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비만 습관도 전염이 된다고요?"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가족력은 유전의 문제일까?

최근 보도된 내용 중 가족 간에 비만이 전염된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위장관에 살고 있는 박테리아 중 3분의 1 정도는 일종의 홀씨를 만들어 공기 중에 생존할 수 있는데, 이것을 다른 사람이 흡입하면 장내 균의 균형을 무너뜨려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게 내용입니다. 화장실을 같이 쓰거나 접촉이 많은 가족의 경우 장내 세균의 조성이 비슷해지게 되고 이것이 유전적 요인과 더해져 질병을 유발한다는 것이지요.

실제 실험 결과도 있습니다. 비만을 유도한 쥐와 함께 생활하는 것만으로 다른 쥐도 비만이 되었다고 합니다. 장내 세균이 분비하는 물질에 따라 사람의 음식 선호도나 심리적인 상태까지 영향 받는다는 기존 연구 결과와 함께 생각해 보면, 우리가 '나'라고 인식하는 존재는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와 함께 우리 몸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미생물로 이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우리가 가족력이라고 부르는 의학적 내력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은 가족력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 요인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우리가 유전이라고 뭉뚱그려 이야기하는 가족력은 유전자보다 환경적 요인에 더 큰 영향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켄델 등이 신경 가소성을 연구하던 그 10년 동안 다른 과학자들은 정적인 유전자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75퍼센트에서 85퍼센트 정도에 이르는 유전자 대부분은 환경이 보내는 신호에 따라 발현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 그 환경에는 우리가 뇌 속에서 키우는 생각, 믿음, 감정도 포함된다." <당신이 플라시보다>(조 디스펜자 지음, 추미란 옮김, 샨티 펴냄)

우리가 먹고 접하는 물질적 환경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대화, 공유하는 생각과 감정, 혹은 종교적 성향과 같은 비물질적인 환경이 한 가족의 건강과 병의 역사(가족력)를 만든다는 뜻입니다. 물론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의 성향 또한 작용할 것입니다. 하지만 잠들어 있는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거나 끄는 데는 다분히 그 사람이 처한 환경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 삶의 태도가 유전자의 조절 스위치인 셈이지요.

진료하다 보면 "체질을 개선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이 말은 대개 병이 있거나 병에 걸리기 쉬운 몸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정한 음식을 먹거나 안 먹고, 운동하는 등의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위의 내용을 참고해 보면, 이런 노력은 상당히 제한된 효과를 거둘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점을 나라는 한 사람의 몸에만 맞춰서는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건강과 질병을 이야기할 때는 체질(體質)이라는 개념 외에 기질(氣質)과 성질(性質)을 함께 파악해야 합니다. 저는 체질을 몸의 결, 기질을 기와 감정의 결, 그리고 성질을 정신의 결로 해석합니다. 정신, 감정과 기의 흐름, 몸의 상태가 불가분의 관계인 것처럼 체질, 기질, 성질 또한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그리고 한 영역의 변화는 다른 영역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그런데 어떤 한 영역만을 강조하다 보면(대부분 변화가 눈에 확실히 보이는 몸을 붙들고 늘어지지요), 다른 영역의 흐름이 편향돼 예전보다 약해지거나 불균형해지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많은 중병은 편협함과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합니다.

따라서 건강을 위해 나를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몸에 들어가는 먹거리뿐만 아니라 감정과 정신의 영역을 함께 바꿔야 합니다. 이렇게 건강과 병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면 자연스레 나를 둘러싼 (사람을 포함한) 환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이 영역을 조금씩 바꾸어 가면, 살아가는 방식이 천천히 바뀝니다. 어떤 한 사람의 삶이 변화의 궤도에 들어서면 체질뿐만 아니라 기질과 성질도 변하고, 결국 유전자에 조화와 균형이라는 불이 들어올 것입니다. 이 변화는 한 개인뿐만 아니라 질병과 건강에 관한 가족의 역사까지 바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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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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