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사내유보금이 재투자된다"고?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10대 재벌 사내 유보금 해부 ③

재벌 관련 수치와 팩트들은 참으로 놀랍다. 매출액, 이윤 규모도 그렇고 재벌 총수와 그 일가족이 벌어들이는 천문학적인 재산들도 그렇다. 한 가지 더 놀라운 것이 있다면, 그토록 수많은 비판과 지적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놀랍게 하는 재벌 관련 수치와 팩트들은 점점 더 놀라운 수준으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2대 세습은 어느새 3대 세습으로 넘어가고 있고, 문어발 확장으로 이제 대체 재벌들이 어떤 사업을 안하고 있는지를 찾는 게 어려울 정도이다. 여러 가지 놀라운 수치와 팩트들 중에서 '인사이드 경제'가 몇 년 전부터 중점적으로 파고든 분야가 하나 있으니 바로 '사내 유보금'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기업체들이 감사 보고서를 공시하는 '3말 4초' 시즌이 돌아왔다. 비록 수많은 개념들이 복잡한 회계 용어와 수치 속에 숨겨져 있어서 공시된 회계 장부만으로 기업의 비밀들을 캐내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몇 가지 유용한 데이터들을 제공하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그럼 지금부터 2015년 재벌들의 사내 유보금은 얼마나 놀라운 수준으로 변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줄어든 상장 계열사 수

작년(2015년)에 '생 노가다'를 해가며 정리해둔 게 있어서인지 올해는 그래도 수월한 편이었다. (☞관련 기사 : 500조 쟁여둔 10대 재벌 금고 안을 보면…, '현금 적다' 재벌 앓는 소리에 담긴 비밀) 90여 개 기업들의 감사 보고서 3~4년치를 전수 조사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인사이드 경제'는 10대 재벌의 상장 계열사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그 계열사들은 어디일까? 아래 표로 정리해 보았다.


우선 작년의 경우 10대 재벌 상장 계열사 수가 97개였던 반면 올해엔 3개가 줄어 94개로 조사되었다. 각 그룹별로 상장 계열사의 변동 내역을 살펴보면 아래 상자와 같다.

△ 삼성그룹은 삼성테크윈을 한화에 매각하고 제일모직은 삼성물산과 합병되어 상장 계열사 수가 16개로 작년보다 2개 줄어들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하이스코가 현대제철과 합병되었으나 이노션이 신규 상장되어 상장 계열사 숫자는 그대로 11개.
SK그룹은 SK C&C가 SK와 합병되었으나 SK D&D가 신규 상장되어 상장 계열사 숫자는 그대로 17개.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씨앤에프가 신규 상장되어 계열사 숫자는 4개로 늘어났다.
GS그룹은 코스모화학과 코스모신소재가 계열에서 독립해 6개로 줄었으며,
한화그룹은 삼성테크윈(한화테크윈)을 인수해 8개로 늘었고,
한진그룹은 유수홀딩스가 독립 그룹으로 나가서 5개로 줄어들었다.
'인사이드 경제'는 10대 재벌 상장 계열사들의 4년치(2012년부터 2015년) 감사 보고서를 전수 조사해 사내 유보금 및 유, 무형 자산 등 투자 자산의 변동 내역을 살펴보았다. 본격적인 수치 분석에 앞서 '인사이드 경제'가 나름 갖고 있는 분석의 원칙과 그 이유를 설명해 두고자 한다.

첫째, 상장 계열사만을 분석했다. 왜냐고?

비상장 계열사까지 포함하면 수백 개 기업의 감사 보고서를 뒤져야 한다. 당장 5대 재벌만 보아도 비상장 계열사 숫자가 삼성 46개, 현대차 39개, SK 70개, LG 56개, 롯데 80개 등 300개에 육박한다. 생업을 병행하는 '인사이드 경제' 입장에서 이거 전수 조사는 때려죽여도 못한다. 혹시 시간 나는 사람이 있거든 그분들이 한번 해보시라.

이 점이 더 중요한데, 상장사의 경우 감사 보고서만이 아니라 사업 보고서, 분기별 보고서까지 제출하기 때문에 감사 보고서에 나온 의심스런 내용에 대해 일부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있지만, 비상장사의 경우 감사 보고서만 제출하기 때문에 여기에 나온 수치들은 신뢰하기 어려운 경우도 상당히 있다. 따라서 최소한의 감시 장치가 존재하는 상장사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둘째, 이익 잉여금과 자본 잉여금을 합해 사내 유보금 및 투자 자산을 계산했고, 금융 계열사 수치까지 포함시켰다.

지난해 사내 유보금 분석 당시엔 이익 잉여금과 자본 잉여금을 구분한 바 있는데, 올해의 경우엔 (조사는 2가지를 구분해서 했으나) 이 2가지를 합산한 사내 유보금만을 주제로 삼았다. 이유는 간단한데 2가지를 구분하는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자본 잉여금 수치가 변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니어서, 이익 잉여금을 주제로 삼든 사내 유보금을 주제로 삼든 분석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훨씬 자주 들어봤을 개념인 사내 유보금을 사용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마찬가지로 지난해에는 금융 계열사 수치를 포함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분한 바 있는데 이 역시 구분의 실익이 없다는 판단 때문에 올해엔 그냥 금융 계열사 수치를 포함시켜서 분석했다. 금융 계열사 수치가 전체 수치에 비하면 매우 낮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이 수치들이 전체 수치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사내 유보금 수치는 껑충 뛰었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감사 보고서에 나타난 10대 재벌 상장 계열사들의 사내 유보금 수치를 계산하여 아래 표로 나타내 보았다. 결론만 짧게 얘기하자면, 계열사 숫자가 조금 줄었을지 모르지만 재벌들의 사내 유보금 수치는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노동자들의 임금은 제자리여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사내 유보금 수치는 실로 놀랍기만 하다.


위 표에 나타난 것처럼 10대 재벌 상장사 사내 유보금은 2015년 말을 기준으로 545.93조를 기록해, 3년 전인 2012년 말(433.33조)에 비해 무려 26%나 껑충 솟아올랐다. 아래 그래프는 상위 5대 재벌들의 수치만 따로 떼어서 그래프로 나타내본 것이다.

▲ 5대 재벌 그룹 상장 계열사 사내 유보금 증가 추이(단위 : 조, 기준 : 연도 말).

각각 1위와 2위 재벌인 삼성 그룹과 현대차 그룹의 가파른 사내 유보금 증가율이 눈에 띈다. 특히 2개 그룹이 기록한 사내 유보금 수치(합해서 325.3조)는 10대 재벌 상장사 전체 사내 유보금의 무려 60%를 차지한다. 10대 재벌 안에서도 부의 집중이 상위 그룹 쪽에 집중되고 있다는 얘기이다.

삼성그룹 상장사 사내 유보금은 2015년 말 현재 212.8조로, 2012년 말(159.5조) 대비 33.4% 상승했으며, 현대차그룹 상장사 사내 유보금은 2012년 말(79.2조) 대비 2015년 말(112.5조)에 42.0% 치솟아 올랐다. 만일 노동자 임금이 3년 동안 30~40%가 올랐다면 재벌들이 뭐라고 주장했을까?

그럼 벌어들인 만큼 투자했을까?

재벌들은 사내 유보금 쟁점이 등장하기만 하면 목소리를 높여 이런 변명을 해댄다.

"사내 유보금은 기업에 쌓이는 현금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재투자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인사이드 경제'가 수차례 실증적인 조사를 통해 주장한 바 있다.

사내 유보금 전체가 당연히 현금인 것은 아니다. 예금처럼 모조리 쌓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당액의 사내 유보금이 금융 자산 형태로 쌓이고 있다는 사실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전부" "모두" "다"라는 수식어를 붙이지만 않는다면, 사내 유보금에 대한 국민 대중의 인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인사이드 경제'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실제 투자 자산'을 산출해 보았다. 재벌들 주장에 따르면 재투자되는 방식은 유, 무형 자산의 형태라고 하니, 그럼 유형 자산과 무형 자산이 얼마나 늘어났는지를 계산해보면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아래와 같은 표를 만들어 보았다. 재벌들 상장 계열사들의 유, 무형 자산 합산액을 '실제 투자 자산'이라 부를 수 있을 테니, 2014년 말 대비 2015년 말까지 투자 자산이 얼마나 늘어났는지를 계산해보면 1년 동안 실질 투자가 어느 정도 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게 된다. 정당하게 비교하기 위해서 사내 유보금 역시 총액이 아니라 '증가액'을 적시해 두었다.


뭐, 결과는 위에 보시는 것과 같다. 사내 유보금 증가액에 비해 투자 자산 증가액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현상은 특히 부의 편중이 집중된 5대 재벌에서 더 확실히 나타난다.

그런데 눈을 의심해야 할 수치가 하나 눈에 띈다. 바로 현대차그룹이다. 2014년 말 대비 2015년 말에 사내 유보금이 10.15조 늘어난 반면, 투자 자산은 무려 13.77조가 늘어난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현대차 재벌이 개과천선이라도 했단 말인가.

'인사이드 경제'는 이런 현상이 목격될 때마다 수사를 개시한다. 도대체 어디서 뭐가 늘어난 거지? 너무 재벌들을 공격하려는 쪽으로만 '촉'이 발달한 거 아니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언론이 재벌들 옹호하는 쪽으로만 '촉'이 발달해 있으니 최소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인사이드 경제'라도 이렇게 해야지 않겠나.

한전 매입 대금 10조 5500억이 버젓이 투자 자산으로

아차, 생각이 났다. 현대차그룹이 지지난해 한국전력공사 부지를 엄청난 금액을 들여 매입하지 않았던가. 기사를 뒤져보니 매입 금액이 무려 10조5500억이었다. 그럼, 이 금액들이 회계장부에는 어떻게 반영되어 있을까? 그렇다. 당연히 유형 자산, 그 중에서도 '토지' 항목에 반영되어 있다. 이것 때문에 유형 자산이 크게 늘어났을 것이고, 그래서 착시현상을 일으킨 것이다.

이들 매입 대금이 회계장부에 반영된 방식은 좀 더 복잡하다. 왜냐면 전액을 한 개 기업이 부담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3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매입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들 컨소시엄 참여 기업별로 10조5500억에 대해 현대차 55%, 기아차 20%, 현대모비스 25%의 비율로 분담하게 된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현대차는 5조8025억 원, 기아차는 2조1100억 원, 현대모비스는 2조6375억 원이다.

위 표는 컨소시엄에 참여한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3사의 감사 보고서에 나타난 유형 자산 중 2014년 말과 2015년 말 '토지' 평가액을 비교해본 것이다. '토지' 평가액의 증가액을 한번 보시라. 한전 매입에 각 업체들이 분담한 금액과 거의 일치하지 않는가! 즉, 현대차그룹 상장사 감사 보고서에 나오는 투자 자산 증가액에는 한전 부지 매입 대금 10조5500억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본래 한전 부지가 현대차그룹에 매각되기로 결정된 2014년에 매입 대금의 10%를 선납한 후 2015년에 나머지 90%를 납부 완료했지만, 회계장부에는 10조5500억 전액이 2015년에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베일을 벗겨놓고 보니 더 심각한 현실

▲ 5대 재벌 사내 유보금 증가액 및 투자 자산 증가액 추이(단위 : 조, 2014년 말 대비 2015년 말).


위 그래프는 5대 재벌의 2014년 말 대비 2015년 말 사내 유보금 증가액과 투자 자산 증가액을 나타내본 것이다. 삼성그룹의 경우 사내 유보금이 15.29조가 늘어나는 동안 투자 자산은 고작 1.57조가 늘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한전 부지 매입 대금 때문에 착시효과가 벌어지지만, 그 매입 대금을 빼고 나면 사내 유보금 10.15조가 늘어나는 동안 투자 자산은 고작 3.22조 늘어났을 뿐이다.


한전 매입에 참여한 현대차그룹 컨소시엄에 속한 3개 업체만 별도로 투자 자산 증가액을 뽑아보았다. 투자 자산 증가액 모두를 합산하면 11조8232억인데, 이중 한전 매입 대금이 10조5500억에 달한다. 쉽게 말해 현대차그룹을 이끌고 있는 3두 마차인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가 지난 1년 동안 실제 생산적인 투자를 벌인 것은 많아야 1조 안팎이라는 뜻이다.

LG그룹은 오히려 투자 자산이 줄어들기까지 했고, 롯데그룹은 고작 80여억이 늘어났다. 이쯤 되면 "사내 유보금은 다양한 방식으로 유․무형 자산에 재투자된다"는 재벌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 하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4.13 총선이 코 앞이다. 누구는 문제가 경제라고 얘기하고 누구는 문제가 정치라고 얘기하며 누구는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지도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사이드 경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간단하다. 문제는 재벌이다!

뱀발 : 그런데 이거 선거법 걸리는 거 아닐까? 반노동자 정당 어쩌구 하면 특정 정당을 가리킨다고 하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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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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