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을 '무동' 태워야 헬조선이 바뀝니다"

[인터뷰] 무동학교 민경중 교감

이번 4.13 총선에서 강효상 전 <조선일보> 편집국장이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를 신청해 16번을 받았다. 매번 총선에서 언론인 출신이 공천을 받는 일이 있었지만, 이번엔 경우가 좀 다르다. 강 전 편집국장은 현직(논설위원)에 있다가 바로 공천을 받았다. 또 강 전 편집국장은 박근혜 정권 상반기에 편집국장을 맡았고, 당시 나왔던 <조선일보>의 '특종'(?)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 보도였다. 일각에선 강 전 국장이 박근혜 정부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막아준 공로로 새누리당 비례대표 안정권을 받은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강 전 편집국장이 두드러진 사례지만, 다른 언론인 출신들의 행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입으로는 사회의 부조리, 아픔을 얘기하면서 시선은 모두 '위'로만 향한다. 더 큰 '권력', '명성'을 좇는다. 비단 언론인 출신뿐이랴. 우리 사회에서 소위 어느 정도 자리에 오른 인사들은 마찬가지다. 대다수가 남들이 우러러보는, 밑에 사람을 부릴 수 있는 '자리'만 찾는다. '내'가 선 자리에서 '아래'를 생각하며 베푸는 일을 찾는 기성세대들을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민경중 전 CBS <노컷뉴스> 보도국장(現 법무법인 제이피 고문)을 만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뜻을 같이 하는 인사들과 함께 20대들을 위한 아주 특별한 학교를 만들어, 내달 1일 개교를 앞두고 있다. 그는 한국 사회에 "감사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기성세대라며 이 같은 일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들의 힐링캠프' 무동학교는 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이 교장을, 석종훈 ㈜나무온 대표(前 다음 사장)와 민경중 전 보도국장이 교감을, 황주명 법무법인 충정 대표변호사(前 서울고등법원 판사)가 고문을 맡았다. 또 강원국 전북대 초빙교수(前 대통령 연설비서관), 김현종 메디치미디어 대표(前 중앙일보 기자), 최준석 <주간조선> 선임 기자, 홍혜걸 의학전문기자 등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했다. 탐나는 강사진이다.

그와, 또 함께하는 '어른'들이 후배 '문송'들을 어떻게 '무동' 태워주려는 것인지 지난 25일 만나 들었다. 다음은 전홍기혜 편집국장이 묻고 민경중 교감이 답한 인터뷰 전문이다.


▲ 무동학교 민경중 교감. ⓒ프레시안(최형락)

"무동학교,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프레시안 : '문과생을 위한 인생 스타트 업'이라는 무동학교의 시도가 신선하다.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민경중 : 석종훈 대표와 김현종 대표 등 술 한잔하면, 청년세대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루는 김현종 대표가 '문과 출신인 우리가 지금과 같은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누린 만큼 후배들에게 갚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우리는 청년들에게 빚이 있다'고 하더라. 셋 다 언론인 출신이라, '내리사랑(선배가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단순하게 시작했다.


프레시안 : 4월 1일 개학을 앞두고 있다. 얼마 전(3월 23일) 지원자들과 처음 만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소감은?

민경중 : 무동학교 1기생 총 25명을 뽑는 면접 자리였다. 지원자들에게 '무동학교를 어떻게 알게 됐느냐?'고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나왔다. 4분의 1 정도가 '부모님이 라디오에 나온 관련 인터뷰를 듣고, 한 번 지원해보라고 해서 알게 됐다'고 다. '요즘 청년들은 취업 관련 정보도 헬리콥터 맘의 영향을 받는구나' 싶어 놀랐다. 그리고 절반 이상은 '기사를 보고 지원했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아직 문을 보는구나'라는 생각에 다시 한 번 놀랐다.


프레시안 : 무동학교 강의 계획을 듣고 싶다.

민경중 : 초중고와 대학에 이어, 또 하나의 주입식 교육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무동학교는 토론과 실습이 주가 되며, 화/목 주 2회 교육한다. 그리고 청년들의 얘기를 최대한 듣기 위해 5명을 하나의 그룹으로 만들어 운영위원들이 각 그룹 멘토(담임제)로 나선다.


인문계 학생들에게 부족한 'IT' 지식과 '생명/의학' 분야는 각각 석종훈 대표와 홍혜걸 박사가 맡는다. '세계와 나'를 이끌 최준석 기자는 해외 취재 경험을 살려 청년들이 도전할 수 있는 스타트업 소재를 제공할 것이다. 강원국 교수는 기획서 작성을 포함한 '말과 글'을 준비하고 있으며, 나는 '언론과 홍보' 분야를 강의한다.

그 외 이기대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이사(IT), 천종식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생명/의학), 안병진 경희사이버대학교 미국학과 부교수(세계와 나), 김철휘 국무총리 연설비서관(말과 글), 이현재 배달의민족 CRM전략실장(언론과 홍보), 전승훈 대우증권 연구원·박기찬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경제/일) 등 각 분야 초청 강사들도 함께한다.

▲ 무동학교 홍보 페이지(http://www.culturecompany.co.kr/shop/mudong-school/) 갈무리. 무동학교 입학식은 오늘 4월 1일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 마련된 강의실(출판사 메디치미디어)에서 진행된다.

프레시안 : 지원자들에게 '사회는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에세이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청년들의 실제 목소리는 어땠는가.

민경중 : 생각보다는 사회에 대한 불만이 많지 않았다. 나름대로 긍정적인 부분이 있었다. '헬조선'의 미래가 불안하긴 하지만, 삶을 부정적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이 부분에 희망이 있다고 느꼈다. 이들의 숨통을 조금만 터줘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또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응원하는 선배가 있다면 작은 위로가 되지 않겠는가. 무동학교가 청년들에게 취업을 알선하거나 거창한 것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에게 '무동을 태워줄 선배가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

2015년 여름, 나는 1년도 채 다니지 않은 회사에서 퇴사를 권유받았다. 퇴사 대상은 비단 나뿐만이 아닌, 200명 이상의 정규직 전원이었다. 일부는 분개했다. 일부는 낙담했고 일부는 말수를 아꼈으며, 어떤 이들은 새로운 다른 일을 시작하려 분주해졌다. 사회초년생으로, 직장에서 겪는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던 나는 얼떨떨했다.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이 새로운 경험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 지원자 양 모 씨의 에세이 중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인상적인 대사가 나왔다. 우르크 소녀 파티마를 구한 뒤 유시진 대위(송중기 분)가 강모연 의사(송혜교 분)에게 "누군가의 인생에 손 내미는 건 그만큼 책임질 일이 느는 겁니다"라며 "이렇게 만나는 사람들을 다 책임질 수는 없어요.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라고 하자, 강모연 의사는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파티마의 삶은 바뀌겠죠. 그리고 그건, 파티마에겐 세상이 바뀌는 일일 거예요. 그럼 됐죠, 뭐"라고 했다.

무동학교가 언론의 조명을 받으면서 부쩍 책임감이 느껴졌는데, <태후>의 대사에 부담을 좀 벗었다. 무동학교가 구조적인 청년취업 문제 바꿀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두 명에게는 삶이 바뀌는 일이 됐으면 좋겠다. 그럼, 만족한다.

과거에 나는 그 당시 상황이 사회의 전부이고 사회에서 보여지던 나라는 존재가 나의 전부라고 여겼다. 지금은 다르다. 사회는 나에게 미지의 세계이고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동기부여 그 자체다.

- 지원자 최 모 씨의 에세이 중
나에게 사회는 망가진 꽃밭이다.
그러나 함께 가꾸어 가기에 희망이 있는 삶의 터전이다.

- 지원자 홍 모 씨의 에세이 중

"감사하다" 외칠 사람은 기성세대

프레시안 : 청년세대와 기성세대는 태어난 환경과 사회적 경험이 다르다. 기성세대는 청년 시절, 치기(稚氣)를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청년세대는 그런 치기도 부릴 수 없는 암울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청년세대에게 '우리는 기성세대와 다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준다면, 사회가 변하지 않을까?

민경중 : 동의한다. 면접할 때 희망 월급을 물어봤더니, 200만 원이라고 했다. '청년들의 기대감이 굉장히 낮아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 시절부터 아르바이트하며 받은 최저임금에 기대치가 낮아진 것 같았다. '상처받은 새'와 같은 느낌이었다. 기성세대의 20대와 비교할 때 지금 청년세대가 스펙도 높고, 글도 더 잘 쓴다. 그런 청년들이 사회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그냥 주저앉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프레시안 : 지금 취업절벽에 처한 것은 인문사회계열 학생들만의 일은 아니다.

민경중 : 통계적으로 이공계에 비해 인문계 취업률이 낮다. 인문계 중에서도 지방대학 또는 인문계 여학생 등을 따지면 더 형편없다. 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대학에 들어가라고만 했지, 이들의 미래를 위한 교육과정이나 시스템을 제대로 제공했는지 의문이다. 이 역시 기성세대의 책임이고, 빚이다.

프레시안 : 청년세대 문제, 어떤 식으로 공감하나.

민경중 : 그들의 고민과 관심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는 TV 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tvN <꽃보다청춘> 아프리카 편에서 청년 4명(안재홍, 류준열, 고경표, 박보검 출연)이 멋진 풍경을 보거나 음식을 먹으며 늘 "감사하다"고 외쳤다. 들을 때마다 "감사하다"고 외쳐야 하는 사람은 기성세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꽃청춘' 4인방이 목욕가운을 입은 채 조식을 먹는 장면과 수영장에서 하의를 벗어 흔드는 장면이 여과 없이 방송되면서 '비매너' 논란이 일었다.

우리 사회는 실수를 용인하지 않는 편이다. 대한민국 기성세대는 젊은 시절 자신의 실수는 돌아보지 않은 채 청년에게만 완벽할 것을 요구한다. 가식적이고 이중적이다. 하지만, 미국의 정치인 중에는 젊은 시절 금지 약물을 복용하거나 반체제 단체에서 활동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 많다. 그럼에도 사회의 주류로 성장한다. 특히 실패를 교훈 삼아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용과 배려를 배운다.

<노컷뉴스> 보도국장 시절, KBS <골든벨>에서 학생과 담임교사 간 애정이 남다른 장면에 눈이 갔다. 경기도 파주 문산여고 지관순 양(당시 고3)이 50번째 문제를 모두 맞히고 골든벨을 울리자, 담임교사 김진희 씨가 펑펑 울었다. 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연예팀 기자에게 취재를 지시했다.

지 양은 초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마친 뒤, 오리 사육과 우유 배달을 하며 중학교를 다녔다. 고교 진학을 하면서 아침에는 학교 근로장학생으로, 방과 후엔 초등학생 과외로 생계를 책임졌다. 아버지는 오랜 병환으로 경제적 능력을 상실했고,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한 손을 쓰지 못했다. <노컷뉴스> 보도로 사연이 알려지자, 대학 장학금 등 온정의 손길이 이어졌다.(☞ <노컷뉴스> 2004년 11월 자 '절망속에서 골든벨 울린 시골 여고생')

TV에서는 한순간이었지만, 그날 그 프로그램을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이다. 지 양이나 나나 사회가 바뀌는 경험을 한 셈이다.

프레시안 :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지원이 유독 가족 내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사회지도층의 갑질 논란, 중산층의 사교육 열풍 등 모두 자기 자식만 챙기기 때문이다. 기성세대가 각성해야 할 일이다.

민경중 : 그렇다. 꿈꾸고 준비하는 사람의 손을 잡아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무동학교는 그런 생각으로 무장되어 있다. 손을 잡아줄, 무동을 태워줄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언론, 냄비 속 개구리 신세"

프레시안 :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 현재 언론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민경중 : 여러 면에서 요즘 언론, 참 안스럽다. 과거에도 기자 여러 명이 정치인 한 명을 취재하는 방식이었지만, 정치인은 갑이고 기자는 을이 돼 몰려다니지는 않았다. 더욱이 심층적인 기사보다는 본질을 애써 외면하거나, 힘에 부쳐서 순응하거나, 스스로 게이트 키핑(Gate Keeping)한 기사가 주로 나온다.

외적으로는 언론 환경에, 내적으로는 경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기자'라는 직업이 순응화된 직장인처럼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졌다. 선배가 후배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솔직히 답은 없다. 예전부터 '언론이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문득, '기자를 위한 무동학교를 하나 더 만들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든다.

프레시안 : 대졸 청년들의 희망 임금이 200만 원이라고 했다. 현재 작은 규모의 언론사 초봉이 200만 원이 안 된다. 먹고사는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의 역할과 가치는 커지는데, 답은 없다.


민경중 : 객관성과 진실성 등 언론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생계 역시 언론의 본질만큼이나 중요하다. 언론(기자)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옛날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기자'직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어떤 것에도 만족하기 어렵다. 이유가 뭘까?


▲ 무동학교 민경중 교감은 CBS <노컷뉴스>를 기획·창간하고, <김현정의 뉴스쇼>를 만든 크로스미디어 저널리스트다. 지난해에는 언론 생활 27년의 기록을 담은 <다르게 선택하자>(샘솟는기쁨 펴냄)를 출간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언론은 남의 변화는 쉽게 지적하지만, 스스로 변화의 대상이 되기는 두려워한다. 시대의 흐름은 변하기 마련인데, 언론은 변화를 따르기보다 저항하는 쪽이다. 그래서 변화를 얘기하다 보면, 내부의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기자 생활 내내 '라디오 기자 또는 종교방송 기자'라는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다. 초년 기자 시절, 'CBS 기자'라는 이유로 기자실에 들어가고 못하고 서러움을 받은 경험이 있다. 메이저(지상파 방송 및 종합 일간지)와 마이너(신규 보도채널 및 인터넷 신문)라는 구분이 확연했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CBS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기자 개인의 브랜드가 올라야 회사의 가치 또한 높아진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 투쟁은 외부보다는 내부, 특히 선후배를 설득하는 과정이 힘들었다.

한발 물러나서 보니, 당시 교만했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변화하려 했던 것 아닌가. 혼자 잘난 척했던 것 아닌가. 더불어 같이 변할 수는 없었을까? 한편으로 후회하는 것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후회하지 않는 게 있다. 변화하기 위한 투쟁이 개인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프레시안 : <프레시안>도 무(인터넷 신문 불모지)에서 유를 창조해 성공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사실만으로 유지가 안 된다. 과거의 성과를 바탕으로 계속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측과 과거의 영광이 다시 재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측이 있어 중지(中智)를 모으기 어렵다.

민경중 : <프레시안>도 구성원들을 현실적·경제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지금 <프레시안> 내부에서 '과거보다 못한 것 아니야? 더 어려워진 것 아니야?'라는 문제의식이 있다면, 변화의 생각(새로운 콘텐츠 개발과 서비스 구축)을 가진 사람을 발굴하고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선배들 또는 1세대들이 자신들의 성공담에 취해 있으면 안 된다.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는 후배에게 용기를 주고, 그런 후배를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국내 '1등 신문'이라는 <조선일보>도 외국에 나가면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조선일보>는 비난 속에서도 남의 장점을 흡입할 수 있는 인력이 있고 상황 대처 능력 또한 빠르다.

<프레시안>도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기존의 판에서 현재의 문제를 극복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새로운 판을 열어 흐름을 주도하면 어떨까? CBS뿐 아니라 <프레시안>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문제를 극복하려 하기 때문에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한 개의 브랜드가 계속 살아남기는 어렵다. 그 안에서 스핀오프(spin-off)를 통해 세포처럼 분화돼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이라는 이름 아래 보호받기보다는 다양한 시도를 꾀하는 구성원(조직)이 필요하다. 변화를 시도하는 구성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조직은 결과적으로 봤을 때 발전하지 못한다.

특히 CEO가 선택하지 않으면 조직은 바뀌지 않는다. 지난해 CBS 사장 공모에 나섰던 것도 변화를 꿈꾸는 사람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관계만 신경 쓰는 사람보다는 윗사람에 까칠하게 구는 독불장군, 일에 열정을 가지고 변화를 꾀하는 사람을 밀어주고 싶었다.

프레시안 : 언론 대부분이 오히려 나쁜 쪽으로 바뀐 것 같다. 과거에는 소속 매체와 상관없이 '언론사 선후배'로 교류하며 배우는 관계가 형성됐다. 매체 간 정보와 인맥이 자연스레 형성됐다. 그런데 지금은 언론사별로 나뉘어 공유되는 게 없다.

민경중 : 언론사만큼 매뉴얼이 없는 조직이 없다. 처음에 수습기자가 들어오면 '사스마리 교육'이라고 해서 도제식으로 가르친다. 프랜차이즈 아르바이트도 처음에 숙지해야 하는 매뉴얼만 200여 가지는 넘는다는데, 언론사는 그런 게 없다. '맞으면서 큰다'는 과거 방식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다.

기자실에서 일주일씩 합숙을 시킨다고, 진짜 기자가 될까? 그렇게 기자가 됐다고 해도 정의를 외면하고 옳고 그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선배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조직의 변화도, 교육 매뉴얼도 없는 한 언론사는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정치권력이나 재벌권력이 언론을 우습게 보는 것은 언론이 어느 순간 옳고 그름에 대한 최소한의 판단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특히 종편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자 역할이 끝나기 무섭게 정치권으로 갈 생각만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또 이런 세태가 롤 모델이 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권력 지향적 기자가 잘못됐다는 자각조차 없다는 점이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넣으면 바로 튀어나온다. 하지만 찬물에 넣어 서서히 익히면 개구리는 죽는다. 지금 언론이 바로, 냄비 속 개구리 신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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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

프레시안 이명선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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