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통틀어 양자 역학만큼 괴상하고 이해하기 힘든 이론도 없다. 때로 비현실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다보니 비슷한 의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대체 어쩌다가 이따위 이론이 만들어진 걸까? 그래서일까. 양자 역학의 역사를 다루는 책은 많다. 내가 읽은 것만 10권 가까이 된다. 어떤 분야든 공부를 시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사를 살펴보는 거다. 사람을 처음 만나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를 아는 것보다 상대를 더 잘 아는 방법은 없다. 이런 점에서 양자 역학을 알려는 사람은 양자 역학의 역사부터 살펴봐야한다.
나에게 양자 역학 역사를 다룬 책 가운데 하나를 추천하라면 오늘 소개할 만지트 쿠마르의 <양자 혁명>(이덕환 옮김, 까치 펴냄)을 주저 없이 고른다. 이 책은 2008년에 나온 것이니 고전이라고 하기엔 좀 이르다. 하지만, 이 때문에 앞서 나온 여러 책들의 장점들을 두루 참고할 수 있었다고 할까. 쉽게 쓰여 술술 읽힐 뿐 아니라, 전문가 입장에서도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하다. 일부 양자 역학 역사책들이 입자 물리까지 다루는 과욕을 부리거나, 벨 정리 관련 부분을 자세히 다루다가 망하는 것을 보았다. 이 책은 이 같은 우를 범하지 않는다.
<양자 혁명>은 양자 역학의 역사를 크게 네 단원으로 나누고 있다. 양자 역학 탄생 전야, 양자 역학의 탄생, 해석 논쟁, 벨 정리다.
보통 사람은 파동, 입자 논쟁이 뭐가 대수냐할지도 모르겠다. 이게 얼마나 충격적인 것이냐 하면 아인슈타인이 빛의 입자설을 제안했을 때 물리학계는 완벽하게 무시한다. 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 모두 환호했던 걸 생각하면 의아할 정도다. 15년 가까이 빛의 입자설은 무시되지만 결국 아인슈타인은 (상대론이 아니라) 이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는다.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였던 것이다. '이중성'이라는 개념의 탄생이다.
양자 역학 탄생 전야의 진정한 주인공은 닐스 보어(1922년 노벨 물리학상)다. 보어는 원자 구조에 대한 정말 괴상한 이론을 내놓았다. 그의 이론은 어니스트 러더퍼드(1908년 노벨 화학상)가 수행한 아름다운 실험 결과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의 일상 경험이 아니라 정교한 실험 결과에 기반을 두고 이론을 만드는 이론 물리학의 유구한 전통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보어의 이론은 정상 상태와 양자 도약이라는 두 가지 핵심원리로 요약할 수 있다. 정상 상태라는 원리는 전자기학과 모순된다. 당시 전자기학은 승승장구하는 중이었다. 전자기학의 결과인 전자기파는 무선 통신이라는 혁명을 일으켰고, 거리의 가스등은 전등으로 교체되고 있었다. 파울 에렌페스트는 "이것(보어의 이론)이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이라면 나는 물리학을 포기해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문제는 보어의 이론이 당시 원자에 대해 알려진 많은 미스터리를 설명해준다는 사실이었다. 미래를 예언한다는 무당이 나타났는데 그가 하는 말이 다 이루어지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다들 미칠 지경이었을 거다. 이런 미친 상황을 끝내기위해서는 보어의 이론을 수학적으로 정식화하는 것이 필요했다. 바로 양자 역학의 탄생이다.
이 책에서는 양자 역학 탄생 직전, 스핀에 대한 소개에 한 장을 할애한다. 보통의 양자 역학 역사책에서 간과되는 부분이라 무척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스핀은 전자의 회전과 관련한 물리량이다. 물론 전자가 공간상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거랑은 다른 종류의 회전이기는 하다.
언제나 그렇듯 양자 역학은 이상하다. 랠프 크로니히가 처음 스핀의 아이디어를 냈지만, 볼프강 파울리(1945년 노벨 물리학상)의 비웃음 때문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철회한다. 크로니히가 노벨상을 놓치는 순간이다. 스핀에 얽힌 크로니히와 파울리의 스토리는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1925년 7월 29일 베르너 하이젠베르크(1932년 노벨 물리학상)는 양자 알을 낳는다. 갓 태어난 양자 역학에 사람들은 열광하기는커녕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그 이유는 하이젠베르크 논문의 초록을 보면 알 수 있다.
"오로지 원리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물리량들 사이의 관계만을 근거로 양자 역학의 기반을 정립하고자 한다."
하이젠베르크는 원자의 운동을 기술함에 있어 우리가 가진 모든 상식을 버릴 것을 요구했다. 전자의 궤도, 위치, 속도 등을 알려고 하지 말라는 거다. 그렇다면 대체 우리가 원자에게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1926년 1월 27일 에르빈 슈뢰딩거(1933년 노벨 물리학상)가 또 다른 양자 알을 낳자 문제는 복잡해진다. 이 둘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던 거다. 슈뢰딩거의 이론은 이중성에 기반을 둔다. 앞서 빛이 파동, 입자의 이중성을 갖는다고 말했다. 파동인줄 알았던 빛이 입자일 수 있다면, 입자인 줄 알고 있는 것들이 파동은 아닐까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루이 드브로이(1929년 노벨 물리학상)가 이 질문을 했고, 답은 그렇다는 거였다. 슈뢰딩거가 찾은 양자 역학은 바로 전자의 파동을 기술하는 미분방정식이었다. 슈뢰딩거의 양자 역학을 소개하는 장의 제목이 재미있다. "뒤늦게 폭발한 욕정." 왜 제목이 이런지는 슈뢰딩거가 천하의 바람둥이라는 힌트만 주고 지나가겠다.
다수의 물리학자는 슈뢰딩거의 양자 역학을 선호했다. 전자의 궤도를 포기하라는 하이젠베르크의 주장은 너무 급진적이었던 거다. 이 책의 10장은 하이젠베르크와 보어가 자신들의 이론을 두고 고민하는 내용이 생생히 묘사되어있다. 여기서 독자는 양자 역학의 표준 해석이라 일컬어지는 코펜하겐 해석의 정수를 자세히 알 수 있다. 철학과 사고실험이 버무려진 설명이 당시의 역사와 함께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해석 논쟁을 다룬 3단원은 사실 철학적인 내용이라 볼 수도 있다. 역사학자 요한 구스타프 드로이젠은 '이해'는 인문학의 방법이고, '설명'은 과학의 방법이라고 구분했다. 설명의 입장에서 양자 역학은 이미 충분한 이론이었다. 해석 논쟁은 바로 양자 역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이 책은 여기서도 아주 흥미로운 방식을 취한다. 1927년 10월 24일부터 28일까지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이 벨기에 브뤼셀에 모여 회의를 갖는다. 바로 양자 역학이 야기한 물리학의 위기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다. 이 회의를 주최한 기업가의 이름을 따서 솔베이 회의가 불린다. 이 책은 솔베이 회의의 일정을 날짜별로 따라가며 참석자들이 벌였던 논쟁을 추적한다.
논쟁의 핵심은 하이젠베르크가 주장한 불확정성 원리였으며, 이는 코펜하겐 해석의 핵심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공격했고 보어는 방어했다. 회의 기간 중 있었던 각종 일화까지 곁들인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 할 만하다. 결론은 코펜하겐 해석의 승리였다. 물론 아인슈타인은 솔베이의 패배에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그래서 해석 논쟁 2라운드가 벌어진다. 바로 EPR(Einstein-Podolsky-Rogen) 논문이다. 이 논문은 여기서 개요를 말하기도 쉽지 않을 만큼 미묘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암튼 한 마디로 하자면, 물리학에 있어 '실재'가 무엇인지 하는 의문을 제기한 거다. 양자 역학의 대상은 실재적이지 않다는 공격이다.
해석 논쟁 2라운드에 대한 답이 나오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대다수의 물리학자가 코펜하겐 해석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이런 논쟁은 물리가 아니라 철학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비운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의 스토리를 지나 존 스튜어트 벨의 종착역에 도착한다. 벨은 아인슈타인이 제기한 실재성에 대한 다소 철학적 질문을 물리적 질문으로 바꾼 사람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공격했다. 양자 역학이 기술하는 대상은 실재적이 못하니 양자 역학은 틀렸다. 이제 우리는 답을 안다. 세상은 실재적이지 않으며, 양자 역학이 옳다.
인간의 역사 속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있다. 나는 양자 역학의 역사만큼 재미있는 스토리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를 물리학자의 길로 내몬(?) 것도 바로 숨 막히게 재미있는 양자 역학의 역사였다. 양자 역학의 역사는 언제 읽어도 내 가슴을 뛰게 만든다. 혼자만 가슴 벅차하기엔 아까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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