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언제, 어떻게 퇴진하는 게 바람직할까? 이와 관련해 정치권 일부 원로들과 새누리당 친박 중진 의원들은 '명예 퇴진', 혹은 '질서 있는 퇴진'을 이야기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29일 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 국회에서 자신의 거취 문제를 합의해달라며 즉각 퇴진이나 탄핵을 사실상 거부하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질서 있는 퇴진, 국회의 합의로 이뤄지는 퇴진은 대안이 될 수도, 돼서도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명예 퇴진'이나 '질서 있는 퇴진' 주장은 그 사이에 내치는 책임 총리가 맡고 외치는 대통령이 맡는다는 '역할 분담론'을 전제로 깔고 있거나 이렇게 흘러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내년(2017년) 4월까지 한반도 정세를 전망해보면, 사고는 '외치' 분야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지뢰밭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우선 11월 30일로 예정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가 있다. 이번 결의는 "역사상 가장 강력하다"는 2270호보다 훨씬 강경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의 대응이 주목된다. 안보리 결의를 강력히 비난하는 성명 정도로 끝난다면 다행이겠지만, 북한이 강경한 맞대응을 선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보리 결의를 빌미로 삼아 추가 핵 실험이나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할 수도 있고, 정전 협정 무효화를 선언하면서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킬 수도 있다. 만약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면, 박근혜는 안보 위기 대응을 앞세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할 것이다.
안보리 결의 정국을 무사히 넘기더라도 복병은 또 있다. 내년(2017년) 1월 20일로 예정된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2월 하순에 열리는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이 바로 그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정책과 관련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북한이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전후해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이 악재가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임기 초반에 강력한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한미 군사 훈련의 강도를 현 상태로 유지하거나 더 높일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의 외교안보팀이 군사력을 숭배하는 '초강경파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도 불안한 요인이다. 이에 더해 박근혜 정부는 한미 군사 훈련의 판을 최대한 키워 안보 문제를 악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군사 훈련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북한의 반발의 크기도 높아지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유에 의해서든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면 박근혜는 이를 국면 전환용으로 삼으려고 할 것이다. 안보 위기 고조는 한미 동맹 강화론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곧 조속한 사드 배치 재확인 및 한미 정상 회담 추진으로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다.
역대 독재 정권은 한미 정상 회담을 정통성을 인정받는 '정치 의례'로 삼아온 경향이 강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박근혜가 한미 정상 회담을 성사시키면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은 더욱 고조될 위험이 크다. 심지어는 박근혜가 안보 위기와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앞세워 잔여 임기를 채우려는 욕망에 사로잡힐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사상 초유의 한국 내부의 대혼란은 다행스럽게도 한반도 정세의 상대적인 안정과 조우해왔다. 하지만 향후 한반도 정세는 예측불허 그 자체이다. '거대한 럭비공'인 트럼프 행정부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고, 정중동(靜中動) 상태에서 뭔가를 모색하고 있는 김정은 정권이 어떤 선택을 할지도 예단키 어렵다. 더구나 지난 20여 년 동안 한반도를 들었다 놨다 해왔던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와 한미합동군사 훈련도 다가오고 있다.
이와 같은 대외적인 불확실성이 대내적인 혼란과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 대한민국이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게 된다. 하여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할 수 있는 '가능한 최선'은 즉각적인 탄핵 절차에 돌입해 박근혜의 직무를 하루빨리 정지시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시민과 국회, 그리고 대통령 직무대행 총리가 협치의 정신을 발휘해 '전환의 계곡'을 슬기롭게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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