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내가 바로 악마입니다!"

[프레시안 books] <종의 기원>

국내 최고의 스릴러 소설가로 꼽아도 손색없을 정유정 작가가 3년 만에 신작 <종의 기원>(은행나무 펴냄)을 내놓았습니다.

그간 <7년의 밤>(은행나무 펴냄), <28>(은행나무 펴냄) 등으로 척박한 국내 스릴러 소설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킨 그는 이번 작품에서 사이코패스 악인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순수한 악인을 정면으로 조명한 신작을 보다 깊이 있게 독자에게 소개하고자, <프레시안>은 프로파일러 서종한 사이먼 프레이저대학교 법정신건강정책연구소 연구원의 서평을 싣습니다.

서종한 연구원은 국내에 드문 사이코패스, 심리 부검 전문가로, 경찰청에서 프로파일러로 활동한 현업 전문가 출신입니다. 그는 사이코패스 연구의 권위자인 스티븐 D. 하트(Stephen D. Hart)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 교수, 데이비드 쿡(David Cooke) 글래스고 칼도니언 대학교 교수와 함께 사이코패스의 원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6년간 보건복지부와 아주대학교가 협력한 심리 부검 연구와 자살 연구도 진행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가 자살에 이른 원인을 파악하는 심리 부검 전문가로서 그는 최근 <심리 부검>(학고재 펴냄)을 쓰기도 했습니다. 전문가의 시각으로 <종의 기원>을 살펴보는 흥미로운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은 1941년 미국 조지아 주 출신인 허비 클렉클리(Hervey Cleckley)가 발표한 독창적인 책 <제정신을 가장한 가면>(국내 미번역)이라는 책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클렉클리는 저서에서 사이코패스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피상적인 매력과 좋은 지능, 신뢰할 수 없음, 거짓, 양심의 가책 결여, 반사회적 행동, 병적인 자기 중심성과 사랑에 대한 무능력, 둔감한 대인 관계, 주요 정서적 반응의 일반화된 결핍 현상 등이다.

<종의 기원>에 순수 악 사이코패스로 등장하는 주인공 유진의 일부 성향은 엄밀히 말해 실제 사이코패스와 다소 거리가 있는 듯하다. 사이코패스의 감정적인 다양성은 유진이 경험하는 만큼 폭 넓고 깊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늘 감정이 불안정하며 일관성이 없다. 과장된 자아 만족감에 빠져 자신을 불사신이라 여긴다. 무엇이든 지루해하며 무미건조해 할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에서 유진이 보여주는 인지, 행동, 애착과 지배적 성격은 다분히 사이코패스의 전형성에 닿았다. 작가가 소설을 위해 사이코패스를 성실히 연구했음을 알 수 있다.

"우주에서 날아든 운석처럼, 낯설고 정체 모를 존재."

사이코패스는 이 소설에서 작가가 묘사한 것처럼 주변 환경에 거의 영향 받지 않는다. 본래 사이코패스라는 씨앗을 품고 이 세상에 뿌리내렸다. 씨앗이 품은 심성대로 성장해, 그 악성을 그대로 발현한다. 주변 맥락이 간섭할 가능성은 현저히 적다. 사이코패스의 특질과 증상이 아주 강력하게 한 인간의 발달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영향은 미미할 수밖에 없다. 고로 이 사람은 태어나 악하게 살다가 종국에는 사회적 통제를 받는 운명을 갖게 된다.

<종의 기원>은 사이코패스의 탄생, 성장, 그리고 특질 발현의 흐름을 연속적 선상에서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 일상적인 범죄 패턴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 의식의 흐름을 비록 불완전하고 다소 반복적으로 서술하지만, 긴장감 있게 충분히 잘 풀어주었다. 사건의 단면 단면과 주인공 의식의 흐름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 구도는 적어도 사이코패스의 동기에 관한 독자의 관심을 유발하기에는 충분하다. 물론 이 책만 읽은 독자가 사이코패스를 이해한다고 말하기에는 다소 무리지만 말이다.

▲ 연쇄 살인범 유영철로 인해 한국 사회는 사이코패스를 본격적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연합뉴스

전체 인구의 2~5%에 해당하는 사람은 '존재하는 괴물'이다. 이들은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기질적으로 타고나는 존재다. 사이코패스는 여느 무동기, 간헐적 분노, 충동성, 연쇄 살인범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다른 동기, 다른 촉진 요인, 다른 불안정성 요인이 다른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여 악의 흐름으로 환원된다. 작가가 일반 범죄와 사이코패스 범죄 간의 차이점을 구별하여 '욕망적 악'이라는 줄기로 정교하게 설명한 부분은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본다.

주인공 유진의 주변 사람인 이모와 모친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그가 사이코패스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여태껏 사이코패스를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실의 우리도 그들과 다를 바가 없다. 겉으로 봤을 때 유진은 부모, 이모, 형제, 여자 친구 등의 주변 인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유진의 심성 깊이 자리한 심연은 우리와는 너무나 다르다. 그 깊이를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사이코패스는 사회에서 기생적으로 존재한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상대방을 머뭇거림 없이 고갈시키고 해친다.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못한 채 우리 중 누구라도 자신의 희생양으로 만들어 버린다. 누구이든 간에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작가는 작품 부분 부분에 사이코패스인 유진의 성향이 이야기의 큰 줄기에 잘 스며들게 설명했고, 그럴 수밖에 없는 당위를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거짓, 진실 되지 못한 속성, 기만, 그리고 살인은 그들에겐 어떠한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도 주지 못한다. 오로지 나의 삶에 위해가 될지 이익이 될지만 따져 본능적으로 행동한다. 고통과 아픔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무엇과도 싸우지 않는 부류... 뒷담에서 홀로 칼을 벼르는 놈."

작가가 분신이라 지칭하는 주인공 유진은 자기 중심성이 두드러지는 인물이다. 늘 자기에게만 모든 관심이 쏠려 있고, 늘 혼자 지낸다. 마음의 빗장을 채운 채 살아가기 때문에 공감할 수 없는 존재다. 주변에서 겉 돌며 세상에 섞일 수 없는 존재로 산다. 부모에게조차도 생각을 감추고, 가식과 기만으로 위장한다. 유진에게는 관계의 의미조차 무의미하다. 부모, 죽은 형, 이모, 심지어 그가 유일하게 친밀감을 느끼는 해진과 공유하는 관계적 속성의 단어는 마치 악보에서 리듬이 빠져버린 것과 같은 무미건조한 가사의 나열일 뿐이다. 철저히 무정하다. 즐거움이 없다. 감정의 깊이와 일관성도 없다. 반대로 불안감도 없다. 마치 뇌 속에서 이를 담당하는 영역이 송두리째 빠진 것처럼 말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뇌 편도체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아이"이다.

"웃기지마. 살아남는 쪽이 이기는 거야."

유진은 본능적으로 적을 구별하고 적대한다. 최상위 포식자가 자신의 영역에서 쉽게 경쟁 상대를 인지하듯이 말이다. 그 영역에는 두 명의 포식자가 있을 수 없다. 자신의 존재에 어떤 식으로든 위협이 될 만한 상대라면 서슴없이 제거하려 든다. <종의 기원>에서 그 방식은 냉담한 살인이다. 살인의 순간은 무정함과 무심함으로 설명 가능할 정도로 냉혹하다. 무모할 정도의 무덤덤함을 유지하며 이루어진다. 마치 야생에서 사자가 먹이를 덮치기 직전, 한없이 침착하고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처럼. 설령 그 대상이 피를 나눈 형제나 부모라 할지라도 상관없다.

유진은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린 이모를 도전자로 인지하고 결사적으로 맞선다. 이는 사이코패스의 공격성이 자신에게 대항하는 상대를 지배하려 들 때 발현되기 때문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주변 사람을 기만하고 교묘하게 조종하기를 개의치 않는다. 모친과 형에 대한 적대 의식이 있었기에, 유진은 가족 관계라는 끈을 이용해 교묘하게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곧바로 자기 합리화와 정당화 장치를 가동하고, 냉각기를 갖는다. 형과 엄마, 그리고 이모가 잘못했다. 자신을 특권을 가진 자로 여기며, 모든 잘못으로부터 모면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종의 기원>(정유정 지음, 은행나무 펴냄). ⓒ은행나무
저자는 소설에서 사이코패스는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존재임을 설명한다. 이들은 빠르게 자기의 이익을 저울질해가며 세상에 적응하고, 심리적으로 진화한다. 한마디로 악의 진화라 볼 수 있다. 순수 악이 세상에 적응할수록 세상은 점차 황폐화된다. 정신적 고통, 단절, 속임이라는 독이 스며들어 우리의 혈관과 육체를 마비시키듯, 우리 이웃의 사이코패스는 나를, 너를, 그리고 우리를 절규와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이 작품은 한국 사회에서 흔치 않은 사이코패스의 내면을 심도 있게 다룬 희귀한 시도의 결과다.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한국에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이 등장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사이코패스 권위자인 로버트 헤어(Robert D. Hare) 다크스톤 리서크 그룹 대표가 이 개념을 정의한 이후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이코패스 원형이 존재하는지에 관한 제대로 된 비교 문화적인 연구가 여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불모지에서 이 작품은 사이코패스를 통해 순수 악이라는 화두를 제시하며 인간의 심연을 의미 있게 탐색한 중요한 소설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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