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협상, 또 다른 이면 합의 있나?

[전진한의 알권리] 문서 한 장 내놓지 못하는 정부

최근 소녀상에 관한 정부 당국자의 발언이 심상치 않다. 지난 25일 일본이 10억 엔을 거출하기로 결정한 다음, 외교부 당국자는 "합의 이행을 언제 하느냐의 문제가 중요하다. 지금은 소녀상 문제를 거론하거나 그와 관련해서 관련 단체와 협의할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며 종전과 다른 뉘앙스의 말을 했다. 종전에는 소녀상 이전은 민간의 문제라며, 정부가 개입할 수 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

정부 당국자의 이번 발언은, 해석에 따라 10억 엔을 출연한 이후 일본 측에서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놓여 있는 '위안부 평화비'(소녀상)의 철거 및 물리적 이전을 요구하면 관련 단체와 협의를 시작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12월 28일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소녀상에 대해)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 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함"이라는 합의문이 구체적으로 현실화 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면 한일 정부 간, 단 몇 줄의 합의만으로 이렇게 체계적으로 합의문을 이행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한일 정부 간 일방적 합의 및 구체적으로 실현 단계에 들어간 이 상황에 대해서 꼼꼼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상식적으로 12월 28일 합의안과 함께, 구체적 협상 과정이 담긴 협상문 부속 문서들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통상 외교 관계 합의문들은 실무 교섭자들이 치열한 협상 과정과 그 결과물을 실시간으로 기록으로 생산한다. 게다가 문구 하나하나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 있어, 통상적으로 부속 문서에서 보충 설명을 한다. 또한, 본국에서 어떤 지시가 있었고, 그 지시 사항을 어떻게 합의안에 반영했는지 문서로 남겨둔다.

이는 최근 <한겨레>에서 연재하고 있는 '조세영의 외교 클럽'에도 잘 묘사되어 있다. 그중 일부를 인용해보자.

"내부망 컴퓨터가 부팅되고 나면 제일 먼저 수신 문서부터 확인한다. 밤새 본부로부터 어떤 지시 전문이 도착해 있는지 모니터 화면의 목록을 살펴본다. 수신 문서 목록에 올라와 있는 전문들은 비밀 등급에 따라 평문, 대외비, 3급 비밀과 같이 분류돼 있고, 처리해야 할 시급성에 따라 일반, 지급, 긴급과 같은 표시가 되어 있다. 중요한 내용이라면 당연히 평문이 아닌 비밀로 작성됐을 것이고, 서둘러 처리해야 할 사안이라면 지급이나 긴급으로 왔을 테니, 비밀 등급이 높은 전문과 지급, 긴급 전문을 우선적으로 살펴본다." (2016년 6월 3일)

이렇듯 외교 협상은 그 과정에서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부속 문서를 생산하기 마련이다.

이에 민변도 2월 29일 "일본이 공식석상에서 '12.28 공동 발표'를 토대로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주장을 지속하고 있다"며 교섭 문서 공개를 통해 합의 내용의 실체를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관련 정보를 정보 공개 청구했다. 민변이 이날 정보 공개 청구한 교섭 문서는 △ 12.28 공동 발표 중 '군의 관여'라는 용어를 선택하고 그 의미에 협의한 교섭 문서 △ 강제 연행의 존부 인정에 관해 협의한 교섭 문서 △ '성 노예', '일본군 위안부' 등 용어 사용에 대해 협의한 교섭 문서 등 3건이다.

ⓒ프레시안(최형락)

하지만 정부는 현재까지 국회의원 및 군위안부 피해 당사자들에게도 위 문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관련 문서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은 CBS 라디오 <정관용에 시사자키>에 출연해 "정부 교섭 당시의 verbatim(축어적 보고)을 공개를 해라. 그리고 협상 과정에서 제시가 됐던 문서도 공개를 하라고 요구했지만, 지금 완전히 애들 말로 (정부는)그냥 배째라입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생산된 문서가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공공기록물법 제 16조는 "공공 기관은 효율적이고 책임 있는 업무 수행을 위하여 업무의 입안 단계부터 종결 단계까지 업무 수행의 모든 과정 및 결과가 기록물로 생산·관리될 수 있도록 업무 과정에 기반 한 기록물 관리를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마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규정이 없더라도, 한일 간 치열한 협상을 하고 있는데, 부속 문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이 같이 명백히 존재해야 할 문서를 정부가 부인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법 위반 가능성도 높다. 또한 협상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한국 시민뿐만 아니라 피해 당사자들의 알 권리를 침해한 심각한 문제이다. 피해자가 협상 과정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합의문을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자체가 폭력이다. 이번 사태가 심각한 것은 이 지점에 있다.

갑작스러운 한일 정부 간 합의 발표. 그리고 8개월이 지난 이 시점까지 그 과정을 설명한 문서 한 장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정부.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이면 합의가 있는 것인가. 의문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피해자와 일반 시민이 이해하지 못하는 협상은 반드시, 큰 부작용을 낳는다. 정부 당국자들은 비공개는 당장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역사적으로 큰 잘못을 저지르는 첫 시발점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부는 위 협상 기록의 존재를 부인하지 말고, 협상 과정에서 생산된 기록을 국회와 피해 당사자에게 공개하기 바란다. 이번 협상을 보면서 올해 유난히, 8월 29일 경술국치 106주년이 크게 다가오는 것은 나만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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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한

2002년부터 알권리운동을 해왔습니다. 주로 정보공개법 및 기록물관리법을 제도화 하고 확산하는데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힘이 있는 사람이나 단체들은 정보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햇볕을 비추고 싶은 것이 작은 소망입니다.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어려운 컨텐츠를 쉽고 재밌게 바꾸는 일을 하는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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