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년' 페미니즘의 등장 "네가 하면 나도 한다"

[정희준의 어퍼컷] 누가 메갈리아를 욕하나

메갈리아를 둘러싼 논란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생성 및 분화라는 복잡한 과정 속에서도 특별히 하나의 사건 때문에 촉발됐다. 바로 '보복'이다. 그 보복만 아니었다면 나를 포함한 절대 다수 국민은 그런 인터넷 커뮤니티가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고 그런 소송, 그런 티셔츠가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 직업인의 생계를 끊었고 이에 그치지 않고 떼로 몰려다니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협박했다. 이들은 불매를 앞세워 협박해 상대를 굴복시켰고,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양심에 반하는) 억지 사과를 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그토록 떠들어대던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가 간단히 무너졌다. 급기야 이들은 작가들의 '창작의 자유'조차 인정하지 않겠다고 겁박한다. 이제 사상 검증까지 시도할 것이다. 21세기 홍위병의 등장이다.

먼저 정리해야 할 게 있다. 메갈리아 논쟁은 (현실 정치에 있어서)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 진보적 여성 언론인이 진보의 가치보다 여성의 가치를 우선시해 박근혜 지지로 전향한 적도 있듯이 페미니즘은 (전통적인 정치적) 보수와 진보의 구분을 넘어선다.

또 지금 메갈리아의 젊은 구성원 가운데는 일간베스트(일베)의 반작용으로 이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이도 있다. 반면 메갈리아를 공격하는 이들 가운데는 정의당 당원도 있고, 일베 성향의 남성이나 평범한 남성도 있다. 어떤 이는 이를 '상식 대 비상식'의 대결이라고 했던데 어찌 보면 게으르면서도 또 어찌 보면 무식을 드러내는 황당한 주장이다. 이 논쟁은 남성 대 여성의 갈등이라는 틀을 벗어날 수 없다.

하나 더. 반(反)메갈리아 측의 횡포를 지적하는 이들에게 자꾸 "메갈리아 가봤냐" "너희가 몰라서 그런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 하도 많은 사람이 친절하고 자세하게, 또 아주 자극적인 '엑기스' 같은 사례만 골라서 알려줘서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따위의 훈장질은 하지 말라.

가해자의 역겨운 훈계

반메갈리아 측의 주장 몇 가지를 먼저 살펴보자.

첫째, 그들은 메갈리아가 전체 남성을 매도한다며 그 악의성을 강조한다.

메갈리아에게도 아버지, 삼촌, 형제가 있을 테니 이 세상 모든 남성을 비하하고 공격하고 강간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즉, 메갈리아가 모든 남성을 공격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은 애초 사실과 맞지 않는다. 그러나 정말로 메갈리아가 모든 남성을 적대시한다고 한들 어쩔 텐가.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기본적으로 남성의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착취에 기반을 두고 그들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음을 생각해보면 '모든 남성'이라고 해도 사실 할 말은 없다. 굳이 '일부 남성'이라는 수식을 달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유시민의 말처럼 메갈리아 문제와 관련해서는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미안해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혐오에 혐오로, 또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메갈리아에 동의할 수 없다고 강변하는 이들이 참 많다. (혐오에 품격으로 대했어야 한다는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그들은 왜 남성들이 행해오던 그 이전의, 원초적인 혐오와 폭력엔 입을 닫고 그 반작용인 여성들의 혐오와 폭력에 이처럼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가.

이제까지 남성의 여성에 대한 착취와 폭력을 만끽하던 자들이, 누군가 이에 반항하고 그들의 행태를 따라 하기 시작하니까 이제 와서 "그건 혐오다" "폭력이다" "하지 마라" 하는 것은 가해자의 논리고 기득권의 행태다. (이 와중에 "둘 다 나쁘다"며 말리겠다고 나서는 이들은 더 밉다.)

셋째, 메갈리아의 패륜적 언어를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메갈리아가 온라인에서 구사하는 그 패륜적 언어를, 남성들이 온라인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구사하는 패륜적 언어에 더해 성희롱, 강간, 살인 등의 폭력과 동일선상에 놓고 논하는 것이야말로 패륜이고 만행이다. 이런 걸 두고 적반하장이라고 한다. 남자들의 무자비한 폭력은 외면한 채 여자들의 수다만을 '패륜적'이라며 비난하는 모습에서 더 나아가 여성을 훈계하려드는 모습에서는 역겨움마저 느낀다.

'잡년 페미니즘'의 새로운 출발, 메갈리아

넷째, 반메갈리아 측은 메갈리아가 '양성 평등을 추구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며 이들을 페미니즘과 분리시키려 한다. 고립시키려는 것이다. 메갈리아를 '소아병'에 비유한 전우용은 "가장 전투적인 그룹 중 다수가 자기들이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선구자이자 첫 세대라고 생각"한다면서 "한국 페미니즘의 역사가 100년에 가까운데, 이들은 그 역사를 아예 모르거나, 무시해도 좋은 것으로 치부"한다면서 이들에겐 '역사'가 백신이자 치료제라고 주장했다.

이 부분은 메갈리아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지점이다. 전우용이 말하는 한국의 페미니즘은 무엇일까. 그는 한국 페니미니즘의 역사를 100년이라고 했는데 그 100년은 어떤 역사인가. 도쿄음악학교 최초의 조선인 유학생이었던 성악가 윤심덕에서 시작해 "면죄부를 줄 수 없는 친일과 권력욕의 화신"이라는 박마리아를 거쳐 교수 부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 <자유부인>과, 친일파 여성계 지도자의 대명사 김활란을 관통해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로 이어지는, 그 품격 넘치는 지식인 중심의 엘리트주의 페미니즘을 말하는가.

아니면 1999년 차범근 감독의 아내 오은미가 남자들 앞에서 축구계(승부 조작)에 대한 입바른 소리 좀 했다고 "정숙한 여성이 필요하다"며 여성계 인사들이 오히려 앞장서 오은미를 비난하던 그 페미니즘을 말하는가. 또 아니라면 2011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나경원 후보가 일본 자위대 행사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자위녀'로 불리며 매도당하자 이런 식의 공격이 "계속 목에 걸렸던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박원순의 당선을 위해 "참고 넘어간," 진영 논리에 세뇌된 채 진보의 승리를 위해 여성을 희생시킨 그 페미니즘을 뜻하는가.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메갈리아는 지식인 기득권 여성이 대변하던 품격 있는 페미니즘도 아니고 진영 논리에 갇혀 진보의 승리를 위해서는 여성의 희생이 당연시되는 그런 페미니즘도 아니다. 메갈리아는 그야말로 '잡년'들의 페미니즘이다. 이제까진 사회적 관심이 될 수 없었던 저잣거리 여자들의 권리 주장이자 욕망의 표현인 것이다.

이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네가 하면 나도 한다'는 것이다. 이건 세계적으로도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나라든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여성의 흡연율이 올라간다. '네가 피우면 나도 피운다'는 것이다. 한국의 남성들이 룸살롱 드나들며 당당하게 성매매도 하니 여자들도 호스트바에 가기 시작했다. '네가 가면 나도 간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일베를 하며 여성을 모욕하면, 여자들이 메갈리아를 하며 남자를 모욕하는 것은 아침이 되면 해가 뜨는 것만큼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여자들이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줄 알았나.

그런데 나는 특히 메갈리아를 가리키며 이들은 "양성 평등을 추구하는 페미니즘이 아니"라고 떠들어대는 남자들이 정말 웃기다. 아니, 자기들은 언제 여성들에게 양성 평등을 줘봤나? 동등한 자격과 권리를 주기 위해 '양성 평등 5개년 계획'이라도 세워놓고 하는 말인가? 앞으로도 줄 생각 없으면서 메갈리아만 비난하며 이간질하는 그들의 모습은 정말 우습다. 비열한 건가?

"여성 해방 그 자체보다 여성 해방에 대한 남성들의 저항이 더 재미있다"

메갈리아를 비난하는 이들의 요지는 그들의 표현이 혐오적이고 패륜적이며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글 놀이(?)는 남자들을 좀 '불편'하게 했을 뿐이지 온라인을 벗어나지 않았다. 또 갈등이 생겨도 모금을 해서 소송을 통해 법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생각해보자. 우리 어릴 적 스승은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된다고 배웠지만 교장 선생님, 담임 선생님을 별명 부르며 욕하고 조롱하고 그러지 않았나? 그들에게 배운 그대로 '미러링' 하면서 말이다. 어쩌다 걸리더라도 선생님이 못 본 척 봐주고 그러지 않았나?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메갈리아가 자기들끼리 노는 방식 어디가 그렇게 문제인지 모르겠다. 그 정도의 해방구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일베처럼 광화문 네거리로 뛰쳐나오는 것도 아니지 않나.

한국의 여성 (운동)처럼 착하고 순종적인 여성 (운동)도 없다. 외국의 사례를 볼까? 과거 유럽이나 미국의 여성 운동은 기본적으로 불법 투쟁이었다. 딱 100년 전 "여성은 출산 기계가 아니다"라며 종교계를 비롯한 미국 사회의 엄청난 비난에도 불구하고 미국 최초의 산아 제한 진료소를 세운 마가렛 생어는 '음란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당시 불법이었던 피임을 알리다가 10일 만에 체포돼 감옥에 갇힌다. 다시 불법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만 하면 형량을 경감시켜 주겠다는 제안에 그는 "나는 지금 이대로의 법을 인정할 수 없다"며 거부하고 스스로 감옥행을 택하기까지 했다.

노골적인 폭력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 상영되고 있는 영화 <서프러제트>에서 잘 드러나듯 영국 등 유럽의 여성 참정권 투쟁은 폭력의 연속이었다. 공공 시설에 방화하고 정치인의 저택을 폭파하고 감옥에서 단식 투쟁을 이어가고 감옥 계단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시도하는 투쟁을 계속했다. 1912년 에밀리 데이비슨은 한 남자를 재무 장관으로 착각해 공격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출소 후 그는 여성 참정권을 알리기 위한 마지막 시도로 경마장에서 질주하는 왕의 말에 뛰어들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렇듯 여성들의 극단적일 뿐 아니라 불법이며 폭력적인 저항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프러제트>에서 체포된 여성이 취조 중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들이 폭력을 쓰는 이유는 "폭력만이 남자들이 이해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라고. 그렇다. 남성의 혐오에 여성이 혐오로 응대하고, 남성의 폭력에 여성이 폭력으로 화답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들의 '미러링'은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해방 그 자체보다 여성의 해방에 대한 남성의 저항의 역사가 더 재미있다"고. 1928년의 일이다. 너무 재미있지 않은가. 거의 100년 전의 이 명언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왜 남자들은 메갈리아를 못 견뎌할까. 왜 참지를 못할까. 왜 보복하고 떼로 몰려다니며 협박하고 사과를 강요할까. 불안한 것이다. 더 이상 이대로 놔두면 안 되겠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김형경은 아버지가 살아온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는 남자들이 어머니가 살아온 방식대로 살기를 거부하는 여자들을 보며 박탈감을 느낀다고 했다. 정희진은 여자들이 더 이상 참고 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 이 여자들은 이제 남자들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남자들에겐 정말로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이다.

여자의 인생, 그들은 가해자인 적이 없다

메갈리아 논쟁의 전선에서 대치하고 있는 두 집단은 아주 간단하고도 명쾌하게 두 진영으로 나뉜다. 그 기준은 남성의 여성 착취나 여성의 현실에 대해 (정서적으로) 동의하느냐이다. 교육을 통해, 머리로 받아들인 것은 의미 없다. 여성의 처지와 현실과 암울함을 이해하지 못한 자는 메갈리아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반메갈리아 남성 연대의 구성원들이 자신들도 피해자 내지는 약자로 여기고 있다는 현실에서 발생한다. 그들은 지금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모두 똑같이 힘들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지금 양성은 평등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논리와 주장은 "우리는 일베도 비판하는데 왜 메갈리아 비판은 못하는가"라며 항변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의 여성이 감내해야 하는 부담(사실은 부당함)은 여성의 인생 자체이라고 보면 된다. 여성은 명절날 수십인 분의 식사를 전쟁 치르듯 준비하는 것은 물론 술 취해 곯아떨어진 남편을 확인한 후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도맡는 것에 무덤덤하다. 영화가 끝난 후 화장실 앞 그 긴 줄 속 하나가 되어 하염없이 내 차례를 기다리는 것도 팔자로 받아들인다. 프로 야구 선수가 유명 치어리더조차 '창녀급'으로 만들어버리는 한국에서 여자라면 그런 모욕은 그냥 안경 끼듯 그냥 끼고 살아야 한다.

젊다고 다르지 않다. 대학에서도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성적이 좋지만 취직은 남학생이 훨씬 잘 하는 현실에 이젠 화도 나지 않는다. 이혼을 하고 싶어도 결국 여자에게 남는 건 최빈곤층으로의 추락 밖에 없으니 밥이라도 먹고 살려면 좀 맞더라도 그냥 사는 수밖에 없다. 사실 "제발 그만 좀 때려"하고 울부짖으며 빌어도 계속 때리는 남편이지만, 이혼 후 약속한 양육비를 제날에 주는 전남편 비율이 16%밖에 되지 않는다니 아이를 위해서라도 그냥 '맞을 짓' 하지 않고 조심조심 사는 게 더 낫다.

신문에 숱한 여성들이 강간당하고 심지어는 토막 살해당했다는 뉴스가 등장하지만 그냥 그게 내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여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지만 남자 친구에게 주먹으로 맞고 발길질 당하는 것은 정말 아프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 여겼던 남자 친구에게 지금도 사흘에 한 명씩 살해당하고 있다니, 남자 친구가 가끔 주먹으로 때리긴 하지만 그나마 자기 잘못을 알고 미안하다며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내는 내 경우는 차라리 다행이라 해야 할까.

양성 평등은 남성들의 몫

페미니즘, 즉 여성주의의 궁극적 목표는 양성 평등이 아니다. 그날이 언제 오겠나. 그래서 페미니즘이 꿈꾸는 것은 여성 해방이다. 이들의 목표는 "인류의 절반을 해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해방을 통해 인류의 나머지 절반을 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얻고자 하는 것은 바로 차별 없는 세상이다.

이를 쫓는 과정에서 일부 철없는 젊은 여성들이 '남자 따라 하기' '그대로 돌려주기' 놀이를 하다가 어린이와 장애인을 모욕하는 표현까지 그대로 따라 하기도 했다. 분명 바뀌어야 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보복에 나서는 행위는 옳지 않다. 스스로 심판관이 되겠다는 발상만큼 위험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일베와 메갈리아는 같지 않다. 같을 수가 없다. 그러나 혐오는 혐오를 낳기에 이들은 혐오라는 탯줄로 연결되어 있다. 혐오로 나오는데 품격으로 대할 이가 있겠는가. 일베가 없었으면 메갈리아도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물론 나는 비관적이다. 인류 역사와 함께 해온 남녀 간 불평등한 권력 관계가 메갈리아로 인해 조금이라도 바뀌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양성 평등은 여성보다는 오히려 세상의 권력을 거머쥔 남성들이 이뤄야 하는 것이다. 양식이 있다면 말이다.

메갈리아 같은 방식이 싫다면, 잘난 당신들이 한 번 나서봐라. 진짜 양성 평등이 무엇인지 보여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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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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