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거나 사라져도 기업가 책임은 '제로'

[왜 기업 처벌법인가 ③] 기업 처벌, 안전의 시금석이 되는 이유 (下)

해마다 2400명이 산재사망으로 죽는 한국 노동자의 현실

"또 한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죽어나갔다. 서른다섯, 결혼한 지 2개월 되었단다. 살얼음 걷듯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조선소 노동자는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라. 어쩌면 우린 죽음에 면역되어 있는지도 모른다…….며칠만 지나면 젊은 사람이 참 안 됐구먼…. 에이 죽은 놈만 불쌍하지…. 슬픔은 잠시 뿐, 죽음의 마무리 조건으로 보상액수에 대한 이야기만 오고 가고, 오늘도 노동자 죽음을 뒤로 한 체 우리가 만든 배 명명식을 하면서 휘황찬란한 식장에는 높으신 나리들 손뼉 치는 소리와 뱃고동 소리는 하늘을 찌른다. 저 배 어딘가에는 죽어간 동료의 땀 냄새가 배어 있는데…."

10년 전 조선업 사내 하청 노동자의 추도식에서 동료 노동자가 읽은 추도사이다. 그러나 너무도 암울하게도 우리는 여전히 매일, 매달 추도사를 읽고 있다. 삼성전자 에어컨 실외기 수리를 하다 난간이 통째로 떨어져 죽은 노동자, 19살 어린나이로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다 뜯지도 못한 컵라면과 함께 내동댕이쳐진 김 군, 고려아연 현장에서 방호복도 없이 일하다 황산을 뒤집어써서 병원에서 몸부림치다 절명한 플랜트 노동자, 삼성전자에서 이름도 어려운 화학물질을 다루다 각종 희귀병과 직업성 암으로 수년째 투병하다 죽은 노동자, 현대중공업에서 두 달 사이에 떨어져 죽고, 끼어서 죽고, 빠져서 죽은 노동자들의 죽음. 죽음들…. 그리고 그나마 노동조합조차 없어 원인도 모른 채 개인과실로 몰려서 억울하게 죽고도 가족 외에는 눈물조차 흘리는 이 적었던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들.

매년 2400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사고로 직업병으로 죽어나가고 있다. 2000년 이후에만 3만5000여 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 심각한 것은 반복적인 산재사망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용광로에 안전난간이 없어서 쇳물에 빠져 죽는 끔찍한 사고가 2010, 2012, 2013년 반복해서 일어났다. 심야에 하청 노동자가 철도 선로 보수작업을 하다가 열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도 계속 반복해서 일어난다. 올해 발생한 스크린 도어 사망사고도 서울 메트로 2호선 전철역에서 2013년, 2015년, 2016년 반복해서 일어났다.

같은 유형의 사고도 반복해서 일어나지만, 똑 같은 기업에서 산재사망도 반복해서 일어난다. 현대중공업은 2014년에 하청 노동자 11명을 포함해서 12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현대중공업은 2015년에도 3명이 사망하고, 2016년에도 6명의 노동자가 죽어나갔다. 무차별적인 공습과 폭격이 반복되었던 이라크 전쟁 사망자가 3만9000여 명, 아프가니스탄 전쟁 사망자가 1만4000여 명이라고 한다. 2000년 이후에만 정부 공식 산재사망 통계만 3만5000명인 한국의 노동자는 그야말로 전쟁터에서 일하고 살아남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정기훈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기업이 구속된 건수

세계적으로 경제규모 11위를 오르내리고 OECD 가입국가인 한국이 산재사망 1위를 계속 수성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장의 안전보건 법규를 밥 먹듯이 위반하고 노동자를 죽음에 내 모는 기업에 대한 처벌이 새털처럼 가볍기 때문이다. 매년 진행하는 노동부의 사업장 정기 감독에서 90%이상의 사업장이 법 위반으로 적발된다. 그러나 사업장에 내려지는 과태료는 평균 95만 원에 불과하다. 대검찰청에서 발간한 2004년부터 2013년까지의 범죄분석 보고서에 의하면 10년간 기업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구속된 건수는 0건이다. 그나마, 2012년 이후 부터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행정처분인 과태료로 전환되면서 2012년에는 기소도 9건에 불과하고, 2013년에는 1건이다. 게다가 위험의 외주화로 하청 노동자 산재사망이 줄을 잇고 있지만 원청의 기업 책임자가 처벌된 사례는 없다.

산재사망이 발생한 기업에 대한 제제중의 하나인 영업정지와 산재다발 명단 공표. 작업중지권도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있다. 노동부의 요청과 지자체의 권한으로 되어 있는 영업정지의 건수도 적고, 기업의 세금으로 재정을 운영하는 지자체에서 과징금으로 낮추어 처리하거나, 처리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산재 다발 명단을 위험의 외주화로 소규모 하청 업체의 명단만 줄줄이 발표되고 있다. 매년 2400명이 사망하는 현실에서 노동부는 부분작업중지만 1년에 20여건 수준에서 발동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같이 하청 산재가 수년 동안 반복적으로 발생한 사업장에도 2016년에 들어서야 처음으로 작업중지권이 전면적으로 발동되었고, 그 결과 과태료 몇 천만 원 수준에서 그치고 말았다.

각종 산재예방관련 법규 위반에 대한 기업처벌이 미약하다 보니, 기업은 안전보건에 대한 투자를 할 이유도 없게 된다. 수백만 원의 과태료, 벌금이나 공무원에 대한 정기 상납으로 해결되는 상황에서 어떤 기업이 안전보건관리 인력을 늘리고, 보호구나 안전시설에 투자를 하겠는가?

기업규모가 클수록 안전보건지출 비중 낮아

이는 대기업으로 갈수록 더욱 심각하다. 2013년 아르곤 가스 누출로 5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당진 현대제철은 1년 반 사이에 20여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그러나 1만6000명에 달하는 노동자가 일하는 현장에 보건관리자는 2명에 불과했다. 안전보건투자 예산은 2013년에는 0원이었던 것이 사고조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백혈병 등 직업병 산재사망 노동자가 줄줄이 발생한 삼성전자는 2013년까지 별도의 전담 보건관리 조직도 없었다. 안전보건공단의 연구보고서에서 2014년 7월 조사에 따르면 기업 규모가 클수록 매출액 대비한 안전보건 지출 비중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000인 이상 사업장은 전체 평균보다 낮았다. 노동부 점검 결과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지엠대우자동차, 현대건설, 두산중공업 등 대기업은 보건관리자 선임 의무 위반이 적발되었다. 그러나 처벌은 과태료 300만원 수준이어서, 기업은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적발 사업장에서 다시 법위반을 반복하고 있었다. 대기업은 안전보건 관리와 투자를 잘하고 있다는 허울 좋은 착시효과가 깨져 나가는 순간이다.

2011년 울산 세진중공업에서 하청 노동자 4명이 질식 사망했다. 울산지역의 노동조합과 단체들이 거세게 싸우면서 지역 신문에 사망사고에 대한 사과 광고를 게시했다. 이후 우리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재벌 대기업의 임원들이 머리 숙여 사과를 하는 신문보도를 접하고는 한다. 그리고 10여명이 넘는 원청과 하청업체들이 줄줄이 조사를 받고, 여수 산단 대림산업 폭발사고에서는 대림산업 본사 압수수색이 진행되기도 했다. 원청 기업들이 피해자들과 보상합의를 했다는 보도도 잇따른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기업이 머리 숙여 사죄를 한 것은 기업이미지 손상으로 인한 주가하락을 막기 위한 퍼포먼스에 불과하고, 피해자에 대한 보상금액은 하청 업체에게 돌아와 결국 하청업체만 폐업에 이르게 된다. 지리한 재판을 이어나가다 세간의 관심에서 잊히면 결국 말단 관리자에게만 진행되었던 형사처벌은 집행유예로, 원청 기업의 책임자는 무죄로, 그리고 기업이 받는 벌금은 몇 백만 원으로 정리되고 마는 현실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이 우리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산재사망과 재난참사는 기업과 정부정책 및 조직의 구조적인 살인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동안 각종 사고에 대한 처벌은 지나치게 협소한 안전규정 준수여부나 기술적 위반을 중심으로 처벌해 왔기에 처벌 대상도 하급직원이 되고 처벌 형량도 낮았다. 반복되었던 성수역 사고, 강남역 사고도 안전 매뉴얼 준수여부가 쟁점이 되고, 결국 사망한 노동자의 개인과실로 사건이 종결되고 말았다. 심지어 철도사고에서는 사고조사를 받던 기관사노동자가 자살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산재사망은 수백조항의 안전보건법이 있어도, 기초적인 안전교육이나 안전난간조차 없이 예방을 방치하는 기업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기업에 대한 조직적인 책임과 처벌이 따르지 않는 한 사고 예방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이나 형법으로의 처벌은 불가능한 현실을 바꾸려면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 제정되어야 실질적인 예방효과를 낼 수 있다.

둘째는 처벌강화는 반복적인 산재사망을 막는 중요한 열쇠이다. 일부의 전문가들은 "처벌만이 능사인가? 처벌은 예방강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라는 주장을 한다. 물론, 산재 사망은 구조적인 문제여서 사업장안의 안전보건 투자를 늘리고,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세우는 등 다양한 종합 대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사업주의 의무사항이다. 법 위반과 산재사망에 대한 기업의 처벌이 새털같이 가벼운 현실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스스로 안전의식을 깨우쳐서 예방투자에 나서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것이다.

영국은 기업 살인법 제정으로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에 대해 매출액에 기초한 제한 없는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 10건 내외의 판결 중 일부는 기업의 매출액을 초과하는 과징금 판결을 하기도 했고, 1명의 노동자 사망사고에 7억에 가까운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미국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업장에 대해 1개 회사에 220억에 가까운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기업법인과 경영책임자에 대한 강력한 형사처벌, 과징금 등이 부과되어야 한다. 산재사망과 법위반에 대한 형사처벌, 과징금 등이 강화되어야 기업이 예방에 투자를 하고, 안전보건법을 준수하게 될 것이다. 외국에 도입되어 있는 각종 예방법규와 제도가 현장에 실효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법 위반과 산재사망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이나 기업 살인법 외에도 민사소송, 집단 소송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기업의 책임을 묻는 방안이 보장되어 있다.

한국의 기업 살인법인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 이제는 제정되어야 한다. 중대재해 기업 처벌법 제정은 생명과 안전을 존중하는 사회적 가치가 세워지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으로 한 획을 긋지 않는다면, 전 방위로 뻗어나가는 기업의 폭주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매년 2400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고, 2014년 세월호 참사와 오늘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이어지는 오늘,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제정하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 사회는 어떠한 나락으로 또 떨어지게 될 것인가. '잊지 않겠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라는 우리 모두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 걸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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