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세 가지 법칙 따라서 움직인다

[독서통]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13일부로 20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예전에 비해 야권이 큰 힘을 가졌습니다. 그만큼 개혁을 바라는 유권자의 열망이 크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 겁니다.

자연히 보수 세력은 개혁을 거부하기 마련입니다. 개혁의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우리는 다양한 반대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왜 이건희 손자에게 밥을 주느라 세금을 써야 하느냐." "법인세를 올리면 기업 투자가 줄어들어 경제가 무너진다." "복지병에 무너진 다른 나라의 사례를 되새겨야 한다."

익숙한 말이죠? 개혁을 거부하는 보수와 이와 같은 반응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2012년 세상을 떠난 석학 앨버트 O. 허시먼의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이근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는 보수의 수사학을 세 갈래로 정리한 책입니다. 원래 제목 '반동의 수사학(The Rhetoric of Reaction)'을 염두에 두면 책의 내용이 훨씬 더 감이 오죠?

이 책은 시민적 권리(법 앞에 평등), 정치적 권리(보통 선거권), 사회적 권리(복지 국가)를 쟁취하는 200년간의 진보의 여정 속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맞서 보수 세력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설명합니다. 200년간 '세상을 조종해온 그 논리'를 파악하고서, 앞으로 20대 국회에서 벌어지는 공방을 본다면 정치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겠죠?

<프레시안>과 <시사통>이 함께하는 '독서통'은 20대 국회가 개원한 13일 서교동 <시사통> 스튜디오에서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과 함께 진행했습니다.


20세기의 인물이 쓴 '보수의 수사학'

김종배 : 이번 주의 주제,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강양구 : 지난 4.13 총선 결과에 모두가 놀랐죠. 짧게 요약하자면 '변화에 관한 갈망이 총선에서 표출됐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유권자의 요구를 떠안은 20대 국회가 13일 개원했습니다.

김종배 : 벌써부터 20대 국회를 둘러싸고 입법 전쟁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만큼 정책 의제를 둘러싸고 여야 간에 힘겨루기가 본격화되겠죠. 이 싸움은 논리의 대결이 될 텐데, '이걸 입법해야 한다' '그래선 안 된다'는 입장에서 다양한 레토릭(수사)이 구사되겠죠? 오늘은 바로 이 문제를 짚어볼 참입니다.

우리가 오늘 소개할 책의 원제가 '반동의 수사학'이죠?

강양구 : 네. 한국에서 반동의 수사학이라는 표현이 독자에게 거부감을 일으킬 우려 때문에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로 바꾼 모양이에요. 변화의 목소리가 커지고, 사람들이 실제로 변화를 위해 움직일 때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방식의 논리를 동원해서 반대 목소리를 내고 또 개혁의 발목을 잡는지를 안내한 책입니다.

김종배 : 바로 예를 들어서 설명해 볼까요. 새 국회의 쟁점 법안의 하나가 법인세 인상이 될 겁니다. 야권은 지금 22%인 법인세를 이명박 정부 이전인 25%로 회복하자고 하고, 새누리당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된다는 입장이죠. 법인세를 올리면 기업이 투자하지 않고, 따라서 일자리가 줄어들어 민생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거예요.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는 법인세를 둘러싼 공방처럼 보수 진영이 애용하는 논리의 패턴을 소개합니다. 이 책의 지은이가 누구죠?

강양구 : 이름을 꼭 기억하면 좋겠어요. 앨버트 O. 허시먼입니다. 1915년에 태어나서 2012년에 돌아가셨어요. 온몸으로 20세기를 보내온 분이죠.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의 원서가 1991년에 나왔는데, 이 분 나이를 염두에 두면 75살에 쓰신 책이죠.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노학자의 지혜가 곳곳에 가득합니다.

이 분이 2012년에 돌아가시고 나서, 2013년에 미국에서 평전이 나왔어요. 원서 본문만 650쪽에 이르는 엄청나게 두꺼운 제목입니다. 그런데 평전 제목부터 흥미로워요. 'Worldly Philosopher(세속의 철학자)'입니다. 이 책이 하도 인상적이어서 제가 출판사 몇 곳에 번역을 권유했는데, 그 중 한 곳에서 책이 나올 예정이에요.

저만 인상적으로 읽은 게 아닙니다. <아웃라이어>, <다윗과 골리앗> 등으로 국내에도 팬이 많은 말콤 글래드웰이 2013년 10월에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책을 읽고서 "감동에 겨워서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죠. 도대체 허시먼이 어떤 분이기에 그의 평전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을까요?

김종배 : 궁금합니다. (웃음)

강양구 : 허시먼은 독일 베를린에서 유대인 부잣집에서 태어났어요.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에서 공부를 하다가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파시스트에 맞서 싸우겠다고 결심하고 프랑스 군에 자진 입대합니다. 그 때 마르세유에서 나치로부터 난민의 탈출을 돕는 일을 하죠. 프랑스가 독일에 완전히 함락되고 나서는 미군에 재입대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경제 관료로 변신해요. 특히 유럽의 전후 재건 과정 또 콜롬비아 등에서 경제 자문을 역임하죠. 이때의 경험이 나중에 대학에 자리 잡고 나서의 연구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1956년부터 예일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면서 좌파와 우파를 넘나드는 후학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연구 업적을 두루 남기죠.

김종배 : 한 사람의 삶이라고는 믿겨지지가 않는군요. 오늘의 초대 손님은 누구죠?

강양구 :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을 모셨습니다.

김종배 : 어서 오십시오.

장석준 : 반갑습니다.

강양구 : 장석준 기획위원을 민주노동당에서 정의당으로 이어지는 진보 정당의 정책통으로 기억하는 분이 많으실 거예요. 실제로 오랫동안 한국 진보 정당 운동을 해오셨습니다.

장석준 : 양다리를 걸친 셈입니다. 정당인이면서 나름대로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웃음)

▲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프레시안(최형락)

보수의 논리 1: 법인세 올리면 일자리 줄어든다

김종배 : 이 책은 언제 읽으셨어요?

장석준 : 책은 나오자마자 사놓았습니다. 다만 한동안 서가에 비치했다가, 최근에 읽었습니다. 이 책도 그렇습니다만, 이분 책이 대체로 길지 않은 분량 안에 복잡한 이야기를 단순명쾌하게 정리하는 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점에서 쾌감을 느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확인해 보십시오.

김종배 : 국내 정치 언어를 연상하면서 책을 읽게 되더군요. (새누리당의) 상투적인 논리가 많은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건 이렇게 정리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양구 : 이 책에는 지난 200년간의 중요한 세 가지 개혁 국면이 소개됩니다. 시민권을 획득하는 장면, 선거권을 획득하는 장면, 그리고 복지 국가를 만드는 장면입니다. 이 책은 이 세 과정을 중요한 역사의 진보기로 정리하고, 이 국면에서 반동 세력이 어떤 식으로 변화를 막으려 했는지를 소개합니다.

김종배 : 허시먼이 정리한 바에 따르면, 이 세 국면에서 보수 진영이 주로 구사한 논리가 세 가지입니다. 하나하나 짚어보죠. 첫 번째가 '역효과 명제'죠? 어떤 뜻인지 설명 해주세요.

장석준 : '너희가 개혁이니 혁명이니 하지만, 그 결과는 너희의 목적과 반대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역사적으로 이 전형적 논리를 편 대표적 인물이 프랑스 대혁명을 비판한 에드먼드 버크입니다. 버크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프랑스 대혁명이 애초 혁명을 주도한 세력이 타도 대상으로 꼽은 영국의 기존 질서, 즉 귀족과 자본가 사이의 타협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회 구조가 더 바람직하다는 걸 입증하는 결과만 낳을 거라는 겁니다. 이런 논리가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온 것을 두고 허시먼은 역효과 명제라고 정리했습니다.

김종배 : 간단히 말해 '세상이 네 뜻대로 돌아가는 줄 아느냐' 하는 꼰대 논리죠? 이걸 고상하게 표현한 게 역효과 명제라고 정리해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앞서 법인세 인상을 둘러싼 공방을 얘기했는데, 이게 전형적인 역효과 명제 아닙니까? 법인세를 인상하면 외국 기업이 국내에 진출하지 않고, 기업은 투자 안 하고, 그래서 오히려 안 좋은 결과만 낳는다?

장석준 : 허시먼의 논리를 염두에 두고서 좀 더 들여다보면 이렇게 설명이 됩니다. 법인세를 올려서 기업의 이윤을 사회로 더 많이 환원하겠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기업이 여러 가지 꼼수를 써서 그들의 몫을 더 키울 거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애초 개혁의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안 좋은 결과를 낳으리라는 겁니다.

강양구 : 복지 국가와 관련해서는 이런 식이죠. '세금을 많이 걷어 복지를 강화하면 더 많은 사람, 특히 가난한 사람이 더 잘 살 것 같지? 그런데 실은 복지 국가가 되면 중산층 목소리만 커져서 가난한 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은 오히려 더 가진 사람에게 돌아가!' 이런 게 전형적인 역효과 명제죠.

보수의 논리 2 : 세상은 네 뜻대로 되지 않는다

김종배 : 두 번째로 '무용 명제'가 있습니다. 이건 어떤 거죠?

장석준 : 개혁을 하더라도 고치려고 하는 문제가 잘 고쳐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역효과 명제가 훨씬 강한 부정이라면, 무용 명제는 냉소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냉소적이라는 이유는, 인간이 뭘 해봐야 바뀌는 건 없다는 식이라서 그렇습니다. 반면 역효과 명제는 의도와 정반대 결과를 낳는다는 강한 부정의 의미고요.

김종배 : 우리가 젊을 때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듣죠. 변죽만 울린다는 소리도 많이 듣고요. 이런 말이 사실 무용 명제의 변주에 들어갑니다.

강양구 : 아무리 너희가 시끄럽게 세상을 바꾸자고 얘기한들, 사람이 그리 쉽게 안 바뀐다는 식이죠. 허시먼 주장 가운데 곧바로 떠오르는 사례는 이런 것이 있죠. '시민이 투표권을 가지면 보통 사람도 권력을 나눠 갖게 돼 평등 사회가 올 것 같지? 그런데 실제로는 새로운 정치 계급이 지배자로서 시민을 지배하게 돼. 결국, 바뀌는 건 하나도 없단다.'

같은 맥락에서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이들은 이렇게 주장했죠. '혁명을 일으켜서 노동자가 권력을 잡와 봤자 어차피 그들도 관료가 될 거야. 그렇게 관료가 또 보통 사람을 지배하는 새로운 계급 사회가 과연 너희가 꿈꾸는 유토피아일까? 세상이 너희들 마음대로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아.'

장석준 : 허시먼이 무용 명제를 이야기하면서 그 대표적인 논자로 가에타노 모스카, 빌프레도 파레토와 같은 이들의 이야기를 인용합니다. 이 사람은 보통 선거권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세상은 일정한 법칙 하에서 돌아가므로, 한낱 인간이 손댄들 그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 대표적 인물이죠.

세상이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로 나뉘어 있는 건 법칙이기 때문에 참정권을 늘리고 사회 개혁을 한들 이 구조를 깰 순 없다는 거죠.

강양구 : 읽으면 독자들이 혹할 부분들이 있어요.

장석준 : 실제로 이 명제들이 설득력 있어요. 그러니 오랜 기간 강력히 작동한 거죠.

김종배 : 일종의 숙명론인데, 결국 이는 정치 허무주의로 연결되네요.

장석준 : 서구적 맥락이 있어요. 앞에서 살펴본 역효과 명제는 섭리론이고, 무용 명제는 숙명론이에요. 역효과 명제는 '너희는 하느님 손바닥 안에서 움직일 뿐이고, 세상은 하느님 의지로 움직인다'는 겁니다. 여기서 하느님이란 혁명에 반대한 구 지배 체제를 뒷받침하는 보수적 기독교 논리 안의 하느님이죠. 그리고 무용 명제는 말씀하신 대로 숙명론이고요.

보수의 논리 3 : 보통 사람이 정치하면 위험하다

김종배 : 마지막은 '위험 명제'입니다. 이건 뭡니까?

장석준 : 위험 명제야말로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하고, 또 좌우 모두 자주 사용하는 논리입니다. 지금 회자되는 개혁이 실은 위험하다는 겁니다. 왜 위험하냐면, 우리가 여태 세상을 잘 유지한 궤도를 이탈하게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과거의 개혁 성과까지도 무너뜨릴 위험을 갖고 있다는 거죠.

허시먼은 이 책에서 영국의 역사 전개 과정을 예로 들어 설명하죠. 영국 역사가 시민권 개혁, 선거권 개혁, 사회 개혁으로 이어져 왔다고 봅니다. 그럼, 두 번째 단계에서 '선거권 개혁을 하면 여태 이룬 시민권 개혁, 즉 인신 보호나 재산권 보호 등의 성과가 무너질 수 있다'는 식의 위험 명제가 장도했죠.

강양구 : 무식한 노동자가 선거로 권력을 잡으면 자유 시민의 재산을 빼앗을 테니, 우리가 혁명으로 쟁취한 자유권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식이죠?

장석준 : 네. 그리고 일단 선거권이 도입된 다음에는 '사회 개혁(복지 확대) 때문에 선거권 개혁을 통해서 이룩한 민주주의 체제가 위협받는다'는 반동의 목소리가 커졌고요.

김종배 : 역효과 명제가 섭리론이고 무용 명제가 숙명론이라면, 위험 명제는 뭘까요?

장석준 : 위험 명제는 역효과 명제나 무용 명제에 비해서는 약한 논리입니다. 그러니까 반동 세력의 입장에서 이전 개혁의 성과는 어느 정도 인정하는 거죠. 다만 새로운 개혁이 과거의 개혁까지도 훼손할 수 있다는 걸 강조하면서, 새로운 개혁을 막는 데 위험을 강조하는 논리를 펴는 거죠.

김종배 : 위험 명제는 사실 꼭 보수의 논리라고만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장석준 : 이 책에서 말하는 '반동'이 사실 반개혁이거든요. 그런데 개혁의 주체는 좌파가 될 수도 있고 우파가 될 수도 있죠. 어쨌든 허시먼이 보기에는 현실에서 개혁이 요청됐을 때, 거기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나올 수 있는 논리가 이 세 가지(역효과, 무용, 위험 명제)에서 벗어나지 않더라는 겁니다.

진보의 수사는 보수의 거울?

김종배 : 책 후반에 가면 진보 진영에서 나타나는 오류도 얘기합니다.

장석준 : 보수의 논리가 세 가지 명제로 압축되어 나타나니, 진보의 논리는 세 가지 명제에 대응하면서 진화했다고 하죠.

강양구 : 책에 거론된 세 가지 대립 쌍을 소개해 보죠.

반동 : 계획된 행동은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진보 : 계획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반동 : 새로운 개혁은 옛 개혁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진보 : 신-구의 개혁은 서로가 서로를 강화해 줄 것이다.

반동 : 계획된 행동은 사회 질서의 항구적이고 구조적인 성격(법칙)을 바꾸려 한다. 따라서 그것은 전혀 효과가 없고 무용하다.
진보 : 계획된 행동은 이미 '굴러가고 있는' 강력한 역사의 힘에 의해 뒷받침된다. 거기에 맞서는 것은 아주 쓸데없는 짓이다.
장석준 : 무용 명제에 대항해 진보 진영은 '오히려 변화가 법칙'이라는 명제를 내세운다는 게 허시먼의 입장입니다. 아주 전형적인 예가 카를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이 되겠죠. 위험 명제와 대응해 진보 진영이 개발한 논리는 '개혁하지 않으면 더 위험하다'는 거죠. 우리의 상황을 예로 들자면 '지금 복지를 늘리지 않으면, 비정규직이나 저소득층이 봉기해 체제가 흔들릴 테니, 개혁이 필요하다'는 식이죠.

역효과 명제는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습니다. 역효과 명제는 어찌 보면 진보 진영에 관한 가장 신학적인 비판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버크가 프랑스 대혁명을 비판할 때 나름의 근거를 들었어요. 버크가 역효과의 사례로 든 건 영국의 귀족 중심 의회주의 체제였습니다. 버크 입장에서는 자부심을 갖고 이야기할 만한 시대적 근거가 있었죠. 그 당시 프랑스를 제외하면 영국의 체제가 가장 앞섰다는 건 분명했으니까요.

김종배 : 장석준 위원께서는 진보 정당 운동을 하셨고, 더구나 정책 쪽에서 오래 일하셨습니다. 일하면서 얻은 경험에 비춰 볼 때, 허시먼의 세 가지 명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장석준 : 책을 읽으면서 제게 친근하게 다가온 내용은 위험 명제였습니다.

한국에서 최근 역사적 성과를 남기면서 사회 개혁을 이룬 성과가 뭔가를 생각해 보면 산업화인 것 같거든요. 산업화 후 다음 과제로 뭘 할 것이냐를 두고 진보 진영은 복지 확충을 드는데, 보수 세력은 '너희가 말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산업화로 얻은 성과가 무너진다'고 하죠. 산업화의 성과마저 무너뜨릴 수 있다거나, 아직 산업화도 완성되지 않았다는 논리죠.

朴 대통령, 협박하는 개혁자

김종배 : 박근혜 대통령께서 13일 국회 개원 연설을 하셨는데요, 책을 읽고 나서 연설을 보니 새롭게 다가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연설문 일부를 그대로 읽어보겠습니다.

"이제 비대해진 인력과 설비 등 몸집을 줄이고 불필요한 비용을 삭감하는 과감한 구조 조정을 추진하지 않으면, 해당 기업은 물론 우리 산업 전체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습니다. (…)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미루거나 회피한다면 고통은 더 커질 것이고, 국가 경제는 파탄에 이를 것입니다. 구조 조정이 아무리 힘겹고 두렵더라도 지금 해내지 못하면 스웨덴 말뫼의 세계적인 조선 업체가 문을 닫으면서 골리앗 크레인이라 부르던 핵심 설비를 단돈 1달러에 넘긴 '말뫼의 눈물'이 우리의 눈물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협박이죠. 이건 어떤 레토릭으로 읽어야 할까요?

장석준 : 허시먼의 분류법을 딱 맞게 적용하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제가 보기에 박근혜 대통령은 스스로를 개혁자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굳이 허시먼과 연관해서 보자면, 산업화 성과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아직 불안정하므로, 이 국면에서 필요한 개혁이 구조 조정이고, 이에 반대하는 야당과 시민 사회가 반동이다. 이런 식으로 위치를 설정했죠.

이 자체는 대단히 영리한 정치적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공세는 세계적으로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자본이 들고 나온 논리이기도 합니다. 자본이 개혁이고, 복지 세력이 반동이라는 신자유주의 세력의 공세에 정치적 주도권이 바뀌었죠.

그런데 박 대통령이 저런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습니다. 다른 전장에서는 자기가 밀리니, 전장을 새로 만든 겁니다. 이 '다른 전장'은 허시먼이 말한 '사회권을 쟁취하려는 곳'이죠. 이 과제에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밀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장을 옮긴 겁니다. 어떻게 보면 적극적이지만, 달리 보면 도피한 셈입니다.

김종배 : 일종의 협박인데요.

강양구 : 이 책을 거꾸로 읽어 가면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석준 위원께서도 잠시 소개하셨지만, 진보의 레토릭 중 '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면 더 위험해진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를 개혁자로 정립했으니, 저런 식의 협박에 가까운 말을 거침없이 할 수 있겠죠.

장석준 : 이 책이 전제하는 역사관이 있습니다. 허시먼은 거대 담론을 전제하길 싫어하는 저자이지만, 이 책은 분명 토머스 마샬의 '시민적 권리→정치적 권리→사회적 권리'로 시민권 개념의 확장되었다는 도식을 따릅니다. 마르크스주의보다 온건하지만, 분명 진보를 전제하는 역사관이죠.

이 전제에서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은 확연히 갈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죠. 박 대통령은 스스로를 개혁의 위치에 놓고, 사회권을 요구하는 사람을 반개혁의 위치에 놓습니다. 하지만 허시먼의 역사관에서 보면 시민권이 사회권까지 쟁취하는 식으로 발전해야 하니 박 대통령 논리의 보수성은 명확히 드러나죠.

기존 보수-진보의 논리를 넘어라

강양구 : 앞에서도 잠깐 언급이 되었습니다만, 진보 세력에게 이 책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장석준 : 반동의 출발은 결국 현 상태 유지죠. 그런데 이 사람의 논리를 진보 세력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허시먼 책 곳곳에서도 그 이유가 나옵니다.

모든 인간의 행위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진보 세력의 가장 큰 결점이 사회 공학적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의도로 정책을 펼치면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을 했는데, 이는 분명한 약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보수 세력이 이 약점을 잘 헤집었죠. 그 결점을 두고 역효과니, 무용이니 했죠.

그런 점에서 진보 세력의 수사가 보다 세련되게 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 세력의 공격을 받아 안으면서, 20세기 수준의 단순한 사회 공학적 생각을 극복한, 복합적 개혁 방안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종배 : 실천적 고민 지점은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것 아닙니까?

장석준 : 이 책 맨 끝에 허시먼이 한 말이 있는데요. 어찌 보면 허무한 결론을 내립니다.

보수 논리와 대응하는 진보 논리를 얘기하는데, 어떤 논리를 따르라고 이야기하진 않습니다. 아까도 언급했듯이 결국 둘은 거울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하는 꼴이므로, 지금까지의 보수와 진보 논리의 틀 안에서는 서로를 설득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결론은 기존 보수-진보 논리의 틀을 넘어서야 한다는 거죠.

또 하나 중요한 게 있습니다. 허시먼이 명시적으로 이야기한 건 아니지만, 끊임없이 염두에 두는 건 현실입니다. 논리를 넘어서는 현실 때문에 논리가 먹혀들지 않는 사례를 이야기하죠. 현실이 너무 비참하면 역효과 명제를 듣던 사람들이 오히려 혁명을 생각하게 된다는 얘길 하죠.

예를 들어, 허시먼은 제3세계 사례를 듭니다. 어느 정도 권리가 보장된 사회에서는 역효과 명제가 먹힐 수 있는데, 오랫동안 식민지 상태에서 허덕인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여러 국가에서 '너희가 어떤 노력을 해도 더 안 좋은 결과만 나온다'고 한다면 오히려 돌을 맞을 수 있다는 거죠. 지금도 너무 비참하므로, 역효과 명제를 펼치면 듣는 이의 분노를 자극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현실을 보다 잘 드러내는 세력, 현실에 보다 잘 호소할 수 있는 세력이 등장하면 논리의 원환 관계를 넘어서는 정치 행위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종배 : 그런데 현실의 영역에서 논리 대 논리의 문제가 공정한 게임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도 지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논리가 얼마나 널리 전파되느냐, 누가 먼저 공세를 취하느냐는 등의 조건에 따라 '그게 아니다'라고 맞대응하는 순간 함정에 빠질 수 있지 않습니까? 논리를 하나의 패턴으로 정리하는 건 좋지만, 논리가 작동하는 환경은 고려해야겠죠.

허시먼과 레이코프

장석준 : 이 책만으로 현실을 얘기하려면 말씀하신 대로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끊임없이 얘기하는 지배 세력의 헤게모니, 최근 조지 레이코프가 주장하는 프레임 론 등이 보완되어 같이 얘기되어야 전체 그림을 더 잘 그릴 수 있겠죠.

다만, 기존의 이론이 얘기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보수 세력 담화의 유형이 다양한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는 통찰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허시먼의 이 책이 의의가 있습니다.

김종배 : 맞습니다. 너무나 상투적이고 뻔한 내용이 반복된다는 걸 우리도 뉴스를 보면서 느끼죠. 이 책은 그 느낌에 관한 구체적 상을 그려줍니다.

장석준 위원께서도 얘기하셨지만,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레이코프예요. 레이코프의 책과 이 책을 같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앨버트 O. 허시먼 지음, 이근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웅진지식하우스
강양구 :
맞습니다. 특히 진보의 언어를 어떻게 구성할 것이냐를 고민하는 분은 두 저자의 책을 함께 보면서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장석준 : 레이코프는 서구 철학에서 '이성'이라고 말하는 장치가 작동하기 전에 감성이나 감각의 차원에서 이미 우리의 틀이 짜였고, 그게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죠. 허시먼은 이성의 틀 안, 즉 담화로서 이야기되고 논리로서 이야기되는 안에서 보수의 주장을 유형화하죠. 둘을 보완해서 보면 전체적인 그림이 보다 풍부하게 그려질 것 같습니다.

김종배 : 다시 우리의 20대 국회로 돌아가 보죠. 이번 국회에서 칼자루를 쥔 건 야권이 될 텐데, 그간 여러 숙원 과제가 입법 과제로 떠오르겠죠. 그렇다면 새누리당에서 어떻게 대응 논리를 펼 것이냐가 주목거리일 텐데, 이 대목에서 이 책의 내용이 하나의 중요한 분석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주 시사통은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라는 책으로 이야기를 풀어 보았습니다. 나와 주신 장석준 위원, 고맙습니다.

장석준 :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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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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