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왜 찍을까요. 잊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처는 잊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진은 대면하지 않으면 찍을 수 없습니다. 이분들은 용기를 내서 숨기고 싶거나 외면하고 싶은 감정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원래 자기 자신의 순수한 것들을 세상에 꺼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사진이 아니라 이야기입니다."(임종진 사진작가)
사각틀 안에 갇힌 사진이 말을 거는 듯했다. 나는 이런 삶을 살아왔다고, 혹은 이것이 원래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이라고. "이것은 사진이 아니라 이야기"라는 임종진 작가의 말은 그래서 수긍이 갔다.
16일, 조작 간첩 사건 피해자 7명이 사진전을 열었다. 1974년 울릉도 간첩단 사건, 1979년 삼척 고정간첩단 사건, 1980년 보성간첩단 사건, 1982~1986년까지의 재일교포 간첩 사건에 연루돼 직접 고문을 받았거나, 사랑하는 가족이 국가 공권력에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본 이들이다.
이들이 카메라를 든 것은 지난 봄부터였다. 비영리민간단체 '지금 여기에'와 사진기자 출신 임종진 사진작가가 든든한 옆지기가 되어 피해자들의 자기 치유를 도왔다.
과거 재일교포 간첩 사건에 연루된 강광보 씨는 이 작업을 위해 40여 년 만에 필름카메라를 다시 꺼냈다. 세상을 즐기기 위해 찍은 사진들은 간첩 활동의 증거물이 되었다. 그 후론 한 번도 카메라를 만져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워낙 낡고 오래돼 몇 번이나 고쳐야 했던 그 카메라로, 그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대면했다. 옛 남산 중앙정보부 건물 내부의 계단을 찍고, 서대문형무소 감방 바닥에 날카롭게 새겨진 글귀를 포착했다. 어렸을 적 뛰어놀던 제주도 집 앞 마당을 찍기도 하고, 제주 화북면 앞바다의 노을 지는 풍경을 담아내기도 했다.
이옥분 씨는 삼척 고정 간첩단 사건 피해자 중 한 명인 진형대 씨의 아내다. 지난 9월 37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고 서대문형무소를 찾은 남편의 모습을 기록했다. 이곳에서 형장의 이슬이 된 아버지를 생각하며 벽을 매만지는 남편의 억센 손을, '무죄'라는 글귀 앞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찍었다.
해변가에 놓인 부서진 의자도 찍었다.
"파도에 의해 부서진 의자처럼 우리 식구는 국가 권력에 의해 망가졌지만, 파도가 지나가니 의자는 제 모습을 드러냈잖아요. 마치 진실이 드러나는 것처럼요."
이들은 사진 작업을 통해 마음이 한결 개운하고 편해졌다고 했다. 치유를 기념하며, 사진전 첫날인 이날 함께 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껐다.
사진전을 기획한 '지금 여기에'의 변상철 사무국장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간첩 조작 사건과 다른 여러 국가 폭력 사건들이 있다. 이를 수면 위에 이끌어내는 게 우리의 과제"라면서도 "사실 이분들에 대한 치유는 일부 단체나 개인이 할 게 아니라 국가가 해야 하는 것"이라며 국가 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강조했다.
전시기간 : 2016년 11월 16일(수) ~ 29일(화), (일 휴무)
관람시간 : 낮 12시 ~ 저녁 10시
전시장소 : 벙커1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20. 충정로역 9번 출구 앞)
주최 : 서울특별시
주관 : 지금여기에, 사진치유공감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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