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에서 깨어나자!

[오민규의 인사이드] 박근혜, 최순실의 뒤에는 재벌과 자본이 있다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의 마니아라면, 아마 검은 선글라스의 스미스 요원과 저항군 내부 반역자인 사이퍼가 어느 고급 레스토랑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사이퍼는 시종일관 잘 익은 스테이크 조각을 포크에 꽂은 채 이를 쳐다보며 얘기를 한다.

사이퍼 : 난 이 스테이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알고 있어. 내가 이 스테이크를 입에 넣으면, 매트릭스가 이 스테이크는 부드럽고 맛이 있다고 내 뇌에다 신호를 준다는 걸 말이야. 그동안 내가 깨달은 게 뭔지 알아? 모르는 게 약이라는 거야.

스미스 : 그럼 거래가 된 거지?

사이퍼 : 난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 아무것도. 알겠어? 그리고 부자가 되고 싶어. 중요한 사람, 배우처럼 말이야.

스미스 : 무엇이든 네가 원하는 대로.

사이퍼 : 좋아, 내 몸을 갖고 발전소로 갈 테니 나를 매트릭스에 접속시켜줘. 당신이 원하는 정보를 주지.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가 폭로한 매트릭스


때는 서기 2199년 인간들은 자신이 창조한 인공지능(AI)과의 전쟁 끝에 핵을 사용한다. 거대한 핵 폭발이 만든 핵 구름은 태양 에너지를 차단하게 되고, 인공지능은 수명 연장을 위한 연료를 얻기 위해 인간의 생체에서 발생하는 전기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다. 인간들은 인공지능의 연료로 쓰기 위해 인공 배양되고, 인공지능은 인간의 뇌 속에 '매트릭스(MATRIX)'라는 프로그램을 심어 환상을 보여주며 인간들을 지배한다.

이게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의 설정인데, 놀라울 정도로 한국 사회가 맞이하고 있는 정치적 격변 현실과 맞아떨어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비슷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어쩌면 <매트릭스> 시리즈는 미래를 빗대어 현실을 얘기한 것일지도 모른다.

격변의 시기였던 1987년 6월 항쟁 이후, 국민들은 이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선출하고 있다. 정부와 여야 주요 정당들은 국민을 향해 끊임없이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 여러분'이라고 세뇌를 시킨다. 그 주요 증거가 직선제를 비롯한 각종 민의를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며 말이다.

하지만 실제 정부의 주요 정책과 의사 결정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태가 바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아닌가. 국정 방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통령의 연설문은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최순실 일파에 의해 첨삭 지도를 받았다. 그들 일파는 국가의 고급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받으며 권력 유지와 치부에 활용했다.

어디 그뿐인가? 선출되지 않은 청와대 민정수석과 검찰은 정권의 유지를 위해 부정한 권력을 향한 수사를 중단시켜왔고, 선출되지 않은 교육부 관료와 대학 행정 관료들 역시 자신이 누릴 특혜를 노리며 권력 실세의 자녀 입학을 위해 각종 규제를 폐지해줬다.

이제 국민들은 지금까지 믿어온 헌법적 가치들, 이를테면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이 지켜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지금까지 자신들을 속이고 배신해온 정권의 핵심부를 향해 이제 해고 통보를 시작했다. 그동안 우리가 믿고 있었던 것들은 모조리, <매트릭스>가 보내온 거짓 신호였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 영화 <매트릭스>.

누가 매트릭스를 지배하는가

그렇다면, 그 매트릭스를 지배하는 자는 누구인가. 최순실? 최순득? 아니면, 그들과 친한 일부 세력들? 인구 5000만 명, 세계 20위권 안에 드는 경제 규모를 갖고 있는 한 나라의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일을 그저 최순실 일파가 다 해 처먹었단 말인가?

질문을 다른 각도에서 던져보자.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 아니 노무현과 김대중 정부 때에는 헌법이 제대로 작동하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서 최순실 일파에 의해서 망가진 것인가? 그 정부에는 비선 실세가 없었단 말인가? 당시에는 모두 선출된 권력들이 민의에 입각해 국정을 운영했던가?

사실 정권의 주인이 바뀌더라도 변함없이, 한결같이 이 매트릭스를 지배해온 세력은 따로 있다. 마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재벌과 자본, 바로 그들이야말로 해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이 사회를 지배해온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최근 몇몇 기고와 언론 보도를 통해 밝혀지고 있는 것처럼, 재벌들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입금하자마자 박근혜 대통령은 곧바로 그들이 원하는 것을 발표해주곤 했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일관성이 있다는 사실에 많은 국민들이 놀라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청와대와 각 부처에 인물들이 달라지기에 그에 따라 '비선 실세'라고 일컬어지는 세력과 인물들은 조금씩 달라진다. 하지만 이들 '비선 실세'가 달라질 때마다 이들과 인맥과 친분을 쌓으며 국정 운영을 쥐락펴락해온 것은 항상 재벌과 자본이었다.

따라서 재벌들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입금한 돈은, 비선 실세들이 자신의 권력을 남용해 뜯어낸 '삥'이 아니다. 비선 실세들이 재벌과 자본의 입맛에 맞게 정책을 펼쳐주고 있는 점에 대한 일종의 '수고비', 또는 앞으로도 자기들을 위해 잘 뛰어달라는 의미의 '격려금'에 해당한다.

재벌들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입금하자마자 박 대통령은 바로 다음날 똑같은 시정 연설 내지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다. 첫째, 비정규직 양산을 위한 노동 개악법안 처리, 둘째, 경제 활성화라는 미명 아래 재벌과 자본에게 무한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산업발전법 및 '원샷법'(기업활력제고 특별법) 처리.

지금 이 순간에도 매트릭스의 지배자는 그들이다

최순실과 안종범, 정호성 등이 구속되고 줄줄이 검찰에 불려 나가고 있는 지금, 즉 이른바 비선 실세가 힘을 쓰지 못하는 지금의 국정 운영은 공백 상태인가? 현재 검찰의 수사를 살펴보면, 매트릭스의 진짜 지배자들이 여전히 살아서 움직이고 있으며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검찰은 최순실·안종범 등을 구속하면서 '직권남용죄'를 적용했다. 다시 말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자금을 모으면서 자신의 권한을 남용해서 재벌들로부터 '삥'을 뜯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검찰은 매트릭스의 지배자인 재벌들을 '피의자'가 아니라 '피해자'로 둔갑시킨다. 재벌들은 불쌍하게도 무식한 박근혜-최순실 일파가 무서워서 검은 세금을 냈다는 것이다. 헐!

아울러 이 혐의를 적용하면서 박근혜에게 돌려야 할 칼끝을 무디게 만든다. 최순실·안종범 등 선출되지 않은 이들이 권한을 남용한 것일 뿐, 박근혜는 몰랐다고 하면 책임을 면하는 것이다. 게다가 더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다. 최순실은 공무원이 아니기에, '직권남용죄' 적용 여부가 실제 재판으로 이어질 경우 엄청난 법리 공방이 벌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민심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1심 재판에서야 중형이 선고될 수 있으나, 2심·3심으로 갈수록 법정 최저형으로 낙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검찰은 정권을 유지하는 세력으로, 아니 매트릭스의 지배자인 재벌과 자본의 입맛에 맞도록 일을 풀어가고 있는 것이다.

만일 논란에도 불구하고 최순실·안종범에게 '뇌물죄'를 적용한다면? 이 경우 재벌들은 뇌물을 갖다 바친 책임, 그것도 형사 책임을 져야 한다. 아울러 박근혜 대통령 역시 최순실·안종범과 함께 공범의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문제를 모두 비켜가도록 설계된 것이 바로 '직권남용죄' 적용인 셈이다.

매트릭스의 진짜 지배자에게 책임을!

검찰이 생각하는 것처럼 재벌과 기업들이 '피해자'라면, 그렇다면 왜 재벌그룹 회장단과 계열사 임직원들은 촛불 집회에 나오지 않는단 말인가. 대통령 하야라는 주장이 너무 과격해서? 그렇다면 하야는 몰라도 '기업들은 억울하다'며 그 흔한 성명서나 입장 발표 한 번쯤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홈페이지에 등록된 최근 성명·보도 자료 목록에서 그런 입장은 전혀 확인할 수가 없다.

▲ 경총 최근 성명·보도자료 목록들.

▲ 전경련 최근 성명·보도자료 목록들.

1980년 5.18 광주 민중 항쟁 당시, 전두환 세력의 쿠데타와 민주주의 말살, 민간인 학살에 대해 적지 않은 시민이 미국이 응징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학살을 위해 군대의 이동을 미국이 승인했다는 충격적 사실이 알려지며, '전두환 세력의 배후에는 미국이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 바 있다.

2016년 11월, 바로 지금 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매트릭스의 진짜 지배자가 누구인지 더 많은 진실이 공개되고 토론되어야 한다. 노동 개악 법안들, 특히 파견법을 비롯한 비정규법 개악안을 누가 사주했는지, 원샷법과 서비스산업발전법 등 재벌과 자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법안들의 주인은 누구인지!

<매트릭스> 시리즈의 1편 마지막 장면에서 매트릭스 체제의 본질을 알게 된 네오(키아누 리브스)는 전화부스 안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 매트릭스의 지배자인 기계(또는 요원)를 상대로 내가 왔으니 이제 세상은 바뀔 거라는 암시를 주는 장면, 그와 함께 'Wake Up!'이라는 노래가 나온다.


이 노래는 마치 자본주의 초기 '기계 파괴(러다이트) 운동'을 떠올리게 만드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RATM'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다) 그룹의 노래인데, 아마도 기계에 맞서는 네오의 심정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노래처럼, 2016년 11월 현재 우리는 이렇게 외쳐야 한다. 매트릭스의 진짜 지배자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 말이다.

깨어나자! 거짓된 매트릭스로부터! Wak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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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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