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참패' 더민주, 선거 전략의 실패다

[김윤태 칼럼] 선거 전략의 중요성과 2017년 대선의 과제

더불어민주당은 4.13 총선에서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 더민주는 수도권에서 승리했지만, 호남에서 패배했다. 의석수는 1위이지만, 비례대표 정당 지지율 3위(25.5%)에 그쳤다. 19대 민주통합당 36.4%에 비해 10% 이상 크게 하락했다. 정당 지지율만 보면 대선에서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 더민주의 선거 결과는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로 볼 수 있다. 이제 왜 이런 결과가 발생했는지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선거를 보는 두 가지 관점

정치사회학에서 선거를 분석하는 관점은 크게 보아 두 가지 주장이 있다. 첫째 관점은 직업, 연령, 계층 등 사회구조적 요인을 강조한다(컬럼비아 학파). 둘째 관점은 후보자들의 개인적 성향과 유동적 특성을 강조한다(미시간 학파). 그러나 유권자는 자신의 사회구조적 위치에 의해 고정적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 성향이 따라 제멋대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유권자는 다양한 정치적 사건과 정당의 메시지를 통해 형성된 '정치적 기회(political opportunity)'를 인식하면서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주체이다.

노동자가 반드시 진보정당을 지지하지 않듯이 고령화와 곧 보수화를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조중동과 종편방송 등 보수언론의 주장에 따라가는 수동적 행위자는 더욱 아니다. 이런 점에서 '기울어진 운동장론'은 패배주의이다. 중요한 점은 정당의 선거전략이다. 이는 유권자의 태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선거 결과를 좌우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정당 전략이라는 풍향계는 사후에야 명확하게 보인다.

총선 직후 4월 17일 <문화일보>와 한국리서치 여론조사 결과에 보면, 총선 결과는 야당이 새누리당 실패로 인한 반사이익에 얻은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응답자들은 더민주가 기대 이상 성과를 거둔 이유로 정부와 새누리당이 잘못한 것에 대한 반사 이익(68.2%), 인물 영입 효과(14.6%), 친노패권주의 청산 노력(8.4%)이라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이 크게 패배한 이유로는 지도부 분열과 공천 갈등(43.9%), 대통령 국정운영 독선(32.3%), 경제상황 전반적 악화(18.1%)를 선택했다. 이러한 여론조사 결과는 유권자들이 정당의 전략에 능동적으로 반응한 것을 보여준다.

왜 호남에서 패배했는가?


더민주의 호남 패배는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총선 직후 더민주에서 특정 개인의 책임론이 불거졌다. 김종인 대표가 이끄는 비대위의 '비례대표 공천 파동'과 문재인 전 대표의 광주 방문 시 '정계 은퇴' 가능성 언급한 성명이 선거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종인 대표가 더민주의 안정과 중도 외연 확대에 기여했으며, 문재인 전 대표가 수도권에서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김종인 또는 문재인 두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 모든 책임이 있다는 주장은 근시안적 평가이다.

내가 보기에 선거 결과의 근본적 원인은 더민주의 '선거 전략의 오류'이다. 선거 구도를 결정하는 프레임의 설정이 더 큰 문제이다. 더민주의 선거 전략은 박근혜 정부 경제실패에 대한 심판과 국민의당 분열에 대한 심판이었다. 경제 민주화를 내세우는 동시에 수도권에서 승리 가능성이 높은 더민주 지지를 호소하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호남에서 국민의당 분열 심판론과 강한 야당 지지론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호남에서 국민의당은 철저한 네가티브 전략으로 일관했다. 새누리당 공격보다 더민주를 더 공격했고, 친노 패권주의 운동권 정당 심판과 호남 소외론을 제기했다. 민주화를 위해 운동권과 손을 잡았던 김대중 대통령과 운동권에 뛰어들어 구속의 고초를 겪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노선에서 이탈했다. 이런 점에서 국민의당의 운동권 정당 심판론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운동권 정당 비난과 일치한다. 국민의당의 호남 정치론은 전국 정당론을 내세운 열린우리당이 아니라 '핫바지론'을 들고나온 자민련의 재판이다. 하지만 국민의당 네가티브 전략은 호남 유권자의 정서를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호남에서 국민의당이 성공한 이유는?

4월 17일 <문화일보>와 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국민의당이 기대 이상 성과 거둔 이유는 기존 양당정치에 대한 실망감으로 반사이익(50.2%), 안철수 새정치에 대한 기대감(25.1%), 호남에 집중 공략한 점 성공(16.8%)을 꼽았다. 무엇보다 새누리당과 함께 더민주는 기득권 정당으로 인식되면서 유권자의 심판을 받았다. 새누리당과 더민주에 실망하고 이탈한 유권자들이 국민의당을 대거 지지했다. (이런 점에서 국민의 당이 중도층을 대변하는 안정적인 제3당이 될지는 미지수이다. 국민의당 지지자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며, 특히 교차투표가 가능한 총선과 달리 대선에서는 더욱 그렇다)

다른 한편 호남에서 국민의당 승리는 친노패권주의 심판론과 호남 소외론 프레임의 성공으로 평가할 수 있다. 김종인 대표의 비대위가 친노 패권론과 호남 소외론을 일시적으로 약화시켰으나, 국보위 전력 등 역풍을 맞으며 프레임을 바꾸는 전략적 메시지를 제시하지도 못했다. 지명도가 없는 비례대표 후보, 낙천자 중심의 선거 유세, 주목을 끌지 못한 선거공약도 아무런 효과를 얻지 못했다. 사실상 중앙당 선거전략은 무력했고 철저히 실패했다.

호남 지역주의의 부활인가?

호남의 선거 결과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역사적으로 군사정부에 맞서 호남은 민주화 운동을 지지했으며, 패권적 지역주의에 맞서 '저항적 지역주의'를 선택했다. 그러나 국민의당이 주장하는 '호남정치' 또는 '전북정치'는 저항적 지역주의가 아니라 퇴행적 지역주의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을까? 위 여론조사에서 볼 수 있듯이 호남 유권자는 양당정치 심판론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이 점은 더민주가 새누리당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만 얻는 야당이 아니라 대안정당, 수권정당으로 쇄신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 과거에는 영남에서 지역감정으로 악용했지만, 국민의당 정치인은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악용하였다. '새 정치'를 표방하더니 '호남정치 부활'을 내걸었다. 호남정치론은 호남 이익을 대변한다는 합리적 행위가 아니라 더민주가 싫다는 감정을 이용하였다. 더민주가 수도권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정당, 정권교체 위해 강력한 야당을 만들자는 논리는 무력하였다. 옳음과 그름보다 좋음과 싫음이 더 중요한 변수이었다. 이성의 정치보다 감정의 정치가 승리하였다.

"인간은 이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목적을 설정하지 않으면, 합리적인 행동을 취할 수 없다"(요시다 도오루, <정치는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는 주장대로, 더민주의 선거 전략은 정치는 본질적으로 "감정과 상징에 의해 지배되는 행위"라는 사실을 간과하였다. 유권자의 감정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새로운 상징 매개를 만들지도 못했다. 호남소외론에 대응하려는 메시지도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도 존재하지 않았다. 선거전략은 여론조사의 수치에만 존재했고 유권자의 감정을 움직이는 선거운동은 존재하지 않았다. 동감, 공감, 인정, 존중, 호혜, 연대감을 이끌어내는 감정이 정치에서 다시 중요하게 간주되어야 한다.

2017년 대선의 과제

2016년 총선이 새누리 정부 과거 8년 실정에 대한 중간평가라면, 2017년 대선은 대안을 제시하는 미래 지향적 투표가 될 것이다. 선거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구도, 인물, 정책 가운데 구도가 가장 중요하다. 현재의 3자 구도보다 2자구도로 변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야권의 합당, 연대, 단일화의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국민의당 내부의 새누리당을 겨냥한 연정론은 제2의 '3당 합당'이 될 수 있으니 여소야대의 총선 민의와 정권교체를 원하는 여론을 대변할 적극적인 전략이 중요하다.

대선후보 개인의 지지율도 주목해야 하지만 정당의 선거전략이 더 중요하다. 후보 지지율은 정당의 프레임과 메시지를 통해 변화한다. 무엇보다도 정당의 가치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선거전략이 필요하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정치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노력했지만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막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제 새로운 시대 정신이 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위한 효과적 선거 전략과 메시지를 제시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심판이 아니라 미래 지향적 투표에 초점을 맞춰어야 한다.

정당의 현대화가 필요하다

정당의 선거전략은 후보 캠프나 소수의 의원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당의 현대화를 추진하는 대대적인 조직 혁신이 필요하다. 중앙당이 전략기획, 미디어센터, 싱크탱크를 지휘하는 효과적인 선거 기계가 되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승리를 이끈 하워드 딘의 민주당전국위원회(DNC) 개혁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중앙당의 선거전략 수립과 조정을 강화하는 조직 개편과 인사가 있어야 한다. 현재처럼 단순한 ARS 전화여론조사와 여론조사 전문가(pollster)에 의존하던 시대는 끝났다. FGI 조사, 패널데이터 조사와 함께 정보분석 전문가(CIO)가 이끄는 빅데이터 조사를 통해 지역별, 계층별, 연령별 유권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교한 메시지와 정책공약을 제시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활용했던 것처럼 유권자 빅데이터를 확보하고 계층별 마이크로타게팅(micro-targeting)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중앙당 민주정책연구원의 싱크탱크 역할을 강화하고 대선 공약을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대선캠프와 자문교수단에 의존하여 급조된 공약이 아니라 중앙당 차원에서 1년 전부터 준비된 공약을 토대로 '집권 플랜'을 제시해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한계와 오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에게 헤리티지재단이 제시한 '멘데이트 포 리더십(Mandate for Leadership)', 클린턴 대통령에게 제시했던 '신민주당 리더십 평의회', 오바마 대통령에게 제시한 브루킹스 연구소의 '해밀턴 프로젝트(Hamilton Project)' 문서처럼 집권 직후 실행한 정책공약집을 미리 만들어야 한다.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진보세력이 분열되었지만 유권자들이 집권여당의 8년 실정을 심판하여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었다. 지금도 정권교체를 원하는 국민 여론이 훨씬 많다. 그러나 여권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과 새누리당 심판론으로 집권하기는 불가능하다. 야당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실천하는 대안정당과 정권교체를 이룩할 수 있는 수권정당이라는 신뢰를 얻어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 시대를 뛰어넘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민이 절실하게 원하는 청년실업, 비정규직, 노인빈곤, 보육과 주거불안, 빈부격차를 해결하는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대선 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과학적 선거전략과 유권자의 피부에 닿는 선거공약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정치는 사람의 이성과 감정을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이 글은 5월 10일 좋은정책포럼이 주최한 '20대 총선 평가와 19대 대선 전망'의 토론문을 토대로 작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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