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가 세상을 구했나? 천재는 잊어라!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⑪]

출판업계가 불황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아서겠지요.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인 1인당 연간 독서량이 9.2권, 월 0.76권에 불과했습니다. 다른 즐길 거리가 점차 많아지는 데다, 책을 읽을 삶의 여유가 없다는 점이 원인일 겁니다.

그러나 위기에도 기회는 오기 마련입니다. 언제나 불황을 이긴 베스트셀러는 나옵니다. 지금도 전국 곳곳의 출판사에서 좋은 글을 가진 작가와 새로운 아이디어의 편집자, 색다른 시도를 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디자이너들이 독자에게 멋진 책 한 권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은 이 불황의 시대에 독자의 마음을 훔친 베스트셀러를 이모저모 뜯어보고, 그 성공 원인을 분석하는 새로운 월간 기획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소개합니다.

출판업계에서 내로라하는 베테랑 두 분을 모셨습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전 민음사 대표)와 이홍 출판기획자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민음사, 황금가지, 리더스북 등의 출판사에서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직접 만든 출판계의 신화입니다.

이들이 때로는 신랄한 비평가이자 때로는 친절한 컨설턴트로 변신합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이들이 직접 베스트셀러를 선정해 책의 성공 원인과 이후 과제를 짚어봅니다. 현장에서 그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출판사의 편집자, 기획자의 이야기도 직접 들어봅니다. 교보문고가 전국의 판매 데이터를 제공해 분석의 신뢰를 더 높였습니다.

이번 시간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경제·경영서를 처음 다룹니다. 1990년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참 많은 경영 구루(guru)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고, 시중에 널리 회자됐습니다. 피터 드러커, 잭 웰치 등의 이름, 토요타의 린 생산이니 식스 시그마니 하는 말은 기업인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돌이켜 보면, 2008년 금융 위기 이후로 좀처럼 경영계의 철학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전히 많은 이가 '기업이 성공하는 비결'을 이야기하지만, 독자의 마음에는 안 드는 목소리라는 게 정답이겠죠. 국제 경제가 살아날 길은 만무해 보이고, 기업도 급변하는 기술 혁신기에 따라야 할 금과옥조를 찾지 못하고 있으니 그럴 겁니다.

<오리지널스>(애덤 그랜트 지음, 홍지수 옮김, 한경BP 펴냄)는 경제·경영 구루의 이야기가 신뢰받지 못하는 시기에 6만 부 넘게 팔려 관심을 모으는 책입니다. 상대적으로 국내에 덜 알려진 작가인 애덤 그랜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 교수(조직 심리학)가 쓴 이 책은 혁신의 시대, 창의성의 시대에 개인과 조직(기업)이 대응할 법칙을 설명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 책의 메시지는 기존 경제·경영서에서 이야기하는 자유주의적이고 기업 성장을 우선시하는 이야기와 조금 다릅니다. 시대상을 적절히 반영했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합니다. 가장 '꽂히는' 메시지를 대략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이제 한 명의 천재가 100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는 갔다. 조직을 살리는 진짜 창의성은 여러 명의 평범한 사람이 모였을 때 나온다. 그러니 이제 조직은 평범한 모든 이가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이를 제도화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어떻습니까. 여전히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이건희 회장 식 신경영 메시지와 정반대되지요? 저자는 책 전반을 홍수처럼 뒤덮은 수많은 사례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창조 경제'를 진짜 떠받칠 수 있는 아이디어는 천재가 아닌, 평범한 우리 스스로에게서 나온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나라의 기업과 관공서가 가장 먼저 체크해야 할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을 다루는 대담은 지난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커피숍에서 이어졌습니다. 다음은 대담 전문입니다.

▲ <오리지널스>는 창조성의 수준을 일상의 차원으로 끌어내렸다. ⓒ정기훈

진정한 창조는 보통 사람에게서 나온다

이홍 : 오늘 이야기를 나눌 책은 <오리지널스>입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경제·경영서를 다루게 됐습니다. 좀 늦은 감이 있습니다만, 솔직히 그동안 적절한 책을 찾지 못했어요.

경제·경영서는 자본주의 체제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확실하게 이 분야의 에너지가 빠졌습니다. 탁월하다고 인정받던 경영 구루들이 입을 닫거나 아예 소멸하는 현상까지 생겼습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조직론이나 혁신적이라 평가받던 경영 시스템이 졸지에 폐기처분되는 신세가 되었어요. 장황한 경제 이론이 탐욕스러운 자본 시장에서 대부분 화석화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신문 지면에서도 거창한 담론들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오직 불안감, 공포, 불확실성입니다. 경제·경영서는 시대가 발산하는 에너지를 먹고 자라는 장르인데, 삼킬 에너지가 없는 상황에서 띄엄띄엄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죠.

창의성, 혹은 독창성을 주제로 다루는 <오리지널스>는 애덤 그랜트라는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생소한 저자의 작품인데, 매우 다양한 영역을 포괄합니다. 경제·경영서라기보다 자기 계발서에 가깝고, 사회과학이나 심리학 서적으로 읽어도 될 듯합니다. 창의성이나 독창성을 다룬 타이틀의 공통점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굳이 경제·경영서의 영역에서 이야기해야 한다면, 우리 체제의 모든 영역이 놀라운 독창성을 발현하거나, 창의적 사고의 진화를 동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 때문일 것입니다.

장은수 : 지난 2014년 나온 <제로 투 원>(피터 틸·블레이크 매스터스 지음, 이지연 옮김, 한경BP 펴냄)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오리지널스>는 이 책 다음으로 거의 처음 읽은 경제·경영서네요.

<오리지널스>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전 경제·경영서의 메시지를 이어 받았습니다.

다만 그 메시지를 주목할 만합니다. 요즘 기업가는 물론, 모든 사람이 창조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당장 박근혜 정부부터 창조 경제라는 말을 초기에 하지 않았습니까? (웃음) 보통 관련 책은 '창의성은 이렇게 만들면 된다'는 식으로 직관적 대답을 내놓는 데 집중하는데, 이 책은 '창의성이 어디에서 오느냐'는 질문을 상정하고, 그 대답을 개인·조직·사회적 차원에서 나눠 제시합니다. 보다 현실적입니다.

책이 집중하는 내용은 '창의성이 진정한 독창성, 즉 오리지널리티를 가지려면 단순히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 반드시 실행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실행력은 어떤 조건에서 만들어 지는가'입니다. 그리고 실제 창의적 인간, 창의적 기업이 되기 위한 구체적 개념도를 제시하죠.

저자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합니다. 이 자체만으로 우선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비교적 최신의 연구를 충실히 반영했습니다. 2010년 이후 뇌 과학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심리 연구도 폭발했는데, 이 성과를 현실 경영 분야에 충분히 반영해서 설득력을 높였습니다.

이홍 : 예스24 구매담당자(MD)는 "독창성과 창의성에 관한 통념을 파괴했다"고 홍보문을 썼더군요. 이 정도면 찬사를 넘어선 극찬이죠. 실제 그렇다면 역사적 사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웃음) 이런 극찬 때문에라도 독자는 상당한 기대를 갖고 책을 읽게 됩니다. 그러나 '통념의 파괴'까지는 아니고 '정리를 새롭게 했다'는 정도가 맞는 것 같습니다.

보통 경제·경영서는 '왜'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하는 걸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왜 창의성이 필요한지 이야기하지 않죠. 필요하다는 걸 전제합니다. 이 장르 독자에게 필요한 건 이유가 아니라 해결이거든요. <오리지널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의성이나 독창성은 당연히 가져야 하는 것이지 구구절절한 이유를 늘어놓지 않습니다. 대단히 빨리 본질을 이야기합니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풍부하다 못해 넘치는 사례로 구성되어 있지요. 놀랍도록 풍성한 정리와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낼만한 책입니다.

장은수 : 책에 멋있는 말이 참 많이 나와요. (웃음) 세계적 석학이 전한 함축적 언어가 많이 인용되어 책을 읽는 기쁨을 줍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엘론 머스크, 스티브 잡스, 벤자민 프랭클린 등 우리에게 창의적 아이콘으로 거론되는 수많은 사람이 이 책의 주인공입니다.

본래 주제로 집중해 보죠. 어떻게 해야 창의적 개인, 기업이 될 것이냐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기술 발달에 따라 초연결 사회가 되면서 거대한 '단절적 연속'이 일상화된 시대에 우리는 살아갑니다. 이전의 지식을 무용하게 만드는 단절적 발전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죠. 앨빈 토플러의 말처럼, 미래가 계속 충격이 되는 사회가 열렸습니다.

이 사회에서는 한 번 배운 지식으로 평생을 살 수 없습니다. 개인은 물론 기업도 계속 새로운 삶의 규칙을 익혀야 합니다. '창조성을 인공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에 개인과 조직이 동시에 답해야 하는 시대가 된 거죠. 이 책은 그 방법론을 제시했기에 화제가 됐습니다. 창조적 개인, 창조적 조직을 만들 수 있는 구체적 방법과 문화적 규칙을 적절히 제공합니다.

특히 '왕자를 만나려면 개구리에게 100번 입맞춤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진짜 창의성은 순간 천재적 아이디어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자주 아이디어를 내야만 나온다는 얘기죠.

100번 입맞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직 차원에서 보자면, 엉뚱한 이야기나 하는 직원을 억압해서는 안 됩니다. 그 엉뚱해 보이는 이야기를 토론 과제로 올려야 열린 혁신이 가능하다는 얘깁니다. 당연히 이런 조직 문화를 뒷받침할 별도의 경영 기술이 필요하겠죠. 이런 조직이라야 창조적 조직으로서 성장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책은 창조성의 수준을 일상의 차원으로 끌어내렸습니다. '독창성에 관한 통념을 파괴했다'고 굳이 말할 수 있다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독창성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모두의 재능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기업은 누구나 독창성을 키우게끔 변화해야 한다. 이게 이 책의 메시지입니다.

이홍 : 그런데 이런 사례는 우연과 잘 구분되지 않아요. 목적성을 갖지 않고 단순히 툭 던진 아이디어를 과연 창의적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책이 극찬하는 사례가 사후 해석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실제로 성공한 대부분의 기업은 남들이 갖지 못한 독창적 아이디어로 블루오션을 개척한 게 아니라, 빠른 후발주자였던 경우가 많죠. 당장 반도체나 스마트폰으로 먹고 사는 삼성전자 사례가 대표적이지 않습니까? 먼저 좋은 아이디어로 뛰어든 기업의 실패 이유를 연구하고, 이를 극복해 성공한 사례가 많습니다. 혁신의 시대라 하더라도 '왜 꼭 남들보다 더 창조적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느냐'는 식의 반론이 들어올 여지가 있다는 말이죠.

장은수 : 저는 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고 봐요. 이 책의 메시지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에이브러험 링컨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링컨이 됐다"는 말이에요. 아이디어는 누구나 낼 수 있고, 보통 사람인 우리도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보통 사람인 링컨이 어떻게 위대한 인물이 되었는가를 설명해요. 저는 이게 지금 시대 독자에게 영감을 주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과거 혁신의 아이콘으로 등장하는 사람의 일대기를 보면 남들과 달라야 한다, 과감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주를 이루죠. 하버드 대학생이 학교를 때려치우고 창고로 가서 새로운 걸 발명했다는 식입니다. 천재의 이야기죠.

그런데 지금 우리가 그럴 수 있나요? 이 책은 '그런 식으로 해서 창조성이 나오는 시대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섣불리 회사 때려치우지 마라고 하죠. 창조적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건 좀 뒤로 미뤄둬도 괜찮다고 해요. 우선, 먹고사는 데 집중하면서 창조적 생각이 실제로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면 그 일에 집중하라는 식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한 명의 천재가 100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을 신봉했는데, 이 책은 ‘한 명의 천재보다 보통 사람 100명의 아이디어가 훨씬 중요하다’고 합니다. 100명의 보통 사람이 열린 자세로 이야기할 때 진정한 창조성이 탄생한다고 하죠. 매력적인 부분이에요.

저자가 책에서 강조하는 건 아이디어가 아니에요.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단계에 필요한 기술과 규칙입니다. 단순히 '네가 새로운 생각을 갖고 사방에 떠들면 성공한다'고 하지 않고, '어떻게'부터 해결하라는 현실적 이야기를 합니다. 그간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경영서에서 신비화한 독창성을 구체적으로 반박했죠.

저는 굳이 이 책의 약점을 지적하자면 메시지보다 구성을 꼽고 싶어요. 지나치게 나열식이에요. '오리지널'이 되기 위한 규칙을 죽 나열하는데 그쳤죠. 저자가 브리지워터를 사례로 들어 설명하면서 "기업의 혁신 원칙이 200개나 되면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고 했는데, 정작 당사자가 그런 약점을 보였어요. 심지어 원칙이 나열되다 보니, 상호 충돌하기도 하죠. 나열된 원칙 간의 인과 관계가 뚜렷이 보이지도 않고요. 그래서 책이 산만하게 느껴져요.

이홍 : 장은수 대표의 지적처럼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전체 얼개가 그려지지 않습니다. 책의 목차는 분명 논리적 연관성이 분명한 틀을 가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저자가 데이터 분석에 치중하는 전형적인 교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다만 꼭 이를 약점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부분 부분만으로도 퍽 괜찮은 통찰을 제공해요. 굳이 책 전체를 이해해가며 읽지 않아도 됩니다. 목차를 참고해 필요한 내용만 발췌해서 봐도 무방하죠. 단점이 단점으로 끝나는 대부분의 책과 비교한다면 너무 인색한 점수를 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덕분에 저는 이 책이 기업인, 연구원의 케이스 발표 때 자주 활용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 구성 자체가 강의 자료로 만들기 매우 좋아요. 강의할 때 가장 힘든 게 좋은 사례 발굴인데, 이 책은 그 문제를 말끔히 해소합니다. 강의 프로그램만 잘 짠다면 기막힌 교재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 홍보에 관해서도 출판사에 여쭤보겠습니다만, 이 책 내용을 바탕으로 강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받진 않으셨나요?

출판사 : 한 업체에서 이 책 내용을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작권 문제 때문에 실제로 이뤄지진 않았습니다.

현재 삼성경제연구소(SERI) 최고경영자의 요청에 발맞춰 저자 인터뷰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오는 가을 즈음이면 이를 영상으로 제작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올해 12월을 목표로 저자 초청 강연을 논의 중입니다.


▲이제 '대학 때려 치우고 차고에서 출발하는 천재의 성공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 시대다. ⓒpixabay.com

'오리지널스'가 뭘까?


장은수 : 자연스럽게 홍보 이야기로 넘어가도록 하죠. 뒤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일단 저자 초청 강의를 너무 늦게 잡은 것 아닌가 싶어요. (웃음)

<오리지널스> 홍보는 전반적으로 무난해요. 유명한 강연자이기도 한 홍성태 한양대학교 교수를 초청해 책 내용을 강의했고, 가제본을 오피니언 리더에게 돌려 사전 서평을 받았죠. 덕분에 '삼성그룹 CEO 10명이 추천하는 책'으로 꼽혀 유명세를 탔습니다. 대학생 서평단에게도 책을 돌렸고요.

그런데 책에 애덤 그랜트와 <아웃라이어>(노정태 옮김, 김영사 펴냄)의 저자 말콤 글레드웰의 대담 영상을 담은 CD를 넣었다는 점을 우선 거론하고 싶어요.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모든 콘텐츠를 보는 시대에 CD라니요. (웃음)

책에 부속물을 넣을 경우, 출판사의 가장 큰 목표는 독자 정보 수집입니다. 이걸 국내에서 잘 하는 출판사는 길벗이죠. 길벗은 독자 이메일 주소 확보를 위해 자사 온라인 카페에 독자의 회원 가입을 유도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입력해야 책 관련 추가 콘텐츠를 다운로드받을 수 있도록 했죠.

특히 한경BP처럼 특정한 분야에 집중하는 출판사 독자의 경우, 과거 해당 출판사 책을 사서 만족했다면 비슷한 내용의 새 책을 구입할 확률이 큽니다. 독자 정보 수집이 그만큼 더 중요하다는 거죠. 이 책이 당초 큰 기대를 모았는데, 독자 정보를 초기부터 수집하지 않았다는 건 장기적 관점에서 실수 아니냐는 생각이 드네요.

국내 출판사 대부분이 이런 생각을 못 하는 이유는, 출간 초기에 '책을 파는 데만' 너무 집중하는 경영 마인드 탓입니다. <오리지널스>가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잘 팔릴 책이니 당장에는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보자면 아쉽습니다.

앞서 이홍 대표께서 책 내용을 바탕으로 강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방안을 얘기하셨는데, 이런 식의 복합적인 시도를 통해 독자와 더 밀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대 출판의 특성상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은 독자와 만날 기회가 자주 오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는 책이라면, 이참에 더 공격적 홍보를 시도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가장 쉬운 건 '당장' 저자를 부르는 거겠죠. 제가 보기엔 유료 강의도 가능해 보입니다. 주요 수강자가 기업인일 테니까요.

이홍 : <오리지널스>가 2016년 경제·경영서 중 가장 화제가 되고, 잘 팔리는 책임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런 성과에 비해 저자의 지명도와 '오리지널스'라는 명사는 좀처럼 확산되지 않는 것 같아요. 12쇄를 찍었는데, 인터넷에 '오리지널스'를 검색해 봐도 '오리지널스가 뭐냐'는 질문에 답할 만큼 충분한 이야기가 검색되지 않아요. 확산력과 영향력을 두루 갖춘 베스트셀러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는 독자층을 넓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오리지널스'라는 키워드가 좀 더 설명될 필요가 있습니다.

장은수 : 출간 초기 주요 독자층 확보에는 성공했어요. 간단히 말해 회사에서 읽으라고 하니 복지카드로 책을 사서 읽은 직장인 독자가 많다는 거죠. (웃음) 아마 많은 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이 책을 직원 교육 도서로 선정했겠죠. 마침 책은 읽고 나서 좋은 말을 인용해 블로그에 올리기에도 딱 적합합니다. 이런 블로그 등을 통해 2차 화제가 되고 있고요.

문제는, 이런 식으로 책을 읽은 독자 대부분이 책의 메시지를 스스로 개발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제가 독자 80여 명의 블로그를 죽 훑어봤는데, 대부분 독자가 그냥 출판사 보도자료 내용을 베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독자층으로는 20대가 꼽히는 것 같습니다. 당장 블로그, 포털 등을 살펴봐도 이 책을 20대 추천 도서로 소개들 하더군요. 그런데 교보문고가 제공한 자료를 볼까요? 지난 1월 말부터 이달 초까지 20대 독자의 비중은 남자와 여자 각각 6.2%, 10.0%에 불과합니다. 20대 남성 독자 비율은 전체 남성 독자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여성 역시 4분의 1 수준에 머무릅니다. 심지어 해당 연령대 경제·경영 부문 평균(남녀 각각 8.1%, 11.6%)에도 미치지 못해요. 20대 공략에 실패한 거죠.

이 책의 내용이 20대에게 닿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메시지를 개발해야 합니다. 인물을 내세우고, 기업체 CEO가 추천했다는 얘기로는 안 된다는 거죠. 차라리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다' 정도의 메시지가 낫지 않을까요?

▲ <오리지널스> 성별/연령별 구매 비중. ⓒ교보문고

이홍 : 장은수 대표의 말씀에 딴지를 거는 건 아니지만, 다소 무거운 경제·경영서를 가지고 출판사가 20대를 중요한 독자층으로 보진 않았을 겁니다. 그럴 필요도 없다고 보고요.

출판사 : 처음부터 주요 독자층은 30, 40대로 잡았습니다. 아무래도 직장인이 주요 독자층일 수밖에 없습니다.

애덤 그랜트의 전작 <기브앤테이크>(윤태준 옮김, 생각연구소 펴냄)가 미국에서 큰 화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3만 부도 채 팔리지 않았습니다. 당장 지금도 포털에 저자 검색을 해 봐도 저자 사진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국내에서는 덜 알려진 인물이기에 독자층을 기존보다 더 넓힌다는 생각을 애초에 하기 어려웠습니다. 당장 주요 독자층에게 저자를 각인시키는 게 시급한 상황이었으니까요.

예상보다 이 책이 잘 팔리는 이유는 출판 시기도 한 몫한 것 같습니다. 보통 출판 시장 흐름이 연초는 트렌드 도서가 장악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아무리 강력한 경제·경영서가 나오더라도 트렌드 도서를 이기지 못합니다. 그런데 <오리지널스>는 1월말, 이 흐름이 한번 꺾이기 시작할 때에 맞춰 나왔습니다. 시기가 좋았습니다.

CD를 넣은 이유도 이 맥락에서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미리 책을 구입하신 분은 아시겠지만, 초판에는 CD가 없습니다. 그런데 마침 미국의 저작권자가 강의를 만들었습니다. 저희는 트렌드 도서와 경쟁하는 입장에서 저자를 독자에게 각인시킬 필요가 있었고, 이 때문에 CD로 대담을 정리해 추가했습니다.

보통 경제·경영서 출판사는 7월 경제 연구소 추천 도서에 포함되는 걸 목표로 책을 냅니다. 만일 이 책이 올해 추천 도서에 꼽힌다면, 연말까지 흐름을 탈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이홍 : CD 내용을 인터넷에 공짜로 푸는 게 저자 각인에 훨씬 좋을 것 같은데요? 네이버 첫 화면에 강연을 넣으면 더 큰 효과가 날 겁니다.

출판사 : 미국 출판사와 계약 조건 상 온라인에 대담 내용을 푸는 건 불가능합니다. 대신 직장인이 많이 모이는 포럼 등에 CD를 많이 배포했습니다.


독자 요구에 반응하라

장은수 : 경제·경영 분야에서 저자의 인지도를 높이는 건 중요하죠. 특히 요즘처럼 경영 구루가 없는 시대에는 더 중요합니다. 저자 이름을 알릴 수 있으면 강연 프로그램 등을 더 적극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예전에 김영사가 스티븐 코비를 홍보한 게 대표적이죠. 단순히 책을 한 권 팔고 만다는 생각을 넘어, 장기적으로 저자의 브랜드 가치를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는 건 현대 출판 사업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미국과 일본의 출판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저자 강연과 컨퍼런스를 출판사의 주요 수익 모델 중 하나로 삼고 있습니다.

여태 거론되지 않았습니다만, 한경BP에서 <오리지널스> 저자와 관련한 홍보를 이미 실행했습니다. 올해 서비스를 시작한 다음카카오의 북리뷰 채널 ‘북클럽 오리진’과 저자 인터뷰를 성사시켰고, 이 내용이 기사화되면서 널리 화제가 되었죠. 이 채널을 특히 직장인이 많이 구독하더라고요. 이를 활용한 건 좋은 방법이었다고 봅니다. 다른 출판사도 <오리지널스>의 사례를 잘 활용한다면 홍보비를 줄이면서 좋은 홍보 채널을 얻을 수 있을 테고, 나아가 좋은 서평사이트를 확보하는 효과도 얻게 되리라고 봅니다.

출판사 내부에서도 북클럽 오리진의 홍보 효과를 높게 보시나요?

출판사 : 해당 기사가 주말에 노출되었고, 이후 책 판매에 효과가 있었다는 게 내부 평가입니다. 예전보다 북클럽 오리진이 출판사의 중요한 홍보 채널이 된 것 같습니다.
장은수 : 이런 방식의 홍보는 앞으로 더 강화될 것 같네요. 이에 맞춰, 이제는 <오리지널스>도 새로운 독자층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 때입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독자의 언어로 접근해야 한다는 겁니다. 블로그 반응을 보면 이 책이 주는 편익을 여전히 독자가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세상을 움직인다'는 홍보 메시지가 너무 강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성공 담론이 먹히지 않는 시대잖아요?

한 줄로 설명되는 카피를 뽑아야 해요. 당장 <아웃라이어>의 일반시간 법칙이나 뉴욕시의 '깨진 유리창 이론'과 같이 꽂히는 문구가 필요하죠.

<오리지널스>는 이런 문구를 만들기 좋은 책 같습니다. 그렇다면, 충분히 폭발력을 가질 가능성이 있죠. 보통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압축적 메시지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봅니다. 이에 성공하면 20대까지도 이 책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지난 대담 시간(☞관련 기사 : <피너츠 완전판> "스누피가 네 발로 기어다녔어?")에도 얘기했습니다만, 독자 메시지에 따라 홍보 메시지도 변하는 시대입니다. 창조적인 독자가 스스로 홍보 메시지를 만들고, 자기들끼리 공유하는 시대예요. 출판사가 설정한 대로 따라가지 않습니다. 독자 메시지가 저절로 진화하죠. 출판사는 진화를 촉진하는 걸 고민해야 합니다.

출판사 : 저자의 전작과 달리 이 책에 관한 미국의 반응은 기대 이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정반대로 전작에는 신통찮게 반응했지만, <오리지널스>에는 독자가 적극적으로 반응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직된 조직 문화에 고통 받는 독자들이 이 책의 내용을 신선하게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이홍 : 독자층을 넓혀야 한다는 데는 동의합니다만, 그것이 단순히 20대까지 연령대를 넓히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30, 40대 내부에 더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같은 연령대 독자 내에서도 얼리어답터, 조기 수용자 그룹, 본격 수용자 그룹 등 층위가 다양하게 나눠지니까요. 독자층 확산을 연령대 확산과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전략은 자칫 포커스를 분산하는 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연령별 한계를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 조직 경험이 부족한 20대가 읽기에 이 책은 친절하지 않아요. 다만 어떤 연령이나 층위의 독자라고 해도 좀 더 적극적으로 대화가 필요하다는 장은수 대표의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출판사 : 사실 책의 메시지를 이미 여러 차례 바꿨습니다. 기대만큼 독자에게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 <오리지널스>(애덤 그랜트 지음, 홍지수 옮김, 한경BP 펴냄). ⓒ한경BP
장은수 :
출판사가 원하는 식으로 바꿔서는 소용이 없죠.

이홍 : 벌써 오늘의 대화를 정리할 시간입니다. <오리지널스>는 모처럼 만나는 우량 종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경제·경영서 시장이 오래도록 기다려온 새로운 저자의 탄생이라는 측면에서 반가움이 더합니다. 경제·경영서 도서는 한 권의 좋은 책이 잘 알려지면, 차후 지속적인 담론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큽니다. 이 책의 메시지가 오랫동안 회자되길 기대합니다.

장은수 : 실로 오랜만에 눈에 띄는 경제·경영서를 봤습니다. 일반인이 읽기에 부담 없는 메시지가 좋았습니다. 기업가뿐만 아니라 다른 조직의 사람, 예를 들어 예술계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도 호소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도 이 책이 닿기 위해서는 독자가 책의 내용을 자기 삶의 메시지로 소화할 수 있도록 돕는 친화적 홍보가 더 필요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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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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