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공포를 느끼지 못했다…왜?

[프레시안 books] <뇌과학자들>

전혀 몰랐던 세계를 자세히 설명해주는 책은 앎의 기쁨을 준다. 그 세계가 우리 누구나 깊은 관심을 가진 분야라면 더욱 그렇다. 뇌 이야기를 비전문가도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라면, 이 조건을 충실히 만족한다.

<뇌 과학자들>(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해나무 펴냄)은 신경외과 전문의들의 인간 뇌 탐험 이야기다. 우연한 발견, 사고, 잔인한 실험 등을 거쳐 얻어낸 뇌 과학의 역사를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전문가적 풀이로 채웠다.

저자 샘 킨은 <사라진 스푼>(이충호 옮김, 해나무 펴냄),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이충호 옮김, 해나무 펴냄)로 잘 알려진 과학 저자로, 우리가 가위 눌림으로 이해하는 수면 마비를 겪은 후, 이 책의 집필을 결심했다고 <뇌 과학자들>의 서두에 밝힌다.

비단 수면 마비뿐만 아니다. 이 책에는 놀라운 이야기가 줄을 잇는다. 뇌전증, 말단비대증, 환상 사지, 이상 성욕, 조현병, 공감각, 쿠루병에 관한 이야기가 이 책의 주요 테마다. 뇌가 흘러내릴 정도로 심각한 두부 관통상을 입고도 의식이 흐트러지지 않은 채 멀쩡히 살아남은 사람의 기적과 같은 이야기도 여럿 등장한다. 샘 킨은 매끄러운 문장으로 각 주제와 관련한 중요한 역사적 이야기를 풀고, 이 문제와 대결한 과학자들의 도전기와 해당 주제와 관련한 뇌 과학 상식을 촘촘히 배열했다.

몇몇 이야기는 비전문가가 온전히 이해하기엔 쉽지 않다. 뇌의 여러 기관에 관한 기초 지식이 부족하고, 신경 세포 관련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매끄럽게 저자의 이야기를 전부 흡수하기엔 조금 버거운 대목도 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뇌 해부도를 책에 곁들였다면, 이 흥미로운 이야기에 독자가 한층 푹 빠질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는 이 책의 즐거움에 비하면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과학과 역사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저자의 글 솜씨, 그리고 두께에 비해 부담스럽지 않은 각 장의 분량 덕분에 독자는 척척 뇌 과학의 이야기 바다에 뛰어들어, 곧바로 다음 장으로의 여행을 기다리게 된다.

우리 몸에서 가장 신비로운 기관이자, 인간다움을 정의하는 기관인 뇌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이 책에 등장하는 과학자와 (대부분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들은 기대 이상의 놀라움을 독자에게 안겨준다. 포레족이 앓은 쿠루병(크로이츠펠트-야코브병, 광우병처럼 프리온 단백질로 인해 뇌 이상이 일어나 사망하는 병)의 원인을 밝혀가는 이야기인 '6장 웃음병' 대목의 주인공이라 칭할 만한 칼턴 가이듀섹의 인생은 영화와 같다. 과학자이자 모험가였던 그가 뉴기니에서만 발생하는 이 기묘한 ‘웃음병(쿠루병)’을 밝히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와 대립한 이야기, 원주민과 접촉한 이야기, 그리고 휴머니즘의 끝에 도사린 반전은 미스터리 소설처럼 흡입력 강하다.

편도체(amygdala)에 관한 이야기에는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S.M.이라는 사람의 일화가 소개된다. 10살 무렵 편도 세포를 죽이는 희귀 질환 우르바흐-비테 증후군을 앓은 후, 그는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한 번은 한 남자가 그의 목에 칼을 대고 위협했지만, S.M.은 그저 천천히 그 위기를 벗어났다. 놀랍게도, 공포를 제외한 대부분 감정에서 그는 정상이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뇌를 우주 혹은 컴퓨터에 비유하는 여러 이야기의 진정한 의미가 다가온다. 뇌는 그 자체로 거대한 의식 체계의 그물망이고, 놀라운 수준으로 작동하는 슈퍼 컴퓨터이며, 독자적으로 새롭게 창조된 세계 그 자체인 듯하다. 아울러, 이 책에서도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뇌의 교묘한 작동 원리를 더듬어 추론해 보면, 아직 우리가 밝혀야 할 신비로운 세계가 깊은 삼림처럼 무성하다는 점도 간접 확인할 수 있다.

▲ <뇌 과학자들>(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해나무 펴냄). ⓒ해나무
환상 사지(절단 수술 후에도 사라진 손, 발에서 통증을 느끼는 증상)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저자는 뇌에서 담당하는 우리 몸의 감각 부위를 인체 모형으로 묘사한 작품인 호문쿨루스(감각 축소 인간, sensory homunculus) 사례를 삽화와 함께 설명한다. 각 신체 부위에 할당된 회색질(대뇌겉질, 기억·집중·사고·언어·의식 등을 담당하는 뇌의 일부분)에 비례한 인체 모형은 입술과 손이 비정상적으로 크고, 반대로 다리는 얇다.

이는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수술인 트리퍼네이션을 받은 주인공이 인체가 일그러진 사람을 바라보는 환상에 빠진다는 내용의 만화 <호문쿨루스>(야마모토 히데오 지음, 대원씨아이 펴냄)를 연상케 한다. 이 만화에서 주인공들은 뇌 활용도를 키운다는 이야기에 혹해 이 시술에 빠져들지만, 결국 (뇌에 구멍을 뚫지 않은) 평범한 사람 내면의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만화처럼 단순할 리 없지만, 우리가 뇌를 알아간다는 것은 결국 우주에 독자적 생명체로 우뚝 선 사람을 더 이해해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뇌 과학자들>은 따라서, 품고 있는 이야기 자체로 진한 휴머니즘의 대서사시다. 과학 비전공자에게 주저없이 '올해 꼭 읽어볼 만한 책'으로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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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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