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백남기 유족에 책임 떠넘겼다"

[인터뷰] 조영선-이정일 변호사 "영장 발부, 정치적 판단"

경찰의 끈질긴 시도 끝에 28일, 결국 법원이 고(故)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 영장을 발부했다. 부검 절차와 방법에 관한 여러 제한을 둔 조건부 영장이었다. 첫 번째 영장 청구에 대한 기각 결정을 뒤엎은 법원의 결정에 대한 반응은 싸늘하다. 여러 단서 조항을 달았지만 이는 치장에 불과할 뿐, 결국은 경찰의 막무가내식 부검 요청을 받아들인 셈이기 때문이다.


"법원이 법리적 판단이 아닌 정치적 판단을 했다."


백남기 씨 변호인단 이정일 변호사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조영선 변호사가 내린 결론이다. 이들은 애초 부검의 이유와 목적이 제대로 소명되지 않았음에도 법원이 영장 청구를 용인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치적 판단의 결과 만들어진 결정문에는 "충분한 설명"과 같은 애매한 수사가 가득했다. 벌써 결정문 문구를 두고 해석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법원이 논란을 잠재우기는커녕 또 다른 분쟁의 불씨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동화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이정일 변호사(왼쪽)와 조영선 변호사. ⓒ프레시안(서어리)


"부검 이유와 목적, 소명 안 됐다"


프레시안 : 법원이 부검 영장을 발부할 거라고 예상을 했나.

조영선 : 법원이 2차 부검 영장 신청에 대해 추가 소명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그걸 보고 아마 영장 발부하려는 수순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긴 했다. 정치적으로, 아마도 조건부 인용할 거라는 우려가 내심 있었다.

이정일 : 조 변호사 말대로, 2차 청구 때 판사가 영장 청구를 받아주기 위해 여러 가지 조건을 제시한 건 오히려 기회를 준 게 아닌가 싶다. 제가 (경찰이 추가 자료를 제출하기까지) 시간을 재봤다. 법원이 40시간을 줬다. 그렇게까지 한 게 일반 사건에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저는 100% 기각될 거라고 생각했다. 법원이 물론 여러 가지 조건들을 내세웠지만, 그 가운데 핵심 조건이라고 볼만한 대목이 있었다. 부검의 목적과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했다. 경찰, 검찰이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이 불분명하다면 다른 사인이 있다고 보는지, 그렇다면 그게 무엇인지 명확히 하라는 얘기다.

예상되는 요소가 둘이었다. 뒤로 넘어졌거나, 옆에 있는 누군가에 의해서 맞았을 가능성. 그게 쟁점이 될까 봐 의견서를 세 차례나 냈다. 사고 당시 백 씨의 뇌수술을 집도한 주치의가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과정에서 "함몰 부위를 살펴볼 때 단순 외상이 아니라 높은 곳에서 떨어진 사람에게 나타나는 임상적 소견으로, 그냥 서 있다가 넘어질 때 생기는 상처와는 전혀 다르다"고 이미 말한 바 있다. 다른 원인이라고 볼 만한 것들이 배제되는 것이다. 설령 소명 자료를 냈다 하더라도 부검을 하려는 이유가 여전히 불명확한데도 판사가 부검 영장 청구를 인용했다는 건 14년 법조 경력에 비춰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법원, 법리적 판단 아닌 정치적 판단했다"

프레시안 : 법원의 판단이 불합리하다고 보는 건가.

이정일 : 이 사건 관련 기록을 누구보다도 많이 봤고, 영상도 많이 분석했고, 의무기록지에 대한 의견도 많이 들어본 제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법원 판례상으로도 그렇다. 사체 검시 방해죄라는 게 있는데, 그 방해죄 재성립 판단 기준 여부가 범죄 혐의의 명백성 여부다. 백남기 농민의 경우, 사건 당시 만인이 보았고 전개 과정에서 일어난 사실 관계를 의무기록지가 뒷받침하고, 의학 전문가들도 그렇다고 증언하고 있다.

특히나 가장 처음 검진하고 수술한 분이 제일 잘 알지 않겠나. 사고 당시부터 CT를 촬영한 시점이 1시간밖에 차이 안 나는데, 그 한 시간 사이 CT 촬영 기록지가 보여주는 게 경막하 출혈로, 12센티미터 길이의 긴 타원형, 두께 3센티미터 이상 피가 고여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최초 집도의가 어느 누구도 회복 불가능하다고 했다. 다른 원인이 있다고 보는 건 상식과 어긋난다.

조영선 : 보편적인 법적 지식을 갖고 있다면 비슷한 생각을 할 거다. 1차와 2차 청구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달랐다. 1차는 부검의 필요성이 없다는 판단을 했다. 이런 근본적인 판단이 2차에서 달라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입회 절차만 주었다. 본질은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입회 절차만 준다 한들 유족의 기본권이 침해하게 되는 상황이 바뀌진 않는다. 따라서 법적인 측면에서 보면 기각을 하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본다.

한마디로, 법원은 법리적인 판단이 아닌 정치적으로 판단을 한 거다. 워낙 이목이 집중된 사안이고 자칫하면 충돌이 일어날 것 같으니까 그 책임을 법원 스스로 질 수는 없어서 양쪽의 요구를 절충하는 식으로 입회 절차를 만든 셈이다.

이정일 : 명백히 정치적인 판단이다. 아마 사인과 사인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법원은 절대 이런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저마다 제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하는 게 보인다. 검사는 마치 경찰이 계속 신청해오니까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모양새로 영장을 청구했다. 이미 한 차례 기각됐기 때문에, 재청구를 안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경찰이 신청하니까 마지못해 한다는 듯 내용을 보강해서 법원에 넘겼다. 검찰에선 변명 여지가 충분하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했기 때문에 집행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법원도 굉장히 고도로 머리를 짜내고 짜낸 조건부 영장을 발부했다. '가족이 희망하는 경우'라는 문구를 넣어서 객관성과 투명성과 공정성이라는 형식을 씌웠다. 그런데 결국은 스스로 피를 묻히기 싫어 가족들에게 "너희들이 결정해"라고 떠민 거나 다름없다.

영장 만료 시한을 늘린 것도 정치적 고려의 결과일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7일인데, 거의 한 달을 줬다. 영장 기한을 늘릴 경우 사유를 명시하도록 돼 있다. 영장 두 장 중 우리는 뒷장만 받았기 때문에 앞 장에 나온 영장 기한 연장 사유를 확인하진 못했지만, 사유는 대강 짐작할 수 있다. 7일 만에 모든 조건들을 협의하는 게 물리적으로 쉽지 않고, 그 사이에 협의가 안 되면 엄청난 충돌이 일어날 것이고 그러면 법원이 혼란에 대한 책임을 떠안을까 봐 그렇게 한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백남기 씨의 유가족.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영장 신청, 청구, 발부 등 처리가 주로 늦은 밤, 새벽 시간대에 이뤄졌다. 처리 시간대 또한 정무적 판단에 의해 조율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는 것 같다.

이정일 : 전반적인 과정을 돌이켜보면, 경찰이 검찰과 법원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백남기 농민이 정부 여당이 어려운 국면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부검이라는 이슈로 국정 현안에 대한 시선 돌리기를 시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은 든다.

"경찰, 부검해도 결국 형사적 책임 면치 못할 것"


프레시안 : 검경은 계속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두고 '변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법원은 부검의 이유와 목적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채로도 영장 청구를 인용했다. 그렇다면 법원에서도 백남기 농민의 사인이 불분명하다고 이미 결론을 내렸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조영선 : 부검은 신체 내에서 사인이 될 만한 것을 찾는 것에 불과하다. 의학적 인과관계를 찾는 것이다. 그런데 법에서 이야기하는 인과관계는 다르다. 설령 부검 결과 내부적인 질환이 발견됐다 하더라도, 사망에 대한 형사적 책임은 남아있는 거다. 법에서 이야기하는 인과관계는 A라는 사람이 B를 밀어서 뇌출혈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300여 일을 누웠다가 사망했다고 하면, 뇌출혈 이후에 페질환이 있고 지주막하 출혈이 있다 한들, 최초의 가해행위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 보면 부검은 큰 의미는 없다.

이정일 : 그러니까 부검을 통해서 규명하려는 게 무엇인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경찰과 검찰이 정말 백 씨 죽음이 다른 데 있다는 걸 밝히려면, 앞서 규명된 사실을 초과하는 다른 원인을 밝혀야 한다. 이를테면, 물대포 살수 당시 백 씨가 물대포가 아닌 옆에 있던 빨간 우의를 입은 사람에게 맞아서 넘어졌다고 보는 거라면, 빨간 우의를 입은 사람을 찾아서 조사하거나, 그게 안 된다면 당시 동영상을 통해서 어떤 가격 행위가 있었는지를 면밀히 관찰해서 가격의 정도를 측정하는 시뮬레이션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야기했듯, 서울대병원 집도의가 사고 당시 백 씨 손상에 대해 고층 건물에서 떨어진 정도라고 했다. 뇌 뿌리의 50%가 손상될 정도면, 이건 누구한테 맞아서 생길 수 있는 충격이 아니라는 거다. 누구한테 맞은 게 아니라 뒤로 넘어져서 뇌출혈 증상이 있었다고 본다면,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물대포 충격에 의해 뒤로 넘어졌다는 것이다. 1차 충격, 2차 충격이 있었어도 최초 원인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리고 둘 다 원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최초 원인을 배제시키지 않는다. 법률적으로는 넘어진 원인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데, 도대체 부검을 통해서 규명할 수 있냐는 게 저의 의문이다.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 ⓒ프레시안(손문상)

"유가족 스스로 부검하게 만든 꼴... 법원의 무자비한 배려"

프레시안 : 영장 내용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법원의 결정문에 입회 시기, 장소 등 조건이 여럿 붙었다. 요지는 유가족을 최대한 배려하라는 것이다.

이정일 : 언론에서는 '조건'이라고 부르지만, 정확한 명칭은 '압수수색검정영장의 절차와 방법에 관한 제한'이다. 원칙적으로 검사나 경찰이 부검을 하면, 법의관을 누구를 데리고 오든 국과수 분실에서 하든 사체 훼손을 얼마나 하든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그런 행위를 법원이 제시한 범위 내에서 하도록 한 것이다.

선의로 해석하면, 판사도 고민을 많이 한 걸 테고, 유가족을 위해 여러 장치들을 부여했다고 볼 수도 있다. 강제 부검을 하면 유가족이 관여할 수 있는 절차는 아예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조건들은 유가족에 대한 배려이긴 하지만, 실은 이것도 무자비한 배려다.

아버지 시신에 손 못 대게 하겠다고 거부해도 10월 25일로 영장 만료 시한이 지나면 결과는 부검이다. 또 강제 집행할 경우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렇게 되면 충돌이 발생하고, 그 충돌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공무집행 방해로 끌려가면 검찰은 가족에게 책임을 물을 거다. 유가족들이 거부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할 말이 생기는 거다. 그런데 충돌을 피하려고, 또는 그때까지 아무것도 협의 못 하게 되면 검찰이 마음대로 시신을 훼손할까 봐 절차를 협의해도 부검을 한다. 이러나저러나 결론은 부검이다. 아버지를 부검하게 되는 결정의 그 주체가 가족이 되도록 만드는 것. 얼마나 비겁한 논리인가.

"영장 문구, 제2의 분쟁의 불씨 키운다"

프레시안 : 결정문 안에 모호하거나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 있는 용어가 더러 있는 것 같다.

조영선 : '가족이 희망하는 경우'라는 대목이 나온다. 정말 가족이 희망하지 않으면 못 하는 거다. 그럼 이걸 불응으로 봐야 할 건가, 해석의 여지가 너무 크다.

프레시안 : '충분한 설명'이란 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정일 : 용어 하나하나 다 따져 볼 여지가 있다. '충분한 설명'이라고 한다면, 그 설명이 무엇인지가 일단 문제다. 절차와 시기, 내용이라고 치자. 그럼 그 설명을 할 주체가 누가 될지도 문제다. 기본적으로 영장을 집행하는 주체는 경찰이니까 경찰이라고 하자. 그런데 경찰은 부검을 할 수 있는 의료 전문가가 아니다. 그럼 법의관이 와서 한다고 치자. 그런데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충분한 설명이 되어야 할 텐데, 가족은 의료 전문가가 아니므로, 가족들이 설명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또 가족 측 의사가 필요하다. 그런데, 제한 내용에 '신체 훼손을 필요 최소한으로 하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를 준수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선 가족들이 어떤 정보를 제공받아야 충분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법원이 제시한 제한 문구들은 이런 다양한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프레시안 : 유가족들은 부검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렇게 계속 거부할 경우, 경찰이 유가족을 만날 수가 없다. 그럼 '충분히 설명'도 불가한 것 아닌가. 그럼 영장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셈이 될 텐데.

조영선 : 충분하냐, 안 하냐에 대한 해석을 누가 할 것인가의 문제가 생기는 거다. 아마 경찰 쪽에서는 어떻게든 만나려고 시도해서 명분을 일단 쌓아놓는 거다. 그래서 나중에는 '하는 데까지 노력했으나 저쪽에서 거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절차를 보장해줬는데도 협의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했다고 해석하고 강제 집행할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영장에 조건이 붙은 것 자체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있다. 조건부 영장 선례가 있나.

조영선 : 더러 있긴 하다. 야간집회를 조건부 허용한다든지, 부검과 관련해서도 어떤 부위만 특정해서 한다든지 하는 부분이 있을 순 있다. 그런데 이 정도까지 많은 조건을 부여한 경우는 사실상 없다.

프레시안 : 조건부 영장 발부는 법적 근거가 없어서 무효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정일 : 이런 형식이 법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보다는 영장 자체의 문구가 당사자 간의 제2의 분쟁의 불씨를 남겨뒀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부검 참관인 역할? 알 수 없다"

프레시안 : 영장 발부 후 유가족에게 어떤 자문을 해줬나.

이정일 : 어제는 기본적으로 영장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면서, 각각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해드리고 향후 예상되는 절차를 알려드렸다. 안내만 한 정도였고, 다만 만일 향후 부검 입회 방식 등을 협의할 거라면 협상 창구는 필요하고, 법조인이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렸다. 향후 대응 기조는 가족들끼리 회의해서 정했다.

프레시안 : 부검에 입회하는 참관인은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인가.

이정일 : 아직은 알 수 없다. 결정문 내용을 보면, 유가족이 지명하는 의사 두 명과 변호사 한 명에 대한 참여만 이야기하고 있지, 참여의 내용과 방법을 모른다. 협의를 해서 참관인의 역할을 정할 수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정확한 문구는 '참여시켜 참관'이다. 물론 변호인은 대변인 역할을 해야 해서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참관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지켜보는 것이다. 침묵하고 어떤 의견도 제시하지 않는 것이다.

프레시안 : 보기만 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정일 : 실제 진행되는 내용에 따라 다를 것이다. 유가족이 지명하는 의사가 '참여'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유가족이 지명하는 의사가 공동으로 부검하는 방식으로 해석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지 검토가 필요하다.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이를테면, 유가족 추천으로 부검에 직접 참여했다가 사인이 만약에 유족에 불리하게 나왔을 때 책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협의가 쉽지 않을 것이다.

프레시안 : 사망 후 이미 5일이 지났다. 시신 상태가 좀 달라졌을 것 같은데.

이정일 : 지금 냉장 상태인데, 냉장을 해도 시신 상태는 바뀐다고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고 당시 상황이다. 이미 백 씨가 병상에 있던 317일 동안에도 상태가 달라졌을 텐데, 최후의 몸 상태를 밝히는 것조차 의미가 있을까. 법의학적으로도 지금 부검을 통해 사고 당시 상황을 밝혀내는 게 가능한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고 들었다. 일단 검시 과정에서 법의관이 이야기하기로 얼굴 부위에 충격 흔적이 있다고는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지금은 슬퍼할 때"

프레시안 : 과거에도 비슷한 사건으로 부검한 예가 있었다.

조영선 : 노동 운동을 박창수 열사가 대표적이다. 1991년에 박창수 열사가 죽은 뒤 경찰이 시신을 뺏어가 부검을 해서 자살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당시 박 열사가 죽기 전 안기부에 끌려갔다 온 게 알려져 논란이 됐다.

이정일 : 그렇게 부검한 사례는 찾을 수 있는데, 과거 사례들과 백남기 농민의 상황은 일치하진 않는다. 예전에 부검 논란이 됐던 건, 국가 공권력 행위에 사망한 게 의심은 되나 진짜 누가 했는지도 모르고, 추락 때문인지 가격 때문인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서 오로지 부검을 통해서만 사망 원인을 유일하게 밝힐 수 있어서 했던 것이다. 반면 백남기 씨는 CCTV 영상도 있고 진료 기록 등이 명백하게 사인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부검을 하려고 하니 답답한 것이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이정일 : 유가족 입장에서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이 사과도 안 하고 책임도 지지않고 있는 상황에서, 더군다나 사인이 명백해 보이는데도 부검을 요구하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자식이라면 누구든 부모의 시체가 훼손되지 않은 채로 존엄하게 장례를 치를 수 있기를 바랄 텐데 그러질 못하는 상황에 대해 공감해주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슬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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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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