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트럼프, 러스트 벨트를 먹어야 이긴다"

[미국 민주당 전당 대회 참관기 ④] 김동석 KACE 상임이사 인터뷰

미국 민주-공화 양당의 전당 대회가 모두 끝나고, 11월 대선에 나설 후보가 확정됐다. 공화당에서는 경선 초반만 해도 후보 선출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받았던 도널드 트럼프가 다른 후보들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후보로 선출됐고, 민주당에서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불러일으킨 변화의 바람을 가까스로 잠재우고 힐러리 클린턴이 본선 티켓을 따냈다. 양당의 후보 선출과 전당 대회에 대해 수많은 분석과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기존 정치 질서를 뒤흔들어 놓은 상황에 대한 의문과 혼란은 가시지 않고 있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흑인 폭동을 계기로 24년 째 미국내 한인들의 권익 신장과 정치 참여 운동을 전개해오고 있는 시민참여센터(KACE : Korean American Civic Empowerment) 김동석 상임이사를 민주당 전당 대회 마지막 날인 7월 28일 필라델피아 웰스파고 센터에서 만났다. 그와 양당 전당 대회 평가, 대선 전망, 소수 인종의 입장에서 본 미국 정치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김 이사는 "트럼프 선출 등 이변이라 평가되는 현재 상황은 갑자기 돌출된 사건이 아니라 20년 넘게 이어진 미국 정당의 흐름 속에 일어난 결과"라고 진단하고, "트럼프는 백인 저소득층의 투표 참여 여부, 힐러리는 샌더스 지지자 흡수가 대선 승리의 관건"이라고 전망했다. 2000년 이후 총 10번의 양당 전당 대회를 모두 참석한 김동석 상임이사는 "양당 모두 정당 재편성기에 있다"고 진단했고, 한국에는 "미국 내부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미 관계의 바른 전략이 세워질 수 있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인터뷰하고 있는 필자(왼쪽)와 김동석 이사. ⓒ권오재

"'백인 힘만으로 백악관 간다'는 트럼프, 이민자 입장에선…"


권오재(권) : 오늘(7월 28일)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수락 연설을 마지막으로 민주-공화 양당의 전당 대회가 모두 끝난다. 양당 행사에 대한 총평을 한다면?

김동석(김) : 민주당 전당 대회가 공화당과 비교해 세 배 정도 큰 규모로 치뤄졌다. 원래도 유권자 등록 숫자나 대의원수가 민주당이 두배 많다. 그러나 등록된 유권자의 투표율이 공화당이 높기 때문에 선거가 박빙이다. 이런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이번 전당 대회는 그 규모의 차이가 더 컸다. 전통적인 공화당 주류의 불참에 그 원인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무엇보다 소수 인종의 처지에서 공화당 전당 대회는 가장 힘들었다. 공화당은 원래 백인 중심이지만, 그동안의 전당 대회는 이민자들에게도 어필하기 위해 비백인 유권자에게 우호적인 분위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트럼프의 선거 전략은 "백인들의 표만으로도 백악관으로 간다"이기 때문에 대의원도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들이 거의 없었다. 대의원뿐 아니라 전당 대회 참관인들 중에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프라임 타임 연설에 한인도 포함이 되어서 눈길을 끌었다. 트럼프가 스스럼없이 인종적 편견을 드러내는데도 불구하고 트럼프 지지 연설을 하는 것은 정체성에 있어 아쉬운 부분이었다.

권 : 그래도 한인이 주요 정당의 연사로 섰다는 것은 한인들에게도 좋은 일 아닌가?

김 : 개인에게도 영광일 수 있고, 한국이나 교포 사회에서 보기에도 자랑스러운 일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인종적 편견을 고집하고, 이민자를 적대시하는 입장을 분명히 한 상황에서 연설을 하는 것은 개인의 영광을 떠나 소수 인종에 대한 차별과 맞서 싸우고, 정치적 위상과 힘을 키우기 위한 일을 하는 활동가의 입장에서는 자랑스럽게만 볼 수는 없는 문제다. 이런 공화당의 특성 때문에 소수 인종의 정체성을 가지고 정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공화당 당적으로 가지고 연방 의회에 진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콜린 파월이나 콘돌리자 라이스 같은 공화당 인사들은 흑인에 대한 대표성이나 권익보다는 개인의 능력으로 참여한 경우다. 오바마 대통령도 개인적으로 백인 주류 사회에 들어가 뜻을 펼칠 것인지, 흑인 커뮤니티와 함께 흑인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일을 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엘리트임에도 불구하고 후자를 선택해 시카고 슬럼가로 들어가 흑인 정치 참여 운동을 한 것이다. 개인적 참여보다는 힘을 모아야 하는 소수계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시각으로 양당의 전당 대회와 정치활동을 봐야할 필요가 있다.

이번 민주, 공화 양당의 전당 대회는 인종적 측면에서 두 정당의 차이가 더 확연히 갈라지는 모습을 보였고, 민주당에서는 흑인, 히스패닉, 한인을 비롯한 아시안계의 참여가 매우 활발했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렇다면 민주당 전당 대회에서 한인들의 활동은 어땠나?

김 : 한인을 비롯한 아시안계가 주최하는 행사와 활동이 매우 활발했다. KACE와 워싱턴 지구 한인연합회가 민주당내 아시안 조직인 AAPI(Asian Americans and Pacific Islanders)가 주최하는 행사에 메인 스폰서로 참여하기도 했다. 사실 미국에서 유색 인종은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으로 구별될 뿐 한인을 따로 분류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시안 중에서도 중국, 인도, 베트남, 필리핀인에 비해 한인들은 소수다. 일본인은 한인과 비슷한 규모이지만 정치적 영향력에서는 한인을 압도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제 한인들은 정치적 결집과 영향력을 키워가는 출발점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전당 대회를 통해 드러난 것은 양당 공히 새로운 사회 환경과 정치 조건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재편성의 전환기라는 것이다. 이런 시기에 자리를 잡아야 한인들의 정치 진출이 활발해 질 수 있다. 그러나 공화당의 경우 새로운 시대 변화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트럼프라는 인물이 후보가 됐다. 민주당 경선의 샌더스 현상도 민주당에 대한 경고였다. 이를 통해 볼 때 양당 모두 민심을 담아낼 그릇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음이 드러난 전당 대회라고 할 수 있다.

: 2000년 이후 양당을 합쳐 10번의 전당 대회에 모두 참석했는데 이유가 있나?

: 연방의회 의원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의원들을 만나는 일이 하늘의 별따기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소수계로서 전당 대회장까지 찾아가 미국을 움직이는 의원들에게 한인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음을 각인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번에 클리브랜드에서 케빈 맥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패트릭 맥헨리 공화당 하원 원내 수석부총무와 교류하는 수확이 있었다. 이들은 한인 유권자 단체 활동에도 관심을 보였다. 필라델피아에서도 아시안계 의원들과 함께 유태계 유력 정치인인 브렛 셔먼 의원, 예산과 국방분야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삭스비어 벳세라 의원 등과 만났다. 이런 교류를 통해 한인들의 존재감을 심어주고, 계속적인 교류로 한국과 한인 사회 친화적인 의원 그룹을 강화, 확대하는 것이다.

▲ 캐빈 맥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와 만나고 있는 김동석 이사. ⓒ김동석


▲ 삭스비어 밧세라 의원과 김동석 이사. ⓒ김동석

트럼프, 백인 저소득층을 치밀하게 공략했다


: 양당의 기존 전당 대회와 비교할 때 올해는 매우 이례적이고 엉망인 행사로 평가하고 있다. 왜 그런가?

: 미국의 전당 대회는 경선에서 최종 승자가 된 후보를 중심으로 당의 단합과 결속을 꾀하고, 모든 역량을 3개월 여의 대선 레이스에 집중시킴으로써 경쟁력을 키우는 출발점이다. 때문에 전당 대회에서 후보 외의 정치인의 이름이 주목을 받는 일이 없다. 게임이 끝나고 연출되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공화당의 경우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트럼프 지지 선언을 하지 않아 전당 대회장이 아수라장이 됐고, 민주당도 겉으로는 잘 진행되는 것 같지만 샌더스 지지자들의 힐러리에 대한 비토가 매우 강하다. 필라델피아 거리에서 후보인 힐러리보다 샌더스 티셔츠를 입고, 샌더스를 연호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지 않나. 전당 대회장 안에서도 오바마 대통령 등이 매우 정중하게 힐러리 중심의 단합을 호소하고 있지만 녹록치 않은 모습이다.

권 : 백인 중심의 공화당, 다양한 인종 구성의 민주당의 차이가 더욱 확연해진 것이 이번 전당 대회의 특징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유권자 비율에서 백인 비율이 줄어들고, 인종 구성이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이런 공화당의 선택에 의아해하는 반응이 많다. 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

: 이번 전당 대회의 모습을 2016년의 돌출된 상황으로, 이변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트럼프의 선출, 샌더스의 선전은 모두 20여 년간 양당이 만들어 온 흐름의 결과다. 공화당의 경우 레이건 시대 이후 냉전이 종식됨에 따라 백인 중심 정당에서 외연을 넓히는 방향으로 당의 체질을 바꾸자는 논의와 노력이 있었다. 유색 인종에게도 문호를 개방하는 온정적 보수 전략이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걸프전이 발발하면서 논의가 흐지부지되고 기존의 정체성이 유지, 강화됐다. 이는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벌인 아들 부시 집권까지 이어졌다. 높은 인기의 레이건 효과, 전쟁에 따른 지지도 유지라는 달콤함에 취해 혁신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새로운 보수 가치와 비전 수립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트럼프 현상이 아니었다면 공화당도 이번 대선에서 외연을 넓힐 수 있었을 텐데, 지금까지 새로운 변화에 준비되지 못한 공화당은 이런 기회를 놓쳤다. 히스패닉을 잡지 않고는 백악관 입성이 어려운 것이 미국 대선인데, 히스패닉인 마르코 루비오나 히스패닉계 부인을 둔 젭 부시가 경선에서 패배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말 등 자질이 의심되는 트럼프가 세계를 이끈다는 미국의 대통령 후보가 된 것에 대해서는 혼란스러운 시선이 많다.

: 트럼프는 경선에서 후보가 되기 위해 치밀한 계산과 전략으로 움직였다. 트럼프는 대선 출마를 시사한 2014년 6월 이후 대도시의 학력의 높고 부유한 백인 주류로부터는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정확히 인식하고, 조용히 전국의 시골을 돌며 백인 저소득층을 공략했다. 스스로를 미국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치 참여에는 소극적이었던 백인들을 움직인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과 낙후된 생활환경에 큰 박탈감을 가진 백인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낸 것이다. 30년 가까이 미국 정치 현장에 있었던 나도 트럼프의 유세 현장을 다니며 미국 시골에 이렇게 인구가 많은지 처음 알았다.

트럼프는 이렇게 시골로만 다니면서 "당신들이 어려운 것은 멕시코인들과 같은 이민자들 때문이다. 우리의 일자리를 뺏어가는 그들을 장벽으로 막아야 한다"와 같은 언설로 그동안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자극했다. 본격적인 경선 레이스가 시작되기 전에 드러나지 않지만 치밀하게 움직인 것이다. 이렇게 600만~700만 명에 이르는 유권자들을 새롭게 공화당에 편입시켜 경선에서 승리했다. 공화당 지도부도 이런 상황에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당황했고, 전문가와 미디어들도 백인 하층민들의 어려움에 둔감했다. 트럼프는 그것을 건드린 것이다. 트럼프가 가장 강조하는 것이 어려운 현실에 분노하고 있는 "침묵하는 다수(silence majority)"다. 트럼프는 이들의 지지를 통해 후보가 되려는 전략에 충실하게 막말을 서슴지 않았던 것이고 이것이 주효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화당 지도부와 주류는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을 것이다. 대선 후보까지 지낸 존 매케인은 트럼프와 척까지 지고 있는 상황이다. 존 매케인은 멕시칸이 많은 애리조나의 상원의원인데 트럼프 현상으로 자기 선거까지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존 매케인 뿐만 아니라 지역구 선거가 어려워진 공화당 의원들이 많다. 이것이 공화당의 현실이다.

샌더스 열풍, 힐러리 조직력 넘지 못했다


: 샌더스 열풍이 강했던 민주당 경선은 어떻게 분석할 수 있나?

: 이번 민주당 경선과 전당 대회도 빌 클린턴의 집권 당시부터의 흐름을 봐야 한다. 빌 클린턴은 걸프전 승리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아버지 부시의 재선을 저지하기 위해 당의 가치나 이념과는 상관없이 표를 얻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뭐든지 흡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통해 클린턴은 재선까지 했지만, 민주당은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이에 대한 각성으로 민주당의 가치와 정책을 정립하는 노력이 일어났고, 그것이 2000년 앨 고어에 맞선 빌 브래들리 전 상원의원, 2004년 존 케리와 경쟁한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로 이어졌다. 2000년 당시 빌 브래들리가 선봉에 나서자 리버럴 성향의 민주당원들과 새로운 정치 세력의 결합이 이루어졌고 이 때 한인들을 비롯한 아시안계의 정치 참여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때 '부자 증세, 복지 확대, 양극화 해소'등의 정책이 민주당의 정체성으로 제시됐다.

두 후보가 연거푸 경선에서 패배했지만, 하워드 딘이 전국위원회 의장으로 2004년 전당 대회에 오바마를 데뷔시켜 전국적 스타로 부상시키고, 빌 클린턴의 최측근이었던 존 포데스타가 미국진보센터를 설립해 민주당의 가치를 정립하는 이론적 뒷받침을 하면서 결국 오바마 대통령이 힐러리를 누르고 후보로 선출되는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민주당은 공화당과는 달리 새로운 당의 모습을 정립하는데 일정 정도 성공했다.

: 그렇다면, 왜 새롭게 정립된 노선의 후보가 아니라 8년 전 경선에서 패배했던 힐러리가 후보로 선출된 것인가?

: 오바마로 성공한 민주당의 새로운 흐름이 이어지지 못하고 힐러리에게 후보가 돌아간 것은 다음을 이어야 할 후보의 부재 때문이다. 2012년 전당 대회에서 오바마의 다음 후보로 급부상한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의원이 권력 의지 부족으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지지할 후보를 잃은 세력은 친화성이 높은 버니 샌더스와 결합하게 되고 이를 동력으로 샌더스는 선전했지만 힐러리의 조직력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이런 맥락이 샌더스 현상의 밑바탕에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경우 공화당과는 달리 당을 새롭게 정립하는데 성공했고 이것이 샌더스가 대의원 확보에서 패배했지만 힐러리의 득표에 버금가는 1300만 표를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샌더스 현상은 이번 전당 대회에서 슈퍼대의원을 축소하는 등의 경선 규칙 변경을 이끌어냈다. 물론 지금부터가 아니고(Not from this time) 2020년부터 적용되지만. 힐러리가 2008년 경선 패배 이후 '흑인 대통령' 다음은 '여성 대통령'이라고 표방하면서 오바마에게 적극 협력한 것, 오바마의 당선으로 새롭게 형성된 흐름을 이을 후보가 권력 의지를 가지지 못한 것이 민주당의 경선 결과라고 할 수 있다.

: 이번 전당 대회와 대선후보 선출이 한국의 시민 사회와 정치권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계속해서 말했듯이 지금 이 시점에서 드러나는 결과나 단편적인 장면으로만 미국 정치를 봐서는 안 된다. 트럼프, 샌더스 현상 공히 정당 정체성의 확립 실패라는 역사와 민심과 동떨어진 정당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 정치권도 같은 문제에 직면해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한국의 시민 사회가 어떻게 시민들의 요구를 정치권에 반영시켜야 하고,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민심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정당을 변화시켜 나갈 것인지에 대해 이런 맥락 속에서 이해한다면 미국 양당의 실패와 치열한 노선 경쟁으로부터 참고할 것이 많을 것이다.

: 이번 대선을 어떻게 전망하는지?


: 선출된 후보 외에 다른 정치인의 이름이 나오는 전당 대회는 실패한 전당 대회다. 크루즈와 샌더스가 수없이 언급된 양당 행사는 모두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때문에 앞으로 3개월간 펼쳐질 대선 레이스는 복잡한 셈법이 얽혀 있다. 민주당에서는 샌더스 지지 세력을 진정시키고 힐러리에게 투표하도록 해야하는 과제가 있다.

미국 대선은 '스윙 스테이트'(어느 당도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선거 결과가 일정치 않은 경합주)의 선거 결과가 좌우한다. 힐러리로서는 이 경합주에서 샌더스에게 투표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너무도 절실하다. 그러나 현재까지 많은 샌더스 지지자들이 힐러리에게 투표할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힐러리와 민주당 지도부가 '샌더스 품기'에 공을 들였으나 전당 대회 직전의 '편파 경선' 폭로와 힐러리보다 더욱 보수적인 팀 케인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것이 힐러리에 대한 반감을 더욱 키워놨다.


또 한가지,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의 경쟁자였던 힐러리는 다음을 기약하면서 적극적으로 오바마 대통령 당선을 위해 뛰었고 실제로 자신의 지지자에 대한 통제력이 있었다. 그러나 샌더스의 지지자에 대한 통제력은 그에 비해 약하다.


트럼프는 러스트 벨트(콜로라도, 미네소타,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니아 등 쇠락한 공업 지대를 통칭)에 승부를 걸고 있다. 백인 인구 비율이 80%가 넘는 이 지역에서 트럼프는 "러스트 벨트는 클린턴 부부가 추진한 NAFTA(북미자유협정)로 망했다"는 공격이 먹혀들고 있다. 민주당 경선에서도 샌더스가 승리한 주가 많기 때문에 트럼프는 샌더스 지지자들이 투표에 참가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을 세우고 있다. 러스트 벨트에서 누구의 전략이 성공하고, 지지를 이끌어내느냐가 이번 대선의 결과를 가늠할 수 있는 관전 포인트다. 두 후보 모두 비호감도가 크기 때문에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한국 정치인들은 왜 미국의 말을 들으려고만 하나


: 마지막으로 한-미 관계와 미국 정치를 바라보는 한국에 전할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 김동석 이사. ⓒ권오재
김 : 미국은 한국에게 지금까지도 중요했고, 앞으로도 더 중요할 것이다. 또, 과거에는 미국의 이익이 한국의 이익이고, 한국의 이익이 미국의 이익이었지만 한국의 국력이 커짐에 따라 양국 기업이 경쟁하는 등 이해가 충돌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를 잘 관리하고, 조정하는 것이 한-미 관계의 발전에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에 대한 바람직한 이해가 필요하다. 미국 대선에 대해 계속적으로 강조한 것이 단편적이고 피상적이 아니라 큰 흐름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 관계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미국 전문가가 많지만 미국의 실제 정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미국의 흐름을 짚어내는 분석과 전망을 접하기가 어렵다.

미국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는 미국 내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한데 미국의 겉모습만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에서 워싱턴을 바라볼 때는 미국의 대외, 안보 정책이 전부인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을 움직이고 방향과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경제, 복지, 교육, 노동과 같은 국내 이슈다. 이를 이해하지 않고 미국의 대외 정책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미국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전략적 태도와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한국도 큰 나라가 됐기 때문에 미국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도 한국의 주장을 듣고 싶어하고 이를 반영할 자세도 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와 미 의회를 방문하는 한국 정치인들을 보면 여전히 미국의 이야기만 듣고, 배우려고 할 뿐 당당하고 책임있게 한국의 입장을 전달하고, 주장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그래서 미국 의원들이 나에게 "왜 한국의 정치인들은 의견이 없냐"고 묻기도 한다.


지금까지 미국의 입장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하는 수동적인 입장에만 머물러 있는데, 능동적으로 미국과 관계된 이슈들에 한국의 입장을 세워 주장하고 여기에 대한 미국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선제적 자세가 필요하다.


국가 대 국가의 관계에서 외교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한-미 관계에서 한국이 쥐고 있는 카드가 미국보다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국익을 위해서는 미국 정치권에 영향력을 키워야 하는데, 미국 내 한인들의 영향력을 키우는 것이 매우 유용한 방법이다. 여기에 분명히 덧붙일 것은 미국 내 한인들은 한민족이지만 미국인이라는 사실이다. 때문에 한국 정부와 전문가들은 한인들의 정치력 향상과 더불어 이들에게 한국의 이익이 곧 미국의 이익이라는 논리를 제공해 한인들이 미국을 설득하는데 도움을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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