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 아픔 풀겠다" 호기롭던 원희룡 지사, 어디에…

[언론 네트워크] 해군 구상권 청구 논란 ③

해군이 제주해군기지 공사 지연에 따른 손해를 책임지라며 강정마을 주민과 평화활동가 등을 상대로 34억 여원의 구상금을 청구해 제주사회가 들끓고 있다. 강정마을은 물론 시민사회, 정치권, 4.13총선 당선인, 제주도의회까지 '뺨을 때려놓고 손바닥이 아프다며 맞은 상대방에게 손해를 물어주라는 격'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구럼비 발파 못지않게 제주사회를 들쑤셔놓은 해군의 구상금 청구에 대한 강정 현지의 반응과 해법 등을 3차례에 걸쳐 다룬다.

지난 3월28일 해군이 다시 한번 강정의 아픔을 건드렸다.

10년째 제주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벌여온 강정마을 주민과 평화활동가 등 100여명에게 해군이 34억여원의 구상금을 청구한 것이다.

2월26일 해군기지 준공식을 가진 지 딱 한 달 만에 이번에는 '돈'을 앞세워 강정을 옥죄고 있다. '화합과 상생'은 헛구호에 불과했다.

주민동의 없이 강정마을에 들어와 공동체를 헤집어 놓더니, 이제는 '공존'마저 거부하는 듯한 행태에 사그라들던 투쟁의 불씨를 오히려 되살리고 말았다.

ⓒ제주의소리

구상권 청구 소식은 4.13총선 핵심 이슈로도 부각됐다.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새누리당 후보들까지 여야를 막론하고 구상권 철회를 촉구했다.

강창일(제주시 갑)-오영훈(제주시 을)-위성곤(서귀포시) 당선인은 하나같이 20대 국회가 시작되면 국민의당과 공조해서 구상권 청구를 철회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제주도민의 대의기관인 제주도의회도 '해군의 구상금 청구 소송 철회 촉구 결의안'을 원안 가결하는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구상권 청구와 관련해 강정주민과의 만남도 꺼리면서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던 원희룡 지사는 지난 19일 도정질문에서 비로소 입을 열었다.

원 지사는 "지난 4월3일 평화공원에서 열린 4.3추념식에 참석한 황교안 국무총리께 강정주민 구상권 청구 철회를 건의했다"며 "해군 당국에도 유선(전화) 접촉을 통해 구상권 철회라는 제주도의 입장을 전달했다"고 소개했다.

이튿날인 20일에도 원 지사는 "해군의 구상권 청구는 저같이 영업 안하는 장롱면허를 가진 변호사가 봐도 법원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청구"라며 "법 좋아하는 사람 치고 망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해군을 겨냥했다.

그는 "소송은 반드시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고, 상처를 치유하기 보다 영구화하는 부작용이 있다"며 "소송으로 가기보다는 해군에서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특히 "해군기지 공사 손실금은 국고로 떠안아야 한다"며 "해군과 강정마을 사이에 중재를 하고, 구상권 철회 설득 역할을 꾸준히 해나가겠다"고 중재를 약속하기도 했다.

드러내지만 않았을뿐 그동안 나름대로 구상권 철회를 위해 애를 썼고, 앞으로도 역할을 하겠다는 얘긴데, 강정마을 주민들은 썩 미덥지 않다는 반응이다.

해군기지 진상조사와 관련한 원 지사의 발언은 강정마을을 더욱 자극했다.

도정질문에서 원 지사는 진상조사를 강정마을에서 거부했기 때문에 시기를 놓쳐버렸다고 진상조사 무산 책임을 강정마을로 돌렸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강정마을은 2014년 11월12일 제주도가 제안한 해군기지 진상조사를 임시총회를 거쳐 만장일치로 수용했다.

조건은 있었다. 해군이 강정마을에 건설하는 군 관사 사업을 제주도가 철회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원 지사는 그러겠다고 했으나, 결국 풀지 못했다.

더군다나 해군이 군 관사 공사를 제지하던 강정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을 상대로 행정대집행에 나설 때 원 지사는 일본 출장중이었다.

그 후 원 지사는 1년여 동안 '진상규명'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진상조사를 강정마을회가 거부했다고 밝혔다.

원 지사는 19일 도정질문 답변에서도 "취임한 이후 진상규명을 하자고 강정주민들에게 제가 먼저 제안했다. 진상규명은 해군기지가 완공되기 전에 해야 한다, 그래야 제주도가 해군을 압박할 수 있다고 했다"며 "진상조사위원장이든, 조사방식에 대해 전적으로 마을회에 맡겼는데, 도정에 대한 불신 때문인지 시기를 놓쳤고, 강정마을회장이 '진상조사는 끝났다'고 공식 선언해 진상규명 논의를 거부했다"고 같은 얘기를 되풀이했다.

전제조건(군 관사 문제 해결)을 이행하지 못했으므로, 따지고 보면 원 지사 역시 진상조사 무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 원희룡 지사가 지난 2014년 지방선거 후보 시절 강정마을회를 방문할 당시 주민들로부터 제지당하고 있는 모습. ⓒ제주의소리


조경철 강정마을 회장은 "진상조사를 강정마을에서 거부한 게 아니라 군 관사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한 원 지사 때문에 이뤄지지 못했다"며 "원 지사가 먼저 강정마을에 대해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원 지사는 2014년 7월1일 취임사에서 "강정의 아픔을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합니다. 현재 강정마을의 아픔을 내버려둔다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고, 도민통합도 있을 수 없습니다. 공동체의 아픔을 방치하지 않는, 다른 정치로, 이 문제를 풀겠습니다"고 약속했다.

원 지사가 취임한 지 2년이 되어 가지만, 강정마을의 아픔은 여전하다. '윈윈해법'을 들고 나온 우근민 전 지사에 이어 원희룡 지사도 호기롭게 "강정마을의 아픔을 풀겠다"고 천명했지만, 점점 신기루가 되어가고 있다.

원 지사 말대로 강정의 아픔을 내버려둔다면 제주사회가 미래로 나아가는 것도, 도민통합도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강정은, 원 지사가 '진상조사 실기'만을 되뇌일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갈등 해결을 위한 진정성을 갈구하고 있다.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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