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전범기업 '아사히글라스' 유치 논란

[언론 네트워크] 국민연금공단, 4년간 79개 전범기업에 수천억 투자

경상북도가 유치한 외국인투자기업 일본 '㈜아사히글라스(Asahi Glass Fine Techno Korea.旭硝子株式会社.AGC)'의 노동탄압과 특혜성 혜택 여부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이 기업이 일제강점기 당시 '전쟁범죄기업(전범기업)'이라는 사실까지 밝혀져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2012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일본기업 1,493곳을 조사해 국내에 현존하는 299개 전범기업을 발표했다. 위원회는 "독일 전범기업은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사과·배상했으나 일본 전범기업은 부정만 한다"며 "사죄와 배상을 위해 명단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명단에는 일본 3대재벌 미쓰비시·미쓰이·스미토모 등이 포함됐다. 전범기업은 일제 군용물품을 납품하고 식민지 국민을 강제징용해 전쟁범죄에 가담한 기업이다.

▲ (왼쪽부터)김관용 경북도지사, 이노우에 시게쿠니 아사히글라스 사장, 남유진 구미시장 추가투자 양해각서 체결(2010.10.27.경상북도청) ⓒ경상북도 홈페이지

▲ 일본 전범기업 '아사히글라스' ⓒ아사히글라스 홈페이지

세계4대 유리제조업체 '아사히글라스'도 '아사히유리'로 명단에 포함됐다. 이 기업은 미쓰비시 2대사장 이와시키 야노스케(岩崎彌之助) 차남 이와사키 토시야(岩崎俊彌)가 1907년 설립했다. 2005년 '아사히글라스 화인테크노 코리아(AFK)'라는 자회사를 구미시에 설립하면서 국내에 들어왔다. 2004년 당시 이의근 경북도지사, 김관용(현 경북도지사) 구미시장이 구미국가공단 외투기업 유치를 결정하면서다.

2006년 이 도지사는 아사히글라스 와다 다카시(和田隆) 사장과 구미공단 제4단지에 PDP용 유리제조사업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같은 해 공장이 신축되고 본격적인 국내 가동이 시작됐다. 경상북도와 구미시는 외국인투자기업이 가져다 줄 장밋빛 비전으로 고용창출을 통한 지역 경제발전을 제시했다. 곧 아사히글라스에 대한 파격적 대우가 이어졌다. 10만여평 공장부지 50년간 무상임대, 5년간 국가세금 전액면제, 15년간 지방세금 감면 등 600억원의 혜택이 쏟아졌다.

▲ '규제개혁 세계10대 외국인투자국가 계획발표'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악수하는 하라노 타케시 아사히글라스 사장(2014.1.9) ⓒ아사히글라스 홈페이지

지자체는 '전범기업'이라는 기업의 과거 이력은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전범기업의 국내 진출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던 셈이다. 곧 정부의 '묻지마 투자'도 뒤따랐다. 국민연금공단은 안정적인 수익기반 마련을 취지로 2011~2014년까지 4년간 79개 일본 전범기업에 대해 수천억원의 투자를 진행했다. 아사히글라스에도 같은기간 162억원의 세금이 투자됐다. 수익률은 4년 내내 마이너스였다.

▲ 아사히글라스 등 전범기업에 대한 국민연금공단의 투자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

국가기관의 허술한 감시하에서 전범기업이 특혜를 누리는 동안 노동자들은 '노동탄압'으로 신음했다. 외투기업 특성상 국내 관리는 대체로 하청업체가 담당했다. 아사히글라스도 하청업체 3곳을 통해 비정규직 3백여명을 고용했다.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월급을 받는 저임금 생활을 이어갔다. 이 같은 노동환경에 대한 처우개선을 위해 노동자들이 뒤늦게 노조를 만들면서 문제가 생겼다. 사측이 노조가 생긴 하청업체를 계약해지하고 비정규직 170여명을 동시에 정리해고 한 것이다.

아사히글라스의 노동법 위반과 관련해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줄줄이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했다. 그러나 노동탄압은 여전하다. 최근에는 해고자 천막농성장에 대한 행정대집행도 벌어졌다. 노조는 회사를 상대로 부당노동행위 4건을 제기했고 사측은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맞서고 있다. 때문에 지역 시민단체와 야당까지 나서 지자체에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지만, 지자체는 여전히 뒷짐만 지고 있다. 전범기업 사실이 밝혀져도 "몰랐다"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 '아사히글라스 공장 앞 고용보장 촉구 기자회견'(2016.4.25) ⓒ아사히글라스노조

한재성 경북 투자유치실 유치총괄팀 계장은 "2004년 계약 진행 당시 이 기업이 전범기업인지 몰랐다"며 "외투기업 유치시 기업 과거 역사까지 조사를 안한다. 의무도 없다"고 설명했다. 또 "이 기업이 현재 특별히 해를 끼친 것이 없다면 유치 취소는 무리"라며 "국민 정서를 이유로 지역 경제발전 발목을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고용창출과 경제협력을 위한 투자라 생각해달라"면서 "전범기업이라 투자를 못하면 스스로 발목을 옥죈다. 전체 발전을 위해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차헌호(43) 금속노조 구미지부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은 "민족의 불행이자 역사의 수치"라며 "일제 전범기업으로 조상들을 강제로 끌고가 착취한 전범기업이 수 십여년 흘러 오늘날 다시 우리나라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지금까지 드러난 불법만해도 여러 가지인데 여기에 더해 민족 문제까지 걸렸으니 지자체가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된다"면서 "몰랐다는 변명과 발전만 내세우는 태도는 무책임하다. 전범기업의 불법에 대한 도의적,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 경북 영천에 있는 전범기업 '다이셀' 앞에서 사과를 요구하는 유족(2016.5.2) ⓒ평화뉴스(김영화)

한편 '일제강점기피해자전국유족연합회'는 지난 2일 경북 영천첨단품소재산업지구에 있는 일본 전범기업 '㈜다이셀 세이프티 시스템즈' 앞에서 집회를 열고 "사죄와 배상", "국내 사업 철수"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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