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약 60만 명의 학생들이 대학 입학을 위한 수학능력시험에 응시했다. 시험이 끝나면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탈락한다. 수능이 끝나면 모든 경쟁이 끝날까? 수능을 겪은 많은 윗세대는 말한다. 수능은 경쟁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끝없는 경쟁의 시작일 뿐이라고.
이 씁쓸한 현실을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체념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체념하지 말자고, 끝없는 경쟁 사회를 바꿔보자고 외친다.
'대학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활동가들이 바로 그런 이들이다. 매년 수능날마다 수능 거부 선언을 해왔던 이들이, 올해 수능날인 17일에는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공원에서 '형식적 수능 진행 방해-아무말 대잔치'를 열었다.
이들은 합법적 의사진행방해 필리버스터에 착안해 이 행사를 기획했으나, 실질적으로 시험을 방해할 순 없으므로 형식적으로나마 방해하겠다는 의미에서 행사명에 '형식적 수능 진행 방해'라고 넣었다고 했다.
지난해 수능 거부 선언에 참여한 양지혜 씨는 "지난해 대학 거부 기자회견에 참여한 뒤 가장 친한 친구가 수능 시험이 끝나는 걸 기다리다가 치킨을 먹었는데 먹다 체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는 "그 친구에게 '네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우리 모두가 이 구조의 피해자라고 말해야 하는 게 안타까웠다"며 "탈락의 범주가 점점 넓어지고 있는데, 모두가 탈락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의 부정 입학이 화제인데,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불공정한 일이 있느냐고 한다"며 "그런데 언제부터 입시 경쟁이 공정했나. 노력을 해도 패배자는 있었다. 정유라의 부정 입학 이전에 입시 경쟁 자체가 잘못됐다"고 했다.
지난 2011년 20대 대학 거부 선언을 했던 '난다' 씨는 "학교 다닐 때 그만둔다고 했더니 담임 선생님이 '그러면 나중에 길에서 배추장사한다'며 말리셨다"며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들으면서 교육 받아왔다"고 했다.
또, "아버지가 건설업체 하청노동자로 일하시는데, 저에게 '나는 가방끈이 짧아서 이렇다'고 하신다. 너무 슬프다"며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못나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자책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입시‧대학 거부 운동에 대해 "'이대로 괜찮은가'를 묻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입시 경쟁 사회에 대한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학에 다니고 있는 '쥬리' 씨는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들어갔는데 운 좋게 다른 학생들만큼 노력하지 않고도 합격했다"며 "그런데 합격할 때는 기뻤지만 괴로웠다. 제가 시험을 보던 해에도 자살한 학생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입에서의 승리가 어떤 사람에게는 죽음이 되는 이 구조가 왜 유지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동생이 오늘 시험을 보는데, 어제 페이스북에 보니, '수능 시험을 보다가 지진이 나도 감독관 지시를 받으라'는 글이 있었다. 그걸 보고 든 생각은 우리가 세월호 사건으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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