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힐까요? 당연히 그럴 겁니다. 이미 먹히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이렇게 단정하는 이유는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신문과 방송 모두 도배질을 하고 있습니다. 큰절하고 무릎 꿇는 장면을 대문짝만 하게, 한 시간이 멀다 하고 싣고 틀고 있습니다. 이로써 반은 챙기고 들어갔습니다. 이슈가 없는 선거에서 유권자의 시선을 집중시켰습니다. 이것도 의제라면 의제를 설정했고, 선점했고, 독점했습니다.
나머지 절반의 영역에서도 리스크는 없습니다. 낮은 포복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까딱 실수'가 나타날 가능성이 적고 역풍을 맞을 여지가 적습니다. 그래서 반의반은 더 챙기고 들어갑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반의반도 큰 걱정거리는 아닙니다. 잘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새누리당의 읍소 대상은 야권 지지층도 부동층·무당층도 아닙니다. 순간 실망해서 등 돌린 전통적 지지층이 대상입니다. 모범생인 줄 알았던 자식이 비행 청소년 비슷한 짓을 해서 순간 화가 난 사람들입니다. 사귀다 헤어진 연인이 아니라, 보살피다가 화가 난 부모 같은 사람들입니다. 사랑할 태세가 만반으로 갖춰진 사람들, 다시 사랑할 이유가 주어지기만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읍소 퍼포먼스는 더할 나위 없는 계기입니다. 이미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2004년 17대 총선 때 탄핵역풍에 차떼기 파문까지 겹쳤던 새누리당의 '살려달라'는 호소에 손을 내밀었던 지지층입니다.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을 벌이고 비자금 역사상 최악의 수법을 동원했을 때도 용서하고 밀어줬던 지지층에게 공천 파동이 뭐 그리 큰 문제겠습니까? 형제끼리 툭탁거린 정도겠지요. 게다가 그 형제들이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다이아몬드보다 더 영롱한 법입니다
사랑할 마음이 전혀 없는, 또는 내 마음 나도 모르는 사람들에겐 다르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새누리당의 눈물이 식탐을 부리다 목에 가시가 걸려 흘리는 악어의 눈물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인터넷 공간 등에선 새누리당이 선거 때마다, 4년마다 한 번씩 큰절을 한다고 비아냥대면서 '윤절'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반성과 다짐의 노래'를 '반성하는 척 다급해 부르는 노래'로 패러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사랑할 마음이 전혀, 또는 별로 없는 사람들의 냉랭한 반응은 애당초 새누리당의 고려사항이 아닙니다. 선거란 51%의 게임, 절반에서 딱 한 표만 더 얻으면 이기는 게임입니다. 게다가 이번엔 '다야' 구도 하에서 치러지기 때문에 40%만 얻어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오매불망 일편단심 전통 지지층만 붙잡으면 만사형통입니다. 그리고 이런 층과의 정서적 유대는 아직 튼튼합니다. 그래서 읍소의 감성팔이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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