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격차 사회'가 만든 신세계의 주인공

[프레시안 books] <극우의 새로운 얼굴들>

2011년 7월 22일, 노르웨이는 충격에 휩싸였다. 극우파인 진보당을 지지하는 중산층 청년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우퇴위아섬에서 노동당 정치청년캠프를 찾은 아이들 69명을 총살했다. 그는 "좌파들이 유럽을 무슬림의 손에 넘겨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알던 노르웨이는 이미 흔들리는 중이다. 극우 포퓰리스트의 지원을 등에 업고 진보당은 노르웨이 원내 2당으로 부상했다. 극우의 목소리를 퍼뜨리는 인터넷 사이트 'right.no'는 노르웨이 외교부의 지원금을 받는다. 이들은 친 이스라엘, 반 무슬림 성향을 노골적으로 보이고, "유럽 좌파가 석유 자원 확보를 위해 무슬림과 손잡았으며, 그들의 이민을 종용한다"는 음모론을 공공연히 퍼뜨린다.

노르웨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국의 영국수호연맹, 이스라엘의 레하바, 프랑스의 국민전선, 그리스의 황금새벽당…. 지금 유럽은 극우 신경증을 앓고 있다. 적잖은 나라의 의회에서 극우 정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민자를 공격하라는 음악이 활개치고, 극우주의자가 서포터 석(영국에서는 엔드(end)라고 함)을 차지하는 축구 클럽이 힘을 얻는다. 국민전선의 거두였던 장마리 르펜은 제2차 세계 대전 때나 거론되던 우생학을 거론했다. 나치 제국을 찬양하던 오스트리아 극우당 대표 외르크 하이더의 장례식은 TV로 생중계됐고, 온 나라가 추모 열기에 휩싸였다. 유럽 대륙 전 지역에서 극우가 일어나고 있다.

비단 유럽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이승만과 박정희를 신화화하려는 움직임이 노골적으로 일어난다. 넷우익을 중심으로 한 증오의 언어가 인터넷을 장악했다. 일본의 혐한 시위는 이제 대중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유력한 대권 후보로 부상했다. 전 세계가 극우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 주변부로 밀려난 유럽의 백인 중산층, 노동계층 사이로 극우가 스며들었다. ⓒyoutube.com

<극우의 새로운 얼굴들>(세르주 알리미 외 지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펴냄)은 유럽을 중심으로, 최근 목소리를 키워가는 극우 포퓰리즘 현상을 정면으로 조명한다. 이 책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좌파 언론 <르몽드>의 자회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격월간으로 펴내는 단행본 '마니에르 드 부아' 시리즈의 하나다. 번역본은 유럽 지식인 28명이 유럽 극우 포퓰리즘 현상을 주제별로 나눠 실은 글에 국내 필진 8명의 글을 추가했다. 국내 필진의 글은 한국에서 일어나는 극우 현상을 다뤘다.

책은 유럽을 중심으로 우경화가 득세하는 현상을 소개하고, 여러 각도에서 이를 분석한다. 콕 집어 이 세계적 흐름의 근본 원인을 하나로 설명하긴 어려우나, 경제적 불평등의 가시화가 중요한 단서로 꼽힌다는 점은 짚어야 한다. 특히 우리에겐 살기 좋은 국가 정도로 이해되는 북유럽, 서유럽 복지국가에서 일어나는 우경화 대목이 흥미롭다.

노르웨이는 중요한 본보기다. 노르웨이의 우경화에 관해 쓴 레미 닐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는 신자유주의가 노르웨이에 극우주의 창궐을 자극했다고 본다. 1990년 이후 노르웨이 상위 1% 계층의 수입과 평균 임금의 격차는 같은 기간 영국이나 미국보다 더 빠른 속도로 벌어졌다. 1984년부터 2008년 사이, 노르웨이 전체 금융 자산 중 중산층 보유분의 비중은 절반으로 감소했다.

절대 빈곤, 절대 소득의 문제가 아니다. 빈부 격차가 벌어지면 필연적으로 불만은 쌓이고, 갈등은 표면화한다. 누군가의 주머니는 빠른 속도로 불어나는데, 나의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고 느끼는 이가 많아진다. 서서히 추락하기 시작한 노르웨이 중산층은 이민자를 노려봤다. 진보당은 이에 편승했다. 더는 복지 국가 모델이 작동하지 않으리라고 강조했고, 이민자를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맥락에서 우퇴위아섬 학살 사건이 송곳처럼 어떤 경계면을 뚫었다. 책은 이 사건으로 확인된 노르웨이 우파 중산층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그들은 자신이 국가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라고 믿지만, 더는 국가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다. 새로운 국가 공동체 개념, 즉 민족·국가적 소속보다 시민권을 강조하는 조금 더 세계주의적이고 평등한 개념을 강요받기 때문이다."

주변부로 밀려난 중산층은 필연적으로 나의 불만을 합리화할 논리를 찾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도와주는 (것처럼 보이는) 우파의 달콤한 목소리는, 필연적으로 우리의 공동체를 해하려는 이민자를 껴안자는 세계주의적 좌파 사상보다 더 설득력을 얻기 마련이다. 그리스의 네오나치 세력인 황금새벽당이 무자비한 폭력에도 불구하고 의회에 진출한 배경에는 그리스 경제위기가 있다.

실제 극우주의자를 책이 굳이 '포퓰리스트'로 명명하는 이유는 달콤함에 있다. 극우 세력은 답답한 이들에게 청량제와 같이 명쾌한 논리를 제공하고, 저들이 잘못이지 너의 잘못은 아니라고 설득한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우리가 극우주의자에 관해 갖는 선입견과 약간 궤도를 달리하는 인물이 여럿 등장한다. 네덜란드 극우파 정치인 핌 포르투완이 대표적이다. 2002년 암살된 그는 한때 사회주의자였으며,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였다. 그는 여성과 동성애자 인권을 침해하는 이슬람 문명을 혐오하다 극우주의자가 되었다. 아버지 장마리 르펜의 뒤를 이어 국민전선의 대표가 된 마린 르펜은 금융 자본 반대, 신자유주의 반대 목소리를 높인다. 마린 르펜은 한편에서 "유럽의 마지막 마르스크주의자"로도 불린다. 이들에게 기존 좌·우파 개념은 의미가 없다.

실제 지금 유럽 극우의 대표 얼굴은 나치와 같은 이들이 아니다. 독일 공화당, 스페인 팔랑헤당, 이탈리아의 삼색의 불꽃과 같은 파시스트 단체들은 거의 멸종 위기에 가깝다. 유럽 극우 전선을 대표하는 모습은, 마치 한국의 새누리당과 비슷하다. 극우적 공감대를 분명히 갖고 있지만,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라면 좌파적 정책을 사용하는 데 거리낌 없다.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벨기에의 민족전선, 덴마크의 민중당, 핀란드의 진정한 핀란드당, 프랑스의 국민전선, 헝가리의 조빅, 네덜란드의 PVV, 러시아의 민주자유당 등이 그러하다. 이들은 제도권 진입을 목표로 하며, 실제 적잖은 정당은 자국 원내 1당으로 올라섰다. 선명한 기치로 진짜 극우에 머무르는 단체는 유럽에서도 한국의 일베와 같은 변방의 목소리에 불과하다.

▲ <극우의 새로운 얼굴들>(세르주 알리미 외 지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펴냄). ⓒ프레시안
때문에 프랑스 국제외교전략연구소(IRIS)의 장이브 카뮈 객원 연구원은 이들을 극우파로 부르는 것을 반대한다. 대신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UFO와 같은 이들로 '네오-극우주의 단체'를 설명하며, 이들을 급진주의자, 외국인 혐오자, 포퓰리스트와 같은 명칭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유럽에 전염병처럼 번지는 극우 포퓰리즘의 진정한 맨얼굴은 무엇으로 이해하면 될까. 반 이슬람이다. 늘어나는 이민자에 관한 혐오가 각개 약진하는 극우 포퓰리스트를 하나로 묶고 있다. 유럽으로 건너온 2500만 명의 무슬림이 5억 유럽인을 지배하리라는 공포가 노동자, 빈곤자, 중산층 백인을 극우의 이름 아래에 묶고 있다.

이는 약자를 린치하는 전형적인 증오다. 경제 위기가 유럽의 백인을 주변부로 몰아냈고, 그들의 분노를 사회적 약자(무슬림)에게로 돌리는 목소리가 이 기회를 틈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극우의 새로운 얼굴들>은 이 이야기를 정치, 사회, 문화적 관점에서 조명한다. 한국, 일본, 이스라엘, 인도에서 일어나는 극우의 이야기 역시 흥미롭다. 불행히도, 책을 덮고 나면 누구나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세계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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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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