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을 바꾸는 트랜스젠더입니다!"

[인터뷰] 한국 찾은 가미카와 아야 세타가야구의원

한국에 성적 소수자(LGBT)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아가씨>가 흥행한들, 홍석천 씨가 방송에서 활약한들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종교의 미명 아래 노골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성적 소수자를 증오하는 목소리가 아무렇지 않게 통용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교회에 사과까지 하며 성적 소수자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한 서울시민인권헌장 선포를 거부한 일이 불과 2년 전이다.

이웃 일본은 우리보다 한발 앞서나가는 사회인 듯하다.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미디어카페후에서 열린 일본 정치인 가미카와 아야의 자서전 <바꾸어나가는 용기>(우윤식 옮김, 한울 펴냄) 출판 기념회는 여전히 한국만큼 닫혀있는 사회면서도, 빠른 속도로 소수자를 향한 배려를 제도화하는 일본의 오늘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가미카와 아야는 도쿄도 세타가야구의 4선 여성 구의원(무소속)이다. 그는 1968년 태어났다. 13살 때 같은 반 남자 아이가 그의 첫사랑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대학교 졸업 후에는 도쿄의 한 공익법인에서 5년 3개월간 샐러리맨 생활을 했다. 이후 출판사에서 일하다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정치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그의 삶은 대략 평범했던 듯하다. 단 하나 남들과 조금 달랐던 점이 있다면, 호적상 그의 성별이 남성이었다는 점이다.

가미카와 의원은 일본 최초의 트랜스젠더 정치인이다. 2003년 구의원에 당선된 이듬해에 성별 적합 수술을 받았으며, 그는 이제 호적상 여성이다.

성적 소수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적 정체성을 확연히 깨달은 후, 그는 성적 소수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출판사에 다니는 4년간 호적상 남성이라는 점을 비밀로 했다. 출판사 사장은 그가 구의원에 당선된 후에나 트랜스젠더임을 알았다.

성적 소수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선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미카와 의원은 찾은 한 남성 동성애자는 "남자끼리 사니 관리비를 두 배로 받아야겠다"는 말을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야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동성 파트너가 입원하더라도 호적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파트너는 입원 동의서에 사인할 수도 없다며 도움을 청한 이의 사례도 소개했다.

(정치인 이전의) 가미카와 씨는 주민표상 성별을 바꾸기 위해 세타가야구청을 찾았다. 건강보험증의 성별 표기를 변경하기 위해 구 후생성을 방문했다. 연금수첩(정규직 계약을 위해 필요하다)상 성별을 바꾸기 위해 사회보험 사무소에도 들렀다. 모두 거절당했다. 그렇다면, 신체는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젠더 정체성은 여성인 자신은 어떤 존재인가. 일본에서는 자신과 같은 이가 공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존재임을 그는 절절히 깨달았다.

법원 역시 그가 실존하고 있음을 판결하지 않았다. 2001년 5월, 성별 적합 수술을 받은 6명이 호적상 성별 변경을 법원에 요구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국민의 전원 합의가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행정, 사법에 모두 퇴짜 맞은 그가 기댈 곳은 이제 입법부뿐이었다. 가미카와 씨는 2002년 말부터 트랜스젠더·성 동일성 장애(한국에서는 성 주체성 장애로 번역한다)인의 자조 및 지원 그룹인 TNJ에서 만난 동료들과 함께 국회를 찾아 성적 소수자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률 입법 활동과 로비를 이어갔다. HIV 보균자임을 커밍 아웃한 이에니시 사토루(민주당) 의원의 격려가 힘이 됐다. "당사자가 모습을 드러내 호소하고, 사회의 공감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가미카와 씨는 2003년 구의원 선거에 직접 나설 결심을 굳혔다.

▲ 22일 한국을 찾은 가미카와 아야 세타가야구의원. ⓒ한울

커밍 아웃할 용기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가미카와 아야입니다. 저는 호적상 남성입니다. 오늘 하루도 힘내세요."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빨간 정장을 입고 출근길 길거리 한가운데에서 커밍 아웃하는 게 그의 선거 운동이었다. 부끄러움에 눈물이 흘렀다. 사람들의 경멸 어린 시선이 두려웠다. "부모에게서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 "사회 탓하지 마라. 네가 이상하다." 대놓고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들었다. 출마 시 성별 표기란에 끝까지 '남성' 표기를 거부해 겨우 여성으로 출마했다. 그럼에도 그는 굴하지 않았다. 선거 사무소로 돌아와 눈물을 훔치고, 다시 출근길을 나서는 사람들에게 커밍 아웃했다.

점차 분위기가 바뀌었다. 연설을 경청하는 이가 늘어갔다. 따뜻한 먹을거리를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 들으라며 힘껏 박수치는 여성도 있었다. "응원한다"는 이웃의 말이 점차 들렸다.

2003년 4월 27일. 일본 주요 방송국과 신문사 카메라가 그에게 집중했다. 그가 당선되느냐 마느냐에 온 나라가 주목했다. 이튿날 새벽 1시. 가미카와 씨는 총 5024표를 받아 후보자 72명 중 6위로 구의원에 당선됐다. 재선에 나섰을 때는 현역 구의원 중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가미카와 구의원은 당선 후 호적상 성별 변경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특별법 제정을 위해 여야 국회의원 설득에 나섰다. 때맞춰 국회 분위기도 변하기 시작했다. 집권당인 자민당에서 '성 동일성 장애 공부회'가 2년 5개월 만에 재개됐다. 7월 1일, 참의원 법무위원회는 '성 동일성 장애인의 성별 취급 특례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이 법안은 이틀 후 참의원 본회의를 만장일치로 통과했고, 7월 10일 중의원 법무위원회도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1년 후인 2004년 7월 16일, 성 동일성 장애인 특례법이 시행됐다. 일본에서 최초로 성적 소수자 인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안이다. 이때부터 2005년 말까지 326명이 성별을 변경하고 젠더 정체성을 인정받았다. 작년 말까지 이 법의 혜택을 입은 이는 6021명이다.

이 법안은 성별 변경 요건을 엄격히 한정하고 있다. 현재는 ▲ 여러 명의 의사에게 성 동일성 장애 진단을 받아야 하고 ▲ 20세 이상이어야 하며 ▲ 혼인하지 않아야 한다. 아울러 ▲ 미성년 자녀가 없어야 하고 ▲ 생식 능력이 없어야 하며 ▲ 희망하는 성별과 비슷한 외형의 생식기를 가져야만 한다.

"작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

출간 기념회를 찾은 많은 이는 가미카와 의원의 설명이 끝나자 큰 박수로 성원을 보냈다. 특히 기념회를 찾은 이들은 정해진 시간을 넘겨서까지 질문을 던지며 관심을 표했다.

가미카와 의원은 "나는 단순히 LGBT 문제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며 "모든 소수자의 목소리는 사회에서 들리지 않으므로, 나는 이들의 목소리를 사회에 드러내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그가 청중에게 알린 활동 내역 일부는 성적 소수자 문제와 큰 관련 없는 내용이었다.

가미카와 의원은 공공 화장실에 대장암 환자를 위한 세척 시설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대장암 환자 상당수는 수술 후 복부에 인공 항문을 달아, 의료용 주머니로 대변을 받는다. 평상시에는 괜찮지만, 습기로 인해 이 주머니가 떨어질 수 있다. 이 경우 냄새 등의 문제로 환자는 급히 화장실을 방문해 주머니를 세척하고 대변을 흘려보내야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좌변기에서는 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가미카와 의원은 의원실을 방문한 대장암 환자가 "대변기에 내 손을 넣어 주머니를 씻었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며, 이들을 위한 공공 화장실 설치 의무화를 추진했다. 그가 나서기 전, 세타가야구의 700여 개 공공 화장실 중 인공 항문 세척 시설이 설치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지금은 세타가야구에 들어서는 모든 공공시설이 반드시 세척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대장암 환자 역시 소수자다. 평생을 소수자로 살아온 가미카와 의원이었기에 추진 가능했던 변화일 것이다.

상식은 당연하지 않다

가미카와 의원은 자신의 정치 신조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 상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다수가 항상 옳은 건 아니다. ▲ 편견을 두려워하면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 다양한 사람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자.

그가 다수에 저항하자 사회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2014년 9월, 가미카와 의원은 세타가야구의회에 동성 파트너십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동성 커플도 이성애 커플에 버금가는 사회적 지원을 받도록 지원하라는 내용을 담았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 5일부터 세타가야구와 시부야구는 동성 파트너를 공식 승인했다.

세타가야구는 동성 커플의 사실혼을 인정하도록 구내 부동산, 병원, 휴대전화 판매업소 등에 '구청장 요망(한국의 구청 공문과 비슷함)'을 보낸다. 그리고 동성 커플임을 입증 가능하도록 동성 파트너십 선서 제도를 마련했다. 2015년 11월부터 올해 10월 사이 38커플 76명이 구가 승인한 동성 커플이다. 이들은 일본 내 이동통신 3사 서비스에 가입 시 이성 커플과 똑같이 가족 할인 제도의 적용을 받는다. 동성 파트너를 보험 수익자로 지정하는 것도 가능하며, JAL, ANA와 같은 대형 항공사 사용 시에도 가족 마일리지 적용을 받는다.

처음에는 "동성 커플을 본 적 없다"며 버티던 공무원 사회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세타가야구는 구 소속 공무원이 결혼하거나 상을 당할 경우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보낸다. 올해 4월부터는 동성 공무원 커플에게도 같은 지원을 하기로 했다. 실제 지난주에는 구청의 동성 커플이 결혼 축의금을 받아 언론에 보도됐다.

가미카와 의원은 성적 소수자를 도울 여러 가지 길을 마련했다. 세타가야구는 구내 청소년의 성적 고민을 매년 조사한다. 청소년 성적 소수자를 돕기 위해서다. 인터섹스(간성)로 태어난 아이의 출생 신고서는 공란으로 접수하고, 이 아이가 자라 자신의 성별을 자기가 선택할 수 있도록 바꿨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가미카와 의원은 "특히 아베 정권 하에서 동성혼이 받아들여지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보수적인) 자민당 의원 지역구에서도 게이나 레즈비언이 (용기를 내) 자기 목소리를 낸다면 변화의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이를 포용할 자세

가미카와 의원의 눈부신 의정 활동도 놀랍지만, 그를 지지해준 세타가야구민의 성숙한 시민의식 역시 존중받아야 할 듯하다. 세타가야구는 약 88만 명이 거주하는 곳으로, 도쿄도 23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크다. 단순히 크기만 한 동네가 아니다. 이곳은 일본 언론이 선정한 '기업가들이 사는 거리' 전국 1위이며 '살고 싶은 행정구' 전국 1위다. 한국의 강남 3구와 분위기가 비슷한 곳인 셈이다.

▲ <바꾸어 나가는 용기>(가미카와 아야 지음, 우윤식 옮김, 한울 펴냄). ⓒ한울
실제 가미카와 의원도 세타가야구에 관해 "보수적인 곳"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보수적인 지역구에서 성적 소수자가 현역 정치인에 당선되고, 내리 4선까지 하리라는 기대를 갖기는 조금 어려워 보인다.

가미카와 의원은 "내가 구의원이 된 후 추진한 정책 중 시민이 반대할 만한 건 없었다"며 "오히려 (수동적인) 공무원 세력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중요한 과제였다"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일본은 한국보다 오래 전부터 성적 소수자 문제를 사회적으로 드러냈다. '오카마(뉴 하프, 여장남성)' 방송인은 오래 전부터 활동해왔다. 일본 문학은 20세기 초반부터 성적 소수자를 일상에 끌어들여 독자에게 이야기했다.

여전히 일본 역시 소수자를 향한 차별이 거세지만, 적어도 이 문제를 드러내놓고 토론해 제도화할 문화적 기틀은 가진 셈이다. 성적 소수자가 인간으로서 차별받지 않도록 규정하라는, 헌법 정신에 입각한 당연한 이야기마저 터부시되는 한국과는 온도 차이가 조금 있다.

가미카와 의원도 한국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이번은 그의 두 번째 한국 방문이다. 그는 "서울시민인권헌장이 좌절되었고, 퀴어 퍼레이드 반대 목소리가 컸던 것을 보고 마음 아팠다"며 "힘든 환경이지만, (한국의 성적 소수자와) 함께 하자는 연대 정신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특정 정당에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가미카와 의원은 "무소속이기에 더 자유롭게 정치할 수 있다"며 "국회에서 성별 정정을 위한 로비를 할 때, 내가 특정 정당 소속이었다면 모든 정당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기가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더 큰 정치적 꿈을 꾸느냐는 질문에는 "나는 사람에게 가장 밀접한 일상의 문제를 하나하나 바꿔가는 데서 정치의 매력을 느낀다"며 "의외로 가진 권한이 별로 없는 도의회에 진출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기회가 된다면 국회에 가고픈 생각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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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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