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으로도 힘든 여름, 양기 보충하자

[함께 사는 길] 한의사 엄마가 끓여주는 머위들깨탕

요즘 여름은 옛날 여름과 같을까? 옛날 사람들은 여름에 아침 일찍 밭이나 논에 나가 일을 하고 태양 빛이 뜨거운 낮에는 한숨 자고 해가 넘어갈 무렵 다시 일을 나갔다. 농사일을 하지 않는 양반집 도련님도 더위는 피할 수 없었다. 책을 읽고 있어도 땀은 흘렀고 그늘에 앉아 부채로 땀을 식힐 뿐이었다. 임금님도 더위는 어쩔 수 없었다. 서빙고에서 얼음을 꺼내 먹더라도 매일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청나라 임금도 '피서 산장'이라는 곳을 두어 북으로 피서를 갔다 하니, 옛날에도 여름 더위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었나 보다.

여름철 외부 온도가 높아지면 우리 몸의 온도도 올라가기 쉽다. 몸 안의 열을 발산하기 위해서 피부에 있는 혈관이 확장되고, 땀을 흘리며 우리 몸의 열기가 피부 겉으로 몰리게 된다. 양기(陽氣)가 겉에 모이고 음기(陰氣)는 안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몸속은 차가워진다. 여름에 차가운 아이스크림이나 물을 먹고 배탈이 나는 경우는 몸속 음기에 음기를 보태어 탈이 난 경우이다.

그래서 여름철에 땀을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은 이열치열(以熱治熱)로 보양해야 한다. 뜨겁고 매운 음식을 먹어서 차가워진 속을 따뜻하게 하면 양기가 속으로 중집(中輯)되고, 속에 있던 음기가 밖으로 나가 외부의 열을 줄어들게 하는 것이다. 뜨거운 음식으로 속을 덥히는 방법 중 대표적인 것이 삼계탕이다. 삼계탕 안에 인삼과 황기도 넣어 먹으니 열과 열이 합해진 음식이다.

그러나 요즘 여름철 땀을 흘리며 일하는 사람이 예전처럼 많을까? 에어컨의 등장으로 외부온도가 올라갈 일이 없어졌다. 그러니 당연히 내 몸의 온도도 올라가지 않고 양기가 몸밖에 쏠리고 음기가 안으로 모여질 일이 없다. 그러니 이열치열로 보양하는 옛날 방법을 쓰기에는 무리가 있다.

▲ 에어컨 앞에서 여름답지 않은 차가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보양식이 없을까? ⓒ권해진

에어컨 앞에 선 불곰 왕자와 얼음 공주

7세인 딸은 여름 원피스를 입고 유치원에 등원할 때면 긴 팔 겉옷을 꼭 챙긴다. 유치원에서 에어컨을 트는데 시간이 지나면 추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치원에서는 에어컨 설정온도를 높이지 않는다. 열이 많은 남자아이 부모들은 유치원이 덥다며 실내온도를 낮추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활발히 뛰어다니는 남자아이들에게는 에어컨이 작동되어도 덥게 느껴질 것이다. 불곰처럼 더워하는 남자 아이들과 추워서 얼음공주가 된 여자아이들 모두를 위한 에어컨 적정 온도는 없다. 단지 외부와 온도 차이를 5도 정도 내로 둘뿐이다.

아이들은 양기가 어른보다 많아 한의학에서는 '순양지체(純陽之體)'라고 부른다. 양기가 많은 몸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같은 온도에서도 어른보다 땀을 더 많이 흘린다. 땀을 뻘뻘 흘리는 아이가 안쓰럽고 에어컨 온도를 낮추어 아이의 땀을 식혀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땀을 흘리고 있는 아이에게 에어컨 찬 공기는 독이 될 수 있다. 땀을 빨리 식히지만, 감기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양기를 에어컨으로 줄일 필요는 없다. 차라리 어른보다 양기가 많아 땀을 더 흘리는 것이라 이해하고 그냥 두는 것이 더 좋다.

어른이 되면 양기가 조금씩 줄어든다. 특히 여자가 그렇다. 여자 환자들 중에서 여름이 따뜻하다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들에게 겨울은 너무나 추운 계절이다. 에어컨이 있는 여름도 힘든 계절이다. 양기가 많지 않은 이들은 에어컨으로 인해 음기가 겉에 많이 있게 된다. 그렇다면 속에 조금 남아 있는 양기를 어떻게 보강시켜야 할까?

항상 에어컨 바람을 맞고 여름답지 않은 차가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면 평온(平溫)한 음식으로 기운을 보강하는 것이 좋다. 한의학에서는 열(熱), 온(溫), 평(平), 량(凉), 한(寒)으로 약재의 성질을 나눈다. 인삼을 먹으면 몸이 따뜻해지니 열성과 온성의 사이에 위치한다. 음식에도 그런 성질이 있는데 고추는 열성, 곡식은 평온, 수박은 량성, 알로에는 한성으로 본다. 이런 사람에게 열기가 강한 인삼이 들어간 삼계탕 같은 음식은 몸속에 열기를 너무 강하게 보강하게 되고 결국 열기가 터져나가 얼굴로 열이 오를 수 있다. 몸은 찬데 얼굴에는 열이 오르게 되는 것이다. 평온한 음식으로 몸속에 남아 있는 양기에 서서히 부드럽게 힘을 보태어 주어야 한다.

▲ 자연이 주는 제철음식이야말로 철마다 건강하게 날 수 있는 보양식 재료들이다. ⓒ권해진

텃밭에서 구한 우리 가족 보양식

텃밭농사 4년 차가 되었다. 자연이 주는 제철음식이야말로 철마다 건강하게 날 수 있는 보양식 재료들이다. 우리 가족은 여름이면 머위들깨탕을 즐겨 먹는다. 머위는 봄부터 여름까지 먹을 수 있는 채소다. 봄에는 어린잎으로 쌈을 해먹거나 나물을 해 먹고 여름에는 줄기로 음식을 한다. 한약재명으로 '백채(白菜)'라고 부른다.

"백채는 성질이 평하고 독이 없다. 줄기는 삶아 국을 끓이거나 나물을 무쳐먹으면 아주 좋다. 곳곳에 자란다."

"임자(들깨)는 성질이 따뜻하고 독이 없다. 기를 내리고 기침과 갈증을 멎게 하며 폐를 적셔 중초를 보하며 정수를 채워 준다."

<동의보감> 탕액편 권2 '채부'(東醫寶鑑 湯液篇 卷2 菜部)에 나오는 글이다. 들깨는 얼굴로 올라가는 열을 가라앉힐 수 있다. 또한 에어컨의 찬 공기가 폐에 들어가 기침을 유발하는 것을 막아줄 수도 있다. 머위와 들깨로 만든 우리 가족 보양식을 소개한다. 이번 주말 가족과 한 그릇하고 건강한 여름을 나시길.

▲ 한의사 권해진 씨가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머위들깨탕. ⓒ권해진

머위들깨탕

① 머윗대는 적당히 삶아 줍니다. 살짝 데치면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고 많이 데치면 검게 색이 변합니다. 끓는 물에 소금을 조금 넣어주고 다시 끓어오를 때까지 삶아주면 조직이 연해집니다
② 삶은 머윗대는 껍질을 깨끗이 벗겨 줍니다. 껍질이 질기기 때문에 그냥 요리하면 먹기가 불편합니다
③ 껍질 벗긴 머윗대는 냉수에 담가서 쓴 물을 하루 정도 우려냅니다
④ 멸치, 다시마, 표고를 넣고 끓인 육수를 준비합니다
⑤ 냄비에 들기름을 넣고 머위를 넣어 볶아주다가 국간장을 넣고 육수를 넣어준 뒤 마늘과 파(흰 부분)를 넣고 끓여 줍니다. 끓기 시작하면 뚜껑을 덮고 약한 불에서 푹 익힙니다
⑥ 마지막으로 쌀가루, 들깻가루를 넣어주고 파(파란 부위)를 넣어 한 번 끊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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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길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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