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등록금 대신 임금을 받아야 하는 이유

[프레시안 books] <학생에게 임금을>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내가 받은 선물은 또 하나의 빚더미였다. 왼쪽엔 학자금 대출, 오른쪽엔 주택 대출을 얹었다. 양 발목에 빚 주머니를 차고 은행 문을 나섰다. 이자만으로 허리가 휘는데 대출을 더. 기가 막혔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되물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3년간 한 방송사에서 작가로 일했다. 방송 작가는 오늘 당장 잘려도 문제없는 비정규직이다. 해야 할 일은 많다. 취재, 자료 조사, 촬영 준비 등 하루 일거리는 수첩 한 바닥을 넘겼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섭외하려 온종일 전화기를 붙잡고, 밤새 테이프를 돌려보며 촬영 내용을 정리했다. 그렇게 한 달을 버티면 150만 원을 손에 쥐었다. 지출 내용은 일정했다. 1순위는 새벽 택시비와 식비였다. 일하는 이상 매일 써야 하는 돈이었다. 남은 월급은 읽고 싶던 책 한 권, 보고 싶던 연극 한 편 대신 대출을 틀어막는 데 쏟아 부었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내가 걷던 거리 위 누군가의 하루이기도 하다. 180여 개의 대학 도서관을, 자정 너머에도 불 켜진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다. <학생에게 임금을>(구리하라 야스시 지음, 서영인 옮김, 서유재 펴냄)의 저자는 그런 우리의 머리에 '정신 차리라'며 꿀밤을 쥐어박는다. '네 빚은 네 잘못이 아니다. 채무 노예로 내몬 것은 사회다. 왜 꼭 그 빚을 갚아야 하는가.'

4년제 사립대학생은 입학에서 졸업까지 평균 8510만 원이 필요하다. 이는 입학금, 등록금, 주거비, 교통비 등을 더한 금액이다(<대학생 삶의 비용에 따른 리포트>(더불어민주당 유기홍 의원, 2015년)). 최저 임금 6030원짜리 아르바이트를 5년간 매일 8시간씩 해야 내 힘으로 대학을 다닐 수 있다. 부모님 도움이 없다면, 20대 초반 대학생이 선택할 길은 장학재단과 금융권 대출이다.

저자는 대학이 공짜여야 하는 이유를 논한다. 오히려 학생은 돈을 받아야 하는 노동자라고 주장한다. 학생은 공공재인 지식 생산의 분명한 주체다. 지식 생산 노동에 따른 임금은 당연하다. 더불어 대학은 예비 노동자를 기르는 곳이기도 하다. 삼성, 현대, SK가 수확할 열매가 자라는 과수원이다. 그런데 이상한 과수원이다. 열매가 잘 자라는 데 필요한 물도, 거름도, 농약도, 열매 스스로 구해야 한다. 저자는 이점을 지적한다. 비료값에서부터 영글기까지, 노력에 대한 대가는 응당 주어져야 한다.

▲ 대학은 더는 미래를 보장하지 않은 채, 빚과의 도박장으로 변했다. ⓒ프레시안(최형락)

대한민국 청년 열 중 일곱은 부모님 돈, 내 돈, 은행 돈을 끌어 모아 대학에 간다. 입학식 날 우리는 대학생이자 채무자가 된다. 이렇게 간 대학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다. 빚 갚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을 찾는 것이다. 연봉 높은 대기업 몇 자리를 향한 경쟁이 시작된다. 취업 준비가 곧 자기 계발이다. 모두가 토익, 자격증, 공모전 등 스펙 쌓기에 몰두한다. 자연히 대학은 경영학, 경제학 등 실용학문이 주도한다.

등록금은 졸업 후 삶도 저당 잡는다. 지난 3년간 1만1200명이 학자금 상환을 못 해 법원에 가야 했다. 2015년 기준 학자금 대출 잔액은 12조3149억 원이며, 이 빚을 182만 명이 졌다. 신용 불량자의 순화된 표현인 신용 유의자가 2만 명에 육박한다. 나는 2만 명 중 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바동거린다. 사람다운 삶은 내일로 미루고 구멍 난 밥그릇 메우기에 오늘을 쓴다.

저자 구리하라 야스시는 일본 대학 시간 강사다. 일본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고등 교육 예산 비율이 0.5%에 불과하고, 공적 장학금은 대출뿐이다. 작가도 등록금을 일본학생지원기구에서 빌렸다. 그는 6827만 원의 빚을 안고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연 수입은 860만 원, 소득이 적어 대출 상환 기간이 유예됐다. 대학 사회를 둘러싼 세태만큼은 일본과 한국이 다르지 않다.

학자금 대출은 개인의 평생을 억압하고 사회의 근간을 흔든다. 우리가 등록금을 당연한 책무라 여기고 대학을 거쳐 갈 때, 구리하라는 글로 행동으로 대학 사회에 문제를 제기해 왔다. 정부는 고등 교육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겼다. 금융권은 이를 악용한다. 장학 제도란 허울을 씌워 상환 기간 연장, 저금리 대출로 유도한다. 사회의 정신적 가치를 책임지던 대학은 그 역할을 취업 양성소로 대신한다. 이 견고한 구조가 지금의 대한민국과 일본을 낳았다.

저자는 1960년대 대학 파업을 떠올리며 함께 부딪쳐 보자고 제안한다. 1960년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에서 학생 운동이 일어났다. 기성세대에게는 먹고 살 만한 시대였지만, 청년에게는 변화가 필요한 시대였다.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나와도 고용 불안에 시달렸다. 낙후된 환경, 주입식 교수법이 생각의 자유를 억압했다. 정부의 간섭은 대학 자치를 무너뜨렸다.

▲ <학생에게 임금을>(구리하라 야스시 지음, 서영인 옮김, 서유재 펴냄). ⓒ서유재
학생은 교정을 점거하고 찾아야 할 권리를 위해 투쟁했다. 대학에서 시작된 운동은 거리에서, 일터에서, 또 다른 혁명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서유럽, 나아가 동유럽, 일본, 미국 등으로 퍼진 68 혁명이다. 이후 유럽 사회는 고등 교육 무상화를 실현했다. 정부는 대학 지원을 늘리고 학생의 기본 생활권을 책임졌다. 이때를 기점으로 환경 보호, 성 평등 등의 진보 가치가 유럽 사회의 주류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대학 무상화를 넘어 기본소득을 논한다.

당시 대한민국은 굶지 않고 죽지 않는 것 이상을 생각할 수 없었다. 우리의 1960년대에는 4.19 혁명과 5.16 쿠데타가 있다. 25년간 이어질 독재 정권이 섰고 경제개발 5개년이 삽을 떴다. 분단된 땅 위에서 모두가 움츠러 들었다.

우리는 서유럽의 300년 역사를 단 50년 만에 쫓았다. 많은 이들의 희생을 딛고, 이제야 인권과 복지를 논하는 사회에 다다랐다. <학생에게 임금을>은 2016년 한국 사회에 주문한다. 내 생각을 목소리 내봐야 한다. 자본이 움켜쥔 삶을 숨 쉬게 해 줘야 한다. 취직만을 향해 가는 이 흐름을 멈춰야 한다.

나는 빛나는 졸업장과 빚 주머니를 안고 학교를 떠났다. 아마 내게 더 이상의 대학 생활은 없을 거다. 그래도 '학생에게 임금을' 주는 대학을 꿈꾼다. 대학 무상화는 우리가 사람다운 사회에서 살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라 믿기 때문이다. 지금이 우리 역사에만 빠진 68혁 명을 채워야 할 시기다. 모두의 미래를 위해, 모두의 힘으로 대학을 멈춰 볼 때다.

김유나

대학에서는 놀며 쉬며 독문학을 공부했고, 사회에서는 방송 작가로 잠깐 살았습니다. 주로 다큐멘터리, 시사·교양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을(乙)로 사는 날을 꿈꾸며 세상 모든 병(丙)·정(丁)들의 고민을 야무지게 기록하고 싶습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