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론들은 한국이 중국의 강경 대응을 예측하지 못했다며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입장에서도 중국의 '대한국 정책 담당 그룹'은 마지막 순간까지 한국이 실제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를 배치할지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중국의 외교 정책은 지나치게 단선적이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어느 특정 국가의 관료층을 비롯해 학계, 재계 등 각 분야에 우호적인 그룹을 형성해 내고, 나아가 반체제 인사 보호 혹은 지원 등을 통해 해당 국가에 대한 카드를 쥐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한국에서 대체로 권력에 가까운 인사들과의 접촉에 머물렀을 뿐 결과적으로 우호적인 그룹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이제 중국으로서는 대한국 정책의 수정을 강요받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중국으로서는 외교·군사 전략의 변경이 '강제'되고 있다. 중국은 이제까지 G2로 표현되는 국제 균형 질서에서 누려 온 국제 공공재의 각종 이익을 더 이상 향유하지 못하고, 대신 사드 시스템으로 인해 초래된 '전략 불균형'의 극복을 위해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는 군비 경쟁에 돌입해야 한다. 더구나 사드 시스템 자체가 미완성이고 향후 더욱 확대돼 전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군비 경쟁은 무한대일 수밖에 없다.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사드의 한국 배치로 인해 그간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앞섰던 해군력과 미사일의 우위를 보장할 수 없게 되었으며, 특히 그간 일본 견제의 협력자이자 동북아의 지정학적 요충지인 한국을 상실했다. 아니, 상실했을 뿐 아니라 중국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자신에 대한 포위망을 구축하는 기지로 기능할 수 있는 한국이라는 존재를 목도하게 됐다.
1990년대부터 '아시아판(版) NATO'의 구축을 극도로 우려했던 중국으로서는 한국이 미-일 동맹에 편입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며, 이것이 '중국 포위'를 목표로 장차 더욱 확대될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변화가 위로는 국가 주석부터 아래로는 일반 시민들이 가장 열렬하게 환호했던 박근혜 정부로부터 받은 결과물이라 더욱 쓰라리다. 이 과정에서 국제 대국으로서의 국가적 위신 실추라는 결과를 손에 쥐어야 했던 중국으로서는 이번 사태를 커다란 충격이자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은 반드시 대응한다
결국 중국 외교는 실패했고, 중국 정부가 기존의 대한국 정책 담당 그룹을 사드 관련 실패의 책임을 물어 교체할 가능성도 높다.
한중 관계는 당분간 우호적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사드 배치로 커다란 좌절을 맛보고 국가전략의 변경을 강요받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반드시 대응하고 승부를 걸 수밖에 없는 객관적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구체적인 방안은 (중국으로서도 워낙 예상치 못하게 받은 결과라서) 지금 내부적으로 연구 중이겠지만, 어쨌든 한국으로 하여금 대단한 '아픔'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대응책을 전방위적으로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북한과 우호적 관계를 조성하는 등 북한 카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고, 한국으로의 관광객을 제한하거나, 각종 검역 및 기술 인증을 지연시키는 비관세 장벽을 활용하거나, 혹은 한국 기업의 중국 내 사업 입찰 중단 등의 조치도 예측될 수 있다. 나아가 직·간접적인 군사적 대응도 강구할 수 있다.
중국의 현실 적수는 일본
우리가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은 바로 일본이라는 요인이다.
지금 중국의 적수가 어느 나라냐는 질문을 받게 되면 대부분 미국이라 대답하겠지만, 사실상 중국의 현실적인 적수는 일본이다. 일본이야말로 근대 이후 난징(南京) 대학살 등 중국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수치와 굴욕을 맛보게 한 장본인이며, 현재도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적 잠재력을 보유한 현실적인 적수이다.
중국은 동북아 지역 구도에 있어서 숙명적 경쟁자인 일본이 '미-일 군사 일체화를 통해 군사 대국의 목적을 달성하고, 나아가 군사 수단으로써 아시아 인근국과의 영토·영해·자원 등 분쟁을 해결, 아시아를 주재(主宰)하는 정치 대국으로 발전하려 한다'고 파악한다.
따라서 중국 외교·군사의 가장 최우선적 전략은 '일본 제압'으로 설정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사드의 한국 배치는 이러한 중국의 전략을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 중국의 시각이다.
사드, '아베 구상'의 한 과정이기도
거시적으로 본다면, 현재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쇠락 과정에서 군산복합체의 영향력이 갈수록 확대·강화되고 있다고 분석될 수 있다. 이른바 '중국 위협론'은 일찍이 1991년 처음 제기되어 한때 그 대응책이 거창하게 회자되기도 했지만 '중국의 굴기'를 배경으로 한동안 자취를 감춘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남중국해 분쟁과 사드의 한국 배치는 동북아에서 미국과 일본이 군산복합체의 영향력 강화와 일본 우경화의 부상을 토대로 이제 '중국 위협론'을 뛰어넘어 공세적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미국은 자신의 최극성기를 지나면서 동북아에서 일본, 특히 그 자본에 의존하는 정책을 운용해 왔다. 미국은 유럽의 영국처럼, 아시아에서 일본과 철두철미 가치관을 공유하고자 했다. 위안부 문제에서 일관되게 일본을 지지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의도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집권기를 맞아 동북아의 맹주로서의 위상을 회복하려는 '아베 구상'과 결합되면서 만개했다.
일체화되고 있는 미일 관계나 위안부 문제 타결, 자위대 행사에의 한국 국방부·외교부 간부 참석 등 최근 일련의 한일관계의 궤적은 사실상 '아베 구상'이 일관되게 적용된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일찍이 1996년 4월 17일 발표된 '미일 신(新)안보 공동선언'과 이에 이은 '주변사태법'의 제정은 일본의 정치-군사적 역할이 확대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의 본격적인 우경화와 보수화의 발걸음은 빨라졌고, 아베 집권과 함께 전범국가 탈피와 재무장 그리고 헌법 수정으로 바야흐로 전쟁을 할 수 있는, 이른바 '정상국가' 혹은 군사대국화의 종착역에 이르렀다. 다시 사드 배치를 토대로 동북아 맹주를 향한 '아베 구상'은 본격적 출발점에 선 시점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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