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의 경향 한 가지. 기업은 점점 작아진다. 유튜브, 스냅챗 등 최근 두각을 나타낸 정보기술(IT) 기업들은 대개 직원 수십 명 규모로, 1조 원대 기업 가치를 기록했다.
아직은 한 가지 경향일 뿐이다. 기업 규모와 가치 사이에 상관관계가 끊어진 현상이 보편적이라고 보긴 무리다. 여전히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업종이 많다. 그러나 미국 실리콘밸리가 세계 경제를 선도해온 한 축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규모가 작은 기업이 자본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얻는 사례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성공한 기업이 채용을 안 한다
여기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당장 이들 IT 기업 직원부터 규모를 키우는 걸 원치 않는다. 기업의 실적이 직원 수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이런 기업들은 직원들도 대개 지분을 갖고 있다. 주식 시장에 상장했을 때 돌아올 이익을, 되도록 적은 수가 나누고 싶어 한다. 그래야 자기 몫이 커지니까.
이런 상황은 실리콘밸리 사람들이 가장 잘 안다. 그래서 요즘,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직원이 수십 명인 기업이 1조 원대 평가를 받는다면, 직원 한 명이 100억 원 이상의 가치를 만든 셈이다. 이런 직원들이 과연, 카페인 음료를 컴퓨터 옆에 쌓아놓고 매일 밤을 새우는 다른 엔지니어들보다 얼마나 더 유능한가. 두 배, 세 배, 아니 열 배?
예전에는 열 배쯤 유능하다는 걸로 어느 정도 설명이 됐다. 하지만 지금은, 선을 넘어 버렸다. 대학교 휴학생인 젊은 엔지니어가 신생 기업에서 1년쯤 일하더니, 100억 원대 자산가가 됐다. 오랜 공부 끝에 박사 학위를 받고, 평생 연구에만 몰두한 원로 엔지니어와의 격차가 너무 크다. 만약 젊은 엔지니어가 나이 든 박사보다 열 배쯤 유능하다면, 수십억 원대 자산가는 될 수 있다.
하지만 100억 원대 이상은 능력 논리로 설명하기 힘들다. 능력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나머지 자산을 어떻게 봐야 하나. 모조리 행운 때문이라고 봐야 하나. 정부와 사회의 역할은 없었나. 예컨대 실리콘밸리 커뮤니티를 유지하기 위해 쏟은 다양한 노력에 대한 보상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100억 원대 대박을 친 젊은 엔지니어가 실은 그저 고만고만한 실력이라는 걸, 다들 안다. 비슷한 실력을 지닌 친구가 먼저 성공한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이렇게 성공한 기업이 직원을 안 뽑는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엇비슷한 실력을 지녔는데 누구는 천문학적 자산가가 되고 다른 누구는 백수가 되는 일이 잦아진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하나.
IT 벤처 기업인이 본 기본 소득
기본 소득(Basic Income) 주장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관심을 끄는 한 이유다. '와이컴비내이터(Ycombinator)'는 실리콘밸리에서 영향력 순위가 상위권인 벤처 캐피탈인데, 기본 소득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성공한 기업이 규모를 늘리지 않는 현상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또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이 꼭 노력 및 재능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기본 소득에 관심을 둔다. 기본 소득이란, 일종의 시민 배당 개념이다. 주식회사의 주주는 회사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아도 배당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시민이라면 무조건 일정한 배당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한국에선 다음 창업자 이재웅 씨가 비슷한 경우다. 그는 프랑스 유학 시절 인지 과학을 전공하면서 인공지능을 연구했다. 신기술이 정신 노동까지 대체할 가능성에 대해 일찍 눈을 떴을 게다. 그는 기본 소득을 한 가지 대안으로 본다.
최근 스위스에서 기본 소득 도입을 둘러싼 국민 투표가 진행됐다. 네덜란드, 핀란드 등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파이낸셜타임스> 등 시장주의 성향 매체도 기본 소득 논의를 비중 있게 다뤘다. 그러니까 한국 언론도 관심을 보인다.
스위스에서 기본 소득 도입은 일단 부결됐다. 그러나 핀란드에선 곧 도입되리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실리콘밸리에서 진행되는 기본 소득 연구도 가속이 붙을 게다.
좌파-우파 경계가 무너진 쟁점
성공한 기업이 직원을 더 안 뽑고, 인공지능이 정신 노동까지 대체하는 시대. 기본 소득이 꼭 좋은 대안인지에 대해선 다양한 의문이 따른다. 실제로 지금 유럽에서 진행되는 기본 소득 논의는, 기존 사회 복지를 축소 혹은 폐지하는 걸 전제로 한다. 저소득층 입장에선 기본 소득 도입이 더 나쁠 수 있다.
또 사회 복지 수요를 꼭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의료, 보육, 교육 등은 정부가 정치적 책임을 지고 직접 운영해야 한다는 게 유럽 사회민주주의 진영의 이상이었다. 이런 사회 서비스 부문을 시장에 맡기고, 시민이 각자 현금으로 소비한다면, 정치적 책임 소재가 모호해진다. 예컨대 병원 기업보다는 공공 병원이 시민의 민주적 통제에는 더 유리하다.
이런 이유로, 유럽의 진보 정당 및 노동조합 가운데 상당수가 기본 소득 도입을 반대하거나 주저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파 시장주의자 가운데 일부가 기본 소득을 지지한다. 물론, 기본 소득을 지지하는 좌파, 반대하는 우파도 있다. 요컨대 기본 소득 지지자 가운데도 우파와 좌파가 있으며, 반대자 역시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좌파-우파 구분으로 설명하기 힘든 쟁점인 셈이다.
거칠게 구분하면, 진보 진영에선 불안정 노동에 주목하는 입장일수록, 기본 소득에 호의적인 편이다. 기존 노동운동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대책으로는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게다. 실업 급여 등 기존 복지 제도는 대부분 사회 보험 형식이다. 따라서 직장 경험 자체가 없는 사람은 혜택을 보기 어렵다.
흔히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기본 소득에 비판적이라고 하는데, 역사를 살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전성기였던 1970년대 말에 당내 소수파가 기본 소득을 주장한 적이 있다. 문제의식은 지금과 같다. 당시 스웨덴식 복지 국가 모델은 '완전 고용' 상태를 전제로 작동했다. 그 결과, 공공 부문 채용이 대폭 늘었다. 이런 상태가 지속 가능하겠는지에 대한 의문이 스웨덴 사회민주당 내 소수파에서 나왔다. 인류 역사에서 오래된 아이디어인 기본 소득을 검토하자는 게다. (<경제 성장과 사회 보장 사이에서>(옌뉘 안데르손 지음, 박형준 옮김, 책세상 펴냄)) 실제로 미국 독립 전쟁에 영향을 줬던 토머스 페인, 흑인 민권 운동을 주도했던 마틴 루터 킹 목사 등도 기본 소득을 주장했다.
또 보수 진영에선 기존 사회 복지 모델에 대한 반감이 강할수록 기본 소득에 호의적이다. 핀란드의 우파 정당이 이런 입장이다. 독일에선 대기업 총수가 기본 소득 전도사 역할을 했다. 일본에선 극우 정치인들이 기본 소득을 공론화했다.
홍준표 지사, 기본 소득 기사 검색부터 하길
그렇다면, 한국의 보수 정치인의 입장을 살필 때다. 그들은 뭐라고 하나. 마침 홍준표 경상남도 지사가 의견을 냈다. 스위스에서 성인에게 월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 원)을 주는 기본 소득 안이 국민 투표에서 부결된 뒤인 지난 6일, 그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스위스의 국민 기본 소득 300만 원 보장 국민 발안 국민 투표에서 국민 77퍼센트가 반대하여 부결되었다고 합니다. 무상 복지가 확산 일로에 있는 지금 우리나라 좌파들의 입장에서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스위스 국민들이지만 깨어있는 국민이 나라를 지킨다는 입장에서 보면 참 대단한 스위스 국민들입니다. 선열들의 헌신으로 지킨 이 나라가 바로서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합니다."
황당한 내용이다. 일단 그는 스위스에서 좌파, 진보 진영이 대체로 기본 소득 반대 입장이었다는 걸 모르고 있다. 또 우파 시장주의 범주에 속할 미국 실리콘밸리의 투자 자본이, 유럽의 보수 정치인들이 기본 소득에 관심을 두는 사실조차 외면한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건, 스마트폰을 손에 드는 일이다. 그리고 '기본 소득'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는 일이다. 혹시 외신까지 뒤지는 게 부담스러울지 모른다. 그래서 이 글을 썼다.
한 가지 더.
홍준표 지사는 고려대학교 72학번이다. 어린 시절, 도시락을 싸지 못해서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고 한다. 어렵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고시에 합격했다. 그리고 승승장구해서 도지사가 됐다.
그가 40년쯤 늦게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가계 소득 순위가 똑같다는 조건으로 말이다. 지금 20대 중반 나이일 텐데, 그래도 성공한 법조인이 될 수 있었을까. 그래도 페이스북에 저런 글을 올릴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