔을 다치면서 비롯됐다. 주인이 떠나버린 방 벽엔 박 씨가 썼던 석고 붕대 팔걸이가 걸려 있었다. 팔에 깁스를 하고 식당일을 나갈 수는 없었다. 큰 방과 맞붙은 좁은 주방에는 먹다 남은 밥이 놓여 있었다. (<한겨레>, <경향> 기사에서 발췌)
지난 2014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송파 세 모녀' 사건 이야기다. 이미 많은 이들이 가슴 아프게 기억하고 있는 이 뉴스를 굳이 되새김질 하는 이유가 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우리사회의 건강불평등의 현주소를 새삼스럽게 아프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을 되새김질 하는 이유
여기서 주의할 대목은, 이들이 생물학적으로 필연적이고,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쳐 사망에 이르렀다거나, 이들 스스로의 책임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이들의 빈곤과 질병이 서로 뒤엉키면서 결국 사망에 이르는 과정에서 우리 공동체가 한 일은 없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가슴 아파했을 듯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건강불평등 개념을 상기할 수 있는데, 세계건강기구(WHO)는 건강불평등을 일컬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서 나타나는 건강의 차이 가운데서 불필요하고, 피할 수 있으며, 부당하고, 불공정한 부분이라고 지목했다.
이를테면, 노인과 젊은 세대 사이에 나타나는 건강의 차이를 두고 불공정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부자들이 빈자들보다 수명이 길거나, 건강한 삶을 누린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사회 정의의 차원에서 논의의 여지가 있다. 다시 말해, 세모녀의 남편이자 아버지인 김 씨가 왜 유독 먼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는 팔이 다치고, 젊은 첫 딸은 당뇨와 고혈압에 시달리는지, 그것이 단순히 드센 팔자 탓으로 돌릴지, 그 배경에 자리잡은 사회경제적인 원인이 있는지 따져 묻자는 얘기다. 세계건강기구의 조금은 딱딱한 설명을 빌리자면, "개인의 일상 속에 자리잡은 구조적인 요인과 조건들이 사람의 건강 수준을 결정하고, 이는 다시 나라와 나라 사이의, 혹은 한 나라의 국민들 사이의 건강 수준 차이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기 때문에 이 대목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실 사람들 사이에 건강 수준 차이가 있다는 점은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왜 그것이 중요한가, 왜 그것이 주목할 가치가 있냐는 점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인 아르마티아 센은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건강을 두 가지 측면에서 조망했는데, 건강은 그 자체로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조건이면서, 동시에 개인의 능력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설명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먼저 첫 번째 측면에 대해서는 센은 한 개인의 질병이 빈곤 등의 사회적인 원인 때문에 사전에 예방이 되지 않았거나 치료를 받지 못했다면, 그가 건강에 이르는 기회가 박탈됐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정의에 부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건강 그 자체에 가치를 두는 관점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건강은 개인의 능력에 핵심적인 요소이고, 그 능력으로 인해서 개인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된다. 다소 거칠게 말하자면, 건강은 그 자체로 삶의 목적이면서, 동시에 삶의 다른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도구도 된다. 따라서, 건강불평등으로 인해 공평한 건강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인구는 인생의 목적으로서의 건강을 누리지 못할 뿐더러, 앞으로 삶의 기회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마저도 박탈당하게 된다. 송파 세 모녀의 사례로 돌아오면, 이들은 빈곤 때문에 건강한 삶을 누릴 기회를 빼앗겼고, 빼앗긴 건강 때문에 만화가로서의 꿈도 접어버렸다. 건강이 가지는 이중성 때문에, 세 모녀는 빈곤과 건강의 악순환의 굴레에 빠져버린 셈이다.
"몸이 소득이나 교육 불평등을 표현하는 것"
건강불평등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건강불평등이 분명히 다른 불평등의 측면들, 이를테면 소득 불평등, 젠더불평등, 교육불평등, 지역 간 불평등 등 다른 불평등과 함께 병렬적으로 나열될 수 있는 또 하나의 불평등 지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다른 불평등의 양상이 과연 해당 인구의 후생과 복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주는 하나의 시금석 역할도 한다. 김창엽 서울대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몸이 소득이나 교육 불평등을 표현하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교육이나 소득 등 다른 지표는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이라기보다는, 삶의 도구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이를테면, 소득 분배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 성과급을 차별적으로 주자는 목소리도 힘을 얻을 수 있다.
실제로 경제성장이라는 명목 아래 소득 불평등은 자주 정당화의 과정을 거쳤다. 그렇지만, 건강 불평등에 오면 이견의 여지는 줄어든다. 건강은 자체로서 내재적인 가치를 가진 까닭에 모든 이가 동등한 건강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점에서 이의를 달기가 어렵다. 따라서, 소득불평등이 심화할 때 건강불평등도 함께 악화한다면, 건강을 통해서 차별적인 소득불평등의 부당성을 역으로 입증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교육과 지역 등 다른 불평등의 양상에 대해서도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연구 결과는 소득과 직업, 교육 등 사실상 모든 불평등의 국면을 따라 건강 불평등이 벌어지는 양상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몇 가지 예만 보자.
먼저, 소득 격차에 따라, 예상 가능하듯이, 수명의 격차도 벌어졌다. 400만 명에 이르는 우리나라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 그리고 이들의 가족에 관한 연구를 보면, 소득 상위 25%에 드는 여성 인구의 기대수명은 하위 25%에 다는 여성보다 1.74년이 더 길고, 남성의 경우에는 6.22년이나 더 길었다. 한 가지 염두에 둘 대목은, 이 연구가 공무원이라는 비교적인 동질한 집단에 한정해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공무원들보다 더 부유한 재벌과 더 가난한 빈곤층을 더하면, 한국인 전체 인구 안에서 건강 격차는 더 커질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교육수준에 따라서도 건강 수준은 차별적으로 나타났다. 짐작 가능한대로, 배운 이들이 더 오래 살았다. 30대 초반을 기준으로 할 때, 초등학교 졸업 이하 학력의 여성과 대졸 여성의 기대여명은 4년 정도 차이가 났고, 남성들 집단에서는 그 차이가 10년 가까이 벌어졌다. 소득뿐 아니다, 노동여건도 건강에 영향을 주는 강력한 요인이다. 파트타임, 임시직, 일용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에 견줘, 우울증과 자살생각을 더 빈번하게 했다. 지면 관계상 모두 다루지는 못하지만, 건강은 지역, 젠더, 아동, 노인, 이주민, 성적 소수자 등,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대부분의 불평등과 차별의 국면에서 민감하게 반응한다. 다수의 통계와 연구들은 건강불평등의 현실을 웅변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짚어볼 문제는 있다. 교육과 임금, 정규직 여부 등이 결국 이름만 다를 뿐, 비슷한 원인이 아니냐는 질문이 가능하다. 즉, 교육 수준이 높은 이들이 더 좋은 직장, 더 높은 임금을 받고, 노동조건도 안정적일 수 있다. 대동소이한 지표들을 굳이 여러 개 사용할 필요가 있냐는 질문도 가능하다. 연구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연구들은 여러 요인이 건강에 미치는 각자의 영향을 보정하고 있다. 이를테면, 앞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에 대한 연구는, 이들의 학력이나 임금을 고려한다고 해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상태가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인다. 바꾸어 말하면, 교육, 임금, 노동 등 다양한 차별적인 요소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동시에 각자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차별받는 이들의 건강을 갉아먹고 있다. 통계와 수치는 건조하지만, 그 안에 개개인이 떠안은 무수한 상처와 아픔이 누적되어 있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송파 세 모녀의 질병과 사망도 그 큰 그림 속에서 함께 그려볼 수 있다.
'원인의 원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길
이런 건강불평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아니 어떻게 완화라도 할까. 앞서 짤막하게 살펴봤듯이, 건강불평등에 이르는 원인을 고려하면 건강불평등의 문제가 단순히 보건이나 의료 문제에 한정되지 않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원인은 더 근본적이고, 더 거대하다. 건강불평등 해소의 문제는 '원인의 원인(causes of causes)'인 사회경제적인 구조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지난 2008년 세계보건기구가 건강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제안한 세 가지 원칙이 조금은 원론적으로 보이는 이유도 그러하다.
첫째, 개인이 출생, 성장, 거주, 노동 및 노화를 거치는 일상의 조건을 개선할 것
둘째, 권력과 돈, 자원의 불공평한 분배를 해결할 것. 이러한 불공평한 결과를 일상적으로 추동하는 구조적인 원인을 해결할 것. 이러한 접근은 지구적, 국가적, 지역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함.
셋째, 건강불평등의 문제를 측정하고, 이에 따른 활동을 평가하고, 이에 따라 관련 지식을 넓혀갈 것.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관한 전문 인력을 키워내고, 이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사회적 인식수준을 높일 것.
세계보건기구가 그린 큰 밑그림 위에서 우리나라가 고려할, 조금 더 구체적인 정책과제도 그려볼 수 있다. 일례로 지난 2009년 신영전 한양대 교수 등은 우리나라 중앙 및 지방정부가 추진할 수 있는 정책과제를 열 가지 제시했는데, 그 가운데 첫 번째가 1) 국민건강정책의 패러다임 전환: '모든 정책에서 건강을' 그리고 '모든 정책에서 건강 형평성을'이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앞서간 요구처럼 보일 수 있겠다. 그렇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면, 앞서 짤막하게 일람했듯이, 건강이 가지는 내재적 가치와 도구적 가치, 그리고 건강지표가 다른 모든 불평등 지표에 대해서 반응하는 민감성 등을 고려할 때, 위와 같은 제안은 매우 인본적이고, 동시에 효율적이다. 뒤집어 생각해보자. 이와 같은 접근은 성장과 발전으로 편향됐던 우리 정책의 나침반을 조금은 돌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조금 길지만, 나머지 아홉 개 정책 과제도 아래와 같이 간단히 일람해보고, 그 가운데 상대적으로 응급한 사안 두 가지만 골라 마지막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2)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과 국가보건의료계획의 재구성,
세계보건기구가 그린 큰 밑그림 위에서 우리나라가 고려할, 조금 더 구체적인 정책과제도 그려볼 수 있다. 일례로 지난 2009년 신영전 한양대 교수 등은 우리나라 중앙 및 지방정부가 추진할 수 있는 정책과제를 열 가지 제시했는데, 그 가운데 첫 번째가 1) 국민건강정책의 패러다임 전환: '모든 정책에서 건강을' 그리고 '모든 정책에서 건강 형평성을'이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앞서간 요구처럼 보일 수 있겠다. 그렇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면, 앞서 짤막하게 일람했듯이, 건강이 가지는 내재적 가치와 도구적 가치, 그리고 건강지표가 다른 모든 불평등 지표에 대해서 반응하는 민감성 등을 고려할 때, 위와 같은 제안은 매우 인본적이고, 동시에 효율적이다. 뒤집어 생각해보자. 이와 같은 접근은 성장과 발전으로 편향됐던 우리 정책의 나침반을 조금은 돌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조금 길지만, 나머지 아홉 개 정책 과제도 아래와 같이 간단히 일람해보고, 그 가운데 상대적으로 응급한 사안 두 가지만 골라 마지막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2)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과 국가보건의료계획의 재구성,
3) 가칭 '건강집중지역사업'의 시행,
4) 지역 및 국가 단위 건강증진사업의 기획, 평가체제의 전환,
5) 건강 불평등 완화를 위한 별도의 정책, 사업 예산 마련
6) 건강영향평가제도의 도입,
7) 지속적 건강형평 모니터링체계의 구축,
8) 기존 의료안전망의 강화,
9) 건강형평사업의 효과를 확인하는 연구의 지원과 교육 훈련,
10) 취약노동자들을 위한 안전망 마련.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다만, 상대적으로 응급한 현안을 있을 터다. 위의 리스트 가운데 여덟 번째 '기존 의료안전망의 강화' 부분만 봐도, 현안은 무수하다. 송파 세모녀 역시 성긴 의료안전망을 지나 바닥에까지 떨어졌다. 이렇게 듬성듬성한 의료안전망 가운데서도 가장 구멍이 큰 곳은 중증외상센터분야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 추산에 의하면, 지난 2007년 기준으로 중증외상으로 사망한 환자 2만8천여 명 가운데 응급의료시스템만 제대로 갖춰졌어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수가 무려 9천 건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1만에 가까운 얼굴들이 시스템의 하자로 인해서 사라졌다는 말이다. 명백한 재난상황이다. 그러나 제도 개선은 지지부진하다. 계층별 건강불평등을 낳는 요인 가운데 중증외상은 주요한 변수로 예외 없이 꼽힌다. 지난 9월에도 전주에서 대형 견인차에 치여 다친 두 살박이 어린 아이가 무려 14곳의 병원을 떠돌다가 사망했다. 중증외상센터의 정착은 재난 대책 수준의 시급성을 요구하는 문제다.
해마다 수천 명씩 사망하는 재난의 현장
멀쩡한 목숨이 집단으로 세상을 떠나는 재난의 현장은 또 있다. 고용노동부의 통계를 보면, 지난 2015년에만 산업재해로 다치거나 사망한 이는 9만 명이 넘었다. 세상을 떠난 이들도 무려 1810명이었다. 세월호는 팽목항 앞바다에서만 침몰하는 것이 아니다. 위의 리스트에서 가장 마지막에 힘주어 강조된 것도 '취약노동자들을 위한 안전망의 마련'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산업재해에 따른 사망 원인은 처참하다. 떨어짐(339명), 끼임(121명), 교통사고(97명), 부딪힘(96명), 깔림 및 뒤집힘(69명) 등이었다. 산업재해 사망자의 다수는 물론 생산직 노동자들이다. 산업재해 역시 건강불평등의 처참한 현장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은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OECD 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이렇게 거대한 재난이, 한국에서 유독 큰 규모로, 해마다 반복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를 꼽자면, 산업재해에 대한 '솜방망이식' 기업 처벌이다. 산업재해로 기업이 법적인 처벌을 받는 경우가 별로 없고, 기소가 되더라도 벌금액수는 많아야 2000만 원 정도다. 일례로, 4명이 사망한 이마트 냉장 설비 질식 사고에서 원청 업체가 낸 벌금은 100만 원이었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싼 값 내고 안전 설비를 갖출 필요가 없다. 헐거운 규제와 돈의 논리가 횡행한 곳에서 노동자들은 떨어지고, 끼이고, 부딪히고, 깔리고 있다. 이호중 서강대 교수가 산업재해를 '구조적 살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결코 과장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가 방조하고, 기업이 자행하는 타살의 규모를 보면, 차라리 학살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듯 하다. 기업과 관계 당국의 책임을 엄하게 묻는 '시민 노동자 재해에 대한 기업 정부 책임자 처벌법'이 하루 속히 시행돼야 한다.
무수한 문제 가운데서 산업재해와 중증외상센터를 굳이 골라서 논의한 이유는, 두 문제가 지금 이 순간에도 쉼 없이 산 목숨들이 침몰하는 대규모 재해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응급조치는 시급하다. 물론 이 문제들을 푼다고 해서 건강불평등의 거대한 실타래를 풀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건강불평등의 문제는 세계보건기구도 제시한 바 같이, 장기적으로는 부와 권력의 형평한 분배의 문제이며, 또 모든 이들을 위한 삶의 조건을 개선해야 하는 문제다. 또 국내에서 제안됐듯이, 국가 정책 프레임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다면, 송파 세모녀의 죽음은, 피해자를 달리하며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다만, 상대적으로 응급한 현안을 있을 터다. 위의 리스트 가운데 여덟 번째 '기존 의료안전망의 강화' 부분만 봐도, 현안은 무수하다. 송파 세모녀 역시 성긴 의료안전망을 지나 바닥에까지 떨어졌다. 이렇게 듬성듬성한 의료안전망 가운데서도 가장 구멍이 큰 곳은 중증외상센터분야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 추산에 의하면, 지난 2007년 기준으로 중증외상으로 사망한 환자 2만8천여 명 가운데 응급의료시스템만 제대로 갖춰졌어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수가 무려 9천 건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1만에 가까운 얼굴들이 시스템의 하자로 인해서 사라졌다는 말이다. 명백한 재난상황이다. 그러나 제도 개선은 지지부진하다. 계층별 건강불평등을 낳는 요인 가운데 중증외상은 주요한 변수로 예외 없이 꼽힌다. 지난 9월에도 전주에서 대형 견인차에 치여 다친 두 살박이 어린 아이가 무려 14곳의 병원을 떠돌다가 사망했다. 중증외상센터의 정착은 재난 대책 수준의 시급성을 요구하는 문제다.
해마다 수천 명씩 사망하는 재난의 현장
멀쩡한 목숨이 집단으로 세상을 떠나는 재난의 현장은 또 있다. 고용노동부의 통계를 보면, 지난 2015년에만 산업재해로 다치거나 사망한 이는 9만 명이 넘었다. 세상을 떠난 이들도 무려 1810명이었다. 세월호는 팽목항 앞바다에서만 침몰하는 것이 아니다. 위의 리스트에서 가장 마지막에 힘주어 강조된 것도 '취약노동자들을 위한 안전망의 마련'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산업재해에 따른 사망 원인은 처참하다. 떨어짐(339명), 끼임(121명), 교통사고(97명), 부딪힘(96명), 깔림 및 뒤집힘(69명) 등이었다. 산업재해 사망자의 다수는 물론 생산직 노동자들이다. 산업재해 역시 건강불평등의 처참한 현장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은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OECD 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이렇게 거대한 재난이, 한국에서 유독 큰 규모로, 해마다 반복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를 꼽자면, 산업재해에 대한 '솜방망이식' 기업 처벌이다. 산업재해로 기업이 법적인 처벌을 받는 경우가 별로 없고, 기소가 되더라도 벌금액수는 많아야 2000만 원 정도다. 일례로, 4명이 사망한 이마트 냉장 설비 질식 사고에서 원청 업체가 낸 벌금은 100만 원이었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싼 값 내고 안전 설비를 갖출 필요가 없다. 헐거운 규제와 돈의 논리가 횡행한 곳에서 노동자들은 떨어지고, 끼이고, 부딪히고, 깔리고 있다. 이호중 서강대 교수가 산업재해를 '구조적 살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결코 과장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가 방조하고, 기업이 자행하는 타살의 규모를 보면, 차라리 학살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듯 하다. 기업과 관계 당국의 책임을 엄하게 묻는 '시민 노동자 재해에 대한 기업 정부 책임자 처벌법'이 하루 속히 시행돼야 한다.
무수한 문제 가운데서 산업재해와 중증외상센터를 굳이 골라서 논의한 이유는, 두 문제가 지금 이 순간에도 쉼 없이 산 목숨들이 침몰하는 대규모 재해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응급조치는 시급하다. 물론 이 문제들을 푼다고 해서 건강불평등의 거대한 실타래를 풀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건강불평등의 문제는 세계보건기구도 제시한 바 같이, 장기적으로는 부와 권력의 형평한 분배의 문제이며, 또 모든 이들을 위한 삶의 조건을 개선해야 하는 문제다. 또 국내에서 제안됐듯이, 국가 정책 프레임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다면, 송파 세모녀의 죽음은, 피해자를 달리하며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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