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떠나고, 엄마는 죽고, 나는 늙지만…

[김경욱의 데자뷔] 영화 <다가오는 것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끔 비슷한 또래와 같이 보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영화를 만날 때가 있다. 미아 한센 러브의 <다가오는 것들>(2016년)은 그런 영화다. 나이를 먹으며 살아가는 과정은 매 순간 결코 쉽지 않지만, 중년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인 것 같다. 이 영화는 중년에 '다가오는 것들'이 어떤 성취보다는 대부분 '상실'과 연관되어 있으며, 그래서 매우 힘든 시기라는 사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고등학교 철학과 선생인 나탈리는 같은 철학과 선생인 남편과 남매를 키우며 평탄하게 살아왔다. 영화는 나탈리 가족이 브르타뉴의 별장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사진 1]). 그로부터 몇 년 뒤, 나탈리는 다양한 시련에 직면한다. 심신의 상태가 좋지 않은 노모를 돌봐야하고, 연금 관련 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시위를 하는 상황에서 수업을 해야 하고, 새로운 유행에 부응하려는 출판사의 요구를 들어야한다. 뿐만 아니라 남편은 외도를 고백하면서 그 여자와 같이 살겠다고 선언한다.

▲ [사진 1] 영화는 나탈리 가족이 브르타뉴의 별장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나탈리의 교육 목표는 '철학을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돕는 것'이며, 삶의 목표는 '생각과 행동을 완벽하게 조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탈리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제기한 질문, "남의 입장을 이해하는 일은 가능한가?"에 대한 답변처럼,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들을 앎에 대한 실천으로서 해결해나간다. 엄마는 좋은 시설의 요양원에 모시고, 남편과는 이혼을 하고, 출판사의 요구는 수용한다. 만일 그녀가 20~30대였다면 다르게 대처해 나갔을 수도 있을 것이고, 또 그녀의 선택이 유일한 모범답안은 아닐 것이다.

미아 한센 러브의 연출에서 주목할 점은 나탈리가 상황에 직면하는 태도를 통해 중년의 나이에 걸 맞는 성숙한 인간,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품위를 잃지 않는 인간의 사례를 제시하는 것이다. 직설적인 대사보다는 영화 매체의 특징인 시각과 청각을 적절하게 활용해서 그것을 음미하게 함으로써, 관객을 나탈리의 삶 속으로 이끈다. 나탈리가 엄마의 요양원 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불평할 때, 자기가 읽던 책을 남편이 가져가버렸다고 비난할 때, 잔디밭에서 잠이 들거나([사진 2]), 창밖을 내다보거나([사진 3]), 책을 들고 산책을 할 때([사진 4]), 일상처럼 보이는 매 순간 속에서 나탈리의 아픔과 고통을 체감하게 만든다.

▲ [사진 2].

▲ [사진 3].

▲ [사진 4].

역설적으로 나탈리에게 다가오는 것들은 잘 떠나보내는 '상실'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녀의 애제자이자 젊고 매력적인 청년 파비앙의 등장은 또 다른 상실인지 새로운 획득인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요소가 된다. 중년 여성이 남편이나 연인과 헤어졌을 때, 파비앙 같은 인물이 나타나는 설정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전 남자보다 더 나은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이전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가게 된다.

나탈리의 경우를 보자. 나탈리는 산 속에서 살고 있는 파비앙을 찾아간다. 나탈리는 줄곧 브람스와 슈만의 음악을 들어왔으나, 파비앙의 차에는 저항적인 포크 가스 우디 거스리의 CD만 있다. 파비앙은 동료들과 함께 급진적이고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는데, 그것은 나탈리가 젊었을 때 다 해봤던 일이다. 두 사람은 선생과 제자 사이의 선을 넘어서지는 않지만, 거기에는 모호한 틈이 있다. 그러나 나탈리가 파비앙과 시간을 보내면서 확인하게 되는 건 멜로 드라마의 판타지가 아니라 두 사람 사이의 현실적인 차이이다. 나탈리는 결국 파비앙을 포기하고, 떠나보낸다.

여기서 미아 한센 러브는 '고양이'를 매우 재치 있게 활용한다. 나탈리는 파비앙에게 "나 같은 늙은 여자가 괜찮은 남자를 어떻게 새로 만나겠느냐"고 말한다. 엄마가 키우던 고양이 판도라에 대해 '늙고 뚱뚱한 검은 고양이를 누가 데려다 키우겠느냐'고 말할 때, 판도라는 나탈리의 분신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사진 5]). 그러나 고양이 판도라는 야생의 환경에 금방 적응해 본능을 되찾아 쥐를 잡을 수 있지만, 인간 나탈리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아이러니하게도 나탈리는 파비앙에게 자기가 아니라, 판도라를 준다.

▲ [사진 5].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감독이 다른 여배우는 상상한 적이 없다고 하는 이자벨 위페르의 완벽한 연기와 음악이 나오는 몇몇 장면들이다. 특히 나탈리가 헤어지기로 한 남편과 브르타뉴의 별장에 자신의 짐을 가지러 가는 장면에는 그녀의 슬픔이 절절하게 녹아들어 있다. 휴가 때마다 가족이 머물던 그 별장은 나탈리의 결혼생활에서 가장 행복했던 추억을 간직한 공간이다. 나탈리는 바다에서 수영을 하며 그곳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음미한다.

카메라가 수영복을 입은 그녀를 비출 때, 우리는 그녀의 늘어진 겨드랑이 살을 보면서 늙은 상태를 실감하게 된다. 그녀는 더 외롭게 보인다. 작별의 시간도 잠시, 나탈리는 엄마의 상태가 안 좋다는 소식을 듣고 요양원으로 달려간다. 그녀가 무심하게 운전을 하는 남편 옆에 앉아 자신이 사랑했던 풍경 곳곳에 눈길을 돌리며 눈물을 머금고 작별 인사를 할 때, 슈베르트의 가곡 '물 위에서 노래한다(Auf dem Wasser zu singen)'가 흘러나온다. 흐르는 시간을 아쉬워하는 내용의 이 노래는 그녀의 깊은 슬픔을 청각적으로 보여준다. 나탈리가 판도라를 데려다주고 파비앙과 작별하는 장면에서는, 그녀의 평화를 기원하는 파비앙의 마음처럼 영국 가수 도노반의 '깊은 평화(Deep Peace)'가 울려퍼진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잔인한 장면은 엄마의 장례식을 치른 나탈리가 버스를 타고 갈 때이다. 그녀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흐느끼며 버스 밖으로 시선을 돌리는데, 전 남편이 애인과 다정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때 맞은편에 앉은 젊은 여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는 쇼트가 들어가고 이를 통해 "남의 입장을 이해하는 일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다시 환기한다.

이제 나탈리는 다가오는 것들의 하나인, 할머니의 역할을 받아들인다. 그녀가 파비앙과의 관계를 정리한 장면 바로 다음에 손자와 처음 대면하는 장면이 연결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탈리는 손자를 재우려고 자장가를 부른다.(사진 8]) '상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결코 잊지는 않겠다'는 내용이다. 그녀는 고통 앞에서 저항하거나 투항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으로 통과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의연하고 품위 있게 자기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 [사진 6].

오프닝 시퀀스에서 영화의 제목(원제는 '미래(L'avenir)'인데, 미래는 다가오는 것이나 거기에는 역설적으로 상실이 내포되어 있다)을 샤토 브리앙의 묘지 옆에 배치했듯이([사진 7]), 결국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다가오는 것은 죽음이다. 이 쇼트와 같은 맥락에서, 영화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텅 빈 거실을 비추면서 시간이 정지한 듯한 프리즈 프레임으로 끝난다([사진 8]).

▲ [사진 7].

▲ [사진 8].

나탈리가 수업 시간에 알랭의 <행복론>에서 인용한 것처럼, '기대한 행복이 오지 않았기에 희망은 지속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언체인드 멜로디(Unchained Melody)'의 가사 한 대목처럼, '시간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한다'. 그렇게 끊임없이 다가오는 삶의 고통과 시련을 승화시키지 않으면, 삶은 거기서 멈추고 더 나쁘게는 부패해 갈 것이다. 나탈리가 말했던 '자유롭고 지적으로 충만한 삶'을 위해, '철학(인문학)이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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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동국대와 중앙대에서 영화이론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YU HYUN-MOK>(2008),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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