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청산이냐 분당이냐…폭풍 앞 "공범" 새누리

與 찬성 62표 수준인 듯…친박, 고사 위기 속 버티기 나설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9일 국회에서 압도적인 찬성 비율로 가결되며, 그간 '청와대 여의도 출장소' 역할을 하는 데 머물러 왔던 새누리당에 거센 지각 변동이 일어나게 됐다.

비주류 쪽으로 당권이 서서히 옮겨가거나, 비주류를 중심으로 분당이 이루어지는 둘 중 하나의 수순을 밟게 될 거란 관측이 우세하다.

다만 친박계 일부가 박 대통령 탄핵에도 순순히 '폐족'의 길을 밟지 않고 끝까지 청와대의 '헌재 투쟁' 측면 지원에 나설 것으로도 보여 한동안은 양측 간 싸움이 격렬하게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국회는 박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표결에 부쳤으며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로 소추안은 압도적인 찬성 비율(78%)로 가결됐다.

새누리당 비주류가 이날 오전 마지막 표 계산을 위해 소집한 비상시국회의에서는 예상 찬성표가 33표 수준으로 집계됐으나, 실제 표결에서는 찬성 62표가량이 던져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그리고 야권 성향의 무소속 의원들이 전부 탄핵 찬성표를 던졌을 때를 가정했을 때다.

이는 새누리당 안에서 중간 지대에 머물러 있던 이른바 '샤이(shy) 탄핵표'가 30표 규모였음을 뜻한다.

청와대와 친박계의 '탄핵 반대' 압력과 촛불 집회와 당내 비주류의 '탄핵 찬성' 압박 속에서 갈팡질팡해오던 의원들 중 내심 찬성 쪽으로 기울었던 이들이 예상보다는 큰 규모였던 셈이다.

통상 새누리당 내 친박계 의원은 초·재선을 중심으로 70~80명, 비박계 의원들은 중진을 중심으로 30~40 수준으로 고려되어 왔다.

새누리당 발(發) 찬성표가 이처럼 비상시국회의의 예상치를 훨씬 웃돌아 나타남으로써 현재 당권을 장악하고 있는 친박계는 고사 단계에 접어들게 됐다.

당의 주도권은 급속도로 비주류에 기울면서 곧장 당 지도부 일괄 사퇴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논의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탄핵 표결을 계기로 당내 구도가 기존의 '친박 대 비박' 구도에서 '탄핵 찬성파 대 반대파' 구도로 새롭게 형성될 것으로 보이는 터라, 친박계가 이전처럼 초·재선 의원들을 앞세워 세 과시를 하기도 어렵게 됐다.

당의 중심추가 비주류 쪽으로 빠르고 명확하게 기울면, 새누리당 비주류는 분당이 아닌 '당내 투쟁'에 우선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비주류 중진인 정병국 의원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한 인터뷰에서 "탄핵 소추안이 통과되면 벌써 사퇴했어야 하는 지도부는 즉각 사퇴해야 하고 새누리당은 청산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새누리당이 보수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건전한 보수 세력에게 그 자리를 넘겨줘야 한다"고 말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또한 "인적 청산을 꼭 해야 한다"며 "저는 청산 대상인 사람들하고 손을 잡을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당 쇄신 및 새 지도부 구성 논의 과정에서 그간 박근혜 대통령 비호와 탄핵 투표 무산 시도에 공을 들여왔던 친박계와 어떤 정치적 합의를 할 생각이 없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주류 김무성 전 대표의 경우 이번 탄핵 소추안 투표 전까지 몇 차례의 실기를 하며 당내 비주류로부터도 반발을 사는 등 리더십에 손상을 입은 상태다.

특히 지난달 13일 새누리당에서 가장 앞장서 박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고도 박 대통령 3차 담화 이후 급속도로 탄핵 대열에서 발을 빼는 듯한 모습을 보여 당내 탄핵파와 반(反)탄핵파 양쪽으로부터 모두 빈축을 사고 말았다.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한 김 전 대표가 향후 정계 개편을 통해 '킹메이커' 역할을 자임할 것이라는 관측도 분분하나, 분권형 개헌이 친박계의 물밑 지원을 받아 온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의 대권 행보를 위한 포석이란 인식이 대중에도 광범위하게 퍼진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습책의 하나로서 정치권 일각이 제시한 분권형 개헌이, 오히려 이번 사태를 거치며 박 대통령 공범으로 지목된 여권의 '장기 생존 전략'이라는 인식으로 연결되며 그 설득력을 잃어버린 형국이다.

한편, 이번 국면에서 특별한 실기 없이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추진 압력을 조금씩 높여 온 유승민 전 원내대표에게는 향후 진행될 새누리당 지도부 교체와 인적 청산 과정에서 적지 않은 역할이 부여될 전망이다.

▲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연합뉴스
그러나 친박계가 순순히 당권을 비주류에 내줄지는 미지수다.

친박계 핵심 최경환 의원은 이날 오전에도 "박 대통령은 지난 20년 동안 단돈 1원도 자신을 위해 챙긴 적이 없는 지도자"라며 "탄핵은 인간적으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 탄핵 찬성 여론이 81%(갤럽, 지난 6~8일 조사. 성인남녀 1012명. 표본오차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에 이르고 있었음에도 이처럼 '민심'이 아닌 '박심'을 선택하는 용기(?)가 가결 후라고 달라질 것은 없어 보인다.

이정현 대표가 오는 21일 사퇴하겠다는 약속을 깨고, 헌법재판소에서 "담담히 갈 각오"라고 밝힌 박 대통령의 측면 지원에 매달린다면 친박-비박 간 격한 내홍이 당분간 지속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양측의 싸움이 격화될수록 자연히 분당 압력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표결에서 확인된 새누리당 탄핵파가 62명이 고스란히 집단 탈당을 감행할 경우 국민의당보다 규모가 큰 '기호 3번'의 새 교섭 단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후 제3 지대와 여권 일부가 결합하는 방식의 정계 개편이 촉발된다면, 그 개편 과정을 주도할 수 있을 만큼의 세가 있다는 자신감도 비주류 일각에서 엿보인다.

앞서 비상시국회의의 대변인 격인 황영철 의원은 1월 귀국 예정인 반 유엔 사무총장을 향해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서 여러 보수 세력을 끌어안고 가는 방안도 있을 수 있겠다"고 말한 바 있다.

반 사무총장이 물밑 지원과 구애를 해오던 친박계를 버리고 비박계와 제3 지대 일부를 광범위하게 아우를만한 신당을 창당한다면, 새누리당 비주류 일각은 굳이 당내에서 친박계와 혈투를 벌일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내릴 만 하다.

그러나 박 대통령 탄핵 소추안은 가결시키고도 친박과 비박을 불문, 새누리당이 또다시 여론의 반발을 살 가능성도 여전하다.

촛불 집회는 여전히 박 대통령 '즉시 퇴진'을 구호로 내걸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등 야권도 향후 정권 퇴진 운동을 계속할 방침이다.

이는 박 대통령에게는 '즉시 퇴진'을, 국회에는 입법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로서 '탄핵'을 요구하는 것임에도 새누리당 안에서는 두 요구가 동시 존재하는 이유 자체를 납득하지 못 하는 경우가 파다하다.

새누리당이 향후 주류이건 비주류이건 '탄핵했으니 헌재 판단을 일단 기다리자'며 대중의 즉시 퇴진 요구를 외면하거나 더 나아가 묵살하려 할 경우, 이는 다시금 여론의 반발을 부추길 것이 뻔하다.

무엇보다 범국민적인 탄핵 여론 속에서도 새누리당이 이런 민심을 수용한 정도가 결국은 129명 중 62명, 즉 50%가 채 되지 않은 점도 오랜 기간 여론의 지탄을 받으며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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