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다음 정부, 사드 배치 '재고'할 것

[정욱식 칼럼] 사드, 미국에도 '독'이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대란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이 자초하는 질문이다. 사드 반대는 '친중'이자 '반미'이고, 사드 찬성은 '반중'이자 '친미'라는 희한한 이분법이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조정하고 합리적인 토론의 장을 만들어야 할 언론과 정치권이 오히려 불필요하고도 자해적인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사드에 담긴 국제 정치와 미-중 간의 전략적 관계는 양자택일이나 이분법에 가둬두기에는 너무나도 다차원적이고도 복잡하다.

나는 이미 사드가 미-중 간의 전략적 균형에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고, 그래서 이를 '핵심 이익'의 문제로 간주한 중국이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편 바 있다. 또한 일각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한국이 사드를 유보하거나 철회해도 미국은 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관련 기사 : 사드 취소하면 미국이 보복한다고?)

그런데 한국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내년 초에 들어설 미국의 차기 행정부가 사드 배치를 '재고(再考)'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차기 정권을 상대로 담판을 지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재고의 방향이 어느 쪽으로 향할지는 예단할 수 없다.

시진핑과 푸틴의 '담판' 카드

일단 중국과 러시아는 9월 초에 항저우(杭州)에서 열릴 G20 정상 회의 때,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생각을 돌려놓기 위해 애쓸 것이다. 하지만 이건 실패할 공산이 크다. 박 대통령의 사드에 대한 집착은 거의 '종교화'되고 있고,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오바마도 없었던 일로 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대선을 앞두고 사드를 재검토하겠다고 하면 중국과 러시아의 압력에 굴복한 모양새가 되고 이건 선거에서 악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차기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담판을 지으려고 할 것이다. '한국 내 사드 배치를 강행해 중-러 간의 전략적 결속을 감수할 것이냐, 아니면 이 계획을 철회하고 우리와 새로운 관계를 모색할 것이냐'고 말이다.

이미 두 정상은 6월 25일 '세계의 전략적 안정을 강화하는 것에 관한 공동 성명'에서 사드 배치 강행시 양국이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맞설 것임을 경고해둔 상태이다. 중국의 경고는 더욱 직설적이다. 시진핑은 3월 31일 오바마를 만난 자리에서 사드 배치는 "다른 이(중국)에게도 해가 될 뿐만 아니라 자신(미국)에게도 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지난 6월 25일(현지 시간) 중국 수도 베이징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 회담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러시아 대통령실

중국은 최근에도 "만약 미국과 한국이 자기만의 옹고집을 부린다면 중·러는 미국과 한국이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또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대비 조치를 내놓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마디로 사드 배치에 중-러가 손잡고 전략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인민일보>, 8월 3일 및 4일자 사설).

비수는 전략 무기 거래

중국과 러시아는 핵 강대국이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그래서 둘이 손을 잡으면 미국을 곤혹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장 사드 배치 발표 이후 두 나라는 북한의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에 대한 대응을 확연히 '톤 다운'시켰다. 또한 사드를 비롯한 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 체제(MD)를 견제하기 위해 합동 군사 훈련의 보폭도 넓히고 있다. MD를 무력화하기 위한 훈련도 하고, 자신들도 MD를 만들겠다는 움직임도 가시화하고 있다.

분쟁이 벌어지고 있거나 그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서 중-러 간의 협력도 증대될 수 있다. 당장 미국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및 시리아 사태에 대해서도 공동 보조를 맞출 수 있다. 아울러 남중국해, 대만 해협, 동중국해 등 동아시아의 '약한 고리'에서 양국이 협력을 높일 공산도 있다. 하나같이 미국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일들이다.

가장 결정적인 비수(匕首)는 양국 사이의 전략 무기 개발 협력이 될 것이다. 러시아는 냉전 시대부터 MD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전략 무기를 개발해왔다. 중국도 이 분야에 투자를 늘려왔지만 러시아의 기술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전략 무기 협력은 러시아의 '기술'과 중국의 '돈' 사이의 융합이 될 공산이 크다.

전략 무기 개발 협력은 다방면에 걸쳐 진행될 수 있다. 진짜 탄두와 가짜 탄두를 섞어 식별을 어렵게 하는 '교란체', 여러 개의 탄두가 중간에 각도를 바꿔 각기 다른 목표물을 향해 떨어지는 'MIRV', 현존 MD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극초음속 비행체(hypersonic vehicle)', MD 등 현대 군사 기술이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위성 파괴용 무기 등이 이에 해당된다.

또한 사드 배치 강행은 중국의 핵 전략에도 큰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 중국의 핵 전략의 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최소 억제 이론'이고, 또 하나는 '핵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정책'이다. 중국은 사드에 맞서 전략적 균형, 즉 2차 공격 유지를 위해 핵미사일을 늘리고 핵 선제 불사용 정책에 대해 모호한 태도로 돌아설 수 있다.

가령 중국이 핵탄두와 탄도 미사일을 분리해놓은 상태에서 '경보 즉시 발사'가 가능한 상태로만 바꿔도 미국을 긴장시킬 수 있다. 현재 미국을 겨냥해 이 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러시아밖에 없다. 그런데 중국이 여기에 가세하면 미국의 전략적 취약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협상은 기피하면서 북한을 꽃놀이패로 삼으려는 관성을 버리지 못하면 북한이 그다음 순번이 될 공산도 크다.

이렇듯 사드 배치 강행이 초래할 잠재적인 결과를 종합해보면, 미국에게도 사드 배치는 '약'이 아니라 '독'이 될 공산이 크다. 위협이 커지면서 미국의 군산 복합체에게는 축복이 되겠지만, 미국 전체로서는 득보다 실이 훨씬 클 것이기 때문이다. (하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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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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